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3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35화(3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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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사도 로터스는 분명 진성 자신의 생각과 기억을 어느 정도 읽어냈다.
그러나 그가 이해한 것은 평행세계와 관련된 일부일 뿐이었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또 다른 차원에 로터스 자신이 사도로 있으며 그곳에서도 힐더에 의해 전이되어 분투 중이라는 사실을 이해했을 뿐이다.
거기까지여야 한다.
‘하지만 조금 전 내가 본 환영은 그런 개념이 아니었어.’
그러나 레니가 사망하기 직전 진성 자신이 보았던, ‘해당 유저가 미래에 진행할 퀘스트’와 그 퀘스트에 동행하는 NPC들의 환영을 보았다.
그것은 사도 로터스와의 정보 거래로 내준 게 아니었으며, 진성 자신이 떠올리지도 않고 있었던 기억이기도 했다.
‘환영을 보여주는 능력 자체는 로터스도 할 수 있지만…… ‘아무 환영’이나 내보일 수는 없는 게 정상이지.’
가장 괴로웠던 기억 또는 가장 공포스러웠던 장면 등을 떠올리게 만들어 인간을 무력화시키는 건 로터스의 특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환각 상태에서 온갖 행동을 유인, 유도, 유발함으로써 GBL교의 신도들이 서로를 죽이게 만들고, 나아가 그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여 로터스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볼 때, 진성이 보았던 모습, ‘여자 아처 유저가 미래에 진행할 퀘스트’와 ‘그 퀘스트에 등장하는 NPC’들의 모습은 사도 로터스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과는 분명히 그 방향성이 다른 것!
‘그럼에도 환영이 생겼다는 의미는……. 로터스는 오염됐다는 거다. 지금 이 상황 또한 그 증거고.’
진성 자신에게 그러한 환영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기반하여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기까지.
원래대로라면 이미 사망 판정을 받아 그 육신이 축 늘어져 있어야만 하는 로터스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의 ‘오염 상태’를 보여주는 셈이었다.
즉, 진성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염된’ 로터스가 유저와 반, 아간조에게 해코지하지 못하도록.
“으하하핫, 그까짓 거래 한 번 했다고 하여 나와 대등한 위치라 생각하는가! 인간이란 역시 이토록이나 아둔한 것인가!”
로터스는 웃으며 그 촉수를 날카롭게 세웠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로터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성이 걱정하는 것은 하나였다.
혹시나 저 목소리에 유저를 비롯한 NPC들이 환각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
로터스가 말하는 강력함 따위는 진성에게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웃기고 있네. 이미 모험가랑 반, 아간조한테 탈탈 털려서 힘도 얼마 안 남은 주제에. 내가 모를 줄 알아?”
강력했던 것도 사실이겠으나 현시점에서 결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 그대로라면 현시점에서 로터스의 육신은 사망했어야 한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정신 감응의 시도에는 성공하여 유저와 반, 아간조 등과 정신 세계에서 본 모습을 드러내며 싸우긴 하나, 어찌 되었든 육체는 이미 끝장난 상태다.
즉, 원래 죽어 마땅한 상태까지 갔어야 할 로터스이므로, ‘오염’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지금은 진성 자신에게도 할 만하다는 뜻!
“오만불손하구나, 놈!”
“오만한 게 누군데!”
다만, 할 만하다는 계산과 별개로 플레인:아라드에 빙의된 진성에게는 유저, 즉, ‘캐릭터 모험가’에게 주어지는 강력한 어드밴티지가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라고 해야 할까.
쉬이이이이익-!
다시금 로터스의 촉수 한 줄기가 강력하게 쏘아졌다.
진성은 자신의 몸통 굵기만 한 로터스의 촉수를 쳐내며 강력한 쇳소리를 일게했다.
“큿.”
약화되었음에도 팔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공격이었으나 ‘사도’의 공격을 두 번이나 완벽하게 막아냈다는 점에서 진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정신 감응계 능력을 지닌 사도 중 가장 뛰어나다 자부했던 로터스의 장기가 발휘되었다.
“……그런가, 눈앞의 인간들을 지키려는 것인가!? 감히 나, 한 번에 수천의 무기를 쥘 수 있는 자에게서 누군가를 지키려 드는가!”
진성이 그저 로터스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유저와 아간조 그리고 반을 지키며 싸우려는 것을 읽었다는 의미다.
진성은 재빨리 아닌 척 연기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아닌데? 내가 왜 그런-…….어…….”
“말 따위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아둔한 인간.”
날카로웠던 촉수 하나가 잠시 휘청거리는 사이,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던 또 다른 촉수들이 스멀스멀 빳빳하게 일어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개의 촉수에 몰았던 힘을 여러 개의 촉수로 나누고 있음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건 좀…… 치사한데.”
그리고 진성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로 최악의 공격 패턴에 처한 셈이었다.
