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7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70화(7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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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라드에 빙의한 진성 자신과 모니터 너머에서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플레이하는 진성 자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하물며 진성 자신의 ‘리얼타임’은 결국 한 순간, 한 번의 경험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계의 사절- 마를렌 키츠카가 이제 막 아라드에 처음 발을 딛은 이 순간에도…… 이미 어떤 유저는 마계에 있을 테고, 이미 어떤 유저는 천계 내전을 진행 중일 테고, 심지어 상당수의 유저는 선계에서 플레이 중일 텐데.’
각 유저별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진행 정도가 다를 것이다.
진성 자신이 현재 겪는 이러한 상황과 사건을 벌써 ‘몇 년 전’에 다 끝낸 유저들이 매우 많을 것이다.
그때의 진성 자신 또한 한 명의 유저로서 게임을 했을 뿐이다.
아라드에 빙의되어 샤란에게 이러저러한 단서 따위를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뜬금없는 듯 등장하여 여러 사건의 해결 또는 그 실마리를 주는 샤란이 진성 자신으로 인해 발생했을 리는 없다.
‘나……는 아니지. 게다가 나 같은 케이스는 처음이잖아. 네메르도 말했었어. <오염의 원인자>가 나타나 활동한 지는, 유저들의 퀘스트 곳곳에 오염을 심어두어 그 흐름을 비틀어버리려는 행위는 오래지 않았다. 내가 사실상 <부집게의 사명>으로 아라드에 빙의된 최초-.’
쭉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던 진성이었으나 곧 그 흐름은 끊어졌다.
진성의 단서를 들은 샤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
“흐음, 그렇긴 해요. 바칼이 만든 마법진을 뚫어야만 천계로 올라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키리 님의 말에 의하면 바칼은 예전에 죽어버렸을 테고……. 천계의 사절이라는 사람도 모르는 눈치던데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는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록색의 깊은 눈동자, 정답을 아는 것일까, 진성에게서 정답을 추출해내기 위한 것일까.
조금 전까지 들었던 생각과 샤란의 눈동자를 번갈아 떠올리던 진성이었으나,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는 거지. 이래저래 나 혼자 생각해봤자.’
결국 <오염의 원인자>가 누구였는가에 대해 생각하던 사고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
당장 고민해봐야 알 길은 없다.
오히려 혼자 상상하다 괜히 정답이 아닌 것에 더욱 집착하게 되어 정작 본질을 놓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진성은 피식, 웃으며 샤란의 혼잣말에 슬쩍 한마디를 얹을 수 있는 셈이었다.
“바칼만이 꼭 바칼의 마법진을 깰 수 있으려나~?”
“……무슨 소리예요?”
“글쎄요. 마법진이라는 게 뭐 생체 인식이나 페이스 아이디도 아니고.”
진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샤란은 평소처럼 꼬치꼬치 캐물으려 했다.
“응? 페이스, 뭐라고요?”
“아뇨, 하여튼 바칼 본인만이 자신이 만든 마법진을 깰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진성은 평소처럼 그녀에게 모든 정답을 알려주진 않았다.
조금 전 떠올랐던 생각, 샤란이 해결사 역할을 하는 건 굳이 진성 자신의 개입이 없어도 가능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바꿔 말하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로서 샤란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호라,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 알았어요. 이후는 내가 연구할게요.”
“흐흐, 힘내십쇼, 샤란 님.”
진성은 샤란을 향해 화이팅 포즈를 취하며 웃었다.
“아흐, 하여튼……. 얄밉게 고마운 사람 같으니.”
샤란은 얄밉다는 듯 토라진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다 결국 헛웃음을 터뜨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아참, 지난번 진성 씨가 이야기했던 것들 정리해놨으니까 알아서 해요. 하든지, 말든지.”
그러면서 한마디를 툭, 던졌다.
샤란의 뒷모습이 사라질 즈음에야 진성도 깨달은 사실.
“네? 뭘…… 아!? 진짜요? 고맙습니다, 샤란 님!”
진성은 그녀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크게 외치고는 곧장 텔레포트 포션을 꺼내들었다.
천계에 오르는 마가타에 탑승할 때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터.
‘당장은 큰 차이 없겠지만……. 흐흐, 일단 스펙업이다!’
꼴깍, 한 모금을 삼킨 진성이 나타난 곳은 벨 마이어 공국의 수도 헨돈마이어.
