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208)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208화(208/212)
208
최근 진성의 활약으로 획득했던 두 장의 카드는 모두 사도와 관련이 있다.
[오염되지 않은 불을 먹는 안톤(오염)] [오염을 알고 있는 건설자 루크(오염)]그러나 쓰여 있는 문구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미 진성의 머릿속에 들어찬 생각은 그뿐이었다.
‘나오려면 ‘오염된’ 건설자 루크, 뭐, 이런 식으로 나왔어야 하는 거 아냐?’
안톤일 때에도 혼란스러웠다. 분명 (오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사도 안톤은 오염되지 않았다지 않나.
사도 안톤은 오염되지 않았으나 그 두뇌인 전능의 마테카가 오염되었다……라는 해석은 애초에 진성의 머릿속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이름은 다를지언정 둘은 완전히 동화되어 하나가 된 존재.
그렇기에 [오염되지 않은 불을 먹는 안톤(오염)]은 곧 [오염되지 않은 전능의 마테카(오염)]이나 마찬가지다.
‘근데 이건…… 어떻게 봐야 하는 거지? 극단적으로 보자면 안톤 때는 그냥 (오염)이라는 딱지를 떼고 보면 그래도 한 가지 방향성은 나오는 거였어.’
[오염되지 않은 불을 먹는 안톤]사도 안톤이 보였던 행위는 분명 진성 자신이 기억하는 메인 시나리오와 달랐다.
그럼에도 어찌 되었든 카드 자체만 두고 보자면, 끝부분의 (오염)이라는 상태 표시를 제외하여 해석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도 안톤처럼 가장 마지막에 있는 (오염) 부분을 제하고 본다면.
[오염에 대해 알고 있는 건설자 루크]‘오염에 대해 알고 있다. 원래라면 몰라야 했을 오염에 대해 알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오염이라 봐야겠지…….’
지금은 안톤 때와 달리 마지막에 있는 (오염)이 유효한 단어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즉, 오염에 대해 알고 있는 동시에 오염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오염된 존재는 자신이 오염되었음을 모른다. 좋은 예로 로터스가 있었지. 정신 감응 분야에선 사도 중 일인자라 할 수 있는 로터스조차, 아무리 약화되었다곤 하지만 끝끝내 자신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
그런데 루크는 다르다는걸까?
오염에 대해 알고, 그 스스로 오염되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안톤처럼 오염은 되지 않았고, 단지 오염에 대해 알고만 있다?
‘그럴 수가……있나? 아니, 근데 일리는 있어. 오염이라는 건 결국 메인 시나리오에 정해진 행동을 하지 않게끔 뒤틀어버리는 힘이잖아.’
그런데 오염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 자신이 오염되었음을 알고 있다면.
그 상태에서의 행위를 그저 오염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오염에 대해 알고 있는 자가, 스스로 오염되었음을 인지한 상황에서 저지른 일은 오염인가/아닌가.
‘명백한 오류도 있다. 시기가 달라.’
지금 진성 자신이 한 일이라 해봐야 고작 무엇인가.
[그림시커] 루트를 진행 중인 비비가 검은 악몽에 영향을 받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 것뿐이다.눈이 뒤집혀 허크와 뮤우를 향해 달려가는 비비에게 <다크 버스트>를 쓰고 진성 스스로 방패막이가 되어 그녀를 지켜주었을 때.
실질적으로 들어간 대미지도 없건만 제압 판정이 된 것인지 그녀에게서 검은 악몽이 떨어져 나갔을 때.
그녀의 등 뒤에서 나폴거리며 떨어진 카드다.
아직 건설자 루크, 그 사도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건만 벌써 ‘사도 루크’라는 이름이 찍힌 카드가 나온다고?
‘골 깨지겠네. 아니, <오염의 원인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래, 무슨 생각이지? 이 카드들이 뜻하는 바는 도대체 뭐지?’
