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19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195화(195/212)
195
[클클클…… 장난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 그것도 아주 저급한.]흑구도 진성이 보는 카드를 보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까지 오염과 관련해선 어지간해서는 참견하지 않는 흑구조차 한마디를 거들게 할 정도로 당황스러운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도대체- 뭐야, 이게? 오염이라고 뻔히 뒤에 써놓고. 오염되지 않았다고? 아니, 오염되지 않았으면 애초에 노블스카이호로 방향을 꺾지 말았어야지. 브레스를 토해내지 말았어야지. 안 그래?”
지금까지 진성을 당혹게 만드는 카드는 몇 번이고 나왔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없는 개념의 카드도 있었다.
[소실된 접촉의 기회] 카드처럼 (오염)이라는 표현조차 없는 데다 그 카드의 생성 순간이 ‘헬릭스 연구소’의 파괴일 때처럼 아예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그럼에도 그것들은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을지언정, 적어도 큰 범위 내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전에도 지랄맞았던 것들이야 하다못해 <오염의 원인자>의 어떤 의도나 메시지를 담고 있겠거니……정도로 생각은 할 수 있었는데.”
<오염의 원인자>의 진의.
숨겨진 뜻과 의도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떤 메시지를 진성 자신에게 보내고픈 것인지, 어떤 의도를 담아 이런 카드가 발생할 정도의 상황을 조작한 것인지까지 해석하지 못해 안타까운 상황이지 않았던가.
그런 때에 비한다면 지금의 경우는 말 그대로 말이 되지 않는 셈이었다.
[오염되지 않은 불을 먹는 안톤(오염)](오염)이 적혀있다.
실제로 사도 안톤이 보여준 행위는 분명 메인 시나리오와는 어긋났다.
그러나 오염되지 않았다고 한다.
‘……뭐 어쩌라는 건지, 원.’
진성이 느끼기에는 장난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한 감정은 흑구 역시 느끼고 있었다.
[진성 네가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걸 좋아하는 녀석임에는 틀림없다는 거겠지.]“그러고 보니 물어보고 싶었는데. 흑구 너는 몰라? 카시야스의 분신에게 들었던 그 인간에 대한 이야기.”
진성은 화제를 돌려 흑구에게 물었다.
마계, 카쉬파의 구역에 들어섰다 홀연히 사라진, 그 흔적조차 소문으로 남지 않은 인물.
바로, <오염의 원인자>로 추정되는 자에 대해서.
그러나 흑구가 알 리 없었다.
[크크, 최근에 벌어진 사건이라 하지 않았나. 하물며 먼 과거부터 있었던 일이라 해도…… 놈이라 한들 나의 구역에는 범접할 수 없었을 테니 내가 알지는 못했겠군.]“하긴, 그냥 구석에 박혀만 있던 네가 마계의 소문에 대해 빠삭할 리는 없겠구나.”
시간으로 보나,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 본체의 성향으로 보나 애당초 엮일 일은 없을 테니까.
진성의 말에 흑구는 발끈하여 덤벼들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마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 내 손바닥 안과 같은 것으로-.]“손바닥도 없으면서 웬 손바닥. 발바닥이겠지.”
“꼬르르르륵!”
“그치? 타꼬 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닥쳐! 웃지 마!]흑구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라고 해봐야 진성에게는 그저 웃음이 날 뿐이었다.
오랜만에 크리쳐 <쁘띠 로터스(갈퀴)>까지도 소리 내어 웃으며 진성은 젤바를 거닐었다.
잠깐의 농을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환기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쯤 소란스럽고 또한 긴장감이 맴도는 젤바였으나 진성은 또렷하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이미 각오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만큼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지금까지는 카드를 그저 보유만 해왔다.
극히 낮은 확률로 만나게 될 네메르를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었던 지난 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헬릭스 연구소에서 지젤에 휘말려 죽은 자의 성에 갔을 때, 그곳에서 빠져나오며 진성은 다크나이트의 힘을 발현시킨 바 있다.
칠리새우가 소환한 카시야스의 분신과 대련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안톤의 브레스를 막을 때에는?
진성이 트리거가 된 게 아니다.
오히려 칠리새우라는 트리거를 활용해 진성은 다크나이트의 진정한 무기를 꺼내어 사용했었다.
‘월식을 꺼내어 쓴다거나, 그것으로 ‘시간의 대검’의 효과를 내거나 하는 건 당장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어.’
진성은 자신의 검은 팔뚝을 보았다.
충분히 적응되었음에도 여전히 새카맣게 된 양팔을 볼 때마다 드는 기묘한 감각.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진성은 자신했다.
‘나는 이제……할 수 있을 거야.’
