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5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55화(55/212)
055
다시 시공간의 균열을 발생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틈에서 디레지에를 끌어내야 한다.
어떻게든 디레지에가 유저, 즉, 모험가를 차원의 틈으로 끌고 들어가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이자, 이번 오염을 바로잡는 길일 테니까.
다만, 그러한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내야 하는가.
물리적인 공격? 진성 자신의 스킬 사용?
크리쳐의 활용이나 아이템 투척 따위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분명 불가능해야 정상이었다. 뭇 유저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오염을 해결할 거다. 할 수 있어.’
그러나 진성은 달랐다.
진성은 믿고 있었다.
차원의 틈을 연다. 차원의 문을 연다. 시공간의 왜곡을 발생시킨다.
언뜻 불가능하다고 지레 포기해버릴 일이지만, 진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연다. 열려라. 열 수 있어. 열릴 거야.’
이토록이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근거도 있었다.
새까맣게 변이된 진성 자신의 팔.
디레지에가 사라진 공간에 시선을 고정시킨 진성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는 것을, 또한 자신의 팔만큼 새카만 기운들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부집게의 사명>때문만이 아니야. 그런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 아니야.’
진성은 확신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빙의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았으나 이미 겪은 일들이 있었기에.
또한 이미 그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지식과 정보가 있었기에.
‘나는…….’
진성은 자신을 알았다.
더 정확히는 현재 진성 자신의 육체, 그 육체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발현시킬 목적과 정신이 있다면!
‘다크나이트니까.’
힘은 분출되는 것이다.
진성의 눈동자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그 눈에서 금빛의 동공이 번뜩였다.
* * *
쩌적, 쩌저적……!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젤리아는 재빨리 완드를 치켜들었다.
“아니, 무언가 이상-.”
───────────……!!!!
주의를 줄 겨를도 없이 차원의 틈이 다시 열렸다.
“네놈, 힐더의 칼날!”
분쇄되며 차원의 틈으로 빨려들어가던 디레지에의 모습이 드러났다.
발광하는 디레지에였으나 차원의 틈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그곳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디레지에가 노리는 목적이자, 진성이 원하던 결과.
“네놈만 없다면 힐더의 예언도 틀어지겠지! 길동무로 썩 나쁘지 않겠구나!”
디레지에의 발톱이 순식간에 커져 여자 귀검사 유저를 낚아챘다.
휘이이익…….
그러곤 차원의 틈으로 모험가와 함께 빨려 들어갔다.
깨졌던 공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메꿔지는 중이었다.
“모험가! 모험가! 이럴 수가…….”
미쉘의 말이 끝나기도 전, 그렇게 차원의 틈은 닫혀버리고 말았다.
루이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녀는 아젤리아에게 물었으나 아젤리아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모험가와 디레지에가 함께 사라진 공간을 보았다.
“힐더……대체 무슨 짓을…….”
힐더가 디레지에를 차원의 균열로 날려보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곤 불안한 눈빛으로 불현듯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혹은 도움을 구하려는 행동이었으나 그녀가 원하는 바는 얻을 수 없었다.
‘……진성 님은…… 어디에?’
그녀가 도움을 청하려던 대상, 진성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아젤리아의 시야 끄트머리에 들어온 것은 ‘또다른 깨진 것 같은 공간’이 다시 메꿔지며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모습이었다.
‘음?’
찰나에 이루어져 제대로 보았는지, 잘못 보았는지조차 그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게 루이제, 미쉘 그리고 아젤리아는 그저 당황과 황당 속에서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쩌적, 쩌저적……!
“됐어!”
“꼬륵!”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낼 정도로 뿌듯함에 가득 찼다.
자신의 힘을 믿은 것에, 또한 이뤄냈을 때의 성취감에 가슴이 뻐근해질 지경이었다.
‘그래, 돼야지! 나라고! 다크나이트라고!’
다크나이트라면 분명 가능할 거라고.
다크나이트의 배경 설정이 옳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가장! 완벽한! 귀검사!’
물리적인 세계보다 한 차원 높은 시간의 문을 떠돌던 존재.
그 시간과 공간, 차원의 틈을 떠돌며 카잔 증후군조차 벗어난 완벽한 귀검사!
깨진 공간의 틈으로 디레지에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까지 확인하며 진성은 쾌재를 불렀다.
