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93)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93화(193/212)
193
천계 지벤 황국의 황도, 겐트에 들를 때도 별다른 이벤트는 없었다.
황녀 에르제에게 섬이 되어버린 사도 안톤의 사체, ‘젤바’로 향해 그곳에서 세상을 위한 활동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들은 게 전부.
평소였다면 온갖 호들갑을 떨며 멜빈 리히터를 위시한 NPC들과 회포를 풀었을 법한 성격임에도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이제부터 갈 곳이 황혼의 바다 어딘가에 자리 잡아버린 사도 안톤의 사체, 마치 전설 속의 화산섬과 같은 이름으로 불릴 ‘젤바’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겐트에서 해상열차를 타고 슬라우 공업단지로, 슬라우 공업단지에서 다시 건쉽을 탄 채 상공을 비행하며 비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슈우우우우우……!
“젤바가 보입니다! 착륙까지 약 오 분! 네빌로 유르겐 공께서 모험가님을 마중 나와 계실 겁니다!”
“네, 고맙습니다.”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저희뿐만 아니라 아랫세계의 모험가 길드라는 단체, 그리고 또……어, 무슨 종교 단체? 같은 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참, 저희와 동맹인 아랫세계의 제국군도 있고요!”
건쉽의 조종사는 내부에 설치된 룸미러를 통해 모험가를 흘끗거리며 말했다.
백금발의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
투명한 고글과 같은 안경을 쓴 모험가는 조종사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고 있어요.”
그녀가 모를 리는 없었다.
단순히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 흐름이라 알고 있는 점도 있었으나,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아하핫, 죄, 죄송합니다. 그렇죠, 황녀님께서 직접 젤바 출입 권한을 부여하셨는데 당연히 이미 설명 들으셨을 것을……죄송합니다, 괜히 일개 조종사인 제가 나설 건 아니지만-. 모험가님과, 크흠, 한마디라도 더 섞어보고 싶다는 욕심에 그만-.”
“잉? 히힛, 괜찮아요. 무슨 죄송할 것까지야. 오히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긴장도 약간 풀리는 것 같고.”
모험가, 비비는 평소와 같은 미소와 경쾌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건쉽의 조종사는 그제야 헤벌쭉한 표정으로 목청을 높였다.
“-그,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그런 도움이라도 되고 싶은 게 저의-. 아니, 저희 천계군 모두의 마음일 테니까요! 예! 다행입니다, 모험가님! 이제 곧 착륙하겠습니다! 안전벨트 다시 한번 확인해주십시오!”
명실상부한 천계의 영웅 중 한 사람, 모험가로 이름을 드높인 비비를 대하는 일반 군인들의 태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비비는 안전벨트를 확인하며 창밖을 살폈다.
점차 낮아지는 고도에서 비비 또한 세 구역으로 나눠진 캠프를 볼 수 있었다.
‘한쪽이 합동 조사단이고 다른 한쪽이 모험가 길드…… 그리고 저쪽에 있는 게-.’
건쉽의 조종사가 ‘종교단체’ 정도라 이야기했던 또 하나의 집단.
그림시커.
각 집단에 속한 인물들이 제각각의 구역에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뽈뽈거리는 개미를 보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호기심이나 흥미보다 아직까지 작은 인간들을 보며 비비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 역시나 하나였다.
사도 안톤이 사망하며 분출된 에너지로 인하여, 줄곧 그 형태를 가려주었던 장막이 벗겨지며 드러난, 하늘에서부터 역으로 뾰족하게 솟아 젤바를 향해 떨어지는 칼날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는 장소.
‘죽은 자의 성…….’
사도 루크가 가진 모든 것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공간, 죽은 자의 성때문이었다.
꿀꺽.
슈우우우우우──────…….
이제 건쉽은 착륙하기 직전이었다.
밖에서 미리 대기 중인 천계의 섭정, 네빌로 유르겐을 보며 비비는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했다.
* * *
-따로 움직인다고요? 잉?
-네, 하지만 뭐…… 당장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자, 잠깐, 그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닌데? 진성 씨도 알겠지만 저는 이제부터 완전히 처음 겪는 구간들이라고요. 아예 정보 제로! 내가 뭘 어떻게 할지 걱정도 안 돼요?
칠리새우마저 강하게 반박할 정도로 진성의 의견은 쌩뚱맞은 것이었으나 진성이라고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괜찮아요. 무엇보다 칠리새우 님이 위험…할 거라는 것도 사실, 그 말이 더 웃긴 거죠. 레벨도 우리 중에 제일 높고. 소환사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신 분이-.
