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28)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28화(2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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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지기 전의 산뜻한 오후, 레니는 헨돈마이어를 바라보며 그 붉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기 바빴다.
“여기가 공국의 수도입니다. 나쁘지 않죠?”
“……멋지네요. 사실 화려한 점이나 번화한 것으로만 따지면 제국의 수도가 더 낫겠지만요.”
“아참, 그렇네. 제국의 수도가…… 하핫, 그래도 뭐 헨돈마이어는 헨돈마이어만의 맛이 있으니까요.”
진성은 레니에게 선심을 쓰듯 말해놓고 어쩐지 쑥스러워졌다.
실제로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비교적 예쁜 배경 맵이라 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헨돈마이어이며 진성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곤 있었으나, 결국 제국의 수도는 가본 적이 없기 때문.
‘아직 인게임으로 구현이 안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바꿔 말하면 나는 여기서 가볼 수 있는 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데 로스 제국의 수도를?’
당장은 갈 수 없겠으나 기회가 닿는다면 이곳, 플레인:아라드에서 아직 진성 자신이 게임으로 겪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을 되새기고 있을 때.
“네, 지금 그 말을 하려고 했어요. 통일된 색감, 뭔가 새하얀 느낌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아요.”
레니는 순수한 감탄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제국의 황궁이 있는 곳이 어떤지 몰라도 역시나 대마법사 마이어를 기리는 헨돈마이어 특유의 색채와 감성은 다른 곳에 비해 특이하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어디부터 가볼까요? 레미디아 바실리카부터 구경하실래요? 이것……도 결국 뭐, 제국에 있는 레미디아 크리소스보다는 화려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교단의 총본산이니까요.”
진성은 헨돈마이어의 중심부를 향해 걸으며 말했다.
“네! 그게 더 좋아요! 크리소스는 너무 금칠만 되어 있어서 오히려 부담스러운데다 평판이 좋지 않아서-. 레미디아 바실리카는 기대되는데요! 4인의 대신관 중 몇 분도 계시려나!?”
가벼운 제안이었으나 레니는 진성의 예상보다 더욱 큰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존재하는 종교 설정.
인간을 악마화시켜 분열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들었던 사도 오즈마를 격퇴한 덕에 대륙 전역에 활발히 뿌리내린 게 바로 프리스트 교단이 아닌가.
“오, 4인의 대신관분들에게도 관심이 있으세요? 실례지만 레니 씨는 종교 관련으로는 관심이 없으실 줄 알았는데.”
레니의 예상 밖의 반응에 진성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레니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역시나 하나뿐이었다.
“그럼요! 검은 성전 당시 위장자들을 마구잡이로 때려죽인 그 솜씨! 압도적인 무력! 기사 학교에서 훈련받을 때도 그분들의 위명에 얼마나 짜릿짜릿했는데요!”
종교나 역사, 교리 등에 당연히 관심이 있을 리 없는 법.
레니가 관심있는 건 역시 제11사도, ‘혼돈의 오즈마’에 맞서 싸운 교단의 인물들의 기록과 그 후손밖에 없는 것이다.
“아……뭐, 뭐가 됐든! 가시죠!”
진성은 눈을 반짝이는 붉은 머리의 기사에게서 앞장서며 헨돈마이어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프리스트 교단의 총본산, 레미디아 바실리카 구경.
벨 마이어 공국의 여왕의 거처 겸 집무실인 시청 주변 투어.
그리고 뒷골목의 달빛 주점에서 슈시아 등과 만나 아간조와 반의 옛 이야기 등을 듣는다거나, 진성 자신의 스승격 인물이라 알려진 G.S.D와의 간단한 인사까지.
플레인:아라드로 빙의된 지 얼마 되진 않았으나 게임 던전앤파이터 유저의 ‘짬밥’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진성은 오후 내내 레니와 함께 데이트 아닌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벨 마이어 공국 남부의 곳곳을 다니던 두 사람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가 되어서야 다시금 헨돈마이어의 대로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빵 냄새…… 아까 주점에서 먹었던 맛있는 빵 냄새랑 똑같은 냄새가-.”
