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5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59화(59/212)
059
언더풋에서 던전 지역:노이어페라 방면을 향해, 궁극적으로는 첫 번째 던전인 ‘황금굴’을 향해 나아가던 진성은 갑작스레 울리는 진동에 움찔거렸다.
“음? 뭐지?”
“꼬륵?”
[인벤토리] 안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반응에 진성은 곧장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찾아냈다.그리고 이내 마법사 길드로부터 받은 비상 연락용 코인임을 깨달았다.
베히모스에서 진성이 레니와 함께 탈출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아이템. 진성이 샤란에게 연락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샤란으로부터의 연락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는 사용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진성으로선 조금쯤 놀란 것이었다.
“샤란 님이…… 무슨 일 있나?”
“꼬륵! 꼿!”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기 귀찮은데, 에잉…… 타꼬! 일단 챙길 수 있는만큼 최대한 챙겨놔. <문어발 갈퀴 공격>.”
진성은 타꼬의 늘어나는 문어발들을 활용해 금화를 챙기게끔 지시했다.
갈퀴들을 이곳저곳으로 뿌려대며 금덩이를 쓸어 담는 타꼬와 그런 타꼬의 곁에서 나름대로 황금을 챙기는 행위는 일찌감치 마쳐야만 했다.
적당량의 금을 챙기자마자 진성은 다시금 텔레포트 포션을 들이켜며 마법사 길드로 복귀해야 했으니까.
─────────────!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의 사무실로 복귀한 진성은 샤란을 만나러 가려 했으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진성 씨. 이거…… 이거 뭐예요? 알고 있었어요?”
이미 샤란은 진성 자신의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진성은 평소보다 다소 조급하게 물어보는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응? 뭐를요?”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검은 질병의 흑랑> 세트였으나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 장비들 말이에요. 진성 씨가 나한테 맡긴 장비들.”
이 아이템은 디레지에의 기운이 묻어있는 것은 맞다.
레벨 제한 등의 이유로 진성이 아직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템의 입수 방법이 진성 자신이 유저일 때와 달랐다.
던전을 여러 번 클리어하며 보상이나 전리품 등으로 획득한 게 아니라, 진성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 방어구’, 구체적으론 하늘성 당시 사용하던 판금 방어구 세트를 디레지에에게 전달.
이후 디레지에가 저레벨 아이템이었던 해당 판금 장비에 자신의 기운을 묻힌 후 돌려주었던 것.
‘……그래서 [인벤토리]를 통해 봐도 뭔가 아이템의 그림이 좀 달랐다거나, 정확히 그 도트들이 기억은 안 나지만 하여튼 내가 아는 것과 쪼~꼼 다르다는 느낌은 있었지. 그래서 혹시 모르니 확인차 샤란 님께 부탁을 했던 건데…….‘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 지금 샤란의 태도를 어떤 식으로 이어봐야 할지는 진성에게도 떠오르는 생각이 없는 셈이었다.
단순히 필요 레벨을 달성하는 것 외에 진성 자신이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또 무엇이 필요할지.
그것이 정화와 관련된 일인지, 활성화와 관련된 일인지 진성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고 따라서 그는 마법사 길드장인 샤란에게 부탁을 했던 게 아닌가.
그런데 갑작스레 이런 사태라니?
“표정을 보니 몰랐던 것 같은데…… 맞아요?”
“네, 엄밀히 따지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후우우…… 그렇겠죠. 만져나 봐요.”
당황하는 진성을 보며 샤란은 책상 위에 나열된 아이템들을 가리켰다.
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은 질병의 흑랑> 세트 중 하나에 손을 대었다.
“우와아아아악!?”
그러곤 비명을 지르며 손을 떼어야만 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진성을 보며 샤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큰 사건인지 짐작은 돼요?”
걱정과 우려 섞인 그녀의 목소리도 진성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콩닥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검은 질병의 흑랑> 장비들을 바라봐야 했다.
‘뭐야, 이건? 미친!’
아이템에 손을 대자마자 머릿속에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진성…….]진성은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을 깨닫자마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 수 있었다.
‘……디레지에가 말했던 게 이거구나. 배신하면 어떻게든 추적할 거라고- 자신의 추적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했던 게 이걸 말하는 거였어!’
차원의 균열에서 디레지에가 진성 자신에게 했던 말이 있다.
힐더에게 복수하라, 반드시 그 계획을 뒤틀어라.
만에 하나 자신의 도움을 받고도 그러지 아니하면 어떻게든 진성 자신을 추적하여 감염시키겠다는 것은 단순 협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 *
샤란은 턱짓으로 아이템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건데요?”
“어떻게 하냐뇨?”
“지금이라면 파괴할 수 있어요. 진성 씨가 오기 전에 검사해보니, 아직 완전히 발달한 자아도 아니고…… 디레지에라기보단, 디레지에의 조각? 디레지에의 파편? 아니, 그보다도 더 작은 단위의…… 디레지에의 부스러기? 그 정도밖에 안 돼요.”