진성 자신이 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는 아주 단순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즐기는 유저들의 메인 시나리오를 바로잡기만 하면 됐다. 오염된 대상을 찾고 그 해결 방안을 강구하는 것보다, 유저들의 눈에 띄는 게 더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오염된 대상들의 상태가, 카드의 문구가 확연하게 달라졌어.’
오염의 대상, 오염의 양상, 처리 방법과 처리 후 상황……. 레니의 오염이나 로터스의 오염을 해결할 때와는 이미 많이 달라져 버린 현재.
<오염의 원인자>가 이러한 오염을 벌이는 명확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
‘이게 전부 의도된 거라면. 언젠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오염의 원인자>가 뭔가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거라면?’
혹여 지금의 이러한 오염 및 카드의 문구 역시도 <오염의 원인자>가 진성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리고자 하는 건 아닐까?
진성 자신과 대화를 하기 위해 접촉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진성은 비비를 바라보았다.
카드의 문구만 이상한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진성 스스로가 의문이 아직 남아있기에 시선을 비비에게 향한 것이었으나 정작 그 눈빛을 받은 비비는 움찔했다.
“비비 씨?”
진성은 물었다.
비비의 눈가가 어쩐지 촉촉하게 변했다는 건 느낄 수 있으나 그 의미까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조금 전 진성 자신이 비비에게 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 말이 비비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조차도 알지 못하는 게 진성이었으니까.
“그럴……수도 있다뇨?”
“네? 뭐가요?”
“잉? 지금 말씀하셨잖아요. 그럴 수도 있다고. 제가 짜증 낸 게 아니라 하니까 진성 님이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토록이나 가볍게…….”
“어? 음? 아아, 그거야, 뭐,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실수도 할 수 있는 거고.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는 뜻이죠.”
마치 비비의 마음과 상황을 100% 이해한다는 말투와 태도.
그것이 비비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음을 진성이 알 리는 없었다.
따라서 비비는 물어보려 했다.
그럴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비비 자신이 진성에게, 설령 검은 악몽에 취했다 한들 전했던 말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애초에 그 말들을 듣기나 한 건지.
“제가 진성 님한테 전한 마음-.”
그러나 그녀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두렵다……. 헤블론의 왕, 빛과 어둠의 군주인 이 루크가 그렇게 초라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예언이다.]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으니까.
딱히 스피커가 설치된 것도 아니었건만 죽은 자의 성 전역에서 울리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죽지 않겠다. 예언을 바꾸리라. 예언이 틀림을 증명하리라. 빛을 찾으리라. 어둠 또한 손에 넣으리라. 세상의 모든 것을 어둠으로 잠재우고 세상의 모든 것을 빛으로 태우리라.]“이건-.”
“루크? 예언이라니? 이, 일단 대장님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기록해야겠어.”
허크와 뮤우가 호들갑을 떠는 것 외에 진성도 긴장해야 했다.
[옛 모습을 찾으리라…….]루크의 목소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또 하나의 소리가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규칙적인 발소리에 뒤이어 드러나는 불규칙한 움직임, 진성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비비 역시 더 이상 진성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비비와 진성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
“……드디어……드디어 루크의 음모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군요.”
제2사도, 우는 눈의 힐더가 말했다.
* * *
힐더가 조심스레 다가오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모험가님. 저는 힐더라고 합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말투는 물론 그 행동거지 또한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허크와 뮤우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자, 잠깐! 다가오지 마!”
“어디서……도대체 어디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뮤우! 움직이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어이, 모험가! 그리고- 지, 진성! 너도 반응 좀 해!”
두 사람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별히 무얼 하지 않는데도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
죽은 자의 성이 드넓다지만 허크와 뮤우는 어찌 되었든 곳곳을 빈틈없이 수색하며 내려왔을 만큼 전공이 있는 자들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그 어떤 낌새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갑작스레 나타날 정도의 존재가 결코 만만할 리 없다는 건 당연한 사실일 터.