“흐흐, 맞아요. 달빛 주점에 우유랑 빵 종류를 만들어 납품하는 게 이 집이거든요. 하나 더 드시죠.”
두 사람이 향하는 곳에 있는 것은 작은 상점이었다.
작은 상점보다도 더 눈에 띠는 것은 그 상점에서 호객 행위까지 하는 소녀였다.
“안녕하세요~ 주머니가 제법 무거워 보이시네요! 어떤 물건을 원하시나요?! 뭐든지 있답니다!”
게임을 즐긴 유저라면 ‘칸나의 맛있는 수제빵’ 아이템과 ‘칸나의 맛있는 우유’ 아이템을 모를 리 없는, 잡화점의 칸나가 당돌하게 말하는 중이었다.
“여기 이분께는 빵과 우유 하나 주시고요. 저는-.”
진성은 레니가 먹을 간식을 주문한 후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었다.
그러곤 칸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것들을 준비해주실래요?”
비단 레니때문만이 아니다.
진성 혼자서라도 반드시 헨돈마이어에 들르려 했던 진정한 이유이자 목적은 이것이었으니까.
“헤에! 이런 물건을 찾으시는 분은 오랜만인데요! 네! 얼마든지요! 돈만 있으시다면!”
대량 주문에 신이 난 칸나가 물건을 찾으러 잡화점 내부를 뒤적거리는 잠시간의 고요.
빵과 우유를 우물거리던 레니는 진성을 바라보다 겨우 입을 떼었다.
“진성……씨는요.”
“네?”
“왜 저한테 그렇게……잘해주세요?”
부끄러움을 꾹 누른 질문에, 진성 또한 일순 당황해야했다.
* * *
“어…….”
진성의 눈동자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첫 번째 목표는 칸나에게서 살 물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헨돈마이어에는 한 번 왔어야 하죠.’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하물며 ‘레니 씨랑 같이 헨돈마이어에 다녀보면 유저들의 반응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테스트 겸 다녀본 겁니다.’라는 말은 필요도 없을 것이다.
헨돈마이어에 애당초 존재할 리 없는 NPC와 반나절을 같이 다니는 동안 몇몇의 유저들이 스쳐 지나간 적이 있으나 그들 모두 진성과 레니에 대해 반응하지 않았다.
‘만세를 해도유저 눈에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으니, 그결과를 가설로 삼아 테스트 해본 거고, 상당 부분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유저들에게 있어 현재 진성과 함께 다니는 레니는상호작용은커녕 눈에 보이지도 않는 NPC인데다, 따라서 인식이 불가능한 NPC와 진성 자신이 나눈 대화에 대해서 아무도 지적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같은 설명은?
그러한 합리적인,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빙의자로서 아직도 적응해야 하고 탐색해볼 만한 사안들이 남았기에 겸사겸사 움직인 것이다……같은 발언은 레니에게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진성은 말했다.
“그거야…… 레니 씨한테 좋은 추억이 남기를 바라니까요.”
그것 또한 진성의 진심이었으니까.
레니는 붉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곤 빠르게 깜빡거렸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에 더하여, 차츰 발갛게 달아오르는 볼까지.
진성의 발언을 여러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을 그녀는 결국 진성을 바라보다 눈을 피해야만 했다.
“너,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겨주셔서 좀 혼란스럽네요. 저만-. 저희만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지, 크흠, 생각해보니 단장님은 괜찮으실지 걱정도 되고-.”
“단장님은 괜찮을 거예요. 여기서 죽을 사람이 아니니까. 레니 씨가 좋아하는 분이잖아요?”
진성은 씨익, 미소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발그레 달아올랐던 레니의 양 볼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오게 만드는 말이었다.
“좋아? 하다뇨! 무슨 말씀을! 존경……이죠. 4인의 웨펀마스터니까! 기사단장! 소검의 반! 저, 저는 그저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기사로서! 네!?”
“어이고, 알았어요. 화를 내고 그러신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아휴.”
언성을 높였으나 진심을 다해 화를 낸 건 물론 아닐 터.
레니는 야속하다는 표정으로 진성을 흘끗거렸다.