더 구체적으로는 천계에서 온 NPC, 키리 더 레이디의 앞이었다.
* * *
과거 헨돈마이어에서 웨스트코스트를 향할 때에도 몇 번 지나친 적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레니와 함께 마지막……을 보낼 때도 봤었지. 으음.’
이제는 안타까운 추억이 되어버린 기억을 되짚기도 잠시, 진성은 큰 숨과 함께 우울함을 털어내었다.
전반적으로 흰 건축물이 많은 헨돈마이어에서도, 키리의 상점이자 자택이 눈에 띄는 이유는 역시나 그 건물의 꼭대기에 올려진 푸른 기와 때문이지 않을지.
‘청기와가 딱 올려져 있는 게 아주 컨셉 제대로라니까. 천계에서 온 NPC답게, 천계의 설정인 옛 한국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물을 헨돈마이어에도 떡하니 해놓은 거겠지. 푸른 기와의 집이니까 청와……크흠, 흠.’
진성은 헛기침을 하며 생각을 멈췄다.
뭇 유저들이 결코 좋은 감정으로 대할 수 없는 NPC와 그런 용어를 접목시키는 건 어쩐지 본능적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이라 느껴졌으니까.
‘어쨌든 이런 독특한 배경을 제외하고도 확 눈에 띄는 건 역시 이거지.’
무엇보다 더 이상 그러한 종류의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키리의 매장 앞에 놓인 거대한 기계장치 때문이었다.
어쩌면 게임 던전앤파이터 유저들 대부분이 아직도 키리의 집 위에 푸른 기와가 있었나? 라는 의문을 품을 만큼 관심을 없을 수도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닌가!
뿌우우우우─────……!
때마침 기계장치가 증기를 내뿜으며 울기 시작했다.
부착된 램프에서 푸른빛과 붉은빛이 빠르게 명멸하며, 기계장치는 마치 폭발할 것처럼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굳이 진성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저 사람은 저 표정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는 뜻이겠지? 저 정도로 간절한 거라면…….’
두 눈을 부릅뜬 채, 두 손 모아 기도까지 하는 자세로 기계를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 귀검사 유저.
그 간절함이 분노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성의 욕설과 함께 명멸하던 램프의 불빛이 꺼졌다.
그리고 푸슈슉……. 기계장치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
한마디 욕을 내뱉은 유저는 얼어붙은 듯 멍하니 있었다.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쯔쯔, 충격 먹고 로그아웃했나…… 보호권도 안 쓰고 돌렸구만. 다른 건 몰라도 여기서- 저 인간을 상대할 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데.’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기계장치 옆에 있는 키 큰 여성을 보았다.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있는, 오히려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NPC, 키리 더 레이디.
현재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장비의 강화/증폭/재련 등을 모두 해내는 만능 장비 가공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
‘던파에서 가장 악랄한…… 으음, 성격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하여튼- 나도 도대체가! 키리한테 빨린 골드가 도대체 얼만지 셀 수도 없다고!’
어쩌면 던파에서 유저들에게 가장 욕을 많이 먹는 NPC.
증발한 사람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키리는 진성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키리라고 해요.”
그러곤 인사를 건넸다.
“아, 예, 안녕하세요.”
진성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였을까. 그녀는 곧장 자신의 옆에 있던 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더욱 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장비의 강화는 필수! 어때요? 한번 해보시겠어요?”
“아, 그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비록 낡은 강화기라지만 +4 강화까지는 성공률 백 퍼센트를 자랑한답니다! 가격도 의외로 저렴하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도 없다고요!”
키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으나 진성은 그녀의 해맑은 표정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4 강화까지는 확실히 부담이 없다.
장비가 파괴되어 사라지는 페널티가 적용되는 시점까지인 +12 강화, +10 증폭까지도 어느 정도 골드만 받쳐준다면 문제가 없다.
‘……저런 달콤한 말에 속아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원래 호구들의 돈을 딸 때도 저렇게 하는 거라고 드라마에서 봤단 말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12 강화로 만족할 리가 없다.
‘당장 골고라이언 때만 해도 말이야. 난리도 난리도 아주 그냥……. 증폭 이벤트만 하면 사람들의 눈이 돌아가는 건 모든 게임이 마찬가지라고.’
