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7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71화(71/212)
071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등장한 NPC는 유저의 모니터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유저가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NPC라면 그들의 말소리 역시 유저가 보는 모니터의 대화창에 출력되지 않는다.
진성은 그 점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레니와 함께 헨돈마이어를 다니며 확인했던 사항이기도 하니까.
물론 지금의 진성에게 그때의 우울감은 없었다.
오히려 레니 덕분에 파악했던, 빙의된 자신과 모니터 너머의 유저의 차이를 완벽히 알았기에, 지금의 얼토당토않은 짓도 시도할 수 있었다.
뿌우우우우─────……!
키리 곁의 낡은 강화기가 비명을 지르듯 포효하며 덜그럭거렸다.
적색과 청색의 빛이 번갈아 명멸하던 낡은 강화기의 근처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있는 것도 썩 이상한 장면은 아니었다.
“ㅋㅋㅋ ㅁㅊ 모하는 거임??”
“뭐 테스트 하시나?”
적어도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푸슈슈슈……. 낡은 강화기는 황금빛으로 성공을 축하하기보단 검은 연기를 내뿜듯 실패할 확률이 더 컸으며,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12 강화 또는 +10 증폭 상태의 무기를 +13 강화 또는 +11 증폭으로 도전하여 성공했을 때, 시스템의 공지사항처럼 알림이 가기 때문.
“또 터졌다 ㅋㅋㅋㅋㅋ”
“ㅋㅋㅋ개웃기네 도대체 머하는거임 ㅋㅋ”
그러한 업그레이드 도중 실패할 시 <장비 보호권> 또는 <증폭 보호권>이 없다면 장비가 파괴되는 페널티가 부여되므로, 유저들에게는 그러한 알림용 시스템 메시지 하나하나가 흥밋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즉, 현재 유저들이 키리 근처에 모여든 것도 다 그러한 이유라 볼 수 있었다.
조금 전부터 그들의 모니터에 보인 시스템 메시지가 있었으니까.
[진성 님이 +13 오래된 메이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진성 님이 +13 오래된 메이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진성 님이 +13 오래된 메이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진성 님이 +13 오래된 메이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레벨 제한 20의 ‘커먼 등급’ 아이템, 소위 ‘흰템’이라 불리는 상점제 무기, <오래된 메이스>.
누군가가 그것의 +15 강화라도 만들려는 듯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뜨는 중이었으니, 아무렴 관심이 가는 게 당연한 일!
“아니 근데 개잡템을 강화해서 머하려고?”
“ㄹㅇ 어차피 옵션 레벨 이관 안될텐데. 님 그건 알고 하는거에요?”
“레벨 100 미만 아이템은 강화시켜봐야 어차피 노소용임”
“ㅋㅋㅋ100미만 아이템 정도가 아니라 걍 개쓰레기 잡템이자너 ㅋㅋ”
필요 레벨 100 이상이며 또한 유니크 등급 이상의 아이템이라면 강화의 의미가 있다.
해당 아이템의 강화 수치를 에픽 아이템 등 현재 자신이 사용하는 아이템에게 ‘옮겨줄 수’ 있기 때문.
물론 그러한 이유라 할지라도 도전하는 자가 극히 드문 법이건만, 하물며 레벨 제한 20의 상점제 무기를 강화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진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낡은 강화기의 문을 열어 아이템이 파괴되어 사라졌음을 확인한 후 다시 <오래된 메이스>를 키리에게 건넬 뿐.
낡은 강화기 안에 단단히 고정된 <오래된 메이스>를 보며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금 덜덜거리는 기계장치의 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유저들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강화 칭호 따려고 그러나? <자네, 자고가게나!> 칭호가 15강 이상 성공하면 얻긴 하는데”
“그거 옵션 아무 의미 업잔슴 ㅋㅋ 강화비용 5% 감소였나? 그거 따려고 지금 이 사람이 날린 돈이 얼만데 ㅋㅋㅋㅋ”
“ㅇㅈㅇㅈ 하다못해 레어 등급 이상이면 <키리의 총애를 받는자> 칭호라도 있긴 함. 근데 이건 걍 흰템이라 안나오는데 왜 자꾸 시도하는거지?”
