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20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205화(205/212)
205
칠리새우는 헛기침을 연신 하며 비비에게 한마디 하려 했다.
비비가 칠리새우를 자주 놀린다지만 근본적으로 칠리새우는 비비를 싫어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언니-동생 사이로 아껴주기에, 그러한 장난도 받아주며 함께 하고 있다.
칠리새우의 근본적인 성격 때문에라도, 아끼는 동생의 태도를 부드럽게 바로잡아주려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음, 비비, 당신 말이야……. 화가 난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그렇게 욕을 하는 것도 썩 보기 좋은 게 아니야. 그런다고 세 보이지도 않고……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만 깎아먹는 셈이거든. 특히 사회생활 할 때는 욕 할 자리, 안 할 자리를 구분하는 게 중요한데 지금과 같은 때에는-.
-뭐요.
-어?
-언니도 너무 아는 척한다고. 나도 성인인데.
그것을 비비가 듣지 않을 뿐.
단어 자체는 강하지 않았으나 그 어조가 어떠한지.
칠리새우의 욱, 하는 소리가 진성의 머릿속에 들려올 정도였을 때, 미묘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진성은 확신했다.
‘검은 악몽이다……. 비비 씨가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해.’
사도 루크가 끝끝내 그 살포를 우려했던 힘, [검은 악몽].
긍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며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힘.
부정적인 감정을 폭발시켜 결국 내밀하게 보관하던 욕망을 추구하게 만드는 힘.
불특정 다수에게 반드시 피해를 입히게 되며 그러한 피해를 입은 자들의 방황과 광란 덕분에 루크 자신은 빛과 어둠의 힘을 더욱 포집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그림시커가 말했던 바는 거짓이 아니었다.
죄책감과 죄악감을 느끼는 루크는 그저 나쁜 사도가 아니며.
말이 충분히 통할 수 있으며, 설득으로 회유할 수 있는 사도라는 것.
그렇게 고민하던 루크가 마지막 한 걸음을 뗄 수 있게 이끈 것은 미래에서 온 시로코의 사념이었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된 루크는 결국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힘을 사용하게 된다.
‘냉룡 스카사를 미치게 만든 것만이 아니지. 아라드 대륙만 영향을 끼친 게 아냐. 애당초 마계에서부터 천계로 이어진 죽은 자의 성이었으니…….’
천계 역시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힘에 휘둘려 대표적으로 영향을 끼친 게 바로 서부 무법지대의 ‘카르텔’ 사건이 아닌가.
‘무법지대라고 불리운, 그런 거친 지역에서 살았던 천계인들만큼 ‘부정적인 감정’이 많은 사람들도 드물 테니까. 결국…… 루크 때문에 아라드 대륙과 천계, 양쪽 모두 난리가 난 셈이지만 그뿐이다. 어쨌든 나는 그냥 그런 ‘사건’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무튼 진성은 이미 [검은 악몽]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우려는 하고 있었으나, 존재치도 않는 대비책까지 궁리하는 데에 시간을 쏟지는 않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위험하다면 진성 자신이 위험했지, 비비나 칠리새우가 영향을 받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들은 ‘모험가’.
이 될 자들이니까.
‘인게임에서도 모험가는 그냥 이겨냈잖아. 하이람은 물론이고 주변 NPC들이 모험가를 인정해주는 파트 중 하나일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었어.’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해당 에픽 퀘스트를 수행할 시점에 도달하는 캐릭터 레벨에 비하면 현재 비비의 레벨은 그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진성 자신의 예상보다 더욱 강렬하게 비비의 마음을 파고들었다는 말인가.
‘그냥 호기심 가득하고 천진난만한 행동만 봐서 몰랐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뭔가 어두운 면이 더 꽁꽁 숨어 있었던 걸지도.’
안타까운 와중에도 진성은 행동해야 했다.
-비비 씨, 잠깐! 일단 진정해봐요! 지금 본인이 말하는 게 검은 악몽 때문이라는 걸 인지해야 해요. 그냥 막 가슴속에서부터 나오는 말 내뱉는 거니까-. 칠리새우 님도!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죠?
-후우…….짬은 뒤로 먹은 게 아니니까요. 직원 중에서도 눈 돌아가서 나한테 들이받으려는 새끼-. 크흠, 죄송. 놈들도 있었고. 뚜껑 열리고 눈 돌아간 정도가 아니라는 거죠, 그 악몽이라는 거.
