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88)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88화(18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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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으으윽…….
진성은 <솔도로스의 선택>을 꺼내어 들었다.
지금까지 썼던 <킬조의 영혼검>으로도 마테카를 제압하기엔 충분하겠으나 <솔도로스의 선택>을 꺼낸 건 경고의 의미이기도 했다.
‘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네가 무슨 짓거리를 해도 30초 안에 끝장낼 수 있어. 보호막? 한자 공부? 한번 해볼래, 나랑?’
안톤 레이드 컨텐츠와 패턴이 같다 하더라도 진성이 클리어하지 못할 건 없다.
무엇보다 게임 내의 캐릭터를 조종하듯 시간을 일일이 끄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실이기에 더 빠르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솔도로스와 양얼 그리고 흑구의 힘까지 빌렸을 때를 기준으로 진성이 언급한 30초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칼로소……. 신? 절대자. 개념적인 존재. 철학. 뭐, 그런 건가 보네요?”
진성의 곁에 있던 칠리새우가 중얼거렸다.
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네? 아, 그렇죠. 칠리새우 님은 칼로소 모르신다고 했죠?”
“모르죠. 하여튼 저 마테카가-. 느낌상 귓속말처럼 대화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저 마테카가 일부러 중얼거릴 정도로 대단한 무언가겠구나~ 정도?”
그리고 연륜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눈빛만 교환하던 마테카와 진성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칠리새우는 최근 얻은 ‘귓속말 가능’이라는 정보 하나로 상황을 그려내고 있었던 것.
진성은 괜스레 뜨끔했으나 칠리새우는 오히려 푸근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마테카가 뭐든 간에 나는 관심도 없다는 것 정도? 마테카가 씨부리든, 말든……나는 아~무 관심도 없고, 실제로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진성 씨가 크게 우려할 일은 없다! 뭐,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요? 나는 애초에 비즈니스의 대상도 아니라고.”
줄곧 귓속말을 나누던 두 사람 중 하나가 갑작스레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다?
혹여 그것으로 진성에게 불리한 상황이 된다거나 쫓기는 입장이 되지는 않을지, 칠리새우는 그러한 부분까지 읽어내어 진성을 미리 안심시키는 게 아닌가!
“……진짜 나이는 무시 못 하겠네요.”
“나, 나이가 무슨 상관?! 그리고 기왕이면 경험이라든가, 뭐, 좋은 말 많잖아요? 진성 씨도 비비 닮아가나?”
“그, 그게 아니라, 크흠! 하여튼 고맙다는 거죠.”
진성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칠리새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성의 등을 팡팡 때렸다.
“그 말만 하면 될 것을 말이야, 꼭 한마디씩 덧붙여서……. 하여튼 난 신경 안 쓸 테니까. 소리로 떠들든 귓속말로 떠들든 맘대로 하시라고.”
그렇다면 더 이상 걸릴 것도 없다.
자신의 경고까지 무시하며 육성으로 떠든 건 진성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보려는 의도였을 터.
“들었지, 마테카? 그러시다는데? 흐흐, 한번 지껄여봐. 내가 알고자 하는 칼로소는 그런 개념적인 게 아냐. 인물로서, 존재로서의 칼로소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진성은 대놓고 물었다.
마테카는 육성으로도, 정신 감응으로도 응하지 않았다.
진성의 질문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아니면 윤회. 윤회라면 어때? 너는 마테카다. 타르탄족의 왕이다. 그리고 안톤이다. 안톤과 정신 감응을 통해 안톤의 뇌이자 그 자체가 되어버린 사도다. 그러면……그 이전에는?”
크랑쿨라 행성의 울루족 안톤.
그가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대 테라 행성에서의 인공신과 칼로소의 전투 때문이 아니었던가.
칼로소의 악한 면을 가공하여 만들어진 인공신들은 모두 그 힘을 토해내며 사실상 소멸하게 되었고, 그 힘들은 우주 전역을 떠돌다 강대한 힘을 소유하기에 걸맞은 육체에 스며들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상황으로 말미암았고, 떠돌던 파편, 마계에 올라탐으로써 마치 하나의 집단처럼 사도라 불리게 된 것이다.
“칼로소 운운했던 건 뭔가를, 어렴풋하게나마 읽어냈기 때문인가, 마테카?”
