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37)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37화(37/212)
037
샤란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기술이 다 있어? 눈이 여섯 개나 뚫려 불편할 줄 알았더니…… 오히려 가면 안에 장치가 되어 있어서 더 밖을 보기 편하게 만든 시스템이었군요?! 하긴, 진리를 탐구한다는 자들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가면을 쓸 리는 없었겠지, 응, 응.”
진성에 건넨 을 확인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합리적인데다 실용적인, 그러면서도 처음 보는 물건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숨길 수 없는 노릇일 테니까.
“진성 씨가 마음대로 우리 길드와 내 이름을 내걸며 행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사실 반신반의했는데…….”
진성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때도 샤란은 그를 믿었으나 진성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까지 다 용인한 건 아니었다.
하물며 마법사 길드 소속으로 조사의 임무를 부여받았다며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어떠했는지.
그런 식의 협업이 이루어지려면, 벨 마이어 공국 여왕의 지시 또는 협조 요청이 있어야만한다.
결국 진성은 몇 종류나 되는 공문서를 함부로 위조한셈이니, 샤란으로서도 반쯤의 불안과 반쯤의 불만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크흠, 진성 씨!”
“네, 네?”
“사람이 말을 하면 무슨 반응이라도 있어야죠!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할 줄 알고.”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요?”
“그러니까!”
샤란은 자신의 책상을 퉁, 치며 진성에게 상체를 내밀었다.
그러곤 제안했다.
“이제 공식적으로…… 우리 마법사 길드 소속이 되어주셨으면 한다고요. 마법사 길드장의 직속 요인으로 초빙하고 싶습니다.”
확신에 가득찬 그녀의 눈빛.
마법사 길드장이자 마법학교장으로서 샤란이 진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발언이었다.
“초빙…… 그러면 뭐가 좋은데요?”
“뭐, 뭐가 좋냐니! 구체적으로는 음, 진성 씨가 앞으로 어떤 일에 개입함에 있어서-. 진성 씨 임의의 판단으로 사전 집행, 후 보고! 그렇게만 해주시면 된다고요. 만약 진성 씨가 동의한다면 공식적인 명칭에 더해서, 마법사 길드 내 진성 씨의 사무실……겸 아마도 숙소가 되겠지만, 어쨌든 공간 제공! 그리고 마법사 길드장인 제 명의의 인장도 드리겠어요. 혹여라도 누군가 의심할 수 없게끔. 어때요?”
그것은 말 그대로 완벽한 신뢰.
적어도 진성의 능력에 대해서만큼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 없이 믿는다는 뜻이 아닌가!
진성의 눈빛이 번뜩인 것도 이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무엇보다 진성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마법사 길드 소속의 공인 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터.
거기에 진성의 판단을 믿고, 굳이 사전 결재 따위 없이 우선 움직이고 나중에 보고해달라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조건인지.
진성의 답변이 끝나자마자 샤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그러면 진성 씨의 사무실로 올라가볼까요?”
“흐흐…… 제가 받아들일 것까지 벌써 다 예상하고 계셨다는 뜻이죠?”
당연하다는 듯 미리 준비했다는 그 발언에 진성은 결국 웃음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사 길드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좋은 제안을, 당신 같은 사람이, 거절할 리가 없잖아요?”
앞서는 샤란의 뒤를 쫓으며 진성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그리고 당도한 작은 방에는 이미 문패까지 걸려있었다.
진성은 진작 알아야만 했다. 샤란은 분명 유능하다. 똑똑하다.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이게 뭐예요?”
그러나 너무 이성적이기만 하면 분명 센스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 이름은 제가 지어봤어요. 진성 씨가 보통 개입했던 현장들은 전부 이상현상과 관련된 거였고…… 그 부분에 대해 제 사전 결재 없이 곧장, 모든 부문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비상대책위원이라고 명칭을-.”
“그걸 물은 게 아니라! 이름이-.”
“좋죠?”
샤란은 콧대를 높이며 되물었다.
그 부분에서 결국 진성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좋기는! 이상하잖아요! 이게 뭐야! 이상 현상 비상, 무슨 랩하는 것도 아니고!”
“랩이요? 랩이 뭔지-.”
“그리고 비대위? 무슨 부동산? 어디 재개발 현장 같은 곳에서 쓰는 말이잖아요!”
“무, 무슨 말이에요, 지금!? 내가 이거 짓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자, 앞으로 진성 씨는 이상현상 비대위로서 활동해주시게 될 거고, 이미 인장도 다 파놨어요. 들어가죠.”
“아, 싫어요! 이름 바꿔줘요!”
어처구니가 없는 명칭 앞에서 실랑이를 벌여보지만 진성이 이길 리는 없었다.
