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2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21화(21/212)
021
아이리스 포춘싱어, 적어도 알려진 직업상으로는 ‘점술가’.
‘설마 보인다고? 내가 누구인지-. 그렇게 바로 알 수는 없을 텐데.’
진성의 눈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마주한 NPC들은 세계관 내에서 발휘하는 정도였다.
인간으로서 단련되었던 4인의 웨펀마스터나 G.S.D.
또는 흑요정의 마력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마법사 길드의 샤란.
그들은 모두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배경 설정’을 기반으로 한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아이리스 님……?”
샤란은 조심스레 아이리스를 불렀으나 아이리스는 응답도 없이 진성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중이었다.
진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 눈을 마주했다.
‘물론 현시점에서 아이리스 포춘싱어는 분명 일반적인 사람보다 압도적인 마력을 지니고는 있을 거다. 점술가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사도 힐더에게 조종당하는 상태니까.’
사도Apostle,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주요 설정 중 하나.
각기 다른 세계에서 마계로 오게 된 이계의 인물들 중 가장 강력한 자들에 대한 총칭.
그 근원은 태초의 의지이자 창조신, 칼로소가 숨겨둔 ‘어두운 일면의 의지’를 활용하여 만든, 인공신의 힘.
즉, 사도란 창조신의 파편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자신의 사악한 의지가 ‘인공신’으로 만들어져 힘과 형상을 지닌 채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마뜩잖았던 칼로소는 직접 그들의 만행을 막고자 했고, 그 자신의 육신과 힘마저 모두 쪼개질 정도의 싸움 끝에 12개체의 인공신을 처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만들어진 행성 ‘테라’와 생명체는 모두 파괴되며 심지어 하나였던 우주 자체가 여러 우주의 차원으로 나뉘고 말았으니.
결국 12명의 인공신과 인공신을 만들었던 행성 ‘테라’ 안에 잠재된 커다란 힘, 즉, 13개의 힘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그 ‘힘’들은 결국 일종의 환생이라고 해야 할까,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여러 차원, 여러 행성의 강자들에게 깃들었으며 그들이 ‘마계’로 모여들어 현재의 사도들이 되었다, 라는 게 배경 설정이지.’
13개체이나 제9사도가 교체되어 12자리만이 존재하는, 그 힘을 모두 합한다면 태초의 신이자 위대한 의지와 맞설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이 바로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사도’인 셈.
그중에서도 특히나 비밀이 많은 자, 여타 사도가 지니지 않은 힘을 보유하고 있는 자가 바로 제2사도.
진성의 눈앞에 있는 아이리스 포춘싱어에게 힘을 부여하고 조종하는 ‘우는 눈의 힐더’다.
‘하지만…….’
꿀꺽.
그리고 당연히 진성은 그 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법사 길드에 온 것은, 마법사 길드를 임시 거처로 삼으려는 것은 진성 자신의 계산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이리스 님!”
“네, 샤란 님.”
샤란은 답변 없는 아이리스를 연거푸 불러 마침내 반응을 이끌어냈다.
마법사 길드장조차도 조심스레 마법사 길드 소속의 점술가에게 질문을 하는 중이었다.
“하늘성에서의 일을……벌써 아시는 건가요?”
그 질문에 아이리스는 자신이 들고 있는 4현의 악기, 마레리트를 퉁기며 답했다.
“슬픈 바람이 불어오고 있군요. 마레리트가 울고 있어요. 이후에도 삶과 죽음이 관련된 일이……일어날 거예요.”
그녀의 눈은 여전히 진성을 향하고 있었기에, 지금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뜻인지는 샤란과 진성 모두 파악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건……그렇군요. 아이리스 님이 알게 된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의토록 해보고-. 여기는 진성 님이에요. 하늘성에서 G.S.D 님과 함께 바칼의 마법진에 대해 알아보도록 도와주기도 했고……사정상 당분간은 저희 길드 건물 내에 묵을 겁니다.”
샤란은 우선 진성을 아이리스에게 소개시켰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갔을 때, 진성 또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진성은 말하고 싶었다.
“사도 힐더에게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나요? 혹시 <오염의 원인자>에 대해 알고 있나요?”
당연히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을 터.
당장 이런 말을 내던졌다간 <부집게로서의 사명>이 아니라 플레인:아라드의 기반부터 흔들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진성은 호흡을 고르다 말했다.
