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4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41화(41/212)
041
사도 로터스의 형상을 한 크리쳐.
그러나 ‘쁘띠’라는 이름에 걸맞게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크기.
무엇보다 문어처럼 촉수가 여러 개인 로터스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유저들이 베히모스에서 마주했을 때의, GBL교 신전 건물 틈새에 낀 채 눈과 혓바닥만 튀어나와있던 모습을 귀엽게 구현한 외모다.
심지어 녀석이 끼어있던 신전 건물까지 세트로 딸려있다.
“꼬륵.”
쁘띠 로터스는 물속에서 숨이 넘어가는 기묘한 소리를 내며 파닥거렸다.
푸르르륵, 소리를 내며 파닥이는 것이 날개가 아니라 ‘촉수’라는 점에서 진성이 잠시 흠칫거릴 정도였다.
도대체 이 크리쳐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사도였으나 사도가 아니다. 로터스이되 로터스가 아니다.
“크리쳐. 쁘띠 로터스.“
“ㅋㅋㅋ댕커여움 ㅋㅋ”
순수라수라는 진성보다 한 걸음 뒤에 떨어진 <쁘띠 로터스(갈퀴)>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웃음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는 분명 진심이었다.
“귀엽기는 한데……왜 이걸…….”
진성 자신도 크리쳐를 갖고 싶어 하긴 했다.
무기 형상을 판매할 때 목표로 했던 금액은 대략 800만 골드에서 1,000만 골드.
해당 금액대에 무사히 매각을 완료하면 진성 역시 크리쳐를 사려고 했었다.
“ㅇㅇ? 귀엽잖아요 ㅋㅋ 어차피 시나리오 밀때 종결급이 필요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쵸, 종결급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준종결급이라도 있으면…….”
현존하는 최고 효과의 크리쳐는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 아래 급은 구입할 수 있었다.
모든 스탯 포인트를 적어도 100씩 상승시켜주고, 공격속도와 이동속도, 캐스트 속도를 2%씩 올려주고 속성 강화를 10 올려주는데다 물리, 마법 크리티컬 히트를 3% 상승시켜주는 급의 크리쳐는 살 수 있었다.
거기다 준종결급 크리쳐만 구할 수 있어도 스킬을 올려준다.
당장 진성이 배우지 못한 스킬일지언정 언젠가 레벨을 올려 스킬을 배우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대미지 상승과 쿨타임 감소 등의 추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모든 아이템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내주는 크리쳐를 가질 수 있었는데.’
진성이 사려고 했던 건 바로 그런 크리쳐다.
“아 준종결급은 살 필요 없음 ㅋㅋ 어차피 종결로 바꿔야되는데 돈만 이중으로 나가거든요. 진성님처럼 던파 꾸준히 우직하게 하실 분들은 노필요”
이렇게 촉수로 날개 소리 내는 괴물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묘사된 GBL교 신전 건물 틈으로 보이는 눈동자나 늘어진 혓바닥이 뭔가 기괴한 귀여움을 내고 있지만! 이게 아니라고!
진성은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종결로 바꿔야 하니까 준종결급을 사지 말라고 한다면 지금 눈앞에서 혀를 축 늘어뜨린 쁘띠 로터스의 용도는?
마치 진성이 외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듯 순수는 말을 이었다.
“ㅋㅋ그래도 귀여운건 나중에 스킨용으로도 쓸수있으니까 ㅋㅋ 저도 몇개 있거든요 파핑파핑 8비트 크리쳐나 마르바스 같은거 ㅋㅋ”
무기의 외형은 무기 아바타 또는 형상을 활용한 스킨.
방어구의 외형은 아바타.
게임 던전앤파이터는 크리쳐의 외형도 바꿀 수 있다.
소위 ‘종결급’ 크리쳐의 성능을 유지하면서 ‘취향에 맞는’ 크리쳐가 자신을 따라다니게끔 하는 것.
‘……파핑파핑 8비트는 실제로 귀엽고, 마르바스는 버퍼 스위칭용 크리쳐라 원래 좋은 거잖아……. 이거랑은 개념이 다르잖아요, 이 사람아!’
순수는 진심이다.
귀여워서 사준 것이다. 크리쳐를. 진성 자신에게.
결코 엿먹이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군요.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저 고마움을 표할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순수라수라는 약간은 멋쩍다는 듯 또 민망하다는 듯 몸을 꼬며 말했다.
“ㅋㅋㅋ 감사할건 없음 ㅋㅋ 무기 형상 값인데요 머 ㅋㅋ 한 천오백만 골드 정도 쳐드렸다고 생각하시믄 댐”
“네, 천오백만 골드…… 우와.”
당연히 진성에게는 황당함을 배가시키기만 하는 발언이었다.
15,000,000골드의 교환 가치를 책정해주었다는 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애당초 진성의 목표치보다 더 높은 수준이니까.
그러나 그것을 전부 골드로만 계산해주었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지.
