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212)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212화(212/212)
212
오염의 가능성에 대해 떠올린 다음부터 진성의 사고는 더욱 확고해져 갔다.
소륜은 없어야 한다.
설령 모험가가 없는 사이 젤바에 들렀다 하더라도 죽은 자의 성 내부에 들어간다거나 아젤리아를 만나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한다.
즉, 모험가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저들의 행동은?
‘제국이 나서서 막는다 해도 어떻게든 아젤리아를 만나겠다는 태도까지 내비쳤잖아. 모험가가 곁에 있든 말든 신경도 안 쓸 거다.’
비비에게 있어선, 없어야 하는 존재들.
그럼에도 움직이려 하는 존재들. 그렇다면 오염이라고 보는 게 옳다.
‘적귀 소륜이 직접 여기에 온 의도……그걸 파악해서 처리하는 게 이번 오염의 해결 방안이겠지. 으음, 그러면-.’
-비비 씨, 베키 찾는 건 어떻게 되어가요?
-게임으로는 금방 하지 않았던가? 죽은 자의 성을 진짜 이렇게까지 샅샅이 뒤져야 하는 거였나요? 맨 처음부터 지나쳤던 장소를 다 훑어나가야 한다는 게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는데?!
현재 비비의 위치 및 상황 파악부터.
진성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메인 시나리오의 에픽 퀘스트 내에서도 베키를 찾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나올 정도였으니.
제아무리 레이드형 공략이 필요 없는 [그림시커] 루트를 선택한 비비라지만, 결국 플레인:아라드에 빙의된 자의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하는 법이다.
-뭐 찾는 걸로 그렇게 엄살이야, 나는 진짜로 싸우고 있는데. 빙의된 이래 내가 마나 부족 같은 사태를 겪을 줄은 몰랐네. 그나마 진성 씨가 설명을 잘 해줘서 패턴 파훼라도 잘 하니 다행이지……아, 그건 내가 잘하는 건가?
-뭐래요, 칠리 언니는 진짜 모르는구나? 루크 레이드는 사실 패턴과 관련된 문제는 별로 없었거든요? 빛 루트랑 어둠 루트 택해서 타이밍 맞추는 게 중요했는데 언니는 그런 거 안 하니까 사실 힘든 것도 아니예요.
-그, 그렇다고 사람 면전에서 그렇게 말을 한다고?
-자, 자, 두 사람 모두 집중하시고! 하여튼 여전히 겹칠 일 없으니 쭉쭉 진행하시되, 네임드급 조우하거나 퀘스트 진행될 것 같으면 바로바로 말씀해주세요!
아젤리아와 함께 있는 비비가 ‘리얼타임’으로 죽은 자의 성 전역을 수색하고 있다면,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칠리새우 역시 [합동 조사단] 루트를 택하여 사실상 루크 레이드 시절의 행보를 거쳐가는 중이므로 당분간 나올 일은 없다.
거기까지 파악이 되었다면 진성으로서도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었다.
“흑구. 좀 자둬.”
[클클클, 갑자기 무슨 소리지.]“오늘 밤에는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니까.”
직접 움직인다는 결정.
그림시커 강경파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집단, 적귀 소륜이 이끄는 무리를 살펴보기로 진성은 각오를 마쳤다.
[고상한 척하지만 야만적이기 짝이 없는 그 녀석……그 녀석의 냄새가 나던데. 알고 있는가.]“음? 아아, 맞아. 시로코의 사념을 받아들여서- 그뿐만이 아니라…… 능력도 그렇지.”
평소의 비꼬듯 놀리며 경고를 하는 것과 다르게 흑구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 점은 진성으로 하여금 적귀 소륜에 대한 특징을 한 번 더 상기시켜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흑구의 능력을 빌리는 것도 딱히 규격 외, 어쩌고, 뭐, 그럴 정도는 아니구나. 소륜도 [포식]이라는 능력을 쓰는데.”
수쥬 출신의 부모로부터 배운 무술만이 그녀의 무기가 아니다.
제5사도, 무형의 시로코의 사념을 받아들이며 개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포식].
그림시커 7인의 설립자 중 몇몇은 시로코의 정신과 기억뿐만 아니라 사도가 지닌 특수한 능력까지도 부여받았으며 소륜에게 부여된 것은 [포식]이라는 능력이었다.
[시로코 또한 먹어 치우기로는 그 무식한 거북이 녀석과 다를 바 없었으니……크크크, 딱 어울리는군.]“먹기만 하는 거였으면 그냥 과식이지. 쩝, 특정 능력을 지닌 자를 집어삼켜 버리고 그 능력을 흡수하는 게…… 소륜의 힘이니까.”