이제 오염은 끝이라고 봐도 좋다.
무엇보다 현시점 유저는 스스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퀘스트 컷씬으로 나오는 거니까. 피하거나 하는 건 불가능해. 무조건 디레지에한테 끌려들어가는 수밖에 없는-.’
쩌적, 쩌저저적…….
“-응?”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을 복기하던 진성의 귀에 기이한 소음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조금 전에 들은 것과 똑같은 소리.
시공간이 갈라지는 소리, 차원의 틈이 생기는 소리.
“꼬르, 꼬르르륵?!”
문제는 그 소리가 진성 자신의 뒤에서부터 들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진성은 곧장 몸을 돌렸다.
어느새 원래의 흰자위, 검은자위로 돌아온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야?! 어떻게-.”
자신의 눈앞에 차원의 균열이 생겼다.
지금 당장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스킬? 안 된다. 아이템밖에 없다.
텔레포트 포션을 떠올린 진성의 손은 곧장 [인벤토리]로 향했으나 그 동작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오염을 명백하게 확인해 줄 카드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
“미친-.”
차원의 틈은 이미 진성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차원의 틈 앞에서는 디레지에가 유저를 낚아챈 직후 균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왜-.”
격렬한 전투 직후 힘이 빠졌다지만 사도 디레지에를 빨아들이는 차원의 인력을 진성이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휘이이익…….
바람이 일었다.
그 시점에서 이미 진성의 모습은 사라진 후였다.
갈라졌던 공간만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 자리에 아젤리아의 시선이 던져졌다.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그저 황폐화된 고통의 마을, 레쉬폰이었다.
* * *
“끄아아아앗!”
“꼬르르르르륵!”
진성과 타꼬는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적어도 지금 순간만큼은 유저에게 자신의 말이 대화창으로 보일지, 어떨지 따위의 걱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꼬르, 꼬로르륵-.”
“괜찮아, 괜찮을 거야, 타꼬!”
진성은 그 와중에도 타꼬를 진정시키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해 본 적도 없으나 낙하산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없이 몸이 회전 중이었으나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명확했다.
‘검보랏빛- 통로? 통로 같은 거다. 그냥 무작정 떨어지는 게 아니야. 낙하하는 게 아니다.’
몸이 흔들리며 휘청거리는 것 또한 어딘가로 내던져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무엇보다 차원의 균열 속으로 들어온 진성 자신과 타꼬가 ‘온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상태라면.
‘힐더가 디레지에를 차원의 균열로 흡수시켜버린 건 육신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함이었어. 매 순간마다 갈기갈기 찢긴 디레지에가 그 생명력으로 다시 형체를 만들려 하면 또 분쇄해버리고, 쪼개버리고…… 차원의 균열은 그런 곳이다. 내 몸 정도는 말 그대로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을 거야.’
괜찮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분명 매우 위험할 가능성은 존재하나 적어도 지금 당장 진성 자신과 타꼬가 뼛가루로 산화될 일은 없다고 볼 수 있지 않을지.
“꼬, 꼬륵!”
“이런 젠장, 그래도 충격에는 대비해!”
진성이 겨우 생각을 가다듬을 즈음 보이는 것은 돌로 된 벽이었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고, 던져지는 와중에 돌로 된 벽에 부딪힌다면 그 충격은 결코 작지 않을 터, 진성은 우선 머리를 감쌌다.
‘설마 저 벽이 안전망 같은 거고, 뚫고 나가자마자 온몸이 펑-. 우웃?!’
불안한 상상만이 맴도는 가운데, 진성은 실제로 자신의 몸이 핑그르르, 돌아버리는 것을 느꼈다.
착…… 그러곤 곧 상하좌우가 모두 뒤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벽이라 생각한 돌들을 어느새 진성 자신이 밟고 선 상태였으니까.
“으, 응?”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분명 단단하게 딛고 선 느낌은 들지만, 돌들로 이루어진 바닥은 듬성듬성 메워지지 않은 부분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틈으로 보이는 게 있었으므로 진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귀검 유저다. 내 ‘아래층’ 같은 느낌으로 여귀검 유저가 있는 건가. 아니, 그러면 여기는…….’
진성의 하방으로부터 꽤 떨어진 공간에 여자 귀검사 유저의 모습이 보였다.