“님 대답점 해보셈 ㅋㅋ 머하는데요 ㅋㅋ”
그나마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머리를 굴려보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심지어 강화 당사자인 진성은 아무런 대답도, 움직임도 보이질 않는다.
쓸데없는 일을, 하물며 돈까지 소모해가며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라면 응당 지닐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일이었으나 그것도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아마 ‘오늘의 던파’ 가고싶어서 뭐 테스트하는 분일듯”
“노잼”
진성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그들 또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였던 유저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시점에서도 진성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템이 파괴되든 말든 그가 꿋꿋이 하는 이유라면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벌써 몇 개나 날려 먹었는지. 쩝, 잡템인데 15강까지는 스무스하게 쭉 띄워줘도 괜찮지 않나. 그나마 골드가 얼마 안 들어서 다행이야.’
첫 번째라면 강화 비용이었다.
주변 유저들이 걱정해주었던 것과 달리 진성 자신이 엄청나게 많은 골드를 소모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
아이템 레벨에 따라 필요한 재화가 다르므로, 재료용 아이템인 <무색 큐브 조각>도, 강화 시 필요한 골드도 진성에게는 큰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무큐라면 키리랑 딜 해놓은 것도 있고.’
그나마 게임이 아니라 현실의 아라드를 살아가는 진성에게 있어 부담이 되는 부분이라면 강화시 필요한 재료라 할 수도 있는 <무색 큐브 조각>.
보통은 경매장을 통해 구입하거나 필요 없는 아이템을 해체기에 분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진성에게는 그럴 필요도 없다.
따라서 진성은 미리 이야기를 해둔 것이다.
“필요없……다니. 아뇨, 샤란 님께서 말씀하신 게 있어서-.”
“그러니 제 말 한번 들어보실래요?”
“……뭔데요?”
샤란의 호의를 거부해버리는 셈이 되는 짓을 키리가 할 수 있을 리는 없었고 그녀는 진성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을 때.
진성은 제안했다.
“제가 마법사 길드로부터 <무색 큐브 조각>은 사실상 무제한 수급을 약속받았거든요. ‘샤란 님’께서,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님께서 직접 약속해주신 거죠.”
“그……래서요?”
“근데 그게 또, 개수가 워낙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걸 일일이 들고 다니면서 계산하기도 뭐하고 하니까…… 차라리 제가 강화를 하고 나면 키리 님께서 마법사 길드에 청구해서 수령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그편이 키리 님 입장에서도 저를 도와주셨다는 어필을 샤란 님께 팍팍 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지 않으시겠어요?”
“그, 그건…… 으음, 하지만 강화 자체에 재료가 필요한 거라 사후 청구로 받기는-.”
“그러니까, 우선은 키리 님이 가지고 계신 재료를 제가 쓰면 되잖아요. 어차피 많으실 텐데. 안 그래요?”
“네, 네에?! 아뇨, 그게 아니라-.”
“아참, 그리고 증폭 때 필요한 <조화의 결정체>도 결국은 <무색 큐브 조각>이랑 뭐, 비슷한 개념이잖아요? 그것도 마법사 길드에 잘~ 이야기해 둘 테니, 그렇게 하시면 어떨까 싶은데. ‘마법사 길드장’이신 샤란 님께서 참 기뻐하실 것 같거든요. 저한테 도움 주시는 걸 워낙 또 좋아하시는 분이니……”
키리의 ‘마법 스승’ 샤란을 내세운 설득 아닌 설득.
그것이 진성이 마음 놓고 <오래된 메이스> 따위를 강화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좋아요…… 대신 마법사 길드에는- 확실히 말씀해주셔야 해요. 샤란 님께도 제가 충분히 협조했다는 말씀을 꼭 전해주셔야 하고요.”
“아유, 물론이죠. 아참, 그리고 또 있는데요.”
“또 뭐가요?”
“저도 뭐, 나중에 <장비 보호권>이나 <증폭 보호권>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12 강화에서 +13 강화의 도전이 실패했을 때 아이템의 파괴를 막아주는 <장비 보호권>.
그리고 +10 증폭에서 +11 증폭 도전 실패시 아이템의 파괴를 막아주는 <증폭 보호권>.