그리고 진성은 억지로라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레니가 진성 자신에게 어떤 생각과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그 정도도 모를 진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완전한 호감……이성으로서의 감정,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 레니 씨가 말했듯 생명의 은인과 같은 어떤 감사함에서부터 비롯된……그런 감정이 조금 더 발전한 수준일 것 같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어떤 감정이냐, 따위가 아니다.
오늘 하루 진성 자신의 용무를 배제한다면 굳이 레니를 헨돈마이어까지 데려와 동행했던 진정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레니 씨.”
“왜요.”
붉은 머리의 기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토라진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녀를 보며 진성은 생각했다.
‘세뇌된 GBL교인들을 상대할 때는 자기 몸통보다 두터운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면서 말이지.’
엄청난 차이를 보이던 모습을 떠올리다 피식, 웃은 다음에야 진성은 말했다.
“화내지 말고요. 레니 씨는 혹시 뭐 하고 싶은 일 없어요? 소원이라고 해야 할까.”
“음?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요?”
“어……그냥? 요? 그런 상상 가끔 안 해보나요? 세상의 끝을 덜컥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내가 후회하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으려면 미리미리 해봤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거 있잖아요.”
다소 진지하거나 뜬금없을 수도 있는 말.
진성 자신이 꺼내고도 낯부끄러운 말.
“풉, 진성 씨를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뭔가 특이하신 분인 것 같기는 해요. 맹하다가도 뜬금없이 진지하고. 예상치도 못한 말을 툭툭 내뱉을 때도 있고. 아! 물론 좋은 의미……가 더 크다는 뜻이에요.”
레니 또한 그러한 진성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느새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진성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기에, 그녀는 말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글쎄요. 엄마랑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일까? 특별히 어떤 미련 같은 게 남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제 꿈이었던 아이언 울프 기사단에도 들어왔고……훌륭한 단장님과 부단장님 아래에서 훈련도 받았고. 모험가 녀석이 조금 꼴 보기 싫긴 하지만-. 그래도 진성 씨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있고.”
대놓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레니였으나 진성의 낯빛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레니는 예기치 못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성 씨? 갑자기 얼굴이 왜-.”
“아, 아뇨. 좋은 말씀에 감동 받아서-. 크흠, 그렇죠. 레니 씨는 오늘의 삶에 이미 후회가 없으신 분이니…… 그렇기 때문에 내일의 삶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거겠죠.”
“아핫, 뭐야. 또 진지하게.”
진성의 낯간지러운 소리에 레니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레니를 보며 진성은 매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게 설령 불가능한……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도.”
목숨을 바쳐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순간에라도.
“네? 뭐라고요?”
레니는 제대로 듣지 못해 진성에게 물었으나 그는 반복해주지 않았다.
이 또한 레니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돌아갈까요? 오늘의 용무는 끝났으니-. 레니 씨도 다시 기사단으로 돌아가야 할 테고-.”
“……돌아가자고요? 저는-.”
레니는 스을쩍 진성을 향해 다가왔다.
그 모습에 진성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순간이동 포션 남은 것을 꺼내어 레니의 손에 쥐었다.
“가, 가요! 가야 하니까! 응, 갑시다!”
역시나 이렇게나 저돌적인 성격에는 약한 진성이었다.
레니는 입술을 비쭉거렸으나 그녀라고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잠시 후, 두 사람은 웨스트코스트로 돌아가 각자의 자리로 복귀했다.
마법사 길드로 돌아간 진성과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임시 병영으로 돌아간 레니.
제각각의 생각으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잠이 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날이 밝았을 때는 더 이상 그러한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오전 내내 마법사 길드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며 입구를 살피고 있던 진성의 눈에 마침내 여자 아처 유저의 모습과 그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베히모스에서 내려왔군. 로터스의 알들이 잔뜩 발견되어서 증원 요청을 하기 위해 내려왔을 테고, 아마 지금 이 상황에서는…….’
퀘스트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뻔히 알 수 있는 노릇이었다.
이 시점에 모험가인 유저가 마법사 길드에 들르는 이유는 단 하나.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험가님. 이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거대한 아라드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사도 힐더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아이리스 포춘싱어를 만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