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2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29화(29/212)
029
진성은 아이리스와 유저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후후, 너무 심각해지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앞일을 내다보는 점술가. 단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필요한 분께 전해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아이리스의 말뜻은 물론 그녀가 주섬주섬 꺼내어 여자 아처 유저에게 무언가를 건네려는 모습까지, 진성은 굳이 보지 않아도 그 모든 게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팔찌겠지. 하이퍼 재머.’
아이리스가 꺼내어 유저에게 주는 아이템, 그것은 팔찌다.
실제로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캐릭터의 장비로 장착이 가능하며 해당 레벨대에 쓰기에는 제법 준수한 마법 방어력 등의 성능을 지닌 아이템.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아이템의 방어력이 아니다.
“하나밖에 만들지 못했으니, 꼭 모험가님께서 착용하고 계셔야 합니다. 제 성의를 봐서라도 약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이리스가 굳이 당부의 말까지 전하며 장착을 종용하는 장비.
그것은 그녀가 건넨 아이템 <하이퍼 재머>가 사도 로터스의 정신 조종을 막아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 기능을 하기는 한다. 힐더도 결국은 모든 사도를 죽이는 게 목표인 와중에, 어쨌든 연단된 칼날이 되어야 할 유저가 로터스에게 패배해서는 안 되니까.’
해당 아이템을 유저에게 넘기는 의미는 분명하다.
그것은 곧 모험가에게 시련을 이겨내는 힘을 주어 더욱 날카로운 칼날로 벼려지게끔 만들기 위함이며, 모험가로 하여금 <창신세기>의 예언대로 사도들을 처치해나가려는 목적을 이루겠다는 것.
현재 시점의 유저에게 있어 아이리스 포춘싱어가 건넨 <하이퍼 재머>는 분명한 선의의 결정체이자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실제로 사도 로터스의 착란에서부터 유저를 구해줄 수 있는 기능을 하니까.
‘다만……. 제길.’
그러나 그 효력이 ‘언제’ 발휘되는지에 대해, 이미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몇 번이고 클리어해본 진성으로서는 입술을 지그시 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그것에 대해 지적할 수도 없다.
끼어들 수도 없다. 그런 행동이야말로 <부집게의 사명>을 부여받은 진성 자신의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이니까.
결국 지금 당장 진성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카곤의 마가타를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는 여자 아처 유저, ‘모험가’를 따라 다시금 베히모스로 올라가는 수밖에.
진성은 재빨리 웨스트코스트 항구의 카곤에게로 달려갔다.
유저가 베히모스에서 내려올 때 이미 퀘스트를 받아 모든 스크립트가 진행되었기에, 벌써 아이언 울프 기사단 전원은 물론 공국의 기사 ‘로바토’까지 마가타에 탑승하는 중이었다.
유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진성은 거침없이 말했다.
“저도 가겠습니다. 마법사 길드의 조사 인원으로서.”
“진성 씨?”
“……타시오.”
레니와 하츠가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으나 유저가 베히모스에서 잠시 내려와야 할 정도의 비상상황인만큼 하츠가 진성의 탑승에 딴지를 걸 리는 없었다.
카곤의 마가타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올라 베히모스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사도 로터스를 상대하기 위한, 마지막 비행이 되리라.
* * *
레니는 다소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단장인 하츠 또한 모험가 유저가 가져왔던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증표’를 바라보며 얼굴을 굳힌 상태였다.
‘하츠가 마음에 안 들고 반의 꿍꿍이는 여전히 미심쩍지만……아이언 울프 기사단이 기사단으로서의 형태가 잘 잡혀있다는 건 확실하니까.’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증표, 비상 호출과도 같으며 호출된 장소에 단장이 없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쓸어버려라’라는 명령과도 같은 것.
진성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도 비슷했다.
‘설마 오염되어 있진 않겠지? 갔는데 진짜로 반이 없다거나 아간조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지게 될 터.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적어도 ‘지금 당장’ 그런 일을 겪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어느새 베히모스의 근처에 다다른 마가타의 위에서도, 유적지 한편에 서있는 여자 아처 유저와 반, 아간조, 이사도라 및 GBL교의 생존 신도들의 모습이 보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츠를 비롯한 아이언 울프 기사단 또한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단장이라는 작자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을까.
“으으, 로터스 님을 위하여…….”
“안 돼! 단장님이-.”
“그만둬, 단장. 멀쩡하군. 무슨 상황이지?”