대상을 삼킨 후 대상이 지닌 특수 능력을 사용하는 것.
그 대상이 소륜 자신의 뱃속이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녹아 없어질 때까지’만 가능하며, 대상이 사망한 이후에는 흡수했던 특수 능력 역시 사라지긴 한다.
‘잔인한 일이지. 포식당한 대상이 소화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소륜은 포식으로 빼앗은 능력을 더 오래 쓸 수 있으니…… 쩝, 어쨌든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어.’
젤바와 죽은 자의 성에도 밤이 찾아왔다.
완전히 어두워진 시간이 되고 나서야 진성은 텐트를 나섰다.
* * *
젤바는 안톤의 사체로 이루어진 섬이다.
화강암, 현무암, 흙 따위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화산섬이 아니라 말 그대로 쩍쩍 갈라진 등딱지 위를 돌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 있던 타르탄들이 하다못해 길 비슷한 것을 만들어두지도 않았다.
두 가지만으로도 일반인들은 걷기조차 어렵건만 하물며 달빛 말곤 특별한 조명도 없는 밤에는 더욱 위험한 장소다.
‘눈에 훤하지, 훤해. 안톤 조지러 돌아다녀 보기도 했었고.’
그럼에도 진성은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듯 빠르고 조용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오히려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진 어둠을 원할 정도로 그의 운신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카모플라쥬 관련 템이라도 있었으면 사실상 투명 효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쩝.’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사실상 투명화와 같은 성능을 내는 아이템들을 몇 개 떠올려보았으나 어차피 이제 와서는 구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합동 조사단]이나 [모험가 길드] 캠프 방면은 밤 늦게까지도 조명들이 제법 환히 밝혀져 있으나, [그림시커] 캠프 너머부터는 사실상 인공적인 빛이 없다는 것일까.
‘그림시커에서 준비해준 텐트……에는 없군. 그렇겠지.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쁜 마음을 먹고 이곳에 온 놈들이 괜히 감시당할만한 위치에 덜컥 있을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들이 노리는 바 자체는 명확하다.
아젤리아를 죽일 ‘기회’를 찾는 것.
이곳에서 아젤리아가 그들에 의해 사망하게 됨을 알고 있는 진성의 입장에서야 특별할 게 없지만, 그러한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그들 입장에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런 기회를 끝끝내 얻지 못했을 때……뭘 하려는지. 그거라도 알게 되면 좋을 텐데 말이지. 아마 적귀 소륜이 직접 온 게 그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진성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정리하며 나아갔다.
“……니까.”
그리고 마침내, 밤바람에 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진성.]흑구의 경고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알아챈 것.
오감을 비롯한 신체의 기본 능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랐음을 뜻하는 바였지만, 지금의 진성은 그런 점에 신경 쓸 수 없었다.
소리가 새어 나온 곳은 한때 간헐적으로 가스가 뿜어져 나왔을 구멍이었다.
물론 안톤의 등껍질에 있는 구멍이므로 그 크기는 웬만한 운동장만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 포위하기에는 꽤 넓고, 멀리서 관찰하려는 자들의 시야에선 숨을 수 있는, 그런 장소.
‘바꿔 말하면 저쪽에서도 구멍 밖을 경계하는 놈이 두셋은 있다는 거겠지.’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지형 덕분에 들키진 않았으나 더 이상의 접근은 결코 쉽지 않을 터.
진성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다행히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정도로 다가가기만 해도 당장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크크크, 안톤이 살아있었다면 바다가 떠나가라 웃었겠군. 등딱지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라니.]샤샥, 샤샥, 움직이는 진성을 향해 흑구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려도 진성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만큼 진지하게 적귀 소륜을 비롯한 그림시커 초-강경파의 실력을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매우 신중하게 그러나 결코 느리지 않게 접근하기를 얼마나 되었을까.
“한다.”
“하지만……충분한 기회를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노골적으로 움직였다간-.”
“시끄러워.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지? 아젤리아 그년이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기나 할 것 같아? 에스라를 비롯해서 다른 설립자들과 떨어져 있을 때가 다시 올 것 같아? 없어. 지금밖에 없다.”
“그래도 기다리셔야 합니다. 아젤리아 한 사람도 그리 쉽지 않을 텐데…….”
“맞습니다. 그리고 로이와 에리카가 있잖습니까. 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에리카의 아슈타르테화化는 그리 쉽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멍청하긴! 그래서 내가 직접 온 거잖나!”
