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3)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3화(3/212)
003
그것은 그저 콘셉트 때문만이 아니었다.
진성은 재빨리 영상용 목소리로 톤을 바꾸며 말했다.
“어라? 여러분들도 보셨나요? 지금 스킬이 아니라 평타-. 뭐지? 저렇게 긴 채팅을 치면서……. 공격을 하고 있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시스템상 모든 공격은 키보드로 이루어진다.
할당된 단축키를 사용한다거나 또는 방향키를 조합한 커맨드 입력을 통해 스킬을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패드가 가능하긴 한데 패드 유저는 적어. 아니, 패드가 더 이상하지. 패드로 조종하면서 키보드로 채팅을 입력하는……말이 안 되잖아! 그냥 키마 유저라고 보자면-. 그래, 스킬! 스킬은 선 입력을 기가 막히게 해냈다는 가정하에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치는데-.’
그러나 그는 평타로 공격하는 중이었다.
말하자면 키보드의 X키를 계속해서 연타하는 상황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채팅을 쳤다?
그것도 한두 단어도 아니고 저렇게 긴 문장을?
‘X를 다다다다다 누르는 상황에서 엔터를 치고 글을 입력하고 다시 엔터를 치고 X를 다다다다…… 가능한가?’
이론상으로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물리적으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결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타수가 1분에 1,000타쯤 되면 할 수 있나? 나도 타자 꽤 빠른 편인데도, 쩝.’
자신 없다는 생각이 피어날 무렵에서야 진성은 재빨리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앞으로 레이드 중 몇 번이고 보게 될 장면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당장 요격 거점의 보스를 잡아내는 데 성공한 이상, 진성 자신도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진성은 곧장 음성 채팅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고,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8번 정원에서 하강하면 되고요. 물약……도 준비할 필요가 없겠네요. 피격을 한 대도 안 당하셨으니.”] [후우,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으니까요. 지금까지 계속……그렇게 살아온 셈이라.] [“네에, 뭐…… 크흠, 그러면 어쨌든- 정원은 쌘비구름이냐 오메가 가디언이냐에 따라 차이가 날 텐데, 혹시 상대해 본 적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분리된 이시스를 잡으러 가기 위한 구조도 귀동냥으로 아는 수준인데……. 민망하군요.]진성은 할 말이 몇 가지 있었으나 그저 삼켜야만 했다.
‘5년 전이면 이시스 레이드 활발할 때 아닌가? 뭐, 템 수준을 보아하니 그때도 못 가봤을 수도 있겠다만.’
어차피 지금 그에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닐 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
따라서 진성은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이름은 오메가 가디언이 더 무서운 느낌인데 실제론 상대하기 더 편하죠. 쌘비구름이 아무래도…… 콘셉트부터가 테이베르스 행성에 비를 내리게끔 관장하는 능력자인데다 프레이에게 수호자로 임명된 존재거든요. 그런 면이 레이드에 반영이 되어가지고 아무래도 좀 더 상대하기 힘든 부분이-.”] [잘 아시는군요. 던전앤파이터의 스토리에 대해 다 아시나 보죠?]그가 화제를 돌려 물어보기 전까지.
진성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금 음성 채팅 버튼을 누르며 답했다.
[“전반적인 내용은 알죠. 스토리 재밌잖아요? 아, 그렇다고 대사 하나하나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좀 감동적인 에피소드들, 특히 재미있는 사건들은 상세하게도 알고 있긴 해요. <창신세기> 파트라거나, 아! 아시죠? 비명굴 사건 같은 거. 아니면 또 잭터-.”] [과연…… 그렇게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는 분이시니. 부럽군요. 저도 진작 그랬어야 했는데.]이번에도 유저는 진성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정확히는 ‘중얼거렸다’라고 해야 할까.
‘미쳤어, 중얼거리는 무슨! 던파에 중얼거리기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진성 자신에게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다’ 따위의 말을 하는 표현 때문일까.
꿀꺽.
진성은 어쩐지 도트로 이루어진 던전앤파이터 속 게임 캐릭터, 화면 너머의 유저가 아쉬움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무슨 멍청한 생각을-. 집중해라. 집중.’