다크나이트가 지닌 본연의 힘 중 하나, 시간과 공간 그 차원을 다루는 힘을 분명히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언젠가 정체 모를 존재로부터 들었던, 진성 자신에게 그러한 가능성이 있으나 당시에는 그저 촉매제 역할밖에 하지 못했던 상태에서부터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마침내 현재의 단계까지 왔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설정으로만 존재하던 능력을 상당 부분 끌어낼 수 있게 됐어. 시간의 힘을 다루는 능력뿐 아니라 ‘가장 완벽한 귀검사’라는 타이틀에 대한 것까지…… 웨폰마스터나 아수라 직업이 지닌 고유의 능력도 어렴풋하게나마 육체에 자리 잡고 있는 게 느껴져.’
진성 자신이 사용했던 <월식>, 그 무지막지한 검을 자연스레 휘두를 수 있었던 것 역시 아마 남자 귀검사 직업군의 ‘웨폰마스터’의 능력을 일부 발휘했기 때문일 터.
게다가 안톤의 브레스를 눈으로 본 것 이상으로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파동, 즉, 진성 자신이 추측하기엔 남자 귀검사 직업군의 ‘아수라’가 지닌 설정상의 능력을 일부 부여받았기 때문이리라.
‘아직 소울브링어나 버서커 관련 능력은 잘 모르겠지만……흐흐.’
다크나이트의 두 가지 배경설정.
시간과 공간, 그 차원의 힘을 다룰 줄 아는 능력.
그리고 남자 귀검사 직업군의 모든 기술을 다룰 줄 아는 능력.
그저 게임 던전앤파이터 내에 존재하는 ‘스킬’의 형태가 아닌, 말 그대로 진성 자신의 육체에 점차 체화되어가는 이 느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기에 진성은 각오할 수 있었다.
‘어차피 부집게인 내가 [모험가 길드] 루트를 선택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이 각각의 루트를 타면서 클리어해나갈 때, 나는 귓속말로 상황을 조율하는 동시에-.’
차원의 틈을 연다.
더 구체적으로, 오염된 카드를 재료 삼아 다크나이트가 지닌 시공간을 여는 힘을 발현시킨다면?
‘-네메르를 만나러 갈 방법을 찾는 거다. 내가. 직접.’
네메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녀를 만나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녀는 초월자다.
‘카시야스에게 알아낸 정보를 제대로 확인해줄 거다. 그리고 정말로, 만에 하나라도 내 예상처럼 그게 <오염의 원인자>였을 경우에는!’
진성 자신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그녀가 움직일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그 꽁무니조차 찾을 수 없었던 흔적을, 아른거리는 뒷모습으로나마 확인할 수만 있어도 ‘초월자’의 직접적 개입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되어 모든 게 해결된다면 그다음은?!
진성 자신이 받게 될 법한 보상은?!
“크흐흐흐, 으흐흐흐흣.”
진성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홀로 웃는 진성의 모습에, 그에게 다가가던 누군가가 흠칫거렸다.
“거, 검은 팔의 인간이 웃고 있어요! 길드장님께 들었던 인상착의뿐만 아니라 역시 성격도 이상한 거예요!”
“음?”
다소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진성은 고개를 들어보았다.
어느새 그에게 다가온 이는 사막여우처럼 생긴, 그러나 옷도 입고 이족보행까지 하는 생명체였다.
‘헌터 폰?’
그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 진성의 귀에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다소 날카롭고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였다.
“삥따구 같은 게! 네 놈의 몰골이나 생각해! 여기가 아니었으면 몬스터로 오인받았을 거면서 말이지!”
“너무해요, 메릴 님…….”
그 말을 들은 사막여우형 수인, 헌터 폰의 귀가 축 처졌다.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진성을 ‘알아본 채’ 슬그머니 다가온 또 한 명.
“저희 길드장님이 말씀하셨던 그분이시군요?”
뒤집어쓴 후드로도 흘러내린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전부 가리진 못한 이가 진성에게 말을 걸었다.
헌터 폰, 메릴 파이오니어 그리고 또 한 사람.
진성은 잠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진성 자신은 부집게다.
사도 루크와 관련된 메인 시나리오에서 제공되는 [모험가 길드] 루트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험가로서 루트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면?
“부길드장님이시군요. 다나 도나텔 님. 반갑습니다, 진성입니다.”
모험가 길드와 접촉하여 그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 일 자체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 * *
“폰! 네가 말했지?! 떠벌거리는 걸 좋아하는 그 성격은 내 진작 알아봤지! 여우가 아니라 촉새 같은 녀석이-.”
“아, 아녜요, 메릴 님!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한다지만 저 역시도 방금 만난 사람한테 그럴 리가 없죠!”
메릴은 곧장 헌터 폰을 구박했으나 헌터 폰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진성은 그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카라카스 님께서 말씀하셨을 리 없는데. 신기한 분이시군요.”
다나 도나텔 또한 약간의 미소를 머금으며 진성에게 말했다.