-그건 안톤까지의 이야기지!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계약 위반이라고요. 나는 분명히-……. 응? 이건 뭐예요?
칠리새우는 길길이 날뛰려 했으나 그보다 진성의 행동이 빨랐다.
어느새 그녀의 앞에 온 진성은 [인벤토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유리구슬이 박힌 목걸이, 팔찌 그리고 반지.
분명 반짝거리는 유리구슬이 예쁘긴 하지만 고작 이런 종류의 액세서리로 자신을 달래려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잠시였다.
-……어? 어어어!?
칠리새우는 보았다.
세 종류의 액세서리에 달리고, 박혀있는 것은 분명 유리구슬이었다.
그리고 그 유리구슬 안에, 마치 장식용 스노우볼처럼 무언가가 들어간 채 굳어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 모습은……? 검붉은 무언가를 몇백만 배 정도 확대한다면 꼭 닮았을 존재는?!
-안톤? 아니, 안톤의 형상이 담긴… 이거 설마…….
-네. 거형셋이에요. 칠리새우 님이 빙의되던 시점 기준으로 따져도 소환사 종결셋 인정?
<거대한 형상을 담은 목걸이, 팔찌, 반지>.
소위 ‘거형셋’이라 불렸던 세 종류의 아이템들.
개별 아이템만으로도 모든 속성 강화, 물리, 마법 크리티컬 히트 증가, 기본 공격력 증가 등의 효과가 있으나 거형’셋’이라 불릴 정도로 세트 묶음이 중요시되었다. 그 이유는 압도적인 성능의 세트 옵션에 있었다.
<거대한 형상의 기운 세트>
[3]세트 효과스킬 쿨타임 10% 감소
스킬 공격력 10% 증가
공격 시 5% 확률로 30초 동안 힘,지능 10% 증가(쿨타임 30초)
MP소모량 20% 증가
-쿨감이야 우리가 목맬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 스증뎀이면 칠리새우 님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겁니다. 소환사라 스탯 증가도 무한 유지될 테고요.
소환수들의 공격 또한 해당 옵션의 발동 조건이 되므로, 30초간 유지되는 스탯 증가와 쿨타임 30초는 상쇄, 사실상 무제한의 스탯 증가 효과까지도 볼 수 있다는 뜻.
당연히 그것을 모를 칠리새우가 아니다.
빙의 전 유저였을 시절에도 그녀가 사용했던 액세서리가 바로 ‘거형셋’이었으니까.
-크, 크흠…… 뭐……. 나쁘지 않네요.
-잉? 나쁘지 않은 거면 나 줘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흠흠, 근데 진성 씨? 이거 안톤 클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닐 텐데요? 내가 안톤 쩔만 하고 클을 안 했다지만 지금까지 거형셋 받아서 넘어간 사람은 없었는데?
비비의 입을 다물게 한 칠리새우가 바로 물었다.
아직 같은 [아바타 마켓]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는 상태인지라, 그 어리둥절하면서도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보며 진성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쵸. 저도 받은 건 아녜요. 만든 거지.
-만……들어?
칠리새우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리 자체로 보자면 간단한 일이었다.
-<채찍질> 스킬에서부터 실제 채찍을 뽑아내신 분이 이걸 가지고 놀라나?
-비, 비비, 당신은 알아?
-몰~르죠. 하지만 원리는 같을 거 아녜요. 제가 예전에 GT-9600의 무기를 뜯어서 개조한 거랑 비슷한 걸 테고. 그쵸, 진상 님?
지금까지는 해당 아이템을 온전하게 지닌 존재들로부터 사실상 덜어내는 개념에 가까웠다.
카르텔의 ‘란제루스’로부터 <돌격대장> 시리즈를 획득한 것이나, 비비의 말처럼 GT-9600 로봇이 사용하던 무기를 그대로 탈거, 개조하여 비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사이즈로 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개념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이상, 특히나 [형태로부터 추출]한다는 개념까지 파악한 이상 그것의 아이템화를 진성이 생각하지 않을 리 없는 것!
-흐흐, 하여튼 이런 쪽으로는 비상하다니까. 마티어스 네스만한테 알바 좀 시켰죠. 유리구슬 안에 안톤의 형상을 만들어 집어넣으라고. 크레인 게임도 못 하게 되어서 그런지 말 잘 듣던데요.