어느덧 다음 몬스터와 조우할 때가 되었기에, 진성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영상용 멘트를 내뱉었다.
“크흠, 이 정도면 진짜……. 여러분, 지금 채팅 잘 보이시는지 모르겠네요. 사람이 콘셉트를 잡았으면 이 정도까지는 해줘야 하는 겁니다. 거의 뭐, 진성 아라드인! 모험가 그 자체! 오늘 큰 교훈 하나 얻어갑니다.”
무엇보다 진성 자신에게 느껴지는 진지함을 담을 수 없다면, 그저 가벼운 톤으로 처리하겠다는 것 또한 ‘던전앤파이터 영상 콘텐츠’가 직업이 된 사람답다고 해야 할까.
그가 이렇게까지 콘셉트를 유지하려 한다면 굳이 진성 자신이 더 자극할 필요도 없다는 확고한 결심 또한 섰다.
[“어쨌든, 이제 정원으로 돌입-. 아, 부유의 정원! 쌘비구름입니다! 차라리 잘됐어요, 최대한 빨리 녹이고 성지까지 한번 노려보죠.”] [좋습니다. 이번에도 무사히 살아남기를!]진성으로 하여금 또다시 위화감을 들게 만드는 발언과 함께, 둘은 던전에 들어섰다.
과거 프레이-이시스 레이드에서 ‘코인 도둑’이라는 별명을 가진 보스 몬스터가 그들의 앞에 있었다.
* * *
패턴들에 대해서는 이미 다 일러주었다.
해당 패턴이 발현될 때, 그것을 상기시켜주며 그때그때 적절한 방향 또는 이동형 스킬 사용 등의 타이밍을 알려주는 정도가 진성 자신이 해야 할 일.
진성은 기억하고 있던 모든 패턴의 정보 및 즉각 대처해야 할 사항에 대해 최선을 다해 알려주었고, 유저 또한 그런 진성의 지시를 철저하게 따랐다.
적어도 그러한 면에서 진성과 유저의 합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다만 진성에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일까.
공격을 욱여넣는 것이 말 그대로 피격되지 않을 수 있는 완벽한 시점뿐이었기 때문.
‘하다못해 내가 어그로라도 끌어주면 딜 로스가 좀 덜할까 싶지만서도…….’
진성은 입맛을 다시다 음성 채팅 버튼을 누르며 외쳤다.
[“구름 어그로는 제가 좀 끌어드려요? 딜에 집중하시려면 그게 나을-.”] [아뇨! 괜찮습니다! 그것 또한 외부에서의 개입이 된다면 상황이 어찌 될지 알 수 없-. 크읏!]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끼어들지 않을 테니까! 채팅 치지 마시고 최대한 딜 넣어주세요!”] [하아, 하아, 채팅은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패턴만 잘 살펴주십시오!]진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신경 쓰지 말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채팅이 빠르다지만 ‘하아, 하아’ 같은 것까지 일일이 치느니 그 시간에 딜을…… 쩝, 저런 와중에 스킬 연계나 기본 공격이 들어가고 있기는 하니 또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조금 더 집중해서 공격하면 효율적으로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서기에, 진성의 미간에는 주름이 진 셈이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피격은 진짜 안 당하네. 계속 그렇게 살아왔다는 표현이 거짓말은 아닌가 봐.’
진성 자신이 워낙 세세하게 패턴을 알려주었다지만 그것에 반응할 정도의 컨트롤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유저의 회피력은 말 그대로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응?’
이상한 조짐이 보인 것은 그때부터였다.
보스 몬스터 쌘비구름의 광폭화 패턴 중 하나, 굉천광룡.
흑룡과 백룡 두 마리를 소환하여 유저를 따라다니게 만들며, 만약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맞부딪칠 경우, 전역에 즉사 폭발 판정이 일어나게 되는 무자비한 공격 패턴.
[“아까 말씀드린 용 두 마리네요. 그냥 빙글빙글 피하면 되니까 아래로 가세요! 저는 위로 갑니다! 용끼리 부딪치지 않게 찢어놓으면 별일 없어요!”]줄곧 맵의 구석에 있던 진성은 위로 뛰어가며 말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에서 진성은 느꼈다.
