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22)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22화(22/212)
022
샤란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한참이나 말없이, 큰 눈을 깜빡거리며 진성을 바라보기만 할 뿐.
무슨 말을 듣더라도 곧장 합리적인 추론을 내뱉던 마법사 길드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라? 샤란 님?”
카곤이 그런 샤란을 발견하고 말을 건 시점에서야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 다시 입을 연 것은 진성이었다.
“장비요. 마법사 길드의 이름으로 도와주신다고 했잖아요? 하늘성 통행증도 그렇고. 아직 큐브랑 포션은 안 받았지만 일단 저한테 중요한 건-.”
“자, 잠깐, 잠깐.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장비? 지금 진성 씨의 무장 상태를-. 심지어 마법사 길드의 돈으로 맞춰달라는 거예요?”
“그게 아쉬운 점이죠. 레벨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여기가 아니라 신다 님한테 가서 구입했을 텐데.”
“……아?”
진성은 입맛을 다셨다.
카곤이 파는 장비의 레벨은 25~30 수준.
진성이 조금 전 말한 NPC 신다가 판매하는 장비의 레벨은 45~50 수준이었으니.
현재 레벨이 23이지만 네메르에 의한 <패왕의 계약> 상시 적용 덕분에 요구 레벨이 33 수준의 장비를 착용할 수 있는 진성에게 있어, 레벨을 35까지만이라도 올렸다면 단숨에 신다가 판매하는 장비를 장착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진성이 진심으로 아쉬워함을 오히려 눈치챘기 때문일까.
샤란의 눈썹 끝이 치솟으려는 찰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샤란 님?“
그녀에게 말을 붙인 것은 카곤이었다.
“-아, 카, 카곤. 잘 지냈어요?”
“물론입니다. 여왕님과 샤란님의 염려 덕분에 잘 지냈지요.”
샤란과 같은 흑요정 종족이자 흑요정들의 국가인 펜네스 왕국 출신.
흑요정 왕국 내에서 이미 높은 계급인데다 흑요정 왕국의 여왕에게 총애받는 샤란에게 잘 보이고자 고분고분한 말투를 쓰는 카곤이었으나, 진성을 흘겨보는 눈빛은 결코 곱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못생긴 인간과는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이 작자가 샤란 님을 곤란하게라도 만든다면-.”
“아, 그런 건 아니고…… 아니, 이제는 맞다고 해야 하려나요?”
샤란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려다 말고 슬쩍 말을 바꿨다.
카곤의 눈빛을 받는 와중에 샤란의 눈빛마저 바뀔 즈음이 되어서야 진성은 주변을 살피다 말고 멋쩍은 웃음을 내뱉는 것이었다.
“물~론 이건 농담이었고요. 크흠, 샤란 님도 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긴…… 장비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점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거든요.”
“……확실한가요?”
그 와중에도 장비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언급하던 진성은 이제 샤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럼요! 제가 실제로 여길 온 이유, 중요한 이유라 말씀드린 건-.”
카곤을 바라보며 진성은 말했다.
“-마가타 때문입니다. 카곤 님의 마가타가 곧 필요해질 거예요.”
흑요정들이 사용하는 비행선, 마가타.
하늘성에 떨어진 비행선 도르니어와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하늘을 날 수 있는 선박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며, 현재 아라드 대륙에서 민간인을 태우고, 벨 마이어 공국의 영공을 공식적으로 통행할 수 있는 것은 카곤이 유일하다는 걸 진성은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샤란과 함께 이곳으로 와야만 했다.
단순히 그에게서 장비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마가타? 내가 마가타 보수와 운전은 잘하지만 너 같은 인간을 태워줄-.”
“태워주셔야 합니다. 저는 저기……저곳에 가야 할 테니까.”
진성은 하늘을 가리켰다.
때마침, 무언가가 햇빛을 가리며 진성과 샤란 그리고 카곤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저건…….”
하늘을 나는 고래, 떠다니며 움직이는 대륙.
하늘성에서 잠깐 스치듯 지나갔던, 창공을 부유하는 거대한 생명체, 베히모스.