“혹시 제 역할이 무엇인지도 짐작하고 계신가요, 아이리스 님? 아니, 그것도 아니면 제 앞날에 대해서 보실 수 있으신가요?”
아이리스와 대화를 해봐야 한다.
그저 겁먹고 있어선 안 된다.
그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진성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또는 진성 자신이 아이리스에게 비밀로 활동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지.
그 모든 것을 따져보기 위해서라도.
아이리스는 답했다.
“깊은 의문을 가진 분이로군요.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굴러간다고 생각하세요.”
조용하게 말하며 그저 목례를 꾸벅, 하며 아이리스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은 마법사 길드의 내부를 걷는 아이리스의 뒷모습을 진성은 끝까지 살폈다.
그러곤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인게임에서 아이리스를 클릭하면 나오는 대사와 비슷해. 의미가 완전히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실제로 별 내용은 아닐 거다. 그렇게 보자면 결국 아이리스는-.’
나에 대해 모른다.
진성 자신이 해야 할 일, 즉, <부집게의 사명>을 띈 채 이곳 아라드에 온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봐야 할 터.
‘물론 연기일 가능성은 있어. 그러나…… 힐더 자신이라도 내 정체를 곧장 파악하는 게 가능할지 의심스러운데 하물며 아이리스는 역시 안 되는 거지. 힘의 구도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에 여기까지 온 거니까.’
진성 자신이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빙의된 이유는 모두 네메르 때문이다.
사도 힐더보다도 강력한 ‘초월자’의 힘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면, 결국 힐더 본인도 아니고 그 힘을 일부 부여받아 조종당하는 아이리스가 진성 자신의 모든 정체를 알 수는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좋아. 그럼 내 정체는 들키지 않은 채로……. 아이리스를, <오염의 원인자>에 대해 조사해볼 수 있겠어.’
마법사 길드에 거처를 잡으려는 이유는 샤란을 통한 도움만이 아니었으니까.
진성은 미소를 감추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샤란은 그런 진성과 멀어져가는 아이리스의 뒷모습을 번갈아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진성 씨가 이해해줘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분이지만 가끔은 저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하시는 터라-. 아참 그리고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그러다 불쑥, 그녀는 물었다.
어떤 의미로는 사도 힐더와 그녀에게 조종당하는 아이리스 포춘싱어에게 너무나 집중한 대가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아이리스 님께 한 질문의 의미는 뭐죠? 역할을 짐작하냐니? 앞날이 보이냐는 말을 어떻게 꺼낼 수 있었죠? 내가 아이리스 님이 점술가라고 말했던가?”
“……어라?”
아직 샤란이 아이리스에 대해 소개를 시켜주지도 않았는데 주절주절 떠들다니!?
흑요정 마법사 길드장의 날카로운 눈빛이 진성을 파고들었다.
진성의 눈동자가 스르륵, 피하려는 그 순간.
“기, 길드장님! 로리안이-. 로리안이 실종됐습니다!”
누군가 샤란을 급히 불렀다.
진성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 * *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찾아달라고 위치 표식을 남기는 마법석 또한 두고 갔으나…… 상시 반응도, 호출에 대한 응답도 없습니다.”
길드원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작은 마법석을 내밀었다.
몇 시간 정도 연락이 끊겼다 하여 그것을 실종이라 확신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마법사 길드 소속이나 되는 인물들이 그러한 문제가 터졌다고 가늠할 정도로 그가 내민 ‘마법석’의 위력이 대단한 것임을 진성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빛을 발하거나 반짝거렸을 돌은, 지금 그저 혼탁하게 변해있을 따름이었으니까.
“반응이 없어진 지는 얼마나 됐죠?”
“샤란 님을 따라 나가고 얼마 안 되어 바로였습니다.”
“……알았어요. 하늘성 인근-. 아니, 웨스트코스트 근방을 모두 수색할 테니 인원들을 섭외해줘요.”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길드원은 샤란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곤 곧장 달려나갔다.
샤란은 잠시 아랫입술을 물다 말고 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쉽지만 진성 씨가 아이리스 님께 물어본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해야겠네요. 들었겠지만 길드 내부의 문제가-.”
그 와중에도 진성의 정체에 대해 집착하는 샤란의 말에, 결국 진성은 선택해야 했다.
