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5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51화(51/212)
051
진성은 그저 아젤리아의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라면 역시나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맞아. 아젤리아랑 처음 만나는 게 디레지에 앞에서가 아니었어.’
유저는 제6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를 상대하기 직전, 아젤리아와 만나고, 그녀는 유저인 모험가에게 디레지에의 질병으로부터 안전한 보호막을 생성하며 함께 움직인다.
즉, 디레지에를 직접 상대하는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대상자는 유저, 루이제, 미쉘 그리고 아젤리아 네 사람인 것.
진성도 거기까지는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만나고 나니까 생각이 나네, 젠장. 무슨 실루엣처럼 휙, 지나가는 장면이 하나 있었지. 루이제가…… 루이제가 아젤리아와 만나서 대화하는 그런 장면이 있었다.’
매우 짧게 지나가는 데다 말 그대로 실루엣 처리만 되어서 아젤리아라는 이름과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딱 하나의 컷씬.
아젤리아와 마주치고 나서야 그 장면이 생각나는 것도 인간의 기억력 한계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대답하세요. 당신은 누구죠? 왜 루이제 님과 모험가님의 뒤를…… 쫓고 있는 거죠?”
아젤리아는 물었다.
쥐고 있는 완드를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 무력행사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그녀의 태도에 진성은 움찔거렸다.
이제 공식적인 벨 마이어 공국 마법사 길드 소속의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임에도, 평소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녀의 정체 때문이었다.
“저기,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그러니까, 말씀드리자면, 어…….”
아젤리아 로트를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말을 진성은 알고 있다.
그림 시커Grim-Seeker의 수장.
그 정체는 과거 멸망의 근원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테라 행성]의 생존자.
또한 네메르나 힐더의 ‘계획’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의도 또한 어느 정도 유추한 상태로, 그들의 계획이 실현되지 않도록 막아 세상을 지키려는 목적을 가진 인물.
시간을 뒤트는 기술과 마력의 조합을 통해, 기나긴 세월 동안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준비와 실행을 하고 있는 사람.
동시에 유저, 즉, 모험가를 믿어주고 힘을 주는, 모험가의 편.
게임 던전앤파이터 세계관에서 중요도로 따지자면 한 손에 꼽아도 될 정도의 인물 앞에서 과연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아젤리아의 완드가 조금 더 진성 자신을 향했다.
“시간을 끌 목적이라면-.”
“아젤리아 님……과 비슷한, 예, 상황에 처해있는, 저기, 처해있다기보다 그런 목표가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진성은 선택해야 했다.
당장 지금만이 아니다.
앞으로 진성 자신이 겪게 될 일을 생각해서라도, 이곳, 아라드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라도 아젤리아와 척을 질 필요는 없다는 것.
척을 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녀와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할 가능성까지 생각하자면.
“네? 그게 무슨…… 아니, 그보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젤리아의 보랏빛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녀를 바라보며 진성은 말했다.
“예언은…… 반드시 빗나가야 하죠.”
꿀꺽.
말을 마친 진성도, 듣고 있던 아젤리아도.
동시에 마른침을 삼켜야만 하는 한마디였다.
잠시 말이 없어진 채로 두 사람은 서로를 살폈다.
진성 또한 아젤리아의 표정을 관찰 중이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당황한 기색으로 진성 자신을 뚫어버릴 듯 바라보는 보랏빛 눈동자.
“예언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아젤리아는 물었다.
단서가 될 만한 그 무엇도 주지 않겠다는 물음이자 일종의 테스트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진성은 그 말에 대답하기 적확한 표현을 알고 있었다.
“예언이라기보단, 으음, 계획에 가깝겠죠. 아라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그 계획을 저지해야 할 테고요.”
진성의 말을 들으며 아젤리아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번뜩였다.
그녀는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신기하군요. 언젠가……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먼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그녀의 표현을 들으며.
진성은 씨익, 미소 지었다.
“지금은 울창한 숲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말씀이시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표현이 생각났으니까.
더 이상은 놀랐다는 것을 숨기지도 못하는 아젤리아를 보며 진성은 말했다.
“저 ‘또한’ 벨 마이어 공국 마법사 길드 소속이거든요.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 진성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쐐기였다.
* * *
예언이 아니라 계획이라는 표현. 그것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이건만 진성이 조금 전 말한 의미는 무엇인지.
“그, 그건…… 그걸…….”
경악한 표정의 아젤리아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진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아젤리아를 놀라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어쩐지 기분 좋은 자부심을 느꼈으나 지금은 까불거릴 때가 아니었다.
지금 진성 자신이 아는 정보가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
그 안에 포함된 온갖 진실과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저 단 하나의 문장만으로도 그 감춰진 진실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언급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저밖에 없으니까요. 저희 마법사 길드장님을 포함하여, 제가 아는 그 어떤 누구도 모르는 정보입니다.”
진성은 재빨리 그녀를 안심시켜야 했다.
아젤리아는 그 말까지 듣고 나서야 겨우 작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이라…… 진성 님이라고 하셨죠, 혹시 그분께서 미래를 예견하고 진성 님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수하신-.“
그분, 즉, ‘대마법사 마이어’.
아젤리아와 함께 아라드를 지키기 위해, 세계를 구하기 위한 진실을 공유한 현자.
지금 당장 이러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가 없음을 진성은 알고 있었다.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으음, 지금은 이 얘기를 전부 다 하기 적절치 못한 장소에, 상황인지라. 다 말씀드리기 어렵겠네요.”
따라서 진성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가 진성이 바라는 점이었다.
어쨌든 현재의 아젤리아에게 있어 진성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흐흐, 대마법사 마이어의 제자나 뭐 관계자, 그런 느낌으로 인식되었겠지. 일단 이 정도면 될 거야.’