“조만간 저곳에 가게 될 겁니다, 샤란 님. 그때를 위해서 준비 해야해요. 저에게서 ‘정보’를 받아 가길 원하신다면.”
진성 자신의 다음 목적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베히모스라면, 그곳에 무난하게 가기 위한 ‘밑밥’을 깔아놓기 위해서.
샤란이라면 껌뻑 죽는 카곤에게, 확실히 마가타의 탑승에 대한 권한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곤 님, 그때가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 아, 마가타는 바로 날 수 있는 거죠?”
진성은 카곤에게도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카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진성에게 짜증을 내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당연하지! 당장이라도 화끈하게 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 녀석을 태우는 건-.”
“부탁해도 될까요……카곤?”
진성의 노림수는 완전히 먹혀들었으니까.
G.S.D의 정체에 대한 가설부터 아이리스와의 대화, 로리안의 행방 이후 여기까지.
헨돈마이어의 마법학교장이자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은 진성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셈이었다.
그리고 샤란의 부탁을 카곤이 들어주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진성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좋습니다. 그러면 카곤 님? 아이템 목록 좀 볼 수 있을까요?“
“자, 장비까지 정말로 구입하려는 거예요? 진짜?”
“음?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장비가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어디 보자, 뭐가 있나~?”
그리고 잠시 후, 진성은 자신의 명성 수치를 확인하였다.
기존 모험가 명성 17.
변경 모험가 명성 65.
아직도 갈 길은 멀다지만 적어도 4배 가까운 성장은 이미 확보한 진성이었다.
* * *
샤란은 말했다.
“혹시 여기 남아 대마법진의 관리를 도와주지 않으시겠어요?”
“네?”
세리아는 놀라 당황한 눈으로 되물었으나 샤란은 침착했다.
“오염된 대마법진을 정화했던 능력……. 그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세리아 양이 대마법진의 관리를 도와준다면 정말 든든할 거예요. 마법에 관해서도 정식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늘성에서 할 수 있는 대마법진의 관리/보수와 관련된 제안.
거기에 더하여 마법까지 알려준다는 말에 세리아는 당황한 듯 답변했다.
“잠, 잠깐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일련의 흐름을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는 건 진성이었다.
하늘성에서 보았던 세리아와 여자 격투가가 마법사 길드의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여격가 유저의 하늘성 파트는 이제 완전히 끝났겠군……. 어이고, 힘들어라.’
샤란이 진성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여유롭게 기지개를 켤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유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그는 말했다.
“온다고 했죠? 그리고 제 예상처럼 제안하면 받아들일 거라 했죠? 마법사 길드의 인력 관리 측면에서도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샤란에게 ‘세리아가 곧 올 테니 그녀를 끌어들여라’라는 조언을 해준 게 바로 진성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샤란은 길드장에게 어울리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뉘었다.
“이것도 진성 씨가 말한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조언이었나요?”
“그렇다고 해 두죠.”
“……그러면? 진성 씨는 이제 뭘 할 건데요?”
그러곤 진성에게 물었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진성도 곧장 답할 수 없었다.
“말씀드린 것처럼 베히모스로…… 가야죠.”
“언제?”
‘어디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는 감을 잡을 수 있었으나 역시 진성에게 있어 ‘언제’와 ‘어떻게’에 대한 방법은 당장 알 수가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진성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무언가를 허공으로 튕겼다, 붙잡기를 계속했다.
“글쎄요. 때가 되면? 하핫,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 큐브랑 포션 말고 말씀드렸던 ‘그 포션’도 혹시 제작 가능한지 빨리 알아봐 주세요. 아무래도 급하거든요.”
“……하여튼.”
마치 동전처럼 보이는 그것을 몇 번이나 튕기며 너스레를 떠는 진성에게, 샤란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나 표현을 그렇게 했을 뿐 불안한 것은 진성 또한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
마법사 길드를 나와 웨스트코스트의 길거리를 누비며 진성은 생각에 잠겼다.
‘이번엔 뭐가 오염되었을까.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오염이 드러나게 될까.’
지금까지 처리한 두 건의 오염 제거 작업.
굴 구위시에 대한 오염을 처리할 때만 해도 그저 몬스터만 처치하면 끝인 줄 알았건만.