“로리안 코르나로. 18세, 금발, 샤란 님의 마법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마법 천재.”
눈을 끔뻑거리는 샤란에게 진성은 한 발자국 다가가 말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로리안에 대해서라면……. 일단 무사히, 안전하게 있다고 말씀드리죠.”
“설마 당신이-!”
“쉿. 샤란 님, 설마 줄곧 함께 있었으면서 제가 납치라도 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진성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샤란의 태도를 몇 번이나 보아왔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샤란은 실제로 진성의 물음에 잠시 입을 다물다 곧장 자신의 추론을 펼치기 시작했으니까.
“어떻게……알았죠? 로리안에 대해서라면-. 그녀의 공주병이야 워낙 유명했다지만-.”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아까 아이리스 님한테 질문을 던진 것도 마찬가지고요.”
진성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로 원하는 건 하나였다.
“저는 미래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샤란의 완벽한 신뢰.
샤란 자체는 향후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으나, 그것은 던전앤파이터를 게임으로 즐기는 유저의 입장에서일 뿐이다.
아라드를 살아가는, 이곳이 말 그대로 현실인 진성 자신에게는 마법사 길드를 완전히 내 편으로 만들어둔다는 게 얼마나 큰 이득이 될지.
‘아까 그건 게임 내에 없는 아이템이었어. 게임 내의 아이템만이 내가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지. 그렇다면 결국…….’
조금 전 로리안이 사라졌을 때 확인했다던 마법석 따위의 존재로도 알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 말을 믿으라고요? 아무리 아이리스 님이 점술가라지만, 진성 씨는-.”
“믿을지, 말지는 샤란 님의 마음입니다만……믿지 않는다고 해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건 더 잘 아시겠죠.”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추론해도 답이 나올 수 없는 말도 있는 것이었다.
말하는 진성 또한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래를 안다, 정도의 발언은 과연 허용되는가.
네메르는 ‘정체를 들키지 말라’며 강력하게 경고했지만, 그것은 유저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거라면? NPC에게 이러한 방식의 발언이 용납되는가.
두 사람의 눈빛이 소리 없이 마주쳤다.
진성은 진성 나름대로 페널티 등이 없는지 확인했고 샤란은 샤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중.
“로리안이 무사한 건 확실한가요?“
그녀는 물었다.
진성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페널티를 받지 않을 법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해주었다.
“네. 로리안은 무사할 겁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고, 그녀가 있는 공간이 전부 다 안전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요.”
“……그녀가-. 그녀 자신의 힘으로 다소의 위험이 있는 공간에서 안전을 확보했다, 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샤란의 완벽한 해석에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가 로리안이라는 NPC에 대해 아는 이유가 무엇인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계에 있지요. 붉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자신만의 구역까지 확보해서 잘 지내고 있으니.’
지금의 샤란에게는 ‘마계’라는 공간에 대한 설명조차 하기 힘들겠으나, 포괄적인
암시의 내용에 틀린 바는 없지 않은가.
“좋아요. 믿기 힘들지만. G.S.D 님과 관련된 일도-. 아이리스 님과 관련된 일도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군요.”
샤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성은 그런 그녀에게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래서……일단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겠죠?”
“물론.”
“알았어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올 테니.”
샤란은 또 다른 마법사 길드원을 불러 수색 취소 및 진성과의 외출에 대해 알렸다.
마법사 길드를 빠져나오자마자 진성은 샤란에게서 앞장서며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웨스트코스트의 중심가에서부터 동남쪽 방면으로 향하는 진성의 의도를 알아채기라도 한듯, 그녀는 물었다.
“항구……쪽으로 가나요?”
“네.”
“항구에 중요한 일이? 으음.”
거침없는 진성의 답변에 그녀는 무언가를 추측하기 위해 애썼으나 당장 와닿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껏 진지하기만 했던 진성이 발을 멈춘 것은 샤란과 똑같은 피부색을 지닌 자의 앞이었으니까.
“여깁니다.”
“음? 여기-. 카곤? 카곤이 왜요?”
목적지, 흑요정 카곤의 앞에 멈춰선 진성에게 샤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요한 일이죠.”
진성은 말했다. 더없이 진지한 태도로.
“제 장비를 맞춰야 하거든요.”
다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