[예?! 둘이 같이 하는 겁니까?]당황.
당황을 넘어선 일종의 패닉.
진성은 어쩐지 자신이 잘못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그, 그렇죠. 그래서 위, 아래로 돌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그 와중에도 유저는 빠르게 타이핑으로 진성에게 말했다.
[그 얘기를 왜 지금 합니까! 아니, 그러면-. 보스의 무작위 공격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마따끄진성님을 ‘인식하고 공격’하는 게 될…… 이잇-.]아니, 말하려 했다.
“어?”
진성은 보았다.
갑작스레 유저의 몸에 노란빛의 기둥이 번쩍거리는 모습이었다.
‘쌘비구름에 저런 패턴이 있었나? 디버프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은-.’
당황한 진성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눈에 보이는 채팅이었다.
[끄, 끄아아아아-!]정확히는 비명이었다.
흰색의 뇌룡에 닿은 유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방법이 채팅일 뿐.
‘이 상황에? 아무리 콘셉트에 빠졌다 한들 지금 저런 채팅을 칠 시간이-.’
미안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황당함에, 진성이 마른침을 삼킬 새도 없었다.
피격 시점에서 일시 경직과 바닥에 깔리는 지속 대미지 판정이 있음은 알고 있었고 그 또한 일러주었건만.
[“움직이세요! 윈드밀! 아니면 엑셀레이션 트리거! 바로!”]유저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제자리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까.
[“딜 안 해도 되니까 움직이시라고요! 그러다 죽습니다? 굳이 코인 낭비 할 필요 없어요!”]죽어도 되살아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성으로선 그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이것 또한 모두 ‘녹화 중’이거늘, 하물며 ‘교육 공대’로 유명한 자신에게 교육을 받은 유저가, 고작 프레이-이시스 레이드에서 사망해버리면 이 영상 자체도 쓸 수 없지 않은가!
[“님, 님!?”]진성은 황급히 그를 호출했다.
그는 말했다.
그러나 진성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아니었다.
[끄으, 크으…… 여기까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마지막까지 채팅을 입력하던 유저는 결국 사망해버리고 말았다.
단말마라기에는 다소 긴 채팅을 입력하며.
“아…….”
머릿속에 스치는 온갖 생각에 앞서, 진성은 우선 영상용 멘트를 내뱉으려 했다.
“아, 아쉽습니다. 콘셉트에 집착하신 건 좋은데 너무 채팅에 몰입하신 게 역시 발목을 잡았네요. 결국 사망-. 음?”
그러나 진성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마치 로그아웃해버린 것처럼 파티도 해제한 채, 그가 없어진 것이다.
“나가……셨네요. 갑자기. 콘셉트를 깨느니 그냥 파티를 깨버리는……. 으음. 아쉽습니다.”
좋은 영상 콘텐츠를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만이 아니었다.
그와 대화하다 진성은 진심으로 그가 프레이-이시스 레이드 솔로 플레이를 해내는 모습 또한 보고 싶었건만.
진정으로 도와보고 싶었건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인터뷰라도 한번 해보죠. 귓속말……은 일단 안 되는 거 보니, 로그아웃하신 건가?”
자신이 결국 별다른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삼키며 진성은 말했다.
“자, 우선 귓속말은 안 되니까! 닉네임으로 모험단 이름 확인하고 추후에 다시 한 번 연락드려서! 후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모험단 명칭이……. 어라?”
재빨리 던전을 나와 던전앤파이터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 [캐릭터 검색] 카테고리로 들어간 후 진성은 그의 닉네임을 입력했다.
이 모든 장면 또한 녹화되는 중이었다.
따라서 진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뭐죠?”
검색 결과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다시 게임 창으로 전환하여 조금 전까지 대화했던 닉네임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몇 번이나 입력해도 결과는 같았다.
<캐릭터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캐릭터 검색 조건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Lv. 11 이상 캐릭터만 검색할 수 있습니다.
전체 서버, 레벨 11 이상이면 포함되는 공식 홈페이지의 시스템상에서 그는 검색되지 않았다.
이것이 말하는 의미는 간단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시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