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6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69화(69/212)
069
지난 며칠 간의 경험이 바로 진성을 여전히 생각에 잠기게끔 만드는 이유였다.
첫 번째라면 역시 오염되었던 스카사의 카드.
그리고 그 카드를 획득한 직후 만났던 클리파.
클리파와의 대화 도중 뜬금없이 옮겨졌던 에픽로드:차원침공의 공간.
마지막으로 마법사 길드 앞으로 전이되기 직전 마주했던, 에픽로드:차원침공의 보스가 아니라 과거 ‘이계의 틈’ 던전의 보스이자 코스모 핀드 종족의 왕이라 불리는 자의 언질까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되뇌어봐도 모르겠다니까.’
의심 가는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벌써 아라드에서 살아온 지 얼마나 되었던가.
이 모든 일을 한데 엮어 생각해보자면 의외로 진성 또한 대략적인 결과를 뽑아낼 정도는 되는 상황이다.
‘일단 네메르는 아니지. 네메르가 한 건 아니야. 목소리도 들리지 않은데다……. 나에게 그런 식으로 접근할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클리파냐? 아닐 확률이 높다. 무슨 말 하다 말고 벌컥 나를 어딘가로 날려 보낼 정도로 클리파도 바보가 아냐. 애당초 나한테 경고성 멘트를 하기 위해 불렀던 게 클리파였는데.’
자신을 게임 던전앤파이터에 빙의시킨 네메르는 아니다.
스카사의 오염 카드를 확인한 직후 만났던 클리파일 리도 없다.
그렇다면……?
‘<오염의 원인자>?’
그러나 진성은 이미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하지만 <오염의 원인자>라면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을 했을까. 타임로드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날 이동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다면…… 심지어 에픽로드 같은 곳으로 보낼 이유가 없어.’
당황스럽긴 했다지만 결국 에픽로드:차원침공을 통해 순식간에 레벨 업을 했다.
특별히 생명의 위협이 되었던 것도 아니다.
즉, 클리파와의 대화를 단절시켰다는 것 외에 진성 자신에게 손해라 할 만한 게 없는 결과다.
‘오염을 바로잡고 있는 나를……. <오염의 원인자>가 도왔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오염의 원인자>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으므로 진성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그 지점에서 또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분명 마법사 길드 앞으로 전이되기 직전 만난 건 코스모 핀드의 왕이었는데.’
코스모 핀드의 왕이, 자신들의 종족을 죽이며 레벨 업을 하라고 진성을 불러들였을까?
또한 불러냈다면 즉각 대화하면 될 것을 굳이 몇 시간이나 진성 자신이 자신들의 종족을 죽이도록 두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코스모 핀드의 왕이 <오염의 원인자>였을까?
진성은 그 모든 답변에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공간조약자 가우니스가 아니라치면…… 그래, 가우니스가 코스모 핀드 종족의 왕이지만, 최강자라고 할 수는 없어. 코스모 핀드에는 이 행성 침공의 배후이자 우주적 존재가 있다.’
우주의 강자들과 싸워 그들을 굴복시키고, 심지어 그들이 사는 행성마저 정복한 뒤, 그 행성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끌어와 쓸 수 있는 존재.
행성들을 소형화시켜 자신을 중심으로 공전시키는 등, 사실상 우주적인 생명체라고 봐도 좋은 코스모 핀드의 최종 보스급 존재, ‘로젠’이 있다.
공간조약자 가우니스.
코스모 핀드의 우주적 존재, 로젠.
이 두 존재가 본래의 힘을 진심으로 드러낸다면, 분명 <오염의 원인자>라고 납득할 법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아라드, 마계에 있는 웬만한 사도들보다도 더 큰 범위에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냐. 근본적으로 틀렸어. 코스모 핀드가 강한 건 사실이고, 분명 차원의 틈을 넘는다거나 균열을 내서 아라드를 굴복시키려는 건 맞아. 그러나!’
코스모 핀드는 <오염의 원인자>일 수가 없다.
그것은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배경 설정을 알고 있기에 나오는 당연한 반박이었다.
‘이런 술수를 쓸 종족이 아니니까. 코스모 핀드는 힘에 의해 모든 게 돌아간다. 정의도, 불의도 없고 선도, 악도 없어. 이기는 팀이 짱이고, 이기는 게 선이고, 이기고 나면 자신들이 정의라고 부르짖는 녀석들이야. 그런 놈들이…… <오염의 원인자>니 뭐니, 이런 계책을 쓰면서 아라드를 망가뜨리려 한다?’
그럴 리 없다.
그저 게임의 배경 설정으로만 존재한 게 아니라, 실제 아라드에 빙의된 진성 자신에 비추어보자면.