그렇기에 진성은 확인하고 싶었다.
사도 안톤, 마테카.
그는 과연 자신의 전생을, 테라 행성의 ‘인공신이었던 시절의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인공신 나벨의 껍데기……사도로서의 힘이 빠져나가고 남은 껍데기가 세월이 지나 다시금 자아와 힘을 갖기 시작하며 안개신 무가 된 것처럼. 아라드의 토착신처럼 숭배받던 안개신 무가 인공신 나벨일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마테카 또한 자신의 전생을, 인공신 시절의 이름이나 기억을 가지고 있진 않을지.
진성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물었다.
질문이 구체적이 될 수록, 마테카에게서 끌어내려는 정보가 세부적으로 들어갈 수록 <솔도로스의 선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결국 하나뿐이었다.
“……역시 모르는구나.”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자는 필요없다는 뜻이다.
또한 에둘러 물어야 할 정도의 여유 시간조차 없음을 진성은 듣고 있었으니.
“진~~~ 상~~~~ 니이이이임!”
비비의 외침에 더하여 여러 개의 발소리가 바삐 뒤섞였다.
진성은 마테카를 견제하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보았다.
“마침내 사도 안톤과의 결착이로군요.”
비비를 비롯해 운 라이오닐과 나엔 시거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천계군 소속 요인들이 좌측에서 다가오는 중이었다면…….
“음?”
대놓고 멀리 떨어지진 않았지만 그들과는 미묘한 접근 방향에서부터 다가오는 실루엣도 있었다.
“저 녀석만 처치하면 된다는 거지? 아이언 울프 기사단, 전원 집결! 전투를 준비하라!”
반쯤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호령하는 아이언 울프 기사단장.
반 발슈테트.
‘그렇겠지. 반이 오지 않았을 리 없어. 그보다 놀라운 건 반이 아니라……’
반이나 하츠 등 데 로스 제국의 인물들보다 진성에게 더욱 황당한 점은 따로 있었다.
그들의 곁에서 멋쩍은 듯, 면목 없다는 듯 걸어나오는 한 사람은 또 누구인가.
운 라이오닐과 비비는 그자를 혼내듯 외쳤다.
“하이람 대장. 어디 갔었던 겁니까?”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다고요!”
해안수비대 대장, 하이람 클라프.
반을 비롯한 제국군과 함께 걸어 나오는 자는 하이람이었다.
“라이오닐, 나엔 양. 모두 무사했군. 나도 길을 잃어 위험했는데 이분들을 만나 겨우 여기까지 왔네.”
연기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진성은 고개를 휙, 돌려야만 했다.
그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여전히 부유 중인 사도 안톤 그 자체.
‘……하이람. 저 인간이 반과 함께? 설마 마테카가 지껄였던 게 저 인간들때문인가.’
그가 목소리를 낸 이유에 대해, 미묘하게 웃음기를 지닌 그 표정의 의미를 진성은 눈치챘다.
* * *
“다들 피해 계세요! 어차피 저 녀석을 묶어놓을 수가 없으면 줘 패는 것밖에 방법이 없으니까!”
“모험가님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내가 진상 님이나 칠리 언니보다 얌전할 뿐이지, 안톤 공략법 정도는 두 사람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고요!”
“얌, 얌전한 건 아니라고 생각-.”
“뭐라고요, 나엔 님?!”
“아, 아뇨, 아니. 아무것도.”
천계인들을 사실상 인솔하면서도 비비는 안톤 레이드의 던전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검은 화산’을 능숙하게 헤쳐 나갔다.
일반 타르탄족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첫 번째 네임드 몬스터라 할 수 있는 ‘흑연의 크레스’ 또한 공략 방법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
그녀의 말처럼 홀딩 관련 스킬을 해줄 만한 NPC가 없는 와중에 괜히 그들이 말려들어 봐야 좋을 게 없었으므로, 그녀는 최대한 NPC들을 뒤로 물러나게 한 후 홀로 몬스터를 상대할 요량이었다.
“…….”
운 라이오닐과 나엔 시거는 비비와 흑연의 크레스가 1:1 대결을 할 동안 주변의 타르탄족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서야 하니, 그들 또한 여유가 없는 것으로 따지면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그들은 뒤늦게야 눈치챘던 것이다.