움직이진 않고 있었으나 애당초 디레지에 퀘스트의 말미가 어떤지를 기억하자면 이 공간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1차 각성 퀘스트 장소야.’
유저들이 각 직업별로 겪게 되는 각성의 장소.
해당 캐릭터와 연관된 기억, 과거의 트라우마 등을 보여주며 더욱 강인한 의지를 갖도록 만드는, 일종의 이벤트성 던전.
‘그래서 이상한 거지. 1차 각성은 50레벨 때 하는 건데. 그래서 디레지에 관련 퀘스트 렙제가 50인 거고.’
진성 자신의 레벨은 여전히 38이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진성은 기대하는 중이었다.
애당초 필요 레벨 50의 던전에 입장할 수 있던 것, 자신의 레벨과 상관없이 던전에 드나들거나 유저의 퀘스트에 난입할 수 있었던 경우에 비추어보아…….
‘혹시 나도?! 근데 다크나이트는 어차피 각성이 아니라 자각 같은 개념인데-.’
기대감을 품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나 진성은 곧 생각을 멈춰야만 했다.
“캬아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악!?”
“꼿- 꼬르륵!”
차원의 균열 안에서 울리는 괴성. 그것은 비명이라고 해야 할까, 고함이라고 해야 할까.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소리에 진성의 고개는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았다.
“디……레지에.”
차원의 균열 속에서 찢기고 다시 재생되기를 반복하기 시작한 디레지에의 모습을.
죽지 않는 육체.
디레지에 그 자신조차도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죽을 수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플레인:아라드를 통틀어 완벽무결한 불사不死의 몸.
“캬아아아아, 인가아아아안! 네 녀석을 용서할 것 같으냐!”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말 그대로 원한이 담긴 디레지에의 비명에 기세가 눌렸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온다? 내,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어!?’
분쇄되고 재생되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디레지에는 아주 서서히 진성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진성이 서 있는 곳은 돌로 포장된 바닥 같은 느낌의 장소였다.
그리고 디레지에가 고통을 겪는 장소는 그 어떤 디딤대도 없는, 말 그대로 차원의 균열의 허공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진성이 서 있는 돌바닥에서부터는 대략 십여 미터나 떨어져 있을까?
진성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느리지만 저 속도라도 여기까지 도달하게 되면…….’
진성 자신이 서 있는 돌바닥이 만약 차원의 균열로부터 몰아치는 힘을 막아주는 방어장치라고 했을 때, 디레지에가 이 돌바닥까지 꾸역꾸역 다가오게 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모험가!”
하물며 물불 안 가리고 눈앞의 모든 걸 없애겠다 다짐하는 디레지에의 각오는 진성의 피부에 와닿을 정도가 아닌가!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로터스의 가시 촉수>를 꺼내어 들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 테니까.
“너의 뼛가루 하나마저도 감염되어, 영혼마저 녹이는 고통을 반드시 선사할 터이니-.”
“<다크 볼>!”
진성은 암속성의 회전 검기를 날려 보냈다.
공격이 먹힐지에 대해선 반신반의했으나 다행이라면 몸이 갈기갈기 쪼개진 디레지에는 그 공격에 결국 밀려나기 시작한 것.
진성은 돌바닥의 끄트머리까지 다가가 그대로 검을 찔러넣었다.
“<다크 소드>!”
역시 레벨 35에 새롭게 배운 스킬이자, 찌른 검 끝에서 어둠의 기운을 폭발하게 만드는 공격.
최대한 디레지에가 근처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발버둥을 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키이이잇, 이 녀석, 모험가! 네 놈만큼은-.”
“자, 잠깐만! 디레지에!”
진성은 디레지에를 향해 소리쳤다.
디레지에의 말을 잠시나마 끊은 시점에서, 진성은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저기, 잘 모르나 본데, 나는 아까 그 사람이 아니야!”
나는 모험가가 아니다.
그러니 나를 공격하지 말라.
진성의 계획이었다.
디레지에는 여전히 조각나고 다시 붙여지는 와중에 진성을 보았다.
그리고 제6사도, 더러운 피를 흘리는 자는 외쳤다.
“그딴 건 관계 없어! 반드시 죽인다, 인간 녀서어어억-!”
“아.”
진성의 계획은 곧장 산산조각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