“으하하핫, 사도조차 건들지 못하는, 천해를 지배했던 힘을 보여주마!”
────, ────, ────!
수 개의 촉수들이 각자의 목표를 향해 쇄도했다.
“빌어먹을, <다크 크로스>-.”
진성은 이를 악문 채 움직여야만 했다.
* * *
멍하니 주저앉은 유저와 반, 아간조의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철과 철이 마주치는 소리 또한 끊임없이 울리는 중이었다.
진성이 세 사람을 향해 쏘아지는 촉수를 벌써 몇 번이고 막아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네가 원하는 바는 이룰 수 없다!”
“지금까지 잘 막아내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하냐?”
진성은 로터스의 말과 촉수를 동시에 받아치며 외쳤으나, 그의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다.
첫 번째 약점이라면 역시나 진성의 스킬 구조였다.
‘젠장, 이미 셋팅된 스킬 콤보를 바로 바꿀 수도 없고! 그나마 25레벨이 넘어서 여러 콤보를 쌓아놓긴 했다지만-.’
진성에게 아쉬운 점은 그것이었다.
스킬 중 이동하며 발동이 되는 것들이 있으며, 지금 진성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의 조합.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진 유저, 아간조, 반 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움직이며 촉수를 상대해야 했고, 아직 적정 레벨에도 도달하지 못한 진성의 공격력으로는 스킬을 활용한 공격력 100%, 150% 추가 옵션 등이 있어야만 받아낼 수 있기 때문!
‘이동기가 없는 스킬이 있다는 게 문제다. 그 스킬을 ‘반드시 쓰고 나야만’ 이동기가 있는 그 다음 콤보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다크나이트의 고질적인 문제를 설마 이런 식으로 겪게 될 줄이야!’
지금 반을 향해 쇄도하는 로터스의 촉수가 있다.
진성은 조금 전 아간조에게 쏘아진 촉수를 막 방어해낸 참이었다.
위치라면 가장 좌측에 반, 중간에 유저, 우측에 아간조.
유저를 지나쳐 아간조로부터 제일 멀리 떨어진 반에게 다가가는 촉수를 막아내고, 다시 유저에게 쏘아지는 시간차 촉수를 막아내야만 한다.
반에게 가장 빠르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이동 거리를 내는 동시에 공격이 발동되는 스킬을 써야 한다. 현시점에서 가장 적합한 것은 역시나 <브리프 컷>.
그러나 <브리프 컷>은 진성이 셋팅한 제1콤보의 ‘두 번째’ 스킬인 것!
“<어퍼>-.”
결국 반에게 쏘아지는 촉수를 쳐내기 위해, 진성은 아간조의 앞에서 의미도 없는 <어퍼>스킬을 사용해 빔 세이버로 허공을 가른 다음에야.
“-<브리프 컷>!”
카아아아앙-!
가까스로 반의 위치까지 움직이며 촉수를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스핀 어택>-.”
다음으로 셋팅한 스킬 또한 약간의 이동 거리를 지니고 있으므로 반에서부터 유저까지의 거리까지는 닿을 수 있다.
문제는 또 다음이다. 유저를 막아내자마자 다시금 아간조의 목덜미를 꿰뚫으려는 촉수 하나.
“-<피어스 스트라이크>!”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진성은 모든 콤보에 아주 약간이나마 이동할 수 있는 스킬들을 배분해놨다는 점이라고 해야 할까.
<스핀 어택>처럼 조금이나마 이동하는 깊은 찌르기 기술로 촉수의 옆면을 겨우 쳐내었건만 한숨 돌릴 새도 없었다.
다음 스킬은 무색 큐브 조각을 활용한 <다크 익스플로젼>이었으며, 이것은 ‘완벽하게 제자리에서만’ 발동되는 스킬이었으니까.
결국 진성이 선택한 것은 ‘스킬 콤보의 중단’이었다.
“<베인 슬래쉬>!”
또 다른 스킬 콤보를 발동시키는 것.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은 페널티가 존재한다.
‘쿨타임이 곧장 회복되지 않아. 잠시 동안 스킬 사용 유예 상태가 된 다음에서야 쿨타임이 돌기 시작하니까-.’
시간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스킬 사용 유예 시간이 지난 이후 쿨타임이 회복되므로, 모든 스킬을 다 써버린 직후 쿨타임이 회복되는 것보다 ‘몇 초 남짓’이나마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으하하하핫! 재미있구나! 발악하라! 움직여라! 나는 정신을 조종하지 않아도 네 육체를 조종할 수 있는 사도다!”
로터스의 자신만만한 도발에 대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성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떤 스킬을, 몇 초의 쿨타임 이후 사용할 수 있나.