잠시 후, 결국 비대위가 된 진성과 샤란은 진성의 작은 공간 안에서 다시 마주앉아야만 했다.
* * *
“하아아…….”
진성이 한숨을 내쉬자 샤란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이름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렇다고 한숨까지-.”
“아아, 아뇨, 이름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잠깐 생각하다 그런 겁니다.”
당연히 별로 중요치도 않은 비대위 명칭 때문이 아니었다.
샤란은 잠시 눈초리를 가늘게 했으나 그뿐이었다.
“흐음,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 벌써 생각해 놓은 거예요?”
그녀가 말한 것처럼 ‘비상대책위원’ 자리에 앉힌 이상, 그녀는 진성을 진심으로 믿을 테니까.
그녀의 물음에 진성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베히모스가 끝이 아니야. 힐더가 전이시킨 사도는 로터스만이 아니니까.’
모두가 베히모스에 눈길이 팔려있는 사이, 힐더는 또 하나의 수를 썼다.
그것은 또 다른 사도를 아라드로 전이시키는 것.
제6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
문제는 디레지에의 전이가 국가와 국가간의 긴장을 심화시킨다는 점이었다.
‘흑요정들의 왕국인 펜네스 왕국에 전염병이 돌고…… 그걸 인간들의 계략으로 착각한 흑요정들은 벨 마이어 공국과 전쟁을 준비 중인 시점이다. 실제로는 디레지에-. 아니, 디레지에의 ‘환영’이 일으킨 일이지만.’
전염병을 퍼뜨리는, 존재만으로도 피해를 끼치는 질병과 병균의 온상.
그 ‘환영’만으로 펜네스 왕국이 발칵 뒤집어질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사도.
그뿐만이 아니다.
‘거기다 스피라찌도 있어.’
펜네스 왕국에 위치한 알프라이라 산山, 깊숙한 곳에 봉인되었던 존재.
사룡 스피라찌가 마침내 봉인을 깨고 깨어났다는 것.
죽음을 초월하여 죽지 않는 죽음의 용으로 인해 시체들은 되살아나고 대혼란이 일어난다.
‘결국 내가 준비해야 할 방향 자체는 명확한 셈이지. 셈인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알고 있다.
다만, 진성이 힘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코앞에 닥친 할 일’이 아니라, 말 그대로 더 멀리 있는 ‘앞’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도 로터스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점.
“후우우우……”
대답도 없이 한숨을 내쉬는 진성을 보며 샤란은 말했다.
“흐음, 베히모스도 다시 안전해진데다-. GBL교의 재건을 위해 오필리아 씨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이제 안정이 되찾아 온 거라 생각했건만. 어째 진성 씨는 하나도 안 즐거워 보이는- 아, 미안해요.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샤란은 진성의 생각을 추측하려다 문득 사과했다.
이미 모든 소식을 들은 그녀 또한 레니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일까.
진성은 괜찮다는 듯, 샤란을 향해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진성이 풀죽은 이유가 레니의 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일까.
샤란은 진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었다.
“그래도 기운 내요. 복수는 성공했다면서요? 사도 로터스가 강력했다지만 모험가와 반, 아간조님이 제대로 처치했으니-.”
그리고 그 말에 진성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물었다.
“뭐라고요?”
“-어? 네? 뭐, 뭐가요?”
“지금 뭐라고 하셨죠, 샤란 님?”
“제가……뭐라고 했나요?”
샤란의 커다란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헤맸다.
혹여 말실수를 했을까 싶어 조심스러운 그녀의 앞에서 진성은 생각했다.
‘……그래, 생각해보니까-. 로터스에게 분명 ‘마지막 일격’을 가한 건 나다.’
그것은 사도 로터스를 진성 자신이 처치해버린 일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진성 자신이 <부집게>가 아니라 <칼날>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점.
그저 이 세계에 빙의된 도우미의 성격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인공인 모험가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점.
‘나는 그렇게 생각해서 로터스를 내가 죽였다고 여기고 있었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러나 지금, 진성은 샤란의 말에서 무언가를 깨닫고야 말았다.
진성 자신이 분명 로터스의 숨통을 끊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로터스를 ‘죽였다’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막타만 친 거잖아!? 그래, 그럼 내가 죽였다고만은 할 수 없지! 바칼 레이드에서도 [전장의 에이스]를 꼽을 때 막타를 기준으로 꼽지 않아. 던파에서 중요한 건-.’
누가 가장 많은 누적 피해를 입혔는가, 가 아닐까?!
‘그치! 애당초 반이랑 아간조는?! 유저가 혼자 죽인 게 아냐! 로터스 퀘스트는 아마 시작하자마자 아간조가 스킬 쓰고 막 난리 날텐데!’
반 또는 아간조뿐만이 아니다.
유저가 모험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겪는 수많은 시련들, 그때마다 모험가를 돕는 수많은 NPC들.