은발의 해안수비대장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하이람 클라프가 일행에서 빠져나간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두 번째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할 때였다.
그리고 하이람은 그 시점에서 이미 마주친 상태였다.
“엇? 해안수비대장님?”
반 발슈테트는 하이람을 보며 잠시 놀랐다.
그것은 하이람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기사단장님. 왜 여기에……. 그것도 혼자서-.”
있을 법한 장소가 아닌 곳에 있는 두 사람.
서로가 무언가를 숨기듯 흠칫거리기도 잠시, 반은 말했다.
“부단장이랑 다른 단원들은 주변을 정리 중……이라 여기까지는 오시기 힘드셨을 텐데.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인 게 아니라면 말이죠.”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희번득거리는 반의 눈동자를 보며 하이람 역시 조심스레 답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잠시 교차되었다.
“운으로 올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킥, 좋아요. 조용히, 이리 한번 와서 보실래요?”
반은 하이람의 눈에서 무엇을 읽은 듯 손짓했다.
하이람도 마찬가지였다.
씨익, 한쪽 입꼬리만을 뒤틀려 올리는 반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은 듯, 그는 한 걸음씩 반을 향해 나아갔다.
아이언 울프 기사단을 뚫고 이곳까지 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목적과 확실한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함을 반은 알고 있다.
그것은 하이람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간 자들’을 호위하거나 보호하기는커녕, 그저 경계와 수색 위주로 흩뿌려진 제국군을 봐왔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었다고도 볼 수 있을 터.
콰아아아아앙……!
멀찍이서 들려오는 소음에도 아랑곳않은 채 하이람은 반의 곁에 섰다.
그러곤 보았다.
꽤나 떨어진 거리에 있는 두 사람.
“읏!? 지, 진성 씨? 웃겨요?”
“네.”
“슬슬 저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괜찮아요. 저쪽은 아마 비비 씨일 테고…… 저 소리라면 아마 심연의 메델 타일 터지는 소리 같은데. 비비 씨가 뭐 패턴 실패했나? 흐흐.”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이람은 눈을 부릅떠 반을 바라보았다.
반의 눈동자 또한 진성과 칠리새우, 두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나 하이람의 반응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참 불공평하지 않아요, 세상이?”
시선은 고정시킨 채 반은 그저 중얼거렸다.
하이람은 반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반은 말을 이어 나갔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모험가……그래, 녀석이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천계의 입장에서야 모험가까지는 그래도 예쁘게 봐줄 법하겠어요. 황녀님 구출에도 한몫한 건 사실이니까.”
“무슨……말입니까.”
하이람의 말에 반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뇨, 그냥 혼잣말입니다. 천계의, 제법 높으신 분 입장에서 봤을 때……저 인간은 어떻게 보이려나, 싶어서.”
“……진성.”
“알고 계신가 보네요.”
“모를 리 없잖습니까. 반 님이- 아이언 울프 기사단장님이신 당신께서 불가능하다 한 일을 해냈는데.”
하이람은 약간의 짜증을 섞어 말했다.
근본적으로 반의 이야기를 믿고 날뛰었다가 진성에게 사과하는 상황에 처해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러니까요. 저는 그 부분도 포함해서 말하는 거였습니다. 안 되거든요.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건. 당장 아라드 전역에서 그런 일을- 4인의 웨펀마스터라는 별칭을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그런 제 입장에서 보기에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야 정상이거든요.”
“……마법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 의견만큼은 알 것 같습니다.”
하이람이 어떤 기분인지.
그가 모험가를, 더 정확하게는 진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반은 말했다.
“근데 꼭……저 인간이 엮이면 그렇게 된단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뤄지고…… 여태껏 그 누구도 관심이 없거나, 숨겨져 있던 비밀들이 밝혀지거나……이상하지 않아요? 왜 저 인간만 저렇게-.”
그리고 반의 말에 응하듯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칼로소는 말 그대로 세상의 이치. 생과 사를 관장하지만 관여하지 않는 존재. 모든 것의 시초이자 모든 것의 끝. 가장 늦게 나타나지만 가장 먼저 걸었던 자.”
마테카가 말했다.
하이람으로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한마디였으나 옆에 있는 자는 달랐다.
“-특별 대우를 받냐고…… 쯧.”
아이언 울프 기사단장, 반 발슈테트는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