다행이라면 칠리새우는 역시 연륜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겠지. 회사에서 온갖 구린 행태를 다 봐왔던 아저씨가 쉽게 화내진 않겠지. 내 생각보다 더 인품이 좋은 어른이네.’
칠리새우가 들었다면 오히려 길길이 뛸 오해가 다소 섞여있었으나 어쨌든 칠리새우를 말리자마자 진성은 비비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네, 그러니 우선…… 검은 악몽에게서 멀리 떨어뜨려야 할 것 같은데. 비비 씨! 잠깐 퀘스트 진행 멈추고 뒤로 좀 움직일 수 있겠어요? 던전으로 따지자면 방 몇 개 어치 물러설 수 있겠어요?
-방법이 그것뿐이에요? 그냥 멀어지는 거?
-NPC들한테 먹혔던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검은 악몽으로 인해 폭발했을 때 힘으로 제압하는 게 한 가지 방법이고 그게 아니면 아예 거리를 둬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죠.
하이람 클라프의 부하이자 검은 악몽에 영향을 받은 NPC 허크는 모험가에 의해 제압되며 정신을 차린다. 또 다른 NPC인 뮤우는 모험가가 멀찍이 끌고 나와서야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다.
해당 시점에서 두 가지 방법이 각기 통했다면 비비에게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통할 터, 당연히 첫 번째로 고려할 사항은 비비가 직접 멀어지는 것이었으나…….
-왜요? 그냥 죽은 자의 성 깊숙한 곳으로 더 들어가서 이 새끼들 다 죽이고 돌아가면 될 것 같은데. 하이람이 뭐 어쩌겠어요. 루크가 만든 몬스터에 당했다고 하면 되지.
-그게 아니라…… 크흠, 그 두 사람은 나중에도 역할이 있어서 그래요.
-그래봤자 주요 NPC 아니잖아요? 내가 진성 님만큼은 아니어도 메인 NPC들은 기억하는데. 이 두 놈년은 기억도 잘 안 나는 거 보면 찌끄레기구만.
비비가 들을 리 없었다.
이미 허크와 뮤우, 두 NPC들을 처리할 생각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
진성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이렇게 되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강제로 멀어지게 해야 한다. 결국……데리러 가야 해.’
외부의 힘을 사용해서라도 비비를 [검은 악몽]으로부터 멀리 떼어놔야 한다는 점.
허크나 뮤우 정도의 NPC가 비비를 제압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에서 에픽 퀘스트를 쭉 진행하게끔 할 수도 없다.
한시라도 빨리 비비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멈춰세워야 한다.
-그럼 잠깐 멈춰줄래요? 내가 갈 테니까.
-차라리 내가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비비 저 인간 훈육도 좀 할 겸.
-아뇨, 아뇨, 칠리새우 님이 가는 것보단 제가 가는 게 낫죠. 제가 ‘가장 마지막 퀘스트’니까. 에픽퀘가 조금이라도 겹칠 위험이 있는 것보다야…….
-쩝, 그 말도 일리가 있네. 눈이 돌아간 상태에서도 진성 씨 말은 좀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비비의 말투를 칠리새우라고 느끼지 못했을 리는 없다.
특별한 의도랄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칠리새우 자신보다 진성이 더 효율적일 거라는 말을 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비비의 반응은 달랐다.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 칠리 언니야말로 그런 게 개빡치거든요? 자꾸 그런 식으로 아는 척 하는 것만으로도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그, 그러는 게 하여튼 장난이든 아니든 ㅈ-.
-그만! 그만! 이제 대화 끝!
말 그대로 ‘급발진’해버리는 비비가 혹여라도 말실수를 할까 싶어 진성이 황급히 말릴 정도였으니까.
이쯤되면 진성으로서도 그저 말리기만 하기에는 열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괜히 자극하는 말 하는 사람은 안 도와줄 겁니다. 그냥 아라드에서 평생 혼자 지낼 거면 말씀들 하시던가.
비비와 칠리새우 모두 입을 다물게 만들 따끔한 한마디.
그러면서도 진성은 놓치지 않았다.
-칠리새우 님은 그대로 레이드 돌아주세요.
-음? 이제 보스방인데 패턴은-.
