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6)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6화(6/212)
006
진성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세를 더욱 낮춰야 했다.
어쩐지 죄를 지은 기분마저 드는 것은 도대체 어째서인지.
‘뭐야? 뭐야, 이거? 진짜 세리아-. 진짜 세리아야. 그리고 화염의 비노슈…… 잠깐만. 그러면 저 뒤에는-.’
세리아의 뒤를 따라오는 것은 남자 귀검사였다.
남자 귀검사 관련 모든 직업에 이미 아바타를 다 입혀놓은 진성에게 있어선, 오히려 뾰족머리를 자랑하는 남자 귀검사 특유의 기본 외형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남귀검사 도트 다시 찍기 전 모습이 생각나는데. 약간 저런 느낌으로- 아니, 아냐. 자꾸 현실도피 하지 말고! 제대로 생각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정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임을, 지금 당장 자신이 처했고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임을 곧장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패닉에 빠지기 가장 쉬운 순간이었음에도 진성은 또렷하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교육 공대 중에 이런 적이 한두 번이야? 패닉에 빠졌을 때 최악은 최선의 상황을 기대하는 거다. 그래선 안 돼. 최악의 상황을 최악의 상황으로 인정하고-. 후퇴 후 재진입할 때가 레이드 성공률이 가장 높았음을 떠올려라.’
어떤 의미로는 패닉에 빠질만한 상황에서의 대처에 충분히 단련이 되었기 때문일까.
진성은 자신이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던져졌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런 관점에서부터 지금의 상황을 해석한다면, 지금 이 자리는 어디인가.
‘캐릭터 만들면 처음 겪는 그 시나리오 퀘스트야. 그란플로리스에 불이 나서 어쩌고저쩌고 처음 겪는 거기……라고? 잠깐, 거기? 거기라면 근데 내가 왜? 여기 있는?’
현실을 현실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마자 진성의 두뇌는 급속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점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이 캐릭터를 처음 만들고 자연스레 겪는 시나리오 퀘스트의 일부라면?
홀로 숲속에 뛰어 들어간 세리아를 구해달라는 라이너스의 부탁으로, 유저가 처음 만든 캐릭터, 즉, ‘모험가’는 그란플로리스에 돌입, 그곳에서 세리아와 만나 화재의 원인 및 또 다른 문제 등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겪는다.
즉, 지금이 그 도중이라고 했을 때?
‘시나리오 퀘스트에…… 내가 있는 건가? 아니, 그러면 뭐가 어떻게…… 나는? 시나리오 퀘스트는 그냥 1인 전용일 텐데. 내가 있으면 안 되는-. 아, 내가 보이지 않나? 그게, 어…….’
시나리오 퀘스트에 진성 자신이 들어와 있다?
생각이 얼기설기 폭풍을 치는 와중에도 진성의 귀는 또렷하게 듣고 있었다.
거리는 제법 멀다지만 분명하게 들려오는 세리아와 비노슈의 대화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비노슈 님이 계속 이렇게 막고 계실 순 없어요……. 케라하 님이 힘들어하고 계세요.”
“케라하……. 너희 케라하를-.”
“저희가 비노슈 님을 돕게 해주세요. 비노슈 님께서 케라하 님의 곁으로 돌아가실 수 있돌고 힘을 보탤게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확실했다.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비노슈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화르륵, 얌전하던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진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바꿔 말하면 지금은…… 그래. 이제 인게임 내에서의 ‘대화’는 끝나고-.’
전투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세리아의 앞으로 순식간에 남자 귀검사가 달려들었다.
그냥 ‘평타’만 세 번 누르는 기본 콤보 정도로도 대충 비노슈는 상대할 수 있는 법.
특별히 좋은 아이템을 장착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던전앤파이터 ‘시나리오 퀘스트 던전’의 난이도는 쉬우니까. 그래…… 그렇다면 분명 지금, 나는.’
던전앤파이터 게임 속에 있다.
진성 자신이 알고 있는 던전앤파이터의 세계관, 그 배경이 되는 공간.
다만, 그의 기억과 다른 점이라면 던전앤파이터의 벨트 스크롤 액션 게임이 아니라는 것.
