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4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49화(4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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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은 미쉘의 초록빛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 스스로 말실수는 하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눈앞의 인물이 자신을 ‘사이퍼’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진성은 멈추지 않았다.
“마법사 길드의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인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여기만 전염병이 퍼지지 않은 이유 또한 그런 거겠지. 염동력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 기분 나쁜 능력을 사용해서 막아내고 있었을 테니까. 안 그래?”
“그건…….”
미쉘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 진성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미쉘이 어째서 그로즈니의 사이퍼들 중 리더의 역할을 하는지.
조금 전까지 공포와 불안에 떨던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는 어느새 분노로 바뀌어 가는 중이었다.
자신의 말이 조금 셌나, 싶은 걱정도 들었으나 진성은 멈출 수 없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
그리고 균형감각도 맞춰줘야만 한다.
‘미쉘이 자신들을 배척하는 일반인들을 미워하는 건 괜찮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모든 인간을 싫어하게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랬다간 유저와 ‘독왕’ 루이제의 협력 요청조차 단칼에 거절하게 될지도 모르며, 그것은 지금 상황 이상으로 더 꼬이게 되는 결과를 낼 수도 있을 테니까.
따라서 진성은 말해야만 했다.
“그로즈니에 마녀사냥 대상자들이 숨어 산다는 건 오래전에 입수한 첩보다. 그동안 너희들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려 했던 건 별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이젠 봐줄 수 없군. 너희들을 체포하겠다.”
진성 자신을 더욱 악역으로 생각하도록.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죠!? 마법사 길드?
당신들이 평소에 뭘 했다고 이제와서 우리한테 그런 요구를, 그런 뻔뻔하고도 비도덕적인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아, 물론 너희가 잘못한 건 딱히 없어. 오히려 전염병을 막아낼 수 있음을 증명했으니 잘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진성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빈정거렸다.
“뭐라고요? 그럼 왜-.”
“근데 모험가가 잘못을 했거든. 모험가가 펜네스 왕국에서 흑요정들을 위해, 그들을 도와 전염병을 처리해버렸단 말이야.”
거짓된 악랄함이 그녀에게만큼은 진심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모험가? 그 모험가라는 이가 업적을 세운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
“눈치가 그렇게 없나? 그 일은 내 소관이었다고. 내 이름을 드높일 기회이자 내가 차지했어야 할 업적이었다고.”
악역인 자신이 빛나야만 한다.
그래야 ‘모험가’라는, 향후 미쉘이 마주하게 될 선역이 더욱 빛나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기분 나쁜 너희라도 내 발판이 좀 되어줘야겠다~ 이런 뜻이지.”
따라서 진성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미쉘은 진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으니까.
“그 더럽고 비릿한 미소…… 역시 그랬군요. ‘정상인’들이란 항상 그딴 식이죠. 그저 누구를 이용하려는 생각으로만 가득한!”
진성은 미쉘의 말을 들으며 움찔거렸다.
‘으으…… 미쉘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NPC였는데. 나중에 폭풍의 역린에서 도우러 올 때도 그 츤츤거리는 행동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한테 더럽고 비릿한 미소라고 말하다니…….’
상처 아닌 상처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오염을 바로잡는 일이기 때문.
진성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그래, 설령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너희들이 그로즈니에 숨어있다 해도…… 나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현상금 사냥꾼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이제 미쉘은 표정으로 말할 게 아니었다.
그녀의 주변을 감싸고 도는 녹색의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은 이미 전투 준비 완료라는 의미였으니까.
“얼마든지 오세요, 얼마든지 덤비세요. 너희 ‘정상인’ 따위에게 굴복할 우리들이 아니니까.”
“하핫, 나를 상대할 수 있을-.”
적당히 미쉘과 전투를 하다 빠진다, 라는 게 진성의 계획이었다.
“미아! 데샹!”
“-까?”
그리고 역시나 진성은 아직까지도 유저였던 시절의 감각을 전부 버리지 못하고 있던 셈이었다.
게임이었다면 보스 몬스터로 등장하는 미쉘 모나헌만 상대하면 되었겠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미쉘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주변의 풀숲이 바스락거렸다.
“꼬, 꼬륵!”
“젠장, <백스텝>!”
그 바스락거림이 순식간에 땅의 진동까지 이어질 때, 진성은 우선 빠른 동작으로 회피해야만 했다.
진성이 서 있던 자리에서 끝을 뾰족하게 만든 나무 뿌리 몇 개가 지면을 뚫고 솟구쳤다.
또 다른 사이퍼, ‘드루이드’ 미아의 스킬임을 진성은 알았다.
“꼬르르!”
