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67)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67화(6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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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타임로드들은 아무렇게나 인간을 부르지 않는다.
진성이 유저로서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즐길 때에도 타임로드와 대화를 나눌 정도의 NPC, 즉, 현재 진성의 기준으로 ‘아라드의 인간’을 꼽으라면 사실상 시란 한 사람밖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모험가인 유저가 본격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이래저래 임무를 부여받는다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호출되는 경우는 있지만-.’
지금 진성 자신이 이 공간에 불려온 이유는 결코 그런 게 아닐 터.
무엇보다 조금 전 클리파가 진성 자신을 보자마자 한 이야기도 있다.
‘균열을 일으키는 장본인처럼 말했지. 으, 무슨 교무실 불려온 학생도 아니고! 요즘은 학생들도 이렇게 안 혼날 텐데!’
결국 이유에 대해서라면 대충 파악할 수 있는 셈이었기에 진성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리라.
“……나를 아는 눈치로군. 처음부터 그 육체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클리파는 말했다.
진성은 그저 클리파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성 자신의 얼굴만한 작은 크기, 고양이과 동물을 닮은 기계 질감의 존재.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귀엽다고 느꼈을 법했겠으나 지금의 진성에게는 그런 여유조차 없었다.
“메멧이 관여하지 않은 육체의 인간이여.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손에 꼽는다는 걸 알고 있는가.”
“……알고……있죠.”
진성은 작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클리파 그리고 그가 언급한 메멧, 바스턴 등은 모두 플레인:아라드의 시간을 책임지는 타임로드들.
시간 안에서도 각자 맡은 담당이 다르다는 것 또한 진성이 아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시공간의 틈에 머물며 관리하는 관리자조차도…….’
네메르와 같은 초월자에 비하면 그 능력이나 힘이 매우 많이 부족하다.
클리파 또한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 존재가 누구인지 대답할 리는 없겠지. 하나, 이곳에 온 이상 네가 어느 존재에게, 어떤 임무를 부여받아 수행하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진성의 입이 잠시 우물거렸으나 그뿐이었다.
지금 클리파에게 네메르의 존재에 대해, 자신이 받은 <부집게의 사명>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네메르가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들의 존재이기도 하다. 능력 자체는 네메르, 초월자측이 훨씬 뛰어나지만, 어쨌든 플레인의 관리 권한이라고 해야 할까, 이들에게는 이들만이 다룰 수 있는 게 있어. 그래서 네메르가 직접 개입하지 못한 채 나를 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니까. 그렇다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미운털만 박힐지도 모른다.
당연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을 진작 했어야 했다.
“비록 ‘그녀’의 힘과 타이밍을 맞추었다지만 시간의 힘으로 차원을 비틀어 내었던 그 순간부터 우리 타임로드들은 주시하고 있었으며 마침내 보았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를,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이곳, 현실에 끌어들였구나.”
문제가 터지기 전에.
진성은 클리파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손사래를 쳤다.
“어, 아뇨, 아뇨! 그렇다기보다는 뭐랄까? 어떤…… 저기, 혹시 <검은 악몽>이라고 아시려나? 지금 천계 쪽에 마계와 연결된 ‘죽은 자의 성’이라는 곳이 있거든요? 거기에 루크라는 사도가 만들어 흩뿌리고 있는 건데요. 그……영향을 받은 자는 막 분노하게 되고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여서 움직이는,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무슨, 뭔가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스카사가 <검은 악몽>의 영향을 받으며……맛이 갔다. 같은 느낌?”
진성 자신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니라, 결국 <검은 악몽>에 의해 스카사가 분노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주장을 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정보가 너무나 많아 말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은 물론 문제였다.
“…….”
[……크크……웃기지도 않은 소설을 쓰는군.]“꼬르르륵…….”
클리파는 물론이고 흑구와 타꼬마저도 고개를 저을 정도였으니.
진성은 재빨리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어쨌든! 검은 악몽. 제9사도, 건설자 루크가 만들어 뿌린 검은 악몽이 원인이라는 거죠. 제가 뭔가를 한 게 아니라요.”
“그러나 대화의 주제는 분명했다. 미래의 네이마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발생하는 일이라고 했다. 과거의 바스턴은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게 된 일이라 했다. 만약 방탕의 메시가 청산했다면 분명 시간을 어지럽힌 인간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진성의 열띤 변론에도 불구하고 클리파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를 바라보는 타임로드와 과거를 지키는 타임로드, 둘 모두 스카사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진성의 발언의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했다는 것을.
