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43)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43화(43/212)
043
섈로우 킵의 몬스터 따위는 진성에게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한 번에 7, 8마리 정도가 동시에 나와도 괜찮아졌으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아.’
35레벨에 새로운 스킬들을 배우고, 해당 스킬들을 콤보로 활용하거나 일반 스킬처럼 활용하는 방법이 추가될 것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몇 개의 던전까지는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을 터.
사실상 던전 지역:알프라이라에서 진성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챙그랑-!
따라서 진성이 열을 올리는 것은 그저 구울이나 스컬 스로워 따위의 상대가 아니었다.
“여기도오~ 없고오~”
노래하듯 중얼거리면서 진성은 새파란 오브Orb를 발로 휘휘 흐트러뜨렸다.
어두운 던전을 밝혀주던 불빛의 역할을 하던 물체를 산산조각 내는 건 당연히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유저일 때는 던전 안의 오브젝트 깨면 뭐 이것저것 나오곤 했는데 말이지. 나는 그런 것도 없나?’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던전 안에는 몬스터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공격을 통해 상호작용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각종 오브젝트들이 존재하며, 해당 물체들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것.
그러한 욕심으로 진성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깨보거나 찔러보거나 부숴보거나 하는 중이었으나 아직까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하긴, 몬스터들한테 드랍되는 템도 없어서 사체를 주물럭거리는 팔자인데 이런 게 있을 리 없나.’
만약 무언가를 획득하고 싶다면 진성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해야 한다는 의미.
불을 비추고 있는 유리 구슬 따위를 깨서 그 안에 골드나 포션 등이 들어있길 바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아이템이 있을 만한 오브젝트…… 그런 거겠지. 예를 들면-.’
섈로우 킵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던 진성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구워- 꺽.”
“비켜, 인마.”
땅에서 튀어나오려는 구울의 두개골 정수리에 그대로 <로터스의 가시 촉수>를 꽂아 넣어 튀어나오지 못하게 만들며 진성이 다가간 건 작은 상자였다.
‘섈로우 킵에서도 나오는지는 몰랐다만…… 그래, 있긴 있어. 여기 알프라이라의 던전들의 컨셉을 생각하자면-.’
현재는 상당 부분 바뀌었다지만, 과거 알프라이라의 던전들은 거미왕국의 내분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여전히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로 진행되는 ‘펜네스 왕국 흑요정 영웅의 무덤’ 등과 연관된 던전도 있다.
그리고 지금의 진성에게 있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 중요한 건 하나.
‘옛 왕국의 흔적, 옛 영웅들이 있는 곳에는 그 격에 맞는 물건들, 즉, 보물들이 있다~ 이 말이거든, 흐흐.’
진성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많은 거 바라지도 않는다. 기왕이면 방어구류 아이템- 왁?!”
낡은 경첩이 끼익, 울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진성은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분명 과거 스토리의 일환인 거미왕국의 내분 관련이나, 흑요정 영웅의 무덤은 존재하지만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구려! 냄새!”
구울과 스컬 스로워들, 사체들이 즐비했던 동굴 따위에 보물이 있을 리가 없는 셈이었다.
작은 상자 안에 뭉개진 무언가가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꼬릿꼬릿한 냄새 안에 미묘하게 섞인 고소한 냄새를 맡았을 때, 진성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무슨…… 음식이었나? 완전히 다 썩어버린 것 같은데-.’
발효가 되다 못해 도대체 어떤 상태로까지 나아갔는지 알 수 없는 식재료일까?
보통 사람이라면 곧장 상자 뚜껑을 덮어버리고 도망쳐버렸겠으나 진성은 달랐다.
‘……잠깐. 알프라이라. 그리고 언더풋.’
여기는 알프라이라다. 조금 더 나아가면 펜네스 왕국의 수도 언더풋이 나온다.
그리고 섈로우 킵은 NPC 모건을 비롯한 흑요정들이 전염병의 조사를 위해 들어온 장소였음을 떠올린다면, 이 상자를 누가 가지고 왔었을지 생각해본다면.
“꼬, 꼬르륵!”
“우욱……나도 토할 것 같으니까 말 걸지 마라.”‘
헛구역질을 연신 하면서도 진성은 손에 들러붙는 찐득한 ‘그것’을 챙길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 * *
“후우.”
진성은 강시처럼 손을 쭉 뻗은 채 섈로우 킵의 밖으로 나왔다.
당장 손을 씻지 못한 괴로움은 그 자세만으로도 표현되었다.
진성 자신이 섈로우 킵에 들어갔다 나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일단 씻고 생각하자. 네메르한테 씻지 않고도 냄새 안 나는, 뭐, 자동 샤워 기능 이런 걸 달라고 했어야 했나.’