소리를 빽, 지르는 게 소륜이라는 건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주제에 대해 이해했으므로 진성은 어쩐지 불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륜은 그래도 대화를 하러 온 줄 알았더니…… 지금 말하는 것만 들어보자면 어째…….’
아젤리아 로트가 사망하는 건 이름 모를 소륜의 추종자가 말한 대로다.
아젤리아가 혼자가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죽여야만 한다는 것.
실제로 진성이 알고 있는 아젤리아의 죽음은 그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지금 소륜의 주장은?
“아직 놈들이 모를 때. 우리에 대해 경계가 옅을 때. 지금밖에 없어. 방해가 된다면 로이와 에리카까지 싹 쓸어서라도 우리의 뜻을 보여줘야 해.”
“하지만-.”
“괜찮아. 이건 무차별 살인이 아니라 주살誅殺이다. 사도를 지키려는 아젤리아의 죗값을 치르는 것뿐이야. 정당한 살인이다.”
“그 주장도 솔도로스 님은 분명히 거절하신 터라…….”
“솔도로스는-. 솔도로스 님은 나서야 할 때를 몰라서 그럴 뿐이다. 양얼, 그 등신 같은 게 옆에서 바람을 넣어서 그렇겠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말이야.”
진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소륜이 말한 거절이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졌는지 역시 알고 있다.
아젤리아를 주살하고 당장 마계에 오르자는 소륜의 주장.
그러나 솔도로스는 전자에도, 후자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양얼에 의해 내쫓기다시피 절망의 탑을 나왔을 테고, 아젤리아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 아라드와 천계를 전전하다 마침내 이곳에 도달했을 터.
‘결국 이번 은 소륜을 막아내는 일이겠군. 아젤리아가 혼자 있든 말든…… 방해가 된다면 로이와 에리카까지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내가 해야 할 일은 저걸 막는 거다.’
이제 진성도 얼추 상황을 다 파악했다.
또한 소륜과 굳이 전투를 치를 필요도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막무가내로 움직인다지만 아직 솔도로스와 양얼의 말을 무시하지 못한다면?
진성 자신이 [절망의 탑]과 관련된 인물인 척 나서는 방향으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헛소문을 흘리는 것도 괜찮겠군. 어쨌든 비비 씨의 메인 시나리오 상황은 내가 수시로 파악하고 있으니…… 비비 씨가 루크를 클리어할 즈음에 맞춰서, 그림시커 인원들이 젤바로 오고 있다! 이런 소문만 하나 스윽, 흘리면 되는 거 아냐? 솔도로스, 아니, 양얼이 오고 있다……정도 이야기만 들려도 소륜은 움직이겠지.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든, 도망치기 위해서든.’
그 외에도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소륜만 적당히 떼어내고, 그 추종자들을 남겨놓을 수만 있으면 결국 ‘오염’의 영향은 없을 터.
연단된 칼날이 되어야 하는 비비는 계획대로 그 자신의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좋아, 이 정도면 됐어.’
진성은 슬금슬금 몸을 돌렸다.
여전히 납작 엎드린 상태라 방향을 전환하려 낑낑거리기도 잠시.
다시금 소륜 일당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러니 여론을 바꿔야 해.”
소륜은 말했다.
그녀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여론이요?”
“그래. 온건파 녀석들이 눈이 뒤집혀 달려들면 강경파도 당하고 있을 리가 없지. 결국 강경파 내에서도 목소리가 나올 테고…… 그렇게만 된다면 솔도로스 님이라도 그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거다.”
“저희가 아젤리아를 죽이는 정도로 그게 되겠습니까?”
“아젤리아의 죽음은 큰일이겠지만 온건파가 그렇게 나와줄까요? 우리 강경파에 비한다면 질적으로, 양적으로 부족한 녀석들인데요.”
“눈깔이 뒤집히도록 만들면 돼. 그러기 위해선…….”
소륜은 답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이었다.
진성을 잠시 멈춘 말이자.
방금 떠올렸던 방법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발언.
“최대한 잔인하고 처참하게 아젤리아를 죽여야겠지. 잘라낸 목은 온건파 녀석들에게, 그리고 몸통은 절망의 탑으로 보낸다.“
무엇보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고인물 중 고인물에게 있어선 용납할 수 없는 발언.
“그, 그렇게까지-.”
“흥, 원래 계획이었다면 팔다리를 따로 잘라서-.”
적귀 소륜을 따르던 패거리들조차도 흠칫하며 말을 더듬을 정도로 잔혹한 발언.
진성은 참지 않았다.
“듣자 듣자 하니까, 이 새끼가.”
다크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