‘게임 속…… 말하자면-. 게임 속으로 빙의해 버린 나는-.’
던전앤파이터 세계관, 아라드 안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지닌 1인칭 시점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진성 자신의 눈앞에서, 바로 그 ‘평타 세 번 누르는 기본 콤보’조차 화려하고 무섭게 보이는 상황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하라는 거지?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진성이 생각하는 사이 화염의 비노슈는 쓰러졌다.
그다음이라 할 것도 없었다.
비노슈는 진성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불을 꺼주고, 세리아와 ‘모험가’, 즉, ‘유저’는 다음 던전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으니까.
‘여기서 내가 튀어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 그러면……지금 이게-. 적어도 ‘저 사람’ 한테는 게임 속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튀어 나간 내가 보이는 건가? 그렇게 되는 거야?’
시나리오 퀘스트 도중 알 수 없는 유저 또는 NPC가 개입했다, 라는 개념?
그런 게 성립할 수 있을까?
진성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무작정 도박수 따위를 두는 게 아니다.
어쨌든 다크나이트의 몸으로 빙의가 되어버린 이상 분명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니, 허튼짓 않고 그 일만을 처리한 후 다시 원래의 세계로, 진성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는 게 시급하지 않겠나.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 뭔지 모르지만, 이걸 끝내면-.’
뇌를 휘젓는 혼란 속에서 진성이 찾은 것은 한 줄기의 빛이었다.
『부집게로서의 사명을 마쳤을 때,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자리로 돌아갈 지로다.』
‘다시 컴퓨터 앞일 거야. 응, 분명 그럴 거야.’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렇다면 결국 뭘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하긴 해야 한다는 뜻.
진성은 입술을 지그시 물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숲의 더욱더 깊은 곳을 향해서, 더욱 어두운 장소를 향해서.
즉, ‘던전:어둠의 선더랜드’를 향해서.
* * *
진성에게는 두 사람이 그저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아마 저게 진짜 유저라면…… 진짜 컴퓨터 앞에서 던파를 하고 있는 게이머라면-.’
던전 선택 지도로 잠시 화면이 변한 후 어둠의 선더랜드를 클릭하여 입장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게임을 통해서라면 거의 일순간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변화를, 지금 진성 자신은 이렇게 일일이 뒤쫓고 있는 중인지.
어쨌든 ‘던전:어둠의 선더랜드’에 돌입했음을, 진성에게서는 제법 멀리 떨어진 존재들 또한 알려주는 중이었다.
“구울, 이미 죽은 망자들이에요. 그란플로리스에 어째서 이런 일이…….”
세리아의 중얼거리는 소리 또한 진성에게는 들렸다.
진성은 그들의 뒷모습을, 정확히는 우측 후방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남귀검사가 움직인다. 역시, 이게 게임 그대로라면. 세리아와의 대화를 할 즈음에는 컨트롤이 되지 않았겠지. 이제서야 움직이는 거야.’
남자 귀검사 캐릭터가 좀비, 구울 몬스터와 전투를 치르는 모습을 진성은 차분하게 살폈다.
이런 여유를 갖는 합당한 이유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던전앤파이터의 벨트 스크롤 액션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진행된다.
던전의 구성 방식에 따라 방향이 다를 때도 있지만, 대체로 좌에서부터 우로 나아가는 셈이다.
‘즉…… 저들의 우측 후방에 있는 나는-. 적어도 저 유저의 게임 화면에는 보이지 않을 거다. 모니터로 보이는 맵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을 테니-.’
이것이 던전앤파이터 게임 속이라면.
저 남자 귀검사가 정말 ‘유저가 컨트롤하고 있는 게임 속 캐릭터’라면.
해당 ‘유저’의 모니터 화면 속에는 진성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터.
“……후우.”
진성은 검게 변해버린 자신의 양쪽 팔뚝을 번갈아 가며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상완까지 새까맣게 변해버린 왼팔.
그리고 역시 손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검어진 오른팔.
카잔 증후군을 해소하여 카잔에게서 벗어나는 대신 얻게 된 일종의 흉터이자 흔적.