메릴, 폰, 다나 세 사람이 진성에게 놀라며 호기심을 갖는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아직 소개하지도 않은 다나 도나텔의 이름과 직책을 진성이 어찌 알고 있는가.
진성은 한껏 여유로운 포즈로 어깨를 으쓱였다.
“뭐, 꼭 그분을 통해 듣지 않아도~ 다나 님이야말로 카라카스 님께 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대~충 느낌이 오실 텐데요. 제가 어떤 인간인지.”
모험가 길드 내부에서 진성이 어떤 식으로 인지되어 있는지 알기에.
마치 마법과도 같은 일을 벌이는 진성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심어주기 위해 진성은 다나의 이름을 먼저 내뱉은 것이다.
다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모험가와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사실 제 입장에서는 진성 님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더군요. 얼마 전 ‘노블스카이호’에서 있었던 사건도 그렇고.”
사도 안톤의 브레스를 막아낸 사건을 모험가 길드에서 모를 리 없다.
이미 천계인들에게는 소문이 들불처럼 퍼져, 그것이 실제냐, 과장된 거짓이냐, 설령 거짓이라 그 절반만 진실이어도 대단한 성과다, 따위의 평가를 받고 있는 진성의 활약이 아닌가.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진성은 겸손히, 그러나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분이 이곳에 오신 이유라면……? 모험가는 이미 죽은 자의 성으로 올라갔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사도 루크에게 관심이 있어 이곳에 온 거……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모험가 길드 여러분께 물어볼 것도 있어서요.”
진성이 이들과 접촉하려 했던 건 [모험가 길드] 루트를 선택하기 위함이 아니다.
말 그대로 모험가 길드, 이들의 정보력을 다시금 활용하려 했기 때문, 특히 아라드 대륙 위주로 돌아다닌 길드장 카라카스와 달리 현재 이곳에 있는 이들은 말 그대로 ‘각계각층’에서 모인 자들이 아닌가.
아라드 대륙 출신의 다나 도나텔, 천계 출신의 메릴 파이오니어.
“물어볼 것이라면-.”
“흐흐, 특히 마계에서 오신 헌터 폰 님께……. 아직 마계와의 정보 라인은 잘 유지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 저요? 저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나요?”
그리고 마계 출신의 헌터 폰.
사막여우 수인의 귀가 쫑긋거렸다.
진성이 자신을 알아봐 주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놀라움, 긴장 등이 섞인 표정이 얼굴에 드러날 즈음, 입을 연 것은 메릴이었다.
“삥따구 같은 게, 또 되먹지 않은 대가를 치르려고 그러지? 카라카스에게 잘 전해 들었네.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내가 그런 말을 할 거라 생각했다는 건가? 머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은 이상 그런 말을 할 것 같나, 젊은이?”
진성에 대한 온갖 종류의 소문은 그녀 또한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세븐 샤즈 출신답게, 검증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라면 쉬이 믿지 않으려는 태도랄까.
무엇보다 과거 진성이 모험가 길드장 카라카스와의 거래에 제안했던 ‘조언’을 전해 들은 메릴에게는 의구심이 자라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헌터 폰은 물론 부길드장 다나 도나텔도 메릴의 테스트 아닌 테스트를 주의 깊게 듣는 중이었다.
진성은 가볍게 호흡을 고치며 메릴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드린 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메릴 님?”
“뭐, 뭐야?”
“아니, 더 나아가서……메릴 님으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올 정도의 상황이,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셨습니까?”
진성은 조용히 말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그 때에 대한 조언.
“……미래를 알고 있는 녀석처럼 말하고 있군.”
메릴은 긴장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게 전부였다.
진성은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미소만을 지을 뿐.
침묵은 잠시였다.
다나 도나텔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그렇겠죠. 길드장님이 진성 님에 대해 전파한 것만 들어도……우리 수준에서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건 알 것 같았으니까. 좋아요. 부길드장인 제가 대신 듣겠습니다. 저희 길드를 통해 알고자 하는 정보가 뭐죠?”
쇠약해진 사도 로터스는 물론이요, 그 이상의 정신 감응 능력을 보인 사도 안톤의 실질적 두뇌, 전능의 마테카를 눈앞에서 상대했던 진성이다.
기세와 분위기만으로 공간을 제압하는 능력.
모험가 길드장인 한숨의 카라카스급 인물도 없는 시점에서 진성을 막을 이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진성은 말했다.
“사람을 하나 찾아주세요. 비교적 최근 마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모험가 길드를 통해 구하려는 것은 우선 카시야스의 분신에게 들었던 정보의 연장선.
설령 당장 모른다 하더라도 그들이 쥐고 있는 연줄을 통해 향후라도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아, 그리고 혹시 제가 쓸 임시 거처 하나 구할 수 있을까요?”
사도 안톤의 카드를 실험해볼 수 있는 안전한 장소의 확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