-그걸…… 그게…….
칠리새우는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떻게 만들어졌든 이것은 자신이 착용할 수 있는 장비이며.
또한 세트 옵션의 효과까지 발동된다는 점.
음흉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팔을 바라보던 붉은 단발머리 소녀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근데 이걸 끼고 다녀도 되는 건가? 진성 씨도 알다시피 유저들은 우리 캐릭터 정보 볼 수 있을 텐데. 안 걸렸어요? 내가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빙의된 거 걸리면 아마 경을 치른다는 것쯤은 알거든.
너무나 쉽게 얻은 아이템에 대해서 역시 그 위험성부터 따져보고자 하는 건 연륜에서 비롯된 일일까.
진성 자신은 네메르에 의해 더 이상 이상한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다쳐도 칠리새우는 다르다.
제법 진지하고 날카로운 질문.
그럼에도 진성은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잡아떼면 되죠. 얻었다고.
-얻어? 이걸? 지금도 얻을 수 있어요?
-뭐, 모아놨던 재료가 있어서 썼다~ 하면 되는걸. 아마 테미였나? NPC가 아직 교환해줄 거예요. 재료를 얻는 방법이 없어 사실상 단종이지만 과거부터 해왔던, 칠리새우 님처럼 고인물들한테는 단종이 아닌, 그런 템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런 부분까지 고려했기에 진성은 ‘거형셋’만을 만들어 칠리새우에게 건넨 셈이기도 했다.
이미 모든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 칠리새우 역시 깊은 감탄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히힛, 진상 님이 얼마나 철두철미한데요. 저런 성격이니까 퍼섭 레이드 최초클이나 뉴비들 가르치는 교육공대 이런 거 할 수 있는 거죠.
-뭐……그럴지도. 비비 당신이 잘난 척하는 느낌이라 좀 아니꼽지만.
-잉?
비비는 칠리새우를 휙 바라보았으나 칠리새우는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실제 착용할 수 있는 장비를 받았다.
이제 곧 아바타 또한 구입하여 두 사람 모두 입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후는?
-그래서……이 템까지 주고. 셋이 쪼개진다는 건 뭘, 어떻게 할 건데요?
칠리새우는 물었다.
진성은 답했다.
* * *
네빌로 유르겐과 대화를 하고 있는 모험가 근처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라, 모험가 아냐? 너도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안톤 때도 네 활약이 대단했지. 응. 역시 내가 눈 여겨 보는 모험가다워.”
“뭘 또 그렇게까지. 반 님이 계셔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었던 건데요. 자질구레한 일들을 맡아주셔서 오히려 제가 고맙죠.”
모험가의 답에 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불현듯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참. 여기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우리 황녀님이 오셨거든. 합동 조사단의 제국 쪽 책임자는 황녀님이야. 구면이기도 하니 와서 인사하라고.”
“아이고, 황녀님까지. 저야 영광입니다. 가시죠, 그럼.”
모험가는 반의 뒤를 쫓았다.
네빌로 유르겐의 환대를 받았던 키가 껑충한 백금발의 여성이 아니었다.
반의 뒤를 쫓는 건 붉은 단발머리의 소녀였다.
칠리새우는 조심스레 입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진성 씨, 지금 반 만났고 이자벨라 황녀 만나러 갑니다.
-오케이, 수신 양호.
진성에게서 곧장 답변이 들려왔다.
알았다는 말 외에 특별한 반응이 없는 것은 칠리새우를 다소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흐름은 나도 이해했는데 타이밍이나 그런 건…….
그의 설명을 들을 때는 이해했으나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때는 괜찮을 것인지.
그녀의 불안을 진성은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말해주었다.
-너무 걱정 말고 막히는 부분이 없다면 지금처럼 저한테 말씀해주시면서 쭉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칠리새우 님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주셔야 해요.
-네? 제가요?
-그럼요.
슈우우우우──────!
건쉽의 엔진 가동 소리가 차츰 커지기 시작했다.
진성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그곳에 올랐다.
그러곤 칠리새우가 어째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는지 말해주었다.
-저도 이제 슬라우 공업단지에서 출발하니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저한테 따라잡히지 않게 팍팍! 움직여 주십시오.
비비 – 칠리새우 – 진성 자신으로 시간차를 두고 이어지는 움직임.
이것이 사도 루크와 관련된, 이번 메인 시나리오 흐름인 젤바와 죽은 자의 성을 완벽하게 클리어하기 위한 진성의 거대한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