8,000,000골드도 진성 자신이 조금 전까지 보유하고 있던 돈에 비하면 열 배에 가까운 돈이겠으나, 어쩐지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쁘띠 로터스가 700만 골이나 한단 말이야? 그럼 그냥 준종결급 사주지! 준종결급도 700만 골드면 얼추 살 수 있을 텐데!’
현시점의 진성 자신이 확연히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도움을 주는 준종결급 크리쳐 약 700만 골드 전후.
그리고 힘 +30, HP 1분당 31.2 회복, MP MAX +5%, 공격 속도 +2% 성능의 쁘띠 로터스(갈퀴), 700만 골드.
‘성능 빼면 도대체 이, 이, 미묘한 외모 값이 얼마어치냐고!’
하물며 회피율이니 적중률 같은 개념이 적어도 지금의 ‘다크나이트’ 진성에게는 별로 중요치도 않은 요소라고 본다면 사실상 최대 MP를 올려주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을 정도라는 뜻이다.
“꼬륵! 꼬르륵!”
진성은 덜그럭거리며 자신에게 말을 거는 크리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쁘띠 로터스(갈퀴)>가 무슨 죄가 있으랴.
“물에 빠진 소리……. 아니, 숨넘어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건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을 테니.”
하물며 물을 들이키는 것 같은 효과음.
어쩌면 사도 로터스가 그토록 원했던, 끝끝내 닿지 못했던 ‘미들 오션’의 아쉬움을 크리쳐가 대신하는 걸지도.
진성은 이제 자신의 크리쳐가 된 존재에게 반응해주었다.
“ㅋㅋㅋㅋㅋ ㄹㅇ 이럴줄알았음 ㅋㅋ”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순수가 원하던 그림이라 할 수 있었다.
“네?”
“ㅋㅋㅋㅋ진성님이라면 몬가 크리쳐랑 그렇게 대화할 것 같아서 ㅁㅊ ㅋㅋ 진짜네 진성님 진짜 최고에요”
순수는 준종결급 크리쳐를 살 수 있었다.
추후 종결급을 쓰더라도 준종결급을 쓰다 버프 강화용 또는 스킨용으로 써도 된다는 걸 알면서 굳이 <쁘띠 로터스(갈퀴)>를 사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진성은 그저 헛웃음만 흘려야 했다.
“하, 하하…… 네. 감사합니다.”
진성이 보기에 순수는 숨까지 몰아쉬며 헉헉거리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키보드 앞에 앉은 유저는 얼마나 웃고 있는 걸까.
‘이런 놈이랑 너무 친해지는 것도 위험하긴 하겠어.’
진성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같은 시각, 순수가 품고 있는 마음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다짐이었다.
“진성님 담에도 뭐 팔거 생기면 ㅋㅋㅋ 저한테 무조건 연락주세요 아 순찍이나 순수라로 귓말 안가면 메가폰으로 순수 찾아도 우리 길드원들이 알려줄테니까 ㅋㅋ 알앗조?”
어떻게든 가까워지려는 태도에 진성은 어쩐지 한발 물러서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순수의 제안 자체는 진성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경매장을 쓸 수 없고 믿을 수 있는 유저도 별로 없는 와중에, 돈도 많고 던전앤파이터에 대해 잘 아는 데다.
“네. 아 그러면 메가폰 몇 개만 사서 저한테 거래-.”
“열 개니까 백만골만 주셈 ㅋㅋ”
“-빠르시네요. 네, 다음에도 판매할 물건 괜찮은 거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심지어 빠릿빠릿하기까지 한 유저와 인연을 맺는다면.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다는 뜻인데. 에휴, 다만 성격이 이런 놈이라.’
불안한 와중에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진성이었다.
진성은 순수와의 세 번째 만남을 마쳤다.
획득한 것은 700만 골드.
크리쳐 <쁘띠 로터스(갈퀴)>.
그리고 <해방된 하트비트 메가폰> 10개.
10만 골드와 으로 목표한 금액 그 이상을 충분히 뽑아낸 진성이었다.
* * *
샤란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마법사 길드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진성 씨? 그건 뭐예요?”
“꼬륵.”
“……크리쳐요.”
진성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순수와 헤어지고 라이너스에게 인사를 한 후 돌아온 곳은 당연히 마법사 길드.
“크리쳐? 요즘 모험가 중에서 그런 걸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더니만- 진성 씨는 어디서 구했어요, 갑자기? 게다가 그 모습은…… 나야 직접 보진 못하고 전해 듣기만 했지만, 아무래도 사도 로터스를귀엽게 단순화한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사도의 힘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아아.”
간단한 재정비를 한 후 떠나려는 진성에게, 샤란의 관심은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답하기 귀찮은 부분이었다.
샤란도 그러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더는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 그건 그렇고. 진성 씨가 말했던 문제가 터졌어요. 펜네스 왕국에서 갑자기 벨 마이어 공국의 국경까지 병력들을 보내는 바람에…….”
