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66)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66화(66/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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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란은 곧장 마법사 길드원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 와중에도 진성을 감탄하게 만든 점이라면 샤란은 역시나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는 점.
“천계에서 왔다는 주장을 했다고요?”
“예, 맞습니다. 마가타의 형태도 그렇고 완전히 처음 보는 것이라- 카곤 님께서도 당황하여 길드장님을 찾으시니-.”
“알겠어요. 가죠. 앞장서세요.”
“예, 옙! 가시죠!”
샤란의 답변에 오히려 마법사 길드원은 허둥지둥 진성의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샤란은 그의 뒤를 따르다 잠시, 뒤를 돌아 진성을 보았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진성은 자신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샤란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반투족의 움직임으로 인한 공국의 갑작스러운 긴장 사태.
돌연 천계에서 온 비행선과 천계인이라 주장하는 자의 등장.
혼란의 한복판에서도 진성의 확신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듯.
샤란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곤 곧장 사건의 현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진성은 그대로 의자에 기대었다.
흑구는 웃음을 흘렸다.
[클클클, 가지 않는 건가. 천계라, 바칼 녀석이 도망갔던 그곳과 마침내 교류가 시작되려는 순간인데.]“뭐, 나야 다 알고 있던 거니까. 굳이 지금 서두를 필요가 없지.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한 것도 있고.”
[……여기까지 네 생각대로라는 건가, 진성.]흑구의 물음에 진성은 특별히 답하지 않았다.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할 뿐.
진성은 주섬주섬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들었다.
그것은 [오염된 카드]였다.
냉룡 스카사를 설득하여 대화의 자리에 앉힌 이후에도.
그가 진성 자신의 말을 들으며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고, 또한 진성이 나름대로 협조의 약속을 받아낸 이후에도.
진성은 마음을 놓지 않았다.
이번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에선 또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을지, 냉룡 스카사 이후부터 천계에 도달하기 전까지 이어질 순간 중 진짜 오염의 요소는 어디에 숨어 있을지.
무엇보다 디레지에가 차원의 균열에서 빠져나와 유저를 끌고 가려던 순간처럼 악질적이고 난이도가 높은 오염이 다시금 존재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한시름 놓는 동시에 곧장 움직이려던 진성이었건만.
‘한 방에 카드가 나왔다……. 오염이 잡혔어. 설산 쪽과 관련되어서는 더 이상 ‘부집게’인 내가 나설 일이 없다는 뜻이겠지.’
스카사와 관련된 일을 마치자마자 너무나 쉽게 카드가 나와버리지 않았던가.
팔랑거리며 떨어진 카드를 무사히 낚아챘음에도 당시의 진성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안도감도 있었으나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오히려 의문인 동시에 진성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줄 뿐.
‘무엇보다 이 카드에 적힌 문구……. 그리고 그 이후 벌어졌던 일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스카사(오염)]지금까지 모아뒀던 여러 오염 카드 중 생물이 아닌 것도 있었고, 아예 개념이 다른 것도 있었다지만 이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흑구가 말했다.
[크크크…… 그래서 저 흑요정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을 건가. 냉룡과 대화를 마치고 만났던……. 정체 모를 녀석들에 대해서.]그리고 그 직후 진성 자신에게 벌어진 일은 또 어찌 된 일인지.
진성이 진짜 고민하게 되는 이유.
진성은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그때를 생각했다.
* * *
콧김마저도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의 한기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진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진정시켰다.
[나의 주인이…… 고작 그런 하찮은 것들에게 당했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이냐.]“당신이 아라드로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의 일이지. 내가 알기론 불과 30년 안팎의 차이밖에 안 날 건데-.”
“드, 들어 보라고! 듣기로 했잖아! 당신이! 당신과 당신의 형제들이 어째서 아라드로 내려왔는지! 폭룡왕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들을 필요 없다! 나의 주인께서는 이곳마저 정당하고 온전히 다스릴 능력이 있으신 분!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나와 나의 형제들이 우선 이 땅을 점령하고 내 주인을 경배하도록 만드는 게 유일하고 확고한 목표임을 내가 모를 것 같은가!]스카사는 날개를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진성과 그가 본격적으로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 지 고작 10분도 되지 않아 자리가 깨지려는 순간.
“그럴 거였으면 왜 따로따로 보냈는데! 이 등신 같은 게! 니 주인이 그렇게 머저리야?”
진성은 외쳤다.
스카사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한밤중의 샤르나크 산 한복판 진성의 귀에 들리는 건 칼바람 소리와 흑구의 어처구니 없어 하는 음성뿐이었다.