그 중 한 사람 정도로만 인식이 되는 방식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진성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개입은 지금 당장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어느 정도 선까지의 직접적 개입이 괜찮다는 결론까지도 내릴 수 있다.
“샤란 님!”
“아잇,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진성의 눈치를 보던 샤란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 진성은 이미 웃으며 그녀가 들고 있는 GBL교 대사제의 가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가면, 마음에 들죠? 비대위로서 요청합니다. 마법사 길드에서 인수하는 조건으로 값 좀 많이 쳐주세요.”
“……다짜고짜 돈 얘기?”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샤란이 그 조건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템에 대한 흥미만이 아니다.
“헤헤, 그래도 정보는 항상 드리잖아요. 아참, 혹시 전염병에 대해 들은 거 있으신가요?”
“참, 나. 돈에 이어 정보까지 달라고- 비대위가 되자마자 우리 길드를 벗겨먹으려는 거예요?”
샤란은 코웃음을 치고 있었으나 진성은 당당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렇다기보다~ 전염병 치료에는 연금술만이 아니라 마법의 힘도 필요할 테니까 그런 건데. 로톤 선생님한테 모든 공을 빼앗길 수는 없잖아요.”
“갑자기 로톤 선생님은 왜-……. 아니, 잠깐. 설마.”
샤란의 눈빛이 돌연 진지해졌다.
진성도 마찬가지였다.
“전염병과 관련된 연구부터 당장 시작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샤란 님을 위해서라도.”
조금 전까지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진성은 말했다.
샤란의 청록빛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 시점에서 진성 또한 확신할 수 있었다.
“발병지는요? 아니, 나를 위해서라고 한 말이라면……. 펜네스 왕국. 내 고향.”
아라드에 살아가기 위해 마법사 길드장을 조력자로 둔 게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인지.
순식간에 그 합리적인 추론으로 정답에 도달한 샤란은, 진성의 사무실에 있던 금고를 향해 휙, 손을 뻗었다.
“비밀번호 바꾸는 법은 나중에 알려드리죠. 이 골드는 나중에 드리려고 했던 건데, 지금 바로 드릴 게요.”
“그러시면 고맙죠. 저도 따로 준비할 게 있어서.”
그녀가 금고에서 꺼내어 진성에게 준 돈은 무려 십만 골드.
당장 진성에게는 이것만으로도 비교적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금액이건만-.
“좋아요. 그리고 이번 일까지도 무사히 마친다면……. 그때는 비대위의 권한 정도가 아니라, 물질적인 면에서도 무제한의 지원을 약속드리죠.”
샤란은 그 이후의 약속까지 내거는 게 아닌가!
흑요정들의 나라인 펜네스 왕국 출신으로서, 역시 자신의 고향에 대한 위기를 먼저 예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막아내는 일에는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진성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마법사 길드장이자 마법학교의 교장과 약속을 나눈 후에야 진성은 그곳을 빠져나오며 텔레포트 포션을 꺼내어 들었다.
그러곤 계획대로 움직이려다 문득, 그는 샤란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참, 샤란 님?”
“네?”
마법사 길드의 무제한, 무차별적 지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진성은 물었다.
“무제한의 지원이면…… 요 옆에 있는 단진 씨도 포함인가요?”
“……네?”
“그러고 보니 아쉽네. 예전이었으면 항아리도 깔 수 있었을 텐데.”
당황한 샤란이 고개를 젓기도 전 진성은 다시금 물었다.
“아! 아니면 요 옆에 힐스 님한테서 ‘아바타’를 살 수 있게 해준다거나?”
단진과 힐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강렬한 인상의 NPC들.
샤란은 진성의 의도를 읽었다는 듯 당황했다.
“그, 그게, 힐스 님이라면 저도 잘 알지만 거기서 허리띠 같은 거 하나를 이백, 삼백만 골드 이상을 받고 파는 이상한 가게라-.”
“으흐흐, 그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럼 기대할게요!”
“-진성 씨!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
진성은 텔레포트 포션을 들이켰다.
잠시 옅은 빛이 번쩍였을 때, 이미 마법사 길드에서 그의 모습은 사라진 다음이었다.
“……누가 길드장인지, 원…….”
샤란이 중얼거렸다.
* * *
잠시 후 진성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녹음이 우거진 숲의 어딘가였다.
까아앙, 까아앙, 망치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는 곳.
“라이너스 님!”
진성이 찾은 사람은 엘븐 가드의 대장장이 NPC, 라이너스였다.
그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수중에 있는 건 10만 골드, 우선 라이너스를 통해 이걸 최소 열 배로 불린다.’
마법사 길드의 지원도 좋지만 플레인:아라드의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성은 우선 많은 골드를 비축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