이상 현상이 막 시작되는 부분을 바로 정리하면 될 줄 알았건만.
‘하늘성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지. 레니의 등장으로 인해 꼬인 걸 알아냈다지만 오염된 건 레니가 아니었어.’
정작 오염되었던 건 도르니어였다.
살아있지도 않은 비행선이었다.
‘오염된 무언가가 ‘향후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주요 인물을 미리 없애거나-. 유저, 모험가가 그 인물과 마주치지 못하게끔 막는다……?’
그나마 진성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결론을 내려 볼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을 터.
‘해당 유저가 겪는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내의 ‘무언가’가 오염되어 있으면……그 오염이 해결되기까지 전체 퀘스트가 전부 다 꼬여있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건가?’
첫 번째는 세리아였다.
굴 구위시가 세리아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면 당시의 유저인 남자 귀검사에게 있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는 의미가 사라졌을 터.
두 번째인 레니 또한 마찬가지다.
‘레니는…… 그 실력 때문은 아니라지만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야. 어떤 의지라고 해야 할까. 유저들이 조종하는 ‘캐릭터 모험가’가 연단된 칼날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서라도.’
중요 인물로 꼽아도 될 정도인 레니가, 그토록 허무하게 ‘추락하는 비행선에 치어 사망’해버렸다면 역시 메인 시나리오의 흐름은 이어질 수 없다고 봐야 한다.
“후…… 갑갑하네.”
벌써 두 번을 겪었지만 두 번 모두 케이스가 다르다보니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진성에게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진성의 뒤에서 갑작스레 목소리가 들려왔다.
“ㅋㅋ 머가요?”
“왓, 깜짝-…….”
진성은 황급히 입을 다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들려오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의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은 익숙한 얼굴과 익숙한 닉네임이었다.
닉네임 ‘순수찍기’.
창을 어깨에 턱, 걸치고 있는 마창사 직업군의 뱅가드 캐릭터.
진성이 하늘성에 잠입할 때 파티를 맺어 통행증의 문제를 해결할 때 마주쳤던 유저.
“what 깜짝? ㅋㅋ”
순수찍기의 발언에 진성은 잠시 고민했으나 아예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없었다.
그 또한 진성 자신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우선 자신의 ‘놀란 반응’이 어떻게 인지되었을지 알 수 없으므로 자연스레 인사나 하고 지나가려 했건만…….
“오랜만이네요. 순수찍기님.”
“ㄹㅇ 요즘 마따끄들은 이상하게 말하네 유행인가 ㅋㅋ 저번에도 그렇고”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따라서 순수찍기의 발언에는 진성의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뭐야? 지금 이 말뜻은-. 마따끄라는 건 다크나이트의, 일종의 별명 같은 건데?’
진성의 뇌는 빠르게 회전했다.
저 사람이 유저라면, 모니터를 통해 진성 자신의 아이디를 봤을 터.
처음 다가와 ‘뭐가요?’라든가 말장난 같은 말은 진성 자신을 알아보고 장난을 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모르게 내뱉은 푸념에 말줄임표 따위가 붙어서……그걸 이상하게 여기고 웃겨서 말을 건 거라면…….’
거기에 더하여, 조금 전 ‘순수찍기’가 한 말을 합쳐본다면!
“? 님 저 암?”
순수찍기는 진성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일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진성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날 기억하지 못하면 차라리 다행이야. 문제는 그게 아니다. 지금 이 사람, 순수찍기의 표정은-.’
그러나 다크나이트 유저 수는 귀검사, 격투가, 거너, 마법사 직업군에 비해 많지 않다.
하늘성 앞에서 파티를 맺은 데다 그 이후 한 번의 맵 이동만 있었을 뿐 곧장 파티를 해제하는 ‘독특한 체험’이라면 기억 속에 남았을 확률이 높지 않은가.
진성은 다크나이트의 육신인 자신과 키가 유사한 마창사의 눈을 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이 차츰 변하는 것을 보았다.
낯설고 생소하다는 눈빛에서, 어쩐지 호기심을 머금은 채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그 눈빛!
“아 님 하늘성 파티했던 그 사람임? 그 마따끄?”
순수찍기는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성은 직감했다.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마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