힐더가 사도라는 사실을 모르는 와중에도 두 사람이 놀라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성이 표정을 굳힌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만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했다. 카시야스와 있던 그 자리에서 멀지 않으니. 그때가 루크를 최종적으로 놓친 국면이었다면 자연스레 모험가의 앞에 나타나는 게 수순이지. 내가 기억하는 메인 시나리오랑도 일치해.’
죽은 자의 성의 시나리오 진행에서 사도 힐더의 등장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진성 자신도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폭음과 진동을 확인하기 위해 죽은 자의 성에 들어섰을 때, 이미 힐더와 카시야스가 있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그녀가 나타난 때 역시 진성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진성의 얼굴이 굳은 이유라면 역시 하나였다.
힐더가 나타나기 전부터 진성의 머릿속에 들어선 생각 하나.
‘하지만 나한테도 보인다……. 난 분명 칠리새우 님의 타임라인 안에 속해 있을 텐데도.’
진성이 카드를 획득하기 전부터 갖고 있던 의문이자, 조금 전 비비를 바라보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진성 자신이 어떻게 비비의 타임라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분명 죽은 자의 성에 도착하여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한 건 비비가 먼저다.
칠리새우는 그다음이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진성 자신이라면, 당연히 ‘칠리새우의 타임라인’에 속해야 정상이며, 그것은 칠리새우가 그간 ‘안톤 쩔’을 해줬다던 빙의자들과의 데이터를 통해 확인된 바다.
‘당연히 비비 씨를 만날 순 있지. 빙의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냐. 나랑 비비 씨가 해상열차 인근에서 아행을 만나 싸웠던 것처럼.’
사람은 괜찮다. 하지만 NPC는 다르다.
그것도 마을 맵에 있을 법한 상인 NPC가 아니라,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 중에 특수한 상황에서만 등장하는 NPC가 이런 식으로 겹쳐서 나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진성은 줄곧 의심해왔던 사안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오염의 원인자>가……무언가 술수를 부린 거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 카드가 나온 시점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시간선’까지도. 일련의 상황을 그가 꾸몄다.’
적어도 한 가지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진성이었다.
자신이 <오염의 원인자>에 대해 알아갈수록.
<오염의 원인자> 역시 진성 자신에게 접근하는 중이라고.
“모, 모험가!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아, 그…….”
허크의 재촉에도 비비는 여전히 진성 자신에게서 한두 걸음 떨어진 상태 그대로였다.
힐더를 바라보고 있으나 중간중간 진성 자신을 흘끗거리고 있다.
그런 비비를 바라보며 진성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래서야. 그래서가 맞아. 놔달라느니, 하면서 짜증을 냈던 것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나한테 헛소리를 했던 것도! 역시 오염 때문이겠지! 비비 씨를 통해서 나한테 접근하려는 거냐, <오염의 원인자>!?’
진지하게 생각하던 추론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을지 모르지만……적어도 현시점에서 덜컥 내려버리는 결론은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지.
진성은 다소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비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성의 눈을 마주치던 비비가 느끼는 것은 그저 야속함이었다.
‘또 저렇게 뭔가 재미있다는 표정인가. 진성 님에게 나는…….’
진성에 대한 원망이 없는 건 아니나, 검은 악몽에 잠식되었든 어쨌든, 본심을 그런 식으로 내뱉어버린 게 자신의 실수라면 실수이므로 할 말이 없다.
물론 이도 저도 못 하고만 있을 비비는 아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진성과 조금 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비는 바보가 아니다.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진성 님한테 그런-.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니까.’
사도 힐더를 눈앞에 두고 허튼소리를 해봤자 오히려 진성에게 폐가 될 것을 잘 알기에, 지금껏 진성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은 이제 완전히 힐더를 향했다.
그렇게 비비는 힐더를 바라보았다.
진성도 그녀를 따라 힐더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2사도, 우는 눈의 힐더는 비비와 진성,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미묘한 미소를 머금음과 동시에 다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