[……클클, 얼어 죽게 생겼군.]진성은 퍼뜩 정신을 차리곤 다시 말했다.
“바칼이 왜 광룡을 보내고, 그다음 사룡을 보내고, 그다음 당신을 보냈는데. 처음부터 셋을 만들어 동시에 보낼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훨씬 더 완벽하게 아라드를 지배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스카사를 진정시키는 차분한 목소리.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흐름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다.
히스마, 스피라찌, 스카사가 어떻게 영향을 끼쳤으며, 유저의 입장에서 어떻게 상대해나가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크크…… 널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고 있나 본데.]진성은 흑구의 입을 다물게 만들곤 다시 말했다.
“바칼의 의도는 칼날을 연단하는 거야. 아주 작은 변수를 만들어 둠으로써, 힐더의 계획이 최종적으로는 깨지게 만드는 거라고. 그래서…… 바칼은 당신들을 순차적으로 내려보내 인간들 중 그러한 가능성을 지닌 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고 이제는 때가 되었어. 아마 그자가 곧 당신의 앞에 나타날 거다.”
[……그렇다면 나는 내 주인의 뜻에 따라……그 인간에게 바스러져야 한다는 것인가.]스카사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분노도, 당황도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는 체념에 가까운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또는 너무나 혼란스러워 힘이 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 최선을 다해 싸워야지. 부러질 칼날은 부러지게 되어 있으니까. 연단될 칼날이라면 그가 당신을 부러뜨릴 테고. 그게…… 당신들의 주인이 당신을 이 땅에 내려보낸 이유잖아.”
진성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스카사는 잠시 진성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그러다 불현듯 입을 열었다.
[흥미롭군. 그것이 내 주인의 뜻임을 너는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내 주인의 안위는……또 어찌 알았단 말인가.]스카사는 물었다.
진성은 그제야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를 알았다.
바칼의 진의, 그것에 대한 이해.
그리고 바칼의 사망 여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주인이 사망한 게 확실한가.
사망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켜야 할 최우선순위는 바칼의 의도와 지시일 터,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지.
‘으음, 온순해진 건 좋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이게 아닌데.’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할까.
진성 또한 입을 다문 채 고민해야 했다.
이대로 스카사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 그럴 필요는 없다.
스카사가 진성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움직이게끔 만들려면,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대화나 설득이 아니다.
진성이 원하는 건 냉룡 스카사가 <검은 악몽>에 잠식되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오염이 스카사를 잠에서 깨지 않게 만들고, <검은 악몽>에도 젖어 들지 않아 온순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면…….’
결국 진성 자신이 할 일은 그를 깨우고, 도발하고, 평온함을 유지할 수 없게끔 만들어 <검은 악몽>에 휘둘리게끔 만드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면 된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게끔 만들면 된다.
“나는…… 바칼과 싸워본 적이 있다. 물론 스카사, 당신과도. 광룡 히스마나 사룡 스피라찌와도 싸워본 적 있지.”
방법은 하나, 그의 기억을 헤집고 뒤섞는 것이다.
* * *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천 년이 넘는 나의 기억 속에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은-.]“아니, 잘 생각해 봐. 과거의 시간대에…… 당신은 나에게 죽은 적이 있어. 혹시 뭔가 떠오르지 않나? 냉룡의 투한당. 한기의 게르다.”
[얼토당토않군. 더 이상의 대화가 의미 없는 것이라면 나는 이곳에서 네 말처럼……음?]콧방귀를 내뿜던 스카사의 눈빛이 일순 변했다.
진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기억나지? 당신의 뿔, 그 뿔로 만든 피조물이잖아. 전격의 스테이츠가 당신을 보좌하겠답시고 날뛰기도 했는데. 바칼이 다른 용인들에게는 말하지 않았겠지만, 당신들, 거룡 셋한테는 진짜 의도를 말해주지 않았나? 나는 그런 걸로 알고 있거든.”
스카사는 비틀거렸다.
휘청이는 거구를 지탱하기 위해 앞발까지 쭉 내디뎌 버티는 냉룡을 보며 진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의미 없는 시도는 아니었다.
진성 자신은 이미 ‘게임’으로 겪어본 적이 있는 일이었으니까.
‘역시…… 시나리오 퀘에서 겪었던 일이었어. 타임 로드들조차 바로잡지 못해 결국 세계가 분리되어버린 거대한 사건, 그게 ‘지금 시점’에서는 통하는 거야.’
냉룡 스카사를 비롯한 세 마리의 거룡은 아라드로 내려왔다. 바칼의 명령에 의해서.