“보고 있어, <다크 레이브>, <다크 볼>!”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성이 회피한 자리를 미리 읽었다는 듯 순식간에 날아드는 건 역시나 수백 마리의 날벌레 떼들.
날벌레들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쇄도해왔고 진성은 그것들을 일격에 처리하기 위한 스킬들을 사용해야 했다.
“헷, 저 녀석, 제법인데? 내 벌레들을 피하다니. 그러니까 처음부터 해치우자고 했잖아, 미쉘! 내 말이 맞지?”
그것 역시 또 다른 사이퍼, ‘벌레’ 데샹의 공격 방식인 것.
“미쉘, 나도 준비됐어!”
미아는 재빨리 미쉘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미쉘은 미아, 데샹을 번갈아 본 후, 그대로 손에 쥐고 있던 페도라를 자신의 머리에 꾹 눌러썼다.
일종의 다짐과도 같은 행위인 동시에…….
“응,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공격을 시작하겠다는 신호와도 같았다.
미쉘의 몸을 감싸고 있던 녹색의 기운은 순식간에 그녀의 오른손 끝에 모여들었다.
“<염동탄>!”
진성의 몸뚱아리보다 커다란 기운이 맹렬하게 쏘아졌다.
‘그냥 적당히 화만 돋우고 갈 예정이었는데!’
진성으로선 그저 울고 싶을 따름이었다.
* * *
미쉘이 쏘아대는 염동탄은 넉넉하게 피해도, 그 후폭풍은 머리칼이 휘날릴 정도의 기세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 속도가 예상만큼 빠르지 않다는 점이었으나, 당장 진성이 주의해야 할 대상은 미쉘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6개의 뿌리>!”
미아는 땅에 손을 짚으며 외쳤다.
쿠구구구, 떨리는 불길한 진동만이 아니다. 지면의 어느 쪽에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꿰뚫고 올라오는지 알 수 없는 나무뿌리들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
결국 서있던 지면 전체를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면?
“<염동탄>!”
마치 진성의 움직임을 유도하듯 회피시킨 장소를 향해 염동탄이 날아오는 게 아닌가!
“<다크 크로스>!”
이미 피하기가 늦은 것은 다른 기술로 상쇄시키는 게 당연하다.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중 하나는 아직 진성의 레벨이 34라는 것.
───────────……!!!!
“엥?”
“겨우 그딴 실력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졌단 말인가요?!”
미쉘 모나헌의 스킬과 진성 자신의 스킬을 상쇄시키기에는, 몇몇 스킬의 경우 아직 그 대미지가 부족하다.
염동탄은 암속성의 십자가를 깨부수며 날아왔다.
진성은 허겁지겁 몸을 날려야 했고, 그곳에 바로 두 번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 벌레들도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조금 전 사용했던 범위 공격은 연속해서 사용할 수 없어 보이는데, 그렇지?”
진성의 스킬 쿨타임을 파악이라도 했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데샹의 말에 미처 반박할 여유조차 없었으니.
“호, <홉 스매쉬>!”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진성에게는 사도 로터스의 공격을 일시적이나마 무효화 시켰던 기술, <홉 스매쉬>가 <다크 크로스>에 연이어지는 콤보라는 점일까.
몸에 들러붙는 날벌레 떼의 공격을 모두 ‘일시적인 무적 상태’로 인해 피격 무효 판정을 받아낸 직후 곧장 이어지는 건 <베인 슬래쉬>와 <다크 웨이브>, <윕 어택>의 콤보였다.
그 시점에서 진성은 작전을 바꿔야만 했다.
미쉘, 미아, 데샹 세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아직 진성 자신이 부족하다.
레벨도, 스킬도, 아이템 수준도.
그렇다면 우선은 후퇴에 집중해야 하며, 후퇴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세 사람의 대장, 미쉘에게 위협적인 공격을 가한 후 집중이 흐트러졌을 때 기회를 잡아야만 한다.
“<어퍼>, <브리프 컷>, <스핀 어택>-.”
진성의 주요 스킬 콤보 중 하나이자, 앞선 세 개의 스킬 모두 일정 수준 이동할 수 있다.
이동기 위주의 콤보로 미쉘까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기 무섭게 진성은 이어지는 콤보를 발동시켰다.
“-<피어스 스트라이크>!”
진성은 <로터스의 가시 촉수>를 내지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강력한 찌르기는 미쉘의 복부를 전부 파고들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매우 위협적인 공격이 될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
스르르륵…….
“-으, 응?”
그리고 그것은 미쉘을 너무 얕잡아 본 셈이었다.
미쉘의 움직임이 마치 미끄러지듯 보인 찰나, 이미 그녀의 모습은 진성의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이었다.
“어딜 보는 거죠? 그건 내 잔상이에요.”
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때, 미쉘은 이미 진성의 뒤에 있었다.