디레지에의 기운이 묻어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디레지에의 본체는 아니다.
하물며 힘 또한 강하지 않으니 큰일로 확대되기 전에 없애자는 게 샤란의 의견이었다.
정확히는 벨 마이어 공국의 마법사 길드장의 의견인 것.
“디레지에의 본체……는 아니라는 거죠?”
“진성 씨가 말했잖아요. 본체였으면 진성 씨는 물론이고 나도 진작-.”
“아니, 아뇨, 그러니까 그…… 본체와 연결된? 그런 개념에서 확인을 하셨는지 여쭙는 겁니다.”
다만 진성은 아직 확인하고픈 게 남아있었다.
눈앞에 있는 디레지에의 기운은 과연 무엇인가.
제6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와 의지, 생각 등이 완전히 연결된 상태일까.
아니면 완전히 독립된 상태일까.
“내가 진성 씨를 왜 불렀겠어요.”
“아, 그, 그렇죠. 샤란 님은 디레지에를 만난 적이 없으시니-. 크흠, 확인해보겠습니다.”
샤란의 반응에 진성은 괜스레 민망하여 서둘러 움직였다.
<검은 질병의 흑랑> 세트 중 하나에 다시금 손을 얹은 순간, 진성의 머릿속으로 그의 목소리가 스며들어왔다.
[크크…… 어리석은 것으로 고민하고 있군.]거북한 목소리였으나 그 말에 담긴 뜻은 진성이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외부의 대화도 들을 수 있군. 이놈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반드시 접촉 대상자여야만 하고. 또한…….’
어리석은 것으로 고민하고 있다, 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6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에 대한 배경을 알고 있는 진성이 그냥 넘길 리 없었다.
“다른 개체구나. 차원의 균열에 있는 디레지에와 연결된 게 아니야. 디레지에의 성격, 목소리, 뭐 그런 건 닮았겠지만. 지금 이 대화는 균열에 있는 디레지에한테 전달되는 게 아니지?”
[그렇다. 진정한 나, 균열에 있는 나는 나이자 내가 아닌 존재.]“역시.”
자신의 영향력을 함부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다.
힘이 부족하다는 점은 둘째치고, 애당초 검은 질병의 기운이 외부로 퍼지지 않는다는 시점에서 이미 이곳에 있는 기운은 차원의 균열 내의 ‘본체’ 디레지에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봐야하는 것.
무엇보다 이미 분노에 가득 찬 디레지에가 아니었던가.
만에 하나 차원의 균열 안에 있는 본체와 연결되었다면?
샤란의 손길이 닿자마자 길길이 날뛰었을 터, 결국 지금 이런 식의 언행은 보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이 정도로 자만하는가, 진성. 힐더의 계획을 뒤틀어버릴 인간이 이런 것으로 자만했다간 힐더에게 곧장 죽임당할 것 같은데……. 크크]그 외에도 지금 진성이 듣고 있는 말투만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디레지에이자 디레지에가 아닌 것.
스스로 말하길 차원의 균열 속에 있는 디레지에와는 별개의 존재라 칭하는 만큼, 어쩐지 그 말투 또한 다르지 않은가.
‘근데……뭐랄까.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복수심에 불타던 균열 속 디레지에와는 분명히 다르다.
다소 장난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다 심지어 차분함이나 여유까지 느껴지는 농담 같은 발언을 한다?
[할 말도 잃었나 보군. 균열 속의 내가 들었다면 당장이라도 균열을 찢고 나와 네 녀석을 없애려 할 거다. 크크, 하긴 그 전에 균열 속에서 찢어지고 있는 내 몸부터 챙겨야 하겠지만-.]“아아!? 아! 기억났다!”
“까, 깜짝이야! 진성 씨? 뭐가 기억나요?”
샤란은 갑자기 소리치는 진성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성은 민망한 듯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이곤 다시 <검은 질병의 흑랑>세트에 손을 대었다.
그러곤 물었다.
진성 자신이 느낀 위화감 또는 기시감.
균열 속에서 날카롭게 성격을 뻗치던 디레지에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자아라 해도 할 말이 없는 디레지에.
진성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너…… 예전 디레지에구나?”
진성의 기억으로 따지자면, 가장 최근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업데이트와 함께 디레지에는 캐릭터의 성격이 완전히 개편된 바 있다.
차원의 균열에서 길길이 날뛰던 디레지에가 그러한 패치가 반영된 성격이라 본다면 지금 눈앞의 ‘또 다른 디레지에’는 개편되기 이전의, 과거의 디레지에와 유사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는 뜻!