코스모 핀드라는 종족이 이 우주에 실존하는 이들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 원리와도 같은, 동기라고 부를 만한 근본을 뒤집거나 바꿀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공간 조약자 가우니스가 마지막에 말한 뉘앙스는 <오염의 원인자>로서 말한 느낌이 아니었어.’
그는 진성 자신이 함부로 이 공간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말했다.
문제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존재를 지우기 어렵다면 자신의 도움을 받으라 말했다.
‘즉,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깨닫고 부랴부랴 온 거였다면? 그래서 나한테 서둘러 경고? 충고?를 하려고 했던 거라면…….’
결국 가능성은 하나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오염의 원인자>가 진성 자신을 도왔을 리는 없다.
공간 조약자 가우니스, 즉, 코스모 핀드의 왕도 그랬을 리가 없다.
소거법에 의하여 가능한 대상들을 모두 삭제해버리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미지수 x.
‘제3자…… 제3자의 개입인가.’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닐지.
심지어 정체도 알 수 없는 제3자가 진성 자신을 도우려 했던 것은 아닐지.
‘일반 사도급이 아니라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제3자…… 그러면서도 클리파 앞에 있던 나를 전이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자라면.’
<오염의 원인자>는 네메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비교해보았을 때, 진성 자신을 도우려 했던 제3자 역시 그 정도 수준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터.
‘……근데 그런 힘을 지닌 존재가! 던파 세계관에는! 거의 없다고! 남은 건- 남은 건 이제 플레인 바깥, 외우주의 존재들밖에 없을 텐데?!’
외우주의 존재가 진성 자신을 도왔어?
그것을 과연 말이 된다고 치부해야 하는지?
“끄으으응…….”
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터질 정도로 고민해봐야 정답을 알 수는 없다.
복잡해지는 상황 속에서 어쩐지 허탈함을 느끼는 진성이었으나, 그는 웃었다.
‘……도우려면 말이죠, 선생님. 누구신지 모르지만. 확실하고 화끈하게 한번 도와주시면 얼마나 좋냐고. 아니면 그냥 집에 보내주시던가.’
적어도 한 가지, [진성 자신을 돕는 제3자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 또렷하게 확인했으니까.
자조적인 농담으로 헛웃음을 흘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클클…… 그간 너와 함께 다니며 네가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알았다. 미래 예지일 리가 없는 미래 예지로 활약하는 모습은 분명 인상 깊었지. 나는 물론…… 아마 균열 속의 ‘나’ 또한 놀랄 만한 일일지니.]“갑자기 무슨 소리야.”
진성은 새삼스러운 흑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 진성과 함께 다니며 온갖 희귀한 경험은 다 해본 흑구가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진성 자신이 카르카스를 설득할 때는 물론, 스카사를 <검은 악몽>에 젖어들게끔 만들기 위해 대화를 할 때에도, 클리파와 마주했을 때나 에픽로드:차원침공의 공간에서도 비교적 당황치 않고 할 말을 했다는 점을 흑구는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을 법도 한데. 나한테 하나도 안 물어봤네, 이 녀석.’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어째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냐.
어떻게 앞으로의 일들을 아는 듯 말하는 것이며, 존재하지도, 발생하지도 않은 일 등등은 다 무엇을 의미하느냐…….
흑구는 물어보지 않았다.
‘하긴, 내가 흑구라고 가볍게 부를 뿐이지. 자아는 결국 디레지에에게서 분리된…… 어떤 지능이나 눈치 같은 것도 사도급이기 때문이려나.’
진성은 그 점에 대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흑구가 진성을 향해 호들갑을 떨지 않았던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다.
[크크크…… 원래의 행성에서부터 모든 일을 겪었던 나에게 있어 그것은 놀랄 만한 일 자체는 아니지. 허나……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것인가.]“음?”
디레지에와 꼭 같은 웃음이 진성의 머릿속에 다시금 퍼졌다.
[힐더의 계획을 뒤틀기 위해…… 그년에게 한 방 먹여주기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을 텐데.]묵직한 톤의 목소리.
진성을 재촉하는 듯 또는 다그치는 듯.
“아.”
그것도 아니면 진성을 일깨워주려는 듯.
진성은 어쩐지 흑구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이 조금쯤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러 일을 겪었으나 결론을 내기 어렵다면?
정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보가 부족한 와중에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을 정리한들 답이 나올 리는 없다.
“맞네. 흐흐, 일단은…… 지금 당장은 뭐,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거겠지?”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죽치고 앉아있는 게 아니라 움직여야 한다.
네메르의 의뢰에 의한 <부집게의 사명>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힐더의 계획도 뒤틀어야 한다면!