이 정도라면 눈앞의 일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한 신임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아젤리아의 눈동자가 잠시 좌우로 움직였다.
“그렇겠죠. 중요한 건 그때의, 저와 그분의 일을 알고 있다는 점이고……. 그 말을 제 앞에서 굳이 한다는 것 또한, 예언이 빗나가야 한다는, 저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목적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테고요.”
그녀는 진성의 말에서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는 부분만을 취합하여 상황을 정리했다.
‘역시…… 괜히 그림 시커의 수장이 아니지. 괜히 테라 행성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 아니구나.’
깜짝 놀라 소스라쳐도 부족하지 않은 사태를 마주한 사람임에도 더없이 침착한 그녀의 언행은 진성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 정도였다.
아젤리아는 재차 물었다.
“그래서 여기에는 어쩐 일이시죠?”
목적을 묻는 건 불과 몇 분 전 처음 조우했을 때와 같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진성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답했다.
“여기에는 어쩐 일이냐 하면……. 말씀드렸다시피, 뭐, 제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명하자면 길죠. 아! 그래도 아젤리아 님께 방해가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뭘 하려는지 아시나요?”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를 쳐다보던 진성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야 했다.
당연히 알고 있다.
아젤리아가 이곳에 온 이유는 디레지에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루이제와 함께.
그러나 사람들마저 변태變態시켜버리는 디레지에의 영향력을 확인한 루이제는 결국 사람들을 구해내고 싶다는 선택을 했고, 조금 전 두 사람이 마주했을 때 루이제에 의해 아젤리아는 설득을 당했을 터.
‘루이제도 보통의 인물이 아니니까. 그림 시커를 창립한 7인 중 한 사람이자……. 으음.’
따라서 디레지에를 지키는 대신 사람들을 구하기로 둘은 결정했다.
이미 모험가와 함께 힘을 합쳐 디레지에를 처치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나눈 상태일 것이다.
‘……문제는 이걸 말할 수가 없다는 뜻이지.’
진성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는 것과 별개로 이런 정보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결국 진성은 애매한 말밖에 할 수 없는 셈이었다.
“대~충?”
“……네?”
“대~충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디레지에를, 사도 디레지에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말이죠.”
무엇보다 지금은 그런 내용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만을 이야기하는 진성을 본 아젤리아의 눈동자는 다시금 휘둥그레졌다.
“대단하군요. 그분과 저의 일을 알고 계시니, 사도에 대해 당연히 알고 계실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마치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혹시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차원을 여는 힘이 있으시다거나-.”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랬으면 뭐, 여기서 이러고 있지는 않겠죠. 차원……도 아니고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실은 그래야 맞는 건데, 하하.”
진성은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검은 팔뚝을 문질거렸다.
다크나이트의 배경 설정을 생각한다면 어때야 하는지 모를 진성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어울리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거기까지였다.
“배고파, 배고파, 배를 채워야 해!”
괴성과도 같은 고함이 노스마이어에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진성은 물론 아젤리아마저도 움찔거리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쥐였다.
인간보다 더 크며, 사족보행으로 순식간에 속도를 내다 불쑥 이족보행으로 일어서서 주변을 살피는 거대한 쥐.
“저 쥐는 아까-.”
“‘흉터’군요. 그리고 아마 흉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다시금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한 거대 쥐 ‘흉터’, 그로부터 멀찍이 보이는 것은 여자 귀검사 유저와 NPC ‘독왕’ 루이제, 그리고 미쉘 모나헌의 모습이었다.
진성은 말을 이었다.
“-저 쥐를 쫓아 디레지에의 위치를 추적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어서 따라가 봐야겠어요. 디레지에와 먼저 조우라도 하게 된다면 큰일일 테니까요.”
그 말과 함께 아젤리아는 움직일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성을 흠칫하게 하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행위였다.
‘역시 오염이었군. 아젤리아는 유저의 뒤를 따라가는 게 아냐.’
이곳에서 아젤리아와 루이제가 만난다는 건 기억하지 못했으나 그 이후까지 모르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여자 귀검사 유저의 퀘스트가 오염되었음을 확신한 진성이었기에, 대처도 당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셈이었다.
“아뇨, 아젤리아 님까지 굳이 따라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뒤는 제가 쫓을 거니까요.”
“네? 하지만 그랬다간-.”
“어차피 저는 디레지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그, 그걸- 그걸 진성 님이 어떻게…….”
흉터를 바라보던 아젤리아의 보랏빛 눈동자가 다시금 진성에게 고정되었다.
진성은 씨익, 웃으며 그녀를 마주 보았다.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아주 최근에 시작한 유저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다.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마법사 길드 소속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 많이 알고, 많이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위치는 제가 알려드릴 테니, 아젤리아 님은 그곳에서 세 사람이 오길 기다리시는 게 나을 거예요.”
BGM으로도 더없이 유명한 장소, 디레지에가 전이되어 머물고 있는 바로 그곳.
진성 자신의 기억으로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돌았던’ 던전.
<고통의 마을 레쉬폰>.
“과연……. 좋습니다. 진성 님과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믿음이 가는군요.”
아젤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그녀에게 흘린 정보들이 마침내 유효하게 작동하기 시작했을 때.
진성은 제안했다.
“대신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의미로는 아젤리아를 만난 게 천운임을, 그는 <고통의 마을 레쉬폰>을 떠올리며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젤리아가 진성의 제안을 거절할 리는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진성은 여자 귀검사 유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진성의 뒷모습을 보며 아젤리아는 중얼거렸다.
“저 분이라면, 어쩌면…….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곳에서…….“
진성이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