언제부터 쿨타임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그 다음 콤보에 ‘이동기’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으며, 해당 ‘이동기’를 활용하여 어느 정도의 거리를 움직일 수 있는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모든 계산을 하는 와중에도 진성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환영 속에서 유저가 로터스를 처치하게 될 거야. 그럼 깨어나게 된다. 유저, 반, 아간조 모두! 만약 그랬다간 나는-.’
끝이다.
분명 죽었어야 정상이건만 아직도 힘을 갖고 움직이는 로터스와, 자신의 시나리오 퀘스트에 뜬금없이 난입하여 ‘탈춤’을 추고 있는 다크나이트 유저를 보고 여자 아처 유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막는 것에 급급하여 로터스 본체에게 다가갈 수 없다.
이렇게 시간만 끌다간 ‘오염된 퀘스트’를 유저가 발견하게 된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에서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고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해봐야 해. 여기서.’
진성은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날아오는 촉수 세 개를 사실상 같은 타이밍으로 처리한 후 곧장 로터스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뿐이니까.
“후우우우…….”
진성은 잠시 발을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로터스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내었다.
“마침내 그 무력한 발악을 포기한 것인가! 너와 함께 칼날은 이곳에서 잠길지니!”
“그럴 순 없지. 그래서도 안 되고.”
진성은 답했다.
“그것은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힘 없는 인간 따위에게 결정권은 없다!”
격앙된 로터스의 촉수들은 더욱 빠르게 쇄도했다.
쐐에에에엑, 공기를 가르는 촉수들의 움직임을 진성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순간의 대화.
그 잠깐 사이의 여유가 만들어 낸 공격 패턴의 변화.
아간조 앞에 있는 진성을 향해 가장 먼저, 중간에 있는 유저에게 두 번째 그리고 반에게 마지막으로 닿을 시간차 공격.
대각선으로 질러나아간다면 한 번에 모든 공격에 대처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세 개의 촉수를 전부 검으로 쳐내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상으로도 마지막 기회라고 한다면-.’
다만, 그것을 전부 상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은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해야만 하기에.
진성은 검을 휘둘렀다.
“<다크 크로스>.”
열십자의 검기가 쏘아져나갔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으하하핫! 모든 것을 지킬 수 없으니 하나라도 지키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결국 포기와 다름없으니-.”
로터스의 말을 끊으며 진성은 뛰어들었다.
“<홉 스매쉬>!”
전방으로 도약하며 무기로 바닥을 내려쳐 충격을 발생시키는 기술.
특별할 것 없는 스킬이었다.
<다크 크로스>에 이은 <홉 스매쉬> 콤보는 지금껏 하늘성에서부터 몇 번이고 써왔던 것.
다만, 지금까지와는 그 용법이 다를 뿐이었다.
진성이 노린 것은 가장 멀리 있는, 즉, 반을 향해 쏘아지는 촉수였다.
그렇다면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가장 먼저 대상에게, 아간조에게 닿을 촉수는?
반을 향해 쏘아지는 촉수를 향해 뛰어든다면 중간에 있는 유저에게 쇄도하는 촉수는?
“-너의 패배다, 인간 아닌 인간-.”
로터스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카앙────, 카앙────!
그의 목소리보다 더 큰 쇳소리가 있었으니까.
로터스의 촉수는 모두 ‘진성의 육체’에 부딪치며 움찔움찔 회수되어야만 했다.
카아아아아앙……!
또한 마지막 촉수는 진성이 바닥을 향해 내리찍는 검에 의해 튕겨져나가는 중이었다.
“-어떻……무슨-?”
로터스는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첫 번째와 두 번째 촉수는 그의 몸에 닿았다.
그러나 어째서 그 모든 공격을 무시하고 자신의 마지막 촉수에 공격을 가할 수 있었는가.
“이게 <붕산격>이랑 똑같은 거거든.”
그리고 진성은 웃고 있었다.
두려움이 앞서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던 스킬의 용법 중 하나.
특정 스킬은 사용 순간 피격 당했을 때, 그 판정은 존재하나 그것을 완전히 무효로 만드는, 게임 던전앤파이터만의 고유 시스템이 있다.
맞으면서 버티는 ‘슈퍼 아머’가 아니다.
“짤무적. 모르지?”
말 그대로 ‘일시 무적 판정’, 유저들이 소위 ‘짤무적’이라 부르는 스킬 판정, 그것이 진성 자신에게도 유효함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진성은 곧장 검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었다.
“아까 뭐라고? 힘없으면 결정권, 뭐?”
“자, 잠깐-.”
로터스가 갇힌 제단과 진성의 거리는 이제 코앞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그리고-.”
회수했던 촉수를 다시금 뻗을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진성은 말했다.
“-레니의 복수다, <다크 슬래쉬>!”
───────────……!!!!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암속성의 베기가 로터스의 촉수와 그 본체를 모두 갈랐다.
진성의 몸 위로 반투명하게 걸쳐진 옷이 펄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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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옵션
다크나이트
:다크 슬래쉬 스킬 Lv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