질겁하는 레니의 곁에서 하츠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낄낄거리는 반의 곁에서 아간조와 이사도라는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신전 곳곳에서 로터스의 알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로터스의 외형과 꼭 닮은 작은 생명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고.
“……그렇군요. 생각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황이군요.”
“혈옥까지 돌파하는 것은 이 인원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사도 로터스를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문제겠군.”
공국의 기사, 로바토의 말에 아간조도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분명 제법 실력자들이라지만 그만큼 ‘사도’라는 존재의 강력함은 특별하다는 것.
“로터스의 정신 지배는 그가 있는 신전 중심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혈옥에서부턴 인원을 나눠야겠죠.”
“단장, GBL교의 신도들과 합류하는 일에 모두가 갈 필요는 없지 않나? 우리는 먼저 길을 뚫어두는 게 낫겠군.”
이사도라의 의견 제시에 이어 혈옥이 아니라 지금부터 인원을 분배하자는 하츠의 제안까지.
진성은 이 모든 대화를 제법 떨어진장소에서,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인원들 틈바구니에 섞인 채 듣는 중이었다.
유저의 모니터 화면에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소리는 들리는 거리라고 해야 할까.
‘……나중에 현실로 돌아가면 결투장 랭크는 쉽게 올리겠어. X축 거리로 화면 밖에 위치하게 만드는 건 이제 내가 제일 잘하지 않을까.’
이런 여유작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지금까지의 대화 흐름이 진성 자신의 기억과 같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저와 반, 아간조, 이사도라 그리고 로바토가 혈옥을 향해 이동하고, 하츠를 비롯한 아이언 울프 기사단이 로터스의 알과 세뇌된 GBL교 신도들을 물리치며 길을 뚫어놓기로 하는 거라면?
‘난 하츠 일행을 따라간다. 유저의 모니터에 걸릴 염려도 없고. 현시점에서 오염되었을 때 가장 큰일이 나는 건 로터스니까. 그쪽부터 확인하는 게 낫지.’
진성 자신이 누구와 함께,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계획 역시 처음부터 짜두었다.
유저와 떨어져 로터스와 관련된 사항을 조사하기 위한 계획임은 물론이었으며…….
“근데……혈옥이 어디 방향입니까? 그냥 마가타를 타고 가면-.”
레니가 지금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이사도라는 말했다.
“아, 말씀드리는 걸 잊었군요. 혈옥은…… 베히모스의 배 속에 있습니다.”
그러곤 앞장서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아간조와 로바토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지극히 생리적인 반응이리라.
“세상 구해보겠다고 고래 배 속도 다 들어가 보는군.”
걸어가는 반 역시 힘빠진 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에, 진성에게 어쩐지 미소가 지어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터.
혈옥으로 향하는 인원은 여자 아처 유저와 반, 아간조, 공국의 기사 로바토 그리고 GBL교의 이사도라였고 그들이 떠나기 무섭게 하츠를 비롯한 아이언 울프 기사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신전 중앙으로 향하는 길들을 파악하며 나타나는 모든 적을 물리친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고 분대별로 움직이도록!”
진성은 곧장 하츠에게 제안했다.
“하츠 씨, 레니 씨와 피오나, 덴 씨를 저에게 붙여주십시오.”
“……당신이 나설 필요는 없지. 마법사 길드의 일원으로 조사를 하러 온 거면서 뭐 하러 기사들을-.”
“그러니 하는 말이죠. 현재 베히모스 위에 있는 유적의 구조를, 사도 로터스가 있는 신전 중앙까지의 길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게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하츠는 이를 악물었으나 논리정연한 진성의 주장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성은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단원들 앞에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한 후 레니와 피오나, 덴에게 지시했다.
“가죠.”
진성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하츠에게 말한 것처럼 베히모스 위에 있는 유적의 구조를 다 알 리가 없음에도, 그가 자신 있는 이유라면 역시나 하나뿐이었다.
“저기, 진성……님이라고 했나요? 부단장님이 우선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따라오긴 했지만-. 베히모스의 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겁니까?”
“그래요, 공국의 마법사 길드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지만…… 베히모스는 오필리아 님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위에 이러한 GBL교의 존재 자체도 불분명할 정도로 조사가 안 된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레니의 동료 기사인 피오나와 덴이 제각각 의문을 갖고 말했다.
“네, 맞아요. 베히모스 위에 있는 유적의 곳곳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죠.”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 답은 비교적 뻔뻔했다.
피오나와 덴은 곧장 반발했다.
“뭐, 뭐라고요? 하츠 부단장님께 말씀드린 것과 다르잖아요!”