진성은 아랫입술을 물어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내가 말한 건 결국 모험가가 앞으로 겪어나가야만 하는 일이니까. 원래대로라면 그 점에 대해서도 타임로드들이 몰라야 했을 텐데. 여러 사건이 얽히며 진행되었어야 할 텐데.’
진성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게 꼬였을까 싶은 불안감도 사실이었다.
당장 드는 생각은 역시 하나.
“……저 때문에 혹시 시간의 균열이- 차원의 왜곡이 발생했나요?”
왜곡이 발생했을까.
클리파는 답했다.
“틈은 생성되었다. 만약 더 큰 왜곡이, 더 큰 균열이 발생한다면……그 틈으로, 그 시간을 거스르려는 자가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그 균열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이 발생하게 될 가능성도 있지.”
“……음? 잠시- 네?”
진성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답변이었다.
클리파의 말을 듣자마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이 있었기 때문.
“제가 떠든 것 때문에 틈이 생겼고……그 틈이 더 커지면- 그 시간을 거슬러, 그 차원을 활용하려는 자가 나온다…… 시로코?”
시로코의 사념이 과거로 갈 수 있게 된 계기?
그것이 조금 전 진성 자신이 스카사를 자극하기 위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바뀌어버린 과거의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지껄여댔기 때문이라면?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나 그렇진 않을 것이다. 네가 만들어낸 틈은 이미 타임로드들에 의해 메워졌으니까.”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진성이 염려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진성에 의해 발생한 왜곡의 틈은 바로잡힌 상태라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균형이 더 기운다면, 틈을 더 많은 곳에 생성하고 그 균열을 크게 만든다면, 너의 미래는 존재치 않게 된다.”
긴 호흡을 토해내는 진성을 보며 클리파는 경고했다.
진성은 그 말의 숨은 뜻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균형의 중재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얘기군. 나도 ‘항아리에 갇힌 가이즈’ 같은 몬스터가 되어 영원히……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그 또한 초월자 중 하나니까.’
초월자 네메르와 동격의 존재.
균형의 중재자, 초월자 아이데르.
진성을 게임 던전앤파이터 세계관에 가볍게 빙의시킨 자와 같은 수준이며, 어떤 의미로는 네메르보다 강력하다고도 볼 수 있는 초월자.
적어도 진성에게 있어서는 네메르보다도 더욱 그 목적과 성향이 불분명한 존재.
마른침을 삼키는 진성을 보며 클리파는 경고가 충분히 먹혀들었다고 여긴 것일까.
“경고는 끝났다. 두 번의 경고는 없게 될 것이니 앞으로는-.”
“저기! 잠시만요.”
이제 진성을 내보내려던 클리파였으나 진성은 순순히 물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표정은 변해 있었다. 다소 딱딱하게.
“<오염의 원인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차원의 틈’도 오염시키고 사도들마저 오염시키는 존재인데. 타임로드들이시라면 혹시 그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
진성은 말했다.
클리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른다. 그런 존재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염의 원인-.”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균열을 일으키는 게 아니잖아요. 그쪽에서도, 무려 ‘타임로드’님들도 파악하지 못한 놈이 문제를 자꾸 일으켜서! 내가 처리해주고 있는 개념으로 봐야 하지 않나?”
“무, 무슨…… 무슨 말을-.”
“처음엔 내 잘못도 있겠거니 싶어서 일단 들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오히려 감사를 받아도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죠?”
그 와중에도 시간의 관리자, 시공간에 거주하는 타임로드들에게서 보상을 받아내려는 의지란.
[클클…… 차원의 균열 속에 있는 ‘나’가 보았다면 아주 만족했겠군. 설마 시공간의 관리자라는 존재 앞에서도 이런 행태를 보이는 놈이었다니.]클리파조차 당황하여 말을 꺼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흑구가 말했다.
진성은 그 말이 응원이라도 되는 듯 몰아붙이려 했다.
“하여튼 균열이나 틈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엄밀히 따지자면 조치 중에 발생한 거니까, 다음에는 타임로드님들도 저만 책망할 게 아니라, 오히려 저를 좀 도와주십사-.”
그러나 그 말을 끝마칠 수는 없었다.
─────────────!
갑작스런 광휘가 번쩍, 진성의 시야를 빼앗았다.
“읏?!”
진성은 고개를 돌리며 눈을 찌푸렸다.
반사적으로 들어 올린 팔로 빛을 가려보려 했으나 부옇게 변해버린 시야가 회복될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따라서 당황스러웠다.
대략 십여 초 앞이 안 보였다지만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광경 때문에.
“……뭐야, 이거?”