왼팔 상완과 왼팔 손목 그리고 오른팔의 상완, 손목에 있는 누런색 ‘귀수 구속구the Demon Shackle’의 차가운 감각까지.
분명한 반응이 느껴지는 신체였다.
꿈일 리가 없다. 이것은 현실일 것이다.
“……근데 내가 알고 있는 다크나이트랑 미묘하게 다른데. 원래 오른팔에는 손목 부분에만 있지 않던가? 이 카잔 증후군 흉터 같은 거무튀튀 피부도 미묘하게 더 늘어난 것 같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신체가 되어버린 캐릭터 배경 설정에 집착하는 것 또한 진성다운 면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캐릭터 티어도 말이지. 기왕이면 다른 거, 특히 내가 주캐처럼 쓰는 것에다 빙의를 딱 시켜줬으면 얼마나 좋냐고. 뭐, 다크나이트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아참, 이거 나중에 네오플에 말하면 어떻게 거래 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신박하고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주고 전부위 20증폭 확정권 같은 거 달라고 하면 들어주지 않으려나? 으힛.’
그러나 반쯤은 농담처럼, 반쯤은 너무나 무거워진 현실에서 잠시 눈을 돌려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터.
진성이 여유 아닌 여유를 부릴 동안에도 남자 귀검사와 세리아는 착실히 나아가는 중이었기에, 진성은 황급히 몸을 움직여 둘을 따라잡아야 했다.
‘근데 게임 빙의? 라고 해야 하나, 이거…… 너무 불편한데. 미니맵 같은 것도 딱 있고, 응? 이 방에서 다음 방으로 가는 길목에는 닫힌 문이 샤라랑~ 하면서 열리는 그런 느낌으로 가이드가 딱 되어야 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남자 귀검사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장소도 진성에게는 그리 특별하게 보이지 않았다.
울창하고 빽빽한 나무가 그곳에는 조금 적다, 같은 느낌이 전부라고 해야 할까.
‘유저였으면 바위나 수풀 약간 있고…… 그냥 평평한 잔디밭 느낌에 더 가까운 정도로 보이고 있으려나.’
머릿속에 드는 여러 상상을 확인할 길은 역시나 없다.
그리고 이제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지팡이를 든 구울? 그리고 저건……. 요정들의 마법진?”
세리아와 유저는 마침내 ‘던전:어둠의 선더랜드’의 최종 보스이자, 사실상 캐릭터 생성 후 첫 번째 시나리오 던전의 마지막을 맞이하려는 중이었으니까.
‘남귀검사님, 빨리 죽이라고요. 그리고 세리아가 정화한다고 나서면서~ 끝나면 나도 이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진성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두 손을 모았다.
남자 귀검사의 특별할 것 없는 컨트롤 실력으로도 굴 구위시는 금방 처치할 수 있었다.
물론 스토리 상 곧장 사망하지 않는다.
마법진의 힘을 얻은 굴 구위시는 계속해서 부활을 거듭하며, 그것을 막기 위해…….
“제가 저 구울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아요. 모험가님을 믿고…… 숲의 어둠을 정화해볼게요.”
세리아가 나서니까.
‘그래요, 세리아 씨! 잘한다! 당신 원래 요정이잖아! 아니, 실제로는 요정보다 더 대단한 이슬-. 하여튼! 빨리 정화하고 끝냅시다!’
세리아는 자신의 마력으로 요정의 마법진과 얽히며 공중으로 부양한다.
그리고 세리아가 그렇게 마법진을 정화하는 사이, ‘유저’가 할 일은 하나.
마법진을 정화하는 세리아를 보호하는 것.
‘굴 구위시를 다시 죽이는 거지. 자, 남귀검사님!’
구체적으로는 굴 구위시를 처치하는 것!
진성은 이제야 모든 일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얼……른?’
따라서 진성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남자 귀검사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놀랄 만한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어라?”
굴 구위시는 남자 귀검사 유저에게 다가오지 않은 채, 요정의 마법진을 향해 쥐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진성은 들었다.
“아윽!”
세리아의 비명이었다.
진성으로서는 더없이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