진성은 이를 악물었다.
‘미친, <잔영의 케이가> 같은 스킬을 미쉘도 쓸 줄 알았던가?!’
무적 판정을 포함한 회피기는 유저만의 기술이 아니라는 듯 보여주는 미쉘.
그녀는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어느새 손에 쥐어진 초록의 기운이 길다랗게 늘어져 마치 채찍처럼 진성의 등을 강타하려는 순간!
“더는 피할 수 없을-. 꺄앗?!”
미쉘은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쉬이이이이이익-!
십수 가닥의 두터운 촉수가 미쉘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으니까.
미아와 데샹마저도 당황스럽게 만드는 갑작스러운 공격.
“미, 미쉘!”
“미쉘!”
불긋하고 굵직한 촉수 다발을 보며 머뭇거리지 않은 자는 당연히 한 사람, 진성이었다.
“나도 할 수 있다 이거야! 타꼬, 후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크리쳐들은 각각의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으며, 진성을 따르는 ‘타꼬’, <쁘띠 로터스(갈퀴)>의 스킬은 바로 <문어발 갈퀴 공격>인 것!
‘하지만 대미지 자체는 약하다. 진짜 사도 로터스의 갈퀴였다면 모를까, 결국 크리쳐의 레벨에 해당하는 수준의 공격력이니까. 그래도 한 번의 기회만 있다면-.’
타꼬는 진성의 명령에 따라 문어발 갈퀴로 후려치기를 시도했다.
진성의 우려처럼 아직 레벨도 얼마 되지 않는 타꼬의 공격 자체는 큰 대미지를 입히지 못할 터.
쉬이이이이잇-!
“이 정도 촉수 따위에 당하지는-.”
하지만 거기까지 예상할 수 없었던 미쉘은 타꼬에게 반응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기회였다.
<어퍼>, <브리프 컷>, <스핀 어택>, <피어스 스트라이크>는 모두 ‘재료 스킬’일 뿐.
다크나이트 스킬의 진정한 공격력이 발휘되는 건 바로 콤보의 다섯 번째에 위치한 스킬.
“<다크 익스플로젼>!”
미쉘의 근처까지 달려간 진성은 그대로 스킬을 사용했다.
─────────────!
“꺄아아악-!”
무색 큐브 조각을 소모하며 폭발해버리는 어둠의 기운은 레벨 차이를 극복하고도 남을 정도로 미쉘에게 위협이 되었다.
“미쉘! 치잇, 너, 인간!”
“<6개의 뿌-. 으읏, 빛이?!”
데샹과 미아는 재빨리 진성에게 반격하려 했으나 그들의 움직임은 둔화되었다.
진성의 몸을 강타하는 금색의 광휘 때문에.
갑작스러운 레벨 업 이펙트는 진성마저도 아리송하게 만들었으나 지금이 기회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타꼬! 가자!”
“꼬르르륵!”
미쉘이 잠시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서고, 데샹과 미아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시점에서, 진성은 곧장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 잠깐! 거기서요! ‘정상인’을 이대로 보낼 수는-.”
미쉘은 도망치는 진성의 뒤를 잡으려 했으나, <웨이브>나 <바운스 블로우>등 이동형 스킬까지 사용해가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는 진성을 쫓을 수는 없었다.
“하아, 하아…….”
“꼬르르, 꼬르르~”
“좋았어. 쫓아오지만 않는다면 충분해. 후우, 후우.”
얼마나 달렸을까, 더 이상 사이퍼즈들이 쫓아오지 않음을 확인하고서야 진성은 멈춰섰다.
곧장 [인벤토리]를 열어 꺼내는 건 당연히 텔레포트 포션이었다.
‘후우, 레벨이 35가 된 건 다행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안돼. 아티 마르피사 세트라도 빨리 입어야 뭐라도 되는-…… 음?!’
포션의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들이켠 순간, 진성은 보았다.
멀찍이서 녹색 도시 그로즈니를 향해 진입하는 두 개의 실루엣이 있다.
한 명은 NPC ‘독왕’ 루이제라는 걸 알아보았으나 또 한 사람은?!
‘……여귀검. 허리춤에 검 두 자루, 블레이드…… 그렇군.’
여자 귀검사 직업군의 블레이드 유저.
그를 보는 순간, 진성은 많은 것을 이해했다.
진성과타꼬의 모습이 녹색 도시 그로즈니에서, 던전 지역:노스마이어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헨돈마이어의 달빛 주점 인근 뒷골목.
“신다 선생님, 신다 선생님!”
“허허, 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가는 줄 아는가?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나는 여기 있-.”
“아티 마르피사 방어구는 전부 제작됐나요?”
NPC 신다 필립의 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