“그냥 레니와 같이 있고 싶어서 우리를 이용하는 건 아니겠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은 하지 맙시다, 덴. 레니 씨와 함께 다녀야 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신전 외곽만 돌아다녔다고 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레니와 달리 그들은 하늘성에서의 일로 인해 진성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일까.
진성은 잠시 멈춰선 후 약간의 귀찮음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얼마 전 함께 수색했던 신전 외곽이 저쪽이고 그곳에서부터 이어진 덴드로이드의 정글, GBL 여신전 그리고 로터스의 알들이 주로 발견된 제1척추 지역이 이쪽 방면. 혈옥으로 향한 사람들이 향한 것보다 조금 더 동쪽이지만 그 길을 따라 우리는 제2척추로 향할 겁니다. 사도 로터스가 위치한 장소가 그곳이니까.”
“……어?”
“아? 어떻게 그걸……그렇게 자세히…….”
당황한 피오나와 덴을 보며 진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우리가 할 일은 혈옥에서부터 제2척추로 가는 사이의 다른 적들을 제거하며 병기를 옮길 수 있는 길의 확보! 그리고 나는 당신들이 길을 확보하는 동안 마법사 길드 소속의 인원으로서 조사! 각자 할 일에 집중합시다. 똑바로.”
그러곤 몸을 돌려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뺑뺑이를 얼마나 돌았었는데. 무적의 알렉스라도 나오는 날에 그 고통을 비롯해서, 으으!’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지겹도록 봤던 ‘던전 지역:베히모스’라면 줄줄이 꿰고 있었으니까.
특히나 자주 돌았던 세부 던전들의 목록과 그 위치는 잊을 수가 없는 법이다.
‘게다가 던파는 던전의 구성으로도 스토리텔링을 하니까. 기억하기도 쉽지. 말 그대로 그 던전들을 수순대로 나아가게끔 설계되어 있으니…….’
베히모스의 ‘숨구멍’인 혈옥을 통해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간 유저 일행과 달리, 진성과 레니 그리고 피오나, 덴 등은 더욱 빠르게 제2척추로 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것!
“로터스 님에게 영광을…….”
“죽여라……로터스 님을 방해하는 것들아.”
바꿔 말하면, 베히모스에서 가장 높은 신전 너머에 있는, 사도 로터스의 정신 지배로 인해 가장 강력하게 세뇌당한 존재들.
GBL교 내에서도 일반 신도 이상의 힘을 지닌 자들을 먼저 상대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진성은 웃으며 빔 세이버의 빛으로 된 검날을 솟구쳐 올렸다.
“물론 나도 길을 트는 데에는 협조할 테니까-!”
<어퍼>와 <브리프 컷>, <스핀 어택>, <피어스 스트라이크>의 연속된 공격으로 다가오는 GBL교의 세뇌된 신도들 셋을 처리하며 진성은 그들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지, 진성 씨!”
너무나 급작스러운 쾌진격에 레니는 물론 피오나와 덴마저 잠시 어리둥절할 정도였으나, 진성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움직일 리는 없었다.
1차로 베히모스에 올랐을 적 획득했던 마법 봉인 아이템의 착용 및 레벨의 증가.
그리고…….
“<다크 익스플로젼>!”
푸화아아아───────ㄱ!
샤란에게 잔뜩 받아놓았던 무색 큐브 조각을 재료로 한 스킬, 일명 ‘무큐기’의 사용이 가능해졌으니까.
“끼에에엑-!” “흐아아앗!”
진성의 손끝에서부터 발생한 암흑 기운의 폭발은 세뇌된 신도들의 단말마를 이끌어내며 그들 모두를 나가떨어지게만든 것!
“잘해 보자고요, 여러분.”
진성은 피오나와 덴을 보며 말했다.
스킬을 사용하는 진성의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그저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진성은 씨익, 웃고는 다시 나아가려 했다.
‘음? 잠깐만.’
그런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세뇌된 GBL교 신도들의 사체, 더 정확히는 그 얼굴에서부터 덜컥, 떨어진 가면.
‘설마…….’
진성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NPC들의 눈치를 보다 그것을 슬쩍 집었다.
그리고 보았다.
보라색으로 인식되는 가면의 이름이자, 진성의 옛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이름.
‘……유니크 아이템?!’
진성은 놀랐다.
그것이 장착할 수 있는 장비 아이템이자 유니크 등급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거 단종된 거 아닌가!?’
진성의 기억으로는 완전히 단종되어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이템이라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