“그 이유는 흑요정들이 갑자기 걸린 전염병을 인간이 퍼뜨렸다는 소문 때문일 테고요?”
“네. 공국에서는 모험가를 비롯해서 소수의 인원을 파견하긴 했다지만 과연 제대로 될지 모르겠네요. 이런 일일수록 합심해서 대규모 조사단이 필요할 텐데, 분위기가 워낙 흉흉해서.”
이다음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흐름.
진성이 익히 알고 있는 데다 샤란에게 대략적으로 언질을 주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잘 될 겁니다. 샤란 님께서는 요청이 올 때까지 미리 집중해주시면 더 편할 거고요.”
“정말 그럴까요? 모험가가 지그하르트도 물리쳤고, 로터스도 처치했다지만 역시 아직까지는 불안해서…… 공국의 정식 요인은 아니잖아요? 여왕님께 의뢰를 받았다지만-.”
“아마 그래도…….”
진성은 샤란을 안심시킬 단어를 생각하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모험가에 대해 그 누구보다 믿고 있는 자는 따로 있었으니까.
“모험가님은 잘 해내실 거예요.”
마법사 길드로 걸어들어오며 말하는 청아한 목소리.
진성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늘어지라 기대고 있던 의자에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워야 했을 정도였다.
“세, 세리아! 님!”
“어머? 저를 아시나요?”
그제야 진성도 알 수 있었다.
유저, 즉, 진성 자신이 <캐릭터 모험가>일 때는 이 시점에서 접점이 없었으므로 잠시 잊고 있었으나, ‘현실’이라면 어떨까.
‘그렇구나, 세리아는 튜토리얼의 전투를 겪고, 하늘성에서 대마법진을 보수하고- 그 이후엔 모험가와 헤어지고…… 샤란한테 마법을 배우는 시점이구나.’
세리아는 세리아 나름대로 마법사 길드 소속으로서 여러가지를 배우고 또 수행하는 중일 터!
다만, 진성이 당황한 이유는 자신이 플레인:아라드에 빙의된 이후 세리아와 직접적인 대화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갸웃거리는 세리아를 바라보며 진성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알……죠, 네. 샤란 님께, 크흠,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성실한데다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으시다고.”
“네에? 샤란 님도 참, 제가 무슨 하는 일이 있다고요.”
세리아는 부끄러워하며 샤란을 바라보았다.
샤란은 그런 세리아와 진성을 순식간에 번갈아 보며 능청을 떨었다.
“아, 아하핫, 아뇨, 세리아 씨는 실제로-. 그렇잖아요. 볼 때마다 놀라울 정도니까요. 우리 진성 씨가 말한 것처럼, 아, 이 분이 진성 씨예요. G.S.D님의 제자이자 이제는 우리 마법사 길드 소속의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으로 여러 현장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분이죠.”
“그렇군요. 반가워요, 진성 님.”
세리아는 진성을 향해 생긋 웃으며 다시금 인사를 건넸다.
진성의 입장에서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두근거릴 뿐만 아니라 묘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던파 유저라면……. 그럴 수밖에 없지.’
하물며 세리아의 ‘비밀’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진성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세리아와 함께 있다 말실수라도 할까 걱정이 될 정도가 아닌가.
따라서 진성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야만 했다.
“예, 반갑습니다. 커흠, 이제, 뭐…… 할 말은 다 한 것 같고. 저는 다시 ‘현장으로 파견’ 나가봐야겠죠, 샤란 님?”
“그……렇죠. 그럼 이번 현장은-.”
“알프라이라 주둔지로 나가는 거 맞죠?”
진성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샤란이 그 표시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네, 부, 부탁해요. 알게 된 거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 부탁하고요.”
“예, 알겠습니다.”
후다닥 마법사 길드 밖으로 나가려는 진성의 등을 향해 세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성 님이라고 하셨죠? 알프라이라 주둔지라면 벨 마이어 공국과 펜네스 왕국의 국경? 지금 모험가님이 계신 곳 맞나요?”
“아? 네, 네, 맞습니다.”
진성은 잠시 멈춰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리아는 진성의 눈을 마주하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곤 말했다.
“맡으신 바 일 때문에 힘드시겠지만……모험가 님을 잘 부탁드려요.”
그것은 진성의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한마디이기도 했다.
진성 자신이 바로 그 모험가었으니까.
유저였으니까.
그러나 그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진성에게는, 세리아의 당부나 부탁은 필요가 없었다.
‘이슬을 지키려는 자가…… 무사히 이슬을 지킬 수 있도록.’
<부집게>로서, <캐릭터 모험가>들이 무사히 성장하여 <진정한 모험가>의 자질을 보이고 또한 활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네, 걱정 마세요. 그게 제 할 일이니까요.”
그것이 바로 진성 자신의 역할이었으니까.
진성은 알프라이라 주둔지를 향했다.
다시금 ‘오염’을 찾아 정화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