[클클클…… 타임로드라는 존재가 널 죽이려는 게 아닌가.]공간은 이미 바뀌어있었다.
클리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샤르나크 산도, 마법사 길드도 심지어 클리파와 함께 있던 시간의 문 앞도 아니었다.
“아, 아냐!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는 것은 앞의 녀석들을 쓰러뜨리며 증명해야겠지, 진성.]“꼬르르륵…….”
“-그, 그렇겠지. 그렇기는 한데…….”
진성은 곧장 <흑광검 카이너스>를 발동시켰다.
흑색의 빛 두 줄기가 나선 구조로 서로 얽히며 검날을 형성하는 광검光劍.
흑구와 타꼬의 경고대로 당장 전투를 치러야 함이 분명하나, 진성이 아직까지 적보다 주변에 집중하는 이유는 있었다.
“끼히힛, 침입자다.”
“꺄하-! 없애자, 없애자!”
다가오는 적들은 모두 진성 자신보다 다소 작은 크기의 인간형 개체들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악마의 날개 비슷한 것을 달고 있는, 여성형 개체들.
물론 그들의 덩치보다 큰 낫과 같은 무기를 보자면 결코 귀엽게만은 볼 수 없었으나, 진성이 놀란 이유는 그들의 외형 때문이 아니었다.
‘……서큐버스다. 서큐버스 몬스터들이야.’
그들이 어떤 몬스터인지, 그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
낫을 휘둘러 날리거나, 가까이 다가와 큰 동작으로 베어버리는 공격 패턴까지도 알고 있었기에, 무리 지어 있는 서큐버스 중 몇몇이 낫을 뒤로 젖히는 틈을 보자마자 진성의 몸은 반응했다.
“<래피드 무브>, <다크 크래셔>!”
<아티 마르피사> 세트에 의해 더욱 강해지고 빨라졌으며, 심지어 이동 거리마저 상당한 이동기 스킬을 활용하여 서큐버스 무리를 베는 동시에 그들의 뒤를 잡고.
“<다크 폴>.”
진성 자신의 반경으로 암 속성의 기운들을 무자비하게 떨어뜨려 다수의 적을 공격하는 흐름까지.
이어지는 <다크 볼>이나 <다크 레이브>, <윕 어택> 등과 같은 연계는 물론, 기존의 <어퍼>, <브리프 컷> 등을 활용하여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등의 콤보 패턴은 이제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이었다.
대략 십수 명이 뭉쳐있던 서큐버스 무리를 베어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그 와중에도 당혹스러운 점이라면 진성 자신이 레벨 업을 했다는 점.
‘클리파가 날 보낸 건가? 여기로? 보상 얘기 좀 했다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진성은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서큐버스 무리 외에 특별한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클클…… 어지간히 밉보였나 보군. 균열을 왜곡시킨 진성.]“시끄러. 젠장…… 이것으로 확실해지긴 했어.”
따라서 진성이 주의 깊게 본 것은 주변이었다.
우주와 같은 공간이라면 공간이지만 지금껏 진성이 겪은 곳과는 달랐다.
‘네메르를 만날 때는 정말 암흑의 공간 같았다. 검보랏빛의 미묘한 오로라인지 뭔지만 있는…… 디레지에와 함께 차원의 균열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때에도 약간 비슷하긴 했지. 그때도 역시 보랏빛이 많았고.’
클리파와 함께 있던 시간의 문 앞은 보랏빛이라기보다 자줏빛에 가까운 기운이 감도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붉어. 마치 저 멀리서 불이 붙어 나는 광원처럼 불그스름한 빛이야. 빛뿐만이 아니라…….’
진성은 자신이 밟고 선 지면을 살폈다.
육각형의 타일이 끝없이 이어진 것 같은 바닥.
개별 타일 하나하나가 갈라져 있고, 그 틈새로부터 어쩐지 불긋불긋 빛이 새어 나오는 느낌이 든다.
“애송이로군.”
그런 진성의 앞에 갑작스레 누군가가 나타나 말했다.
역시나 인간의 실루엣에 가까운 모습이나 목 위의 머리는 마치 동물처럼 털로 뒤덮여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팔, 다리의 일부마저도.
인간이라기보다 수인, 수인도 아니라면 외계의 인간에 가까운 그 모습을 보며, 진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이고, 저들이 누구인지.
“에픽로드?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한때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등장했던 이벤트성 던전, 에픽로드:차원침공.
진성은 자신이 그 한복판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감사를 받아야 한다, 라고 말했더니 이런 곳으로 보냈다……? 이게 그쪽에서 주는 보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