+13, +14, +15를 향해, 그 단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가기 위해 몇억 골드, 운이 나쁘다면 몇십억 골드 이상 쏟아붓는 것을 생각한다면, +4 강화까지 성공률이 100%든 아니든 그런 것은 아무런 관계도 없지 않은가!
“어떠세요? 한번 해보시겠어요?”
키리는 거의 진성을 잡아끌고 가는 적극성으로 권유했다.
자칫 휘말려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끼자마자 진성은 곧장 자기소개부터 해야만 했다.
“그, 그게-. 크흠, 안녕하세요, 키리 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마법사 길드 소속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 진성이라고 합니다.”
공손한 인사였다.
다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렇지 않게 느껴졌을 뿐.
“아……샤란 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일말의 영업용 웃음조차 없는 목소리로 키리는 말했다.
조금 전까지의 화사한 웃음은?
밝은 얼굴로 강화를 권하던 천계인의 미소는?
“그, 그러신가요, 하하.”
심지어 진성 자신이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그토록 오래 즐기며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태도와 표정이라니!?
키리는 진성의 말에도 심드렁하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워 하마터면 본론을 시작하지도 못할뻔한 진성은 겨우 이야기를 꺼내었다.
“저기, 키리 님? 샤란 님께서…… 키리 님께 이래저래 말씀을 좀 해주셨다고는 전해 들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까지 오갔는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샤란은 진성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한 작업을 해놓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샤란은 최선을 다한 게 맞았다.
“예, 뭐…… 샤란 님께서 직접 오셔서 말씀하시던데요. 진성이라는 분의 편의를 봐달라고.”
“그,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그 편의라는 게 혹시 내용이-.”
“+8 강화까지는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한 부위당 필요 재화를 생각하면 결코 적은 건 아닐 거예요.”
분명 샤란은 자신의 제자격 인물인 키리에게 꽤나 많은 이야기를 해야 했을 것이며, 진성 자신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키리의 강화 비용 중 어느 정도는 마법사 길드의 자금으로 보전해주는 약속까지 했을 것이다.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기는……하지만…….’
+8까지의 무료 강화.
분명 진성 자신이 원한 것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그림이긴 했으나 진성은 알고 있었다.
또한 키리도 알고 있었다.
“어차피 뭐…… 아직 +12 강화까지 도전할 만한 에픽 장비도 없으신 것 같고. 증폭에 쓸 만한 이계의 기운이 묻은 장비도 없는 것 같으니……상관없죠?”
현재 진성 수준의 레벨과 아이템에서 강화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진성은 딱 잘라 말하는 키리를 흘겨보았다.
‘확실히 지금의 나한테는 강화가 별 효용이 없기는 한데…….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지, 인간아! 키리 당신이 말하면 뭔가 열 받는다고!’
물론 아라드가 현실이 된 진성에게는 아주 약간의 공격력 차이, 아주 약간의 방어력 차이가 목숨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들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진성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한테는 노다지가 있잖아. 돈이라면 궁할 게 없어. +8까지 무료로 해주는 개념보다는 차라리…….’
진성은 키리의 안색을 살폈다.
더 할 말 없다는 듯, 관심 없다는 듯 말하는 그녀의 표정.
아마도 진성 자신을 ‘무료 손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기에 저런 언행이 나오는 것이라면?
“크흠.”
“지금 장비 강화할 거예요?”
헛기침하는 진성을 바라보며 키리는 곧장 물었다.
진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무료 강화, 필요 없습니다.”
“네?”
“강화 비용 다 받으셔도 됩니다. 저도 돈 내고 하겠어요.”
그러곤 강건한 태도로 말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키리였다.
“자, 잠시만요. 네? 진심이에요? 무료라니까요? 공짜라니까요?”
“필요 없습니다.”
그럴 만도 했다.
진성이 무료로 강화를 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마법을 가르치는 스승격 존재인 샤란의 부탁을, 제자인 키리가 결국 제대로 들어주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는 게 아닌가!
“필요없……다니. 아뇨, 샤란 님께서 말씀하신 게 있어서-.”
따라서 키리는 진성에게 말하려 했고.
“그러니 제 말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것이야말로 진성의 ‘떡밥’을 물어버린 셈이었다.
[클클클…… 또 한 명의 불쌍한 인간이 희생양이 되겠군. 주변을 감염시켜 망가뜨리는 건 나보다 네가 더 뛰어난 게 아닌가, 진성.]흑구의 말,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