그러나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는 분명히 나온다.
세 마리의 거룡이 아라드로 내려오지 않고 바칼의 곁에 남아있는, 말하자면 ‘왜곡된 과거의 시간’을 겪게 되는 사건이 바로 그것.
그로 인해 향후 벌어지는 시간의 왜곡이나 세계의 분리 등 커다란 사건들이 있지만, 지금 진성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 현재 시점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과거’가 하나의 개체 속에 존재하고 있고, 자각하지 못한 그 점을 자극함으로써 혼란스럽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무슨 일이냐. 없던 기억이- 아니, 이건 나인가? 이건…… 이게 뭐지? 게르다? 나의 자식- 아니, 아니다!]진성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천계의 인간들이 대對 바칼 병기로 만든 ‘드래곤 슬레이어’는 어땠어? 직격당했던 기억은 나지? 그럼에도 넌 죽지 않았지만……. 그 이후 얼음덩어리인 네 녀석의 몸을 잘게 쪼갠 인간이, 모험가가 있었음은 기억이 나?”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와 환상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오염에 의해 온순해지기까지 한 스카사를 분노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아라드에 있었다! 나는 이곳, 설산의 지배자였다! 그럼에도 이건, 이 기억은 도대체…….]그리하여 마침내, 반응케 한다.
“천계 연합군은 지지 않는다. 블랙 로즈단도, 이터널 플레임도, 컴퍼니 도흐도…… 바칼은 이미 죽었어. 너는 과거 바칼의 곁에서 죽었고. 또한 바칼을 버리고 온 이곳에서 죽게 될 거야. 조만간.”
[나는……나는 누구지? 이것은 꿈인가? 그것이 꿈인가? 무엇이 현실인가!?]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감정이 전신을 지배하여, 마침내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만드는 충동, <검은 악몽>.
원래도 붉었던 스카사의 눈동자였으나 지금은 그 정도를 달리하고 있었다.
피에 물들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그의 눈동자는 선홍빛을 띠고 있었다.
그 눈빛이 진성 자신에게 완전히 꽂혔을 때, 진성의 손에는 이미 텔레포트 포션이 쥐어져 있었다.
[내가 곁에 있었음에도…… 나는 내 주인을 지키지 못했단 말인가. 이 하찮은 것들 때문에, 이 미물들 때문에!]진성은 재빨리 뚜껑을 따며 말했다.
“우리의 불꽃으로 불의 숨이 멎을 것이다, 스카사.”
[이노오오오오오옴-!]스카사는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아가리에 모여든 냉기의 브레스를 보며 진성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이미 진성의 눈앞에서는 카드가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중이었다.
“응? 뭐야, 이거-.”
─────────────!
“-으어어엇!?”
스카사가 내뿜은 브레스를 보면서도 진성은 끝끝내 앞으로 달려가 카드를 쥐었다.
그러곤 벌컥, 텔레포트 포션을 들이켰다.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는 조금 전까지 진성이 있었던 산자락만을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모든 걸 파멸시키고……너희의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주겠다!]후욱, 후욱, 후욱…….
<검은 악몽>에 휩싸이며 분노에 찬 스카사의 숨소리와 날갯짓 소리가 어우러졌다.
그는 밤하늘로 사라졌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이 바로잡혔다는 의미이자, 반투족에게 있어서는 악몽 같은 나날들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미쳐 날뛰는 냉룡을 피해 벨 마이어 공국의 경계까지 넘어야만 겨우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분명 거기서 끝이어야 했다.
진성의 예상보다 너무 이른 시점에 오염된 카드를 발견하긴 했으나, 어쨌든 카드가 나왔으니 끝나야만 했다.
그러나 텔레포트 포션을 삼킨 진성의 눈앞에 보이는 장소는 그가 가려고 했던 마법사 길드의 거처가 아니었다.
“……음? 여긴-.”
째깍…… 째깍…… 째깍…….
자줏빛에 가까운 공간에 있는 것은 누런 돌바닥.
아무것도 없어 보이건만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울리는 초침 소리.
진성은 이 공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모니터 너머로 보았기에.
“결국 균열을 일으켰구나.”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성은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유하는 작은 무언가가 보였다. 짙은 보랏빛을 띤, 생명체인지 기계장치인지 쉬이 판단할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진성이 익히 알고 있는 존재였다.
게임 던전앤파이터 설정상 ‘타임로드Time Lord’, 즉, 시간을 관리하고 시공간을 통제하는 존재 중 하나.
‘……클리파!’
진성의 눈앞에 있는 건 타임로드 중 하나, 클리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