-제가 실시간으로 다 말씀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쭉 진행하세요.
-……바깥이었으면 우리 회사 특채감이네, 진짜로.
비비의 [그림시커] 루트는 어차피 빠르게 끝날 터, 사실상 레이드로 넘어서야 하는 칠리새우의 메인 시나리오를 질질 끌 필요는 없는 것이었으니까.
진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우…….이걸 하루에 두 번이나 할 줄은 몰랐는데.”
칠리새우에게 진성 자신이 비비에게 가겠다 말한 건 그저 퀘스트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미 죽은 자의 성 깊숙한 곳에 있는 비비를 어떻게 쫓아갈 수 있겠는가.
결국 시공간의 틈을 갈라 이동하는, 현재의 진성이 에너지를 상당 부분 쏟아부어야 하는 능력으로나마 가까스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크크크……재미있겠군. 다시 그곳으로 가는 것인가.]“재미는 없지. 가봤자 재미있을 게-……어라라,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한데.”
흑구의 장난기 섞인 중얼거림에 한마디 해주려던 진성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현재의 상황, 비비는 검은 악몽에 영향을 받아 거칠어졌다. 아직 완전히 정신과 자아를 잃고 충동으로만 행동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시가 급할 것이다.
칠리새우는 [합동 조사단] 루트를 선택하여 사실상 레이드식으로 바뀌어버린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진성 자신은?
‘……부집게인 나는 메인 시나리오고 뭐고, 모험가가 아니니 할 게 없지. 그냥 죽은 자의 성에 있는 거다. 비비 씨가 [그림시커] 루트를 끝내고 오면 나도 은근슬쩍 [모험가 길드] 루트를 끝낸 척 합류해서 칠리새우 님의 [합동 조사단] 루트 겸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
이러한 계획을 짰고 또 실행할 수 있었던 건 세 사람의 메인 시나리오 흐름에 텀을 두어 개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비가 가장 먼저 진행했고.
칠리새우가 그 다음이며.
마지막이 진성 자신일 때.
모험가가 아니기에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지 않는 진성 자신이 현재 포함될 메인 시나리오는 ‘누구’의 것인가.
“그러고 보니까 왜……아니다. 왜가 아니야. 이런, 젠장!”
검은 악몽이라고만 생각했다.
모험가가 검은 악몽을 이겨내는 장면 정도는 나오니, 빙의가 되었다 해도 검은 악몽에 완전히 면역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니 비비가 영향을 받는다 해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라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하아아아…….”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게임에서 조종하는 캐릭터이든, 빙의되어 살아가는 칼날이든, 모험가는 검은 악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게 결국 기본이라면?!
검은 팔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나는 기운이 그의 눈으로 향할 때, 진성은 각오를 다져야 했다.
“간다, 흑구. 바로 힘을 빌려야 할지도 몰라.”
[크크, 알겠다.]그러곤 과 을 착용하며 집중했다.
───────────……!!!!
부드럽게 허공에 그은 검 끝에서부터 공간이 찢어졌다.
능숙하게 차원의 틈을 여는 진성이었으나 안색은 그리 밝지 않았다.
‘후욱, 역시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 건 무리인가.’
역시나 기력의 소모가 매우 크다.
HP가 소모되는 느낌과는 다르다. MP가 부족하다는 느낌과도 다르다.
말 그대로 플레인:아라드에 빙의된 육신 자체에 담긴 기력이나 기운이.
본연의 힘을 자유자재로 쓰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과 함께, 진성은 일렁거리는 틈 너머로 발을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진성의 머릿속에선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만약 비비 씨와 1:1을 하게 된다면…… 으음, 역시 초전박살밖에 없나. 보자마자 내가 먼저 선제 공격을- 하다못해 끌잡 형태로 곧장 가지 않는 이상 피곤해질 거다.’
불과 아행과 싸울 때만 해도 사람과 사람 간의 싸움에 익숙지 않아 허둥대던 그녀지만 지금은 아닐 터. 성장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검은 악몽에 영향을 받은- 아니, 어쩌면……. 에게 영향을 받은 비비 씨일 테니까.’
어쩌면 진성 자신이 마주해야 할 것은 오염일지도 몰랐으니까.
타박, 타박, 탓탓탓…… 진성은 죽은 자의 성 깊숙한 곳에서 빠르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