“진성 씨! 다행이다, 아직 여기 있네.”
벌컥, 갑작스레 문이 열리며 샤란이 들어왔다.
진성은 노크도 없이 들어온 샤란을 보며 잠시 놀랐으나 곧 그녀의 행동 이유 또한 알 수 있었다.
“지금 천계에서 온 사람과 대화까지 다 했는데 아무래도 확실한 것 같아요. 말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데다, 마가타가 고장 나긴 했지만 방식도 카곤이 운영하는 것과 완전히 달라서-.”
그녀는 천계에서 온 자에 대해 검증을 어느 정도 마쳤기에 진성의 의견을 들으려 온 것이다.
“으잉? 자, 잠깐만요! 갑자기 막 들어오셔서 그렇게 마구잡이로 말씀하셔도!”
본격적인 아라드와 천계의 교류가 시작될 마당이었으니, 마법사 길드장으로서 기본적인 예절조차 까먹을 정도로 흥분한 게 아닌가!
진성은 잠시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샤란은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토록 흥분한 샤란이 가장 먼저 진성의 사무실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곧장 본론부터 꺼내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래도 진성 씨는 알아듣잖아요?”
진성에 대한 신뢰만큼이나 진성의 능력과 지식에 대한 확신도 있기 때문이다.
진성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이해할 거라 예상하고 있는 샤란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진짜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나를 왜 이렇게 믿어주는지. 쩝, 엄밀히 따지면 둘 다 사람은 아니지만…….”
“응? 무슨 소리?”
[클클…… 너를 믿는 게 아니다.]정작 진성 본인은 온갖 걱정과 염려, 앞으로의 불확실에 대한 고민이 많건만.
그런 진성 자신에 대한 주변의 믿음 아닌 믿음, 격려 아닌 격려를 이토록이나 받는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진성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샤란에게 말해주었다.
“아뇨, 아뇨, 아무것도. 크흠, 어쨌든 마가타는 고장 나서 수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지금 당장은 공국측에서 천계쪽에만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여왕님께서는-.”
“모험가에게 어찌 된 일인지, 스톰 패스로 가서 반투족과 관련된 문제를 좀 알아봐달라고 하셨을 테고?”
“그……렇죠?”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듯 지금까지의 일을 술술 말하는 진성을 보며, 샤란의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진성은 그런 샤란을 바라보다 씨익, 웃었다.
“그러니~ 그사이 샤란 님께서도 좀 추가적인 연구를 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네요.”
“연구? 무슨 연구?“
“바칼의 마법진이요. 아직 천계에서 온 사람한테 아무런 이야기도 못 들으셨나? 교류가 시작된다 해도 저 바칼의 마법진을 어떻게 뚫을 수 있겠어요. 천계에서 이쪽으로 오는 거야 마가타의 동력원까지 다 잃어가며- 사실상 추락에 가까운 상태로 어찌 도착은 했다지만 말이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샤란을 향해 진성은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샤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렇네요. 추락이야 자연적인 법칙에 의해 가능했다지만, 올라갈 때는 바칼의 마법진을 파훼하고 가야겠군요. 아니, 만에 하나 그걸 못 했다간……”
“펑~! 동력원을 잃고 말 그대로 자유낙하. 천계에 첫 번째로 가기 위해 탑승한 사람들은 모두 끝장나는 거죠.”
“시, 심각한 얘기를 무슨 펑~ 하면서 그리 즐겁게 해요?”
미처 거기까지 생각지 못했다는 듯 생각을 정리하는 그녀를 향해, 진성은 효과음까지 내주며 만약의 사태가 어떨지 일러주었다.
샤란은 민망하다는 듯 수첩에 이것저것을 메모하여 정리한 후에야 진성에게 말했다.
“크흠, 하여튼…… 역시, 진성 씨랑 얘기를 해야 좀 정리가 된다니까.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지만 내가 그 정도 생각도 못 했다니…… 고마워요, 진성 씨.”
“별말씀을.”
지금까지 몇 번이고 겪긴 했지만 진성으로서도 조금쯤 우스운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특히 초반부에 가까운 현재 시점까지도 샤란이 해결사의 역할을 한 적은 많았다.
어디선가 휙 나타나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면 좋을 것이다, 라는 등의 지침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겜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진성은 불현듯 어떤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샤란의 얼굴을 바라보니 더욱더 강해지는 의문이기도 했다.
‘아니, 아니, 잠깐만. 어라라? 그러게? 이거, 웃으면서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샤란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매우 훌륭한 지적능력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어떻게 그리 때맞춰 적절한 의견을 낼 수 있었을까?
‘……나?’
진성 자신의 존재?
어쩌면 그런 느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