찐득한 무언가를 손에 묻히고 모래와 흙으로만 대충 닦은 게 벌써 몇 시간 전이니, 거의 하루 가까운 시간을 던전 안에서만 보내지 않았을지.
그럼에도 아직 레벨은 35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몬스터의 수준이 낮아 경험치 획득량이 적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얼른 오염된 퀘스트를 진행하는 유저를 찾고 그 뒤를 쫓아다녀야 뭐라도 좀 되는-……. 아.’
그나마 진성에게 다행인 점이라면 알프라이라 주둔지가 시끌벅적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클론터의 근처에 서 있는 벨 마이어 공국의 기사 로바토와 남자 프리스트 직업의 유저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바라보는 자는 알프라이라 주둔지에 집결한 양국의 병력들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하, 조무래기는 썩 꺼지라니깐! 철구 맛을 좀 더 봐야 너희 대장을 불러올 테냐?”
그곳에서 거대한 철구鐵球를 든 채 난동을 부리는 흑요정 거한.
그리고 그런 거한을 보면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날카로운 눈매의 여성.
“뭐야, 흑요정과의 마찰은 최대한 피해달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오는 길이라 웬만하면 참으려 했더니……. 환영 인사가 꽤 과격한걸?”
두 NPC가 누구인지, 그리고 두 NPC의 대사가 무엇인지 들은 것만으로도 진성은 알았다.
‘싸움꾼 로엘이랑 시궁창 공주 패리스…… 그럼 섈로우 킵에서의 모건 퀘는 이미 끝났고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현재 퀘스트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
“이 목소리는……. 맙소사, 로엘 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서 멈추세요!”
“어, 클론터? 네가 왜 여기에-.”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언더풋의 경비를 맡고 있어야 할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뭐? 그야 당연히 인간들과 전쟁이 벌어진다기에 가장 강한 놈과 먼저 붙어보려고 한걸음에 달려온 거지. 지겨운 경계 임무보다야 이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당장이라도 싸우려는 로엘과 패리스 사이에 끼어드는 클론터를 향해, 공국의 또 다른 인원들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후후…… 로엘 님은 정말 변한 게 없으시군요.”
“샤란 님! 공국의 요청을 받고 지원을 나오신 겁니까?”
모건의 일지를 통해 마법사와 연금술사의 지원이 필요함을 깨달은 공국 측에선 곧장 마법사 길드장 샤란과 연금술사 로톤을 파견한다.
“네, 여기 있는 분들 모두 스카디 여왕님의 부탁을 받아 파견된 인력입니다.”
자신만만하게 답변하는 샤란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진성은 히죽거렸다.
전염병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알고, 그러한 사태에 긴급 파견되었으면서도 그녀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흐, 미리 조언을 해준 보람이 있구만. 마법사 길드에서 이것저것 참고용으로 쓸 만한 정보들은 벌써 다 취합했나 보군.’
전염병이 무엇이든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바꿔 말하면 그녀에게 언질을 준 진성 자신의 주가 또한 상승했다는 뜻일 테니까.
다만, 진성이 그저 즐거워만 할 수 없는 건 다른 측면이었다.
샤란에게 미리 해줄 이야기가 또 있었는데, 그것을 떠올리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샤란? 네가 샤란이라고? 하하! 나랑 결혼하겠다고 쫓아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구나. 이거 다른 곳에서 마주쳤으면 못 알아봤겠는걸?”
“……로엘 님, 개인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도록 하죠.”
로엘을 보며 샤란은 얼굴을 붉혔다.
진성 자신도 잠시 까먹고 있었던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차차, 맞다. 저런 관계도 있었구나. 나중에 왜 이야기 안 해줬냐고- 쩝, 그래서 내가 미래는 ‘어느 정도’밖에 예측 못 한다고 한 거니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 전부 외우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샤란에게 한 소리 듣겠다 싶으면서도 오히려 뻔뻔하게 나가기로 한 진성이었다.
“오랜만일세, 나이트 로바토. 이곳 상황은 여왕님께 대강 설명 들었네. 내가 어떤 일을 도와주면 되나?”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건 연금술사 로톤 막시머그뿐이었다.
그의 한마디가 나오고 나서야 클론터, 로엘, 패리스, 샤란 등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현재의 상황을 일러주고, 모건의 일지를 보여주고, 로톤과 샤란이 고개를 끄덕이는 일련의 모습들을 진성은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또 확인했다.
따라서 알 수 있었다.
‘아직 오염된 파트는 없다.’
적어도 남자 프리스트 유저의 현 퀘스트에는 오염된 지점이 없다는 것을.
당장 오염된 몬스터 등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벌써 세 번째의 각기 다른 오염을 해소하며 진성은 확인한 바 있다.