[클클클……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존재는 힐더, 그년 하나만으로도 족한데.]‘농담 레벨은 뭔가 좀 올라갔지만…… 불사의 몸을 믿고 여유를 부리는 이 언행은……확실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최신 패치 이전의 과거 디레지에의 성격, 바로 그 모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터.
진성은 샤란에게 물었다.
“샤란 님, 이 장비에 묻은 디레지에의 기운, 이 자아가 점차 강해질까요?”
“글쎄요…… 디레지에의 기운이 일종의 기생형이고 장비가 숙주라고 본다면- 장비 자체의 한계가 있으니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게 내 의견이기는 한데 그럼에도 분명 성장하긴 할 거예요.”
“음, 샤란 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면 믿을 수 있어요. 그럼 제가 사용하겠습니다.”
진성은 <검은 질병의 흑랑> 세트를 [인벤토리]에 주섬주섬 넣기 시작했다.
샤란은 다짜고짜 행동하는 진성에게 말했다.
“자, 잠깐만요.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그렇게 쉽게 결정할 게 아니라고요. 원래부터도 말이지, 진성 씨가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길드원들을 소집해서 제압, 구속하거나! 청문회까지 열어야 하는 큰 문제라고요. 알아요?”
사도의 자아, 그 기운이 묻은 장비.
지금까지 존재치 않았던 물건이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일으킬지조차 예견할 수 없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해당 물건을 가져온 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구속, 심사를 몇 날 며칠이나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마법사 길드가 하는 일들이 공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모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녀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샤란 님은 아무도 부르지 않았잖아요. 제가 복귀했을 때, 제 사무실에 계셨던 건 샤란 님 혼자뿐이었죠.”
따라서 진성은 샤란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신뢰감을 더욱 크게 구축할 수 있는 셈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어떤 방향으로 튕겨 나갈지 모르는 골칫거리가 분명함에도, 그녀는 홀로 진성 자신을 기다렸다.
“그, 그거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믿어주셨다면, 지금도 믿어주세요.”
그 모든 일이 진성 자신에게 약속했던 무제한의 신뢰가 바탕이 된 것이라면.
진성은 샤란을 향해 말했다.
샤란은 휴,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누가 뭐래요? 안 믿었고, 안 믿을 거였으면 진성 씨도 이미 유치장행이라고.”
“음? 근데 방금 큰 문제라고-.”
“큰 문제니까…… 그만큼 자각을 가져달라는 뜻이었어요. 어차피……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대처할 수 있는 사람도 진성 씨일 테고 말이죠.”
“아하, 흐흐, 역시 샤란 님이시라니까. 분석력이 아주 정확해요, 그냥.”
진성은 엄지를 치켜들며 웃었다.
능글맞은 그 태도에 결국 샤란 또한 한숨 섞인 헛웃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기묘하게 엮어나가는 걸 잘한단 말이야, 우리 비대위원은.”
“이게 다~ 같이 잘되자고 하는 일이니까요. 흐흐, 그럼 전 하던 일 좀 마저 하고 오겠습니다! 아참, 아직 뭐 천계에서 비행선 떨어진 거 없죠?”
“아, 그 이야기나 자세히 해주고 가요. 또 다음에 일어날 일 같은 거죠? 이번엔 전염병이 아니라-.”
“네. 근데 샤란 님께서 특별히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오히려 제가 여쭤보고 싶은데.”
진성은 다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을 되짚으며 샤란에게 물었다.
천계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NPC로 인하여 천계의 실존 여부가 밝혀지고 마침내 교류할 가능성이 트였으나, 당장 이 스토리 시점의 유저는 천계에 가지 못한다.
“뭔데요?”
“반투족 이야긴 없나요? 북쪽 국경 근처로 반투족이 내려왔다거나…….”
당장 공국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국경 북쪽에서 벌어지는 반투족과의 마찰이기 때문이다.
평소 설산 등에 흩어져 사는 여러 부족들의 연맹, ‘반투’.
그들은 공국에 별다른 기별도 없이 그들의 터전인 설산을 내려와 국경 근처까지 대규모 이동을 개시한다.
‘실제론 문제가 터져서 그런 거였지만 어쨌든…… 지금 시점에서는 그 일을 아는 자가 없으니까.’
벨 마이어 공국의 여왕은 모험가, 유저에게 해당 일에 대한 조사를 먼저 의뢰하고, 유저는 그 일을 모두 처리한 후 마침내 천계에 오르게 되는 것.
천계에서 내려오는 NPC에 대해 진성이 조급하게 굴지 않은 것 또한 위와 같은 이유였다.
따라서 진성은 움찔했다.
“반투족……? 아뇨, 전혀. 여왕님께서도 그런 말씀은 않으셨고-. 공국의 군사 배치에 대해서까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저한테도 느껴진 게 없었는데요?”
현시점까지도 반투족의 움직임 그 자체가 없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진성의 머릿속엔 이미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오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