오염된 개체가 퀘스트 내에서 시나리오를 비틀기 전, 해당 퀘스트가 이미 오염되었음을 암시하는 각종 변화가 존재한다는 점.
‘오염된 건 레니가 아니었지만, 레니가 끼어든다거나……. 로터스가 오염되기 전 창신세기가 발견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특징들이 있었다. 오염 개체와 별개로, 해당 퀘스트 내에 오염 요소가 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 그런 게 반드시 있었어.’
<오염의 원인자>가 특정 개체를 ‘오염’시키는 것에 대한 부작용 또는 영향, 특정 개체에 대한 왜곡을 일부러 일으킬 때의 여파 또는 후폭풍.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중요한 게 아니라 반드시 그런 신호가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면.
“패리스 님과 모험가님도 언더풋까지의 길을 뚫는 선발대 역할을 부탁드립니다. 나머지 분들은 펜네스 왕국에 전해줄 치료제 개발이 성공하면 수송 병력과 함께 후발대로 출발하시지요.”
진성은 선택해야 했다.
남자 프리스트 유저의 뒤를 따라 무언가 신호가 발견될 때까지 쫓아볼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알프라이라 주둔지에 계속 머물면서 진짜 오염된 퀘스트의 유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한다.’
진성은 잠시 고민했으나 선택까지 그리 어려운 점은 없었다.
결국 중요한 건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행보와 오염된 퀘스트의 흐름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져 간다는 거겠지. 내가 하늘성에 갈 즈음엔 하늘성의 오염이, 내가 베히모스에 갈 즈음엔 베히모스의 오염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결국-.’
따라간다.
진성 자신이 올바른 부집게가 될 수 있도록 네메르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그러한 안내를, 그러한 안배를 하고 있는 중이라면, 결국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언더풋으로 가는 수송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나는 건 모험가, 즉, 유저인 남자 프리스트와 공국 대표 ‘시궁창 공주’ 패리스 그리고 펜네스 왕국 대표 ‘싸움꾼’ 로엘, 셋이었다.
진성은 슬그머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던전 지역:알프라이라의 두 번째 던전, 거미 소굴이었다.
* * *
거미 소굴에 입장하자마자 나오는 세 갈래 길에 잠시 소란이 일었다.
로엘과 패리스 그리고 유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로 하며, 그 와중에도 티격태격하는 로엘과 패리스는 누가 더 많은 거미를 죽이고 거미 다리를 모으는지 내기를 하자고 하는 부분 때문이었다.
‘……굳이 NPC들을 따라갈 필요는 없어서 유저를 따라가고는 있다만-.’
진성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남자 프리스트 유저는 능숙하게 스킬을 사용하고,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 나오는 아이템을 남김없이 습득하며 나아가는 중이었으니까.
‘싹싹 긁어먹는구나, 아주. 뭐, 저게 당연한 거지.’
그가 지나간 길에 남은 건 거미 소굴의 몬스터, ‘마르피사’라는 이름을 가진 거미들의 사체들밖에 없었다.
끈적한 체액을 흘리며 뒤집어져 있는, 웬만한 대형견급 크기의 거미 사체들은 진성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할 정도였다.
“꼬륵.”
“쉿, 조용히 해.”
진성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쁘띠 로터스(갈퀴)>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냥 아무 이름이나 붙이면 얘는 그렇게 인식 하려나? 원래라면 <크리쳐 이름 변경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 정도의 소통이 가능하다면 이름을 붙이는 것 또한 가능할 터.
이것을 빙의된 자의 특권일까, 라는 생각에 어쩐지 헛웃음이 나는 진성이었다.
‘고작 이런 특권에 기뻐하는 것도 참…… 나도 아라드인 다 됐네. 일단 시험 삼아 이름은 한번 붙여봐야겠군.’
사도 로터스를 단순화한 크리쳐.
그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무엇일지 생각하던 진성이었으나 잠시 그런 고민은 접어두어야 했다.
“꼬, 꼬륵. 꼬르륵!”
“으앗-. 야, 혓바닥으로 내 옷을 당기면-……아?”
평소와 다른 크리쳐의 행동에 진성은 뒤를 돌아봐야 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쁘띠 로터스(갈퀴)>가 어째서 자신의 옷을 잡아당겼는지.
“……설마.”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던전 내부에는 파괴할 수 있는 오브젝트가 있다.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오브젝트가 있는 반면…….
‘유저는 벌써 다음 방으로 갔는데 내가 여기 있다고 작동하는 거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몬스터를 추가로 나타나게 만드는 오브젝트도 있는 것이다.
진성이 울상이 되든 말든 곳곳에서 고양이 크기의 거미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중에 드래곤 알들에 대한 예방주사 맞았다고 생각해야겠군.”
순식간에 튀어나온 거미의 수는 어림잡아도 수십 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