“그래서요?”
“근데 그것도 참, 구하기가…… 쉽지가 않단 말이죠. 사실 가격도 가격인지라, 부담이기도 하고.”
특히나 <증폭 보호권>이라면 시세의 낙폭이 아무리 커도 1,500만 골드 이상의 고가 아이템 중 하나이므로, 키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진성을 견제한 것이리라.
“잠시만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안된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군요. 아무리 샤란 님께 말씀을 들었다지만 그건-.”
“헨돈마이어…… 벨 마이어 공국의 수도, 그 한복판.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여왕님께서 계시는 집무실이 나오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키리를 보며 진성은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키리의 집 바로 옆 골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에 보이는 웅장한 종교시설용 건축물.
“그리고 바로 옆은 아라드 대륙을 주름잡는 프리스트 교단의 총본산, 레미디아 바실리카.”
진성은 그 이름을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러곤 긴장한 표정의 키리를 보며 말했다.
“말하자면 여기만큼 목 좋은 곳은 없다는 거잖아요? 주거용으로든, 상업용으로든. 천계에서 아라드로 떨어지신 지 얼마나 되셨더라~? 아라드에서 몇십 년씩 돈을 번 사람들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을 텐데, 그 짧은 몇 년 사이에…… 캬, 돈 많이 버셨겠습니다, 키리 님?”
“갑자기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상관있죠.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도 있고……. 아무리 수도 한복판이라지만, 조심하셔야겠어요.”
청기와가 얹어진 키리의 집 겸 매장의 입지.
그 부분을 스리슬쩍 건드리며 떠드는 진성의 앞에서 키리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잠-깐만요! 무, 무슨 뜻이죠?”
“아니, 아무 뜻도 아닙니다. 그저 마법사 길드의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으로서…… 저 또한 키리 님께 별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을 써드리겠다, 이런 뜻이죠.”
진성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키리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으나 그녀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진성은 그녀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뭐, <장비 보호권>이나 <증폭 보호권>을 무료로 달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도 얼마간은 드릴 테니까, 같은 샤란 님의 제자 겸 지인으로서 상부상조하자는 것뿐이니까요.”
그것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나 마찬가지였다.
“……알았어요. 대신 시세는-.”
“시세라는 게 오락가락하기도 한데…… 뭐, 어쨌든 그때의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럼 되는 거죠? 우리의 약속에 믿음을 더해서. 콜?”
“크읏…….”
수락한 키리에게 끝끝내 한마디를 더 얹기까지.
모호하게 마무리를 짓는 진성을 보며 키리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크크…… 균열 속에 있던 내가 열 받은 게 당연한 일일지도.]교묘한 말솜씨로 꼬고 엮는 진성의 화술은 사도조차도 제대로 당해내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8 강화까지 무료로 해준다는, 사실상 큰 의미 없던 보상을 진성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다.
<무색 큐브 조각>이나 <조화의 결정체>는 무료.
<장비 보호권>과 <증폭 보호권>은 ‘진성의 마음대로’ 할인 구입.
말 그대로 ‘약속과 믿음’이라는 기치 아래, 진성은 마침내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겪었던 일을 속 시원히 풀어낸 기분이 드는 것이리라.
“아, 그리고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는데.”
“또, 또 뭐요!”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뭘 바라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앞으로 진성은 강화/증폭/재련에 있어 오직 골드만 준비하면 되는 것으로, 게임 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할 수 없는 진성에게는 더없이 편리한 ‘도우미’를 얻은 셈이다.
즉, 현재 진성이 <오래된 메이스>를 강화함에 있어 특별히 수고로울 것은 없으며 소모되는 골드 또한 얼마 되지도 않는 상태라는 뜻.
결국 소란 아닌 소란을 일으키며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G.S.D 님의 제자분……? 어찌 여기에 있는 건가. 마법사 길드의 이름으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달빛 주점에서부터 하도 시끌벅적해서 와봤더니…… 당신이었어?”
다가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성의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갔다.
‘물었어.’
어떤 방법으로 현재 진성 자신이 만나고자 하는 NPC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기왕이면 그쪽에서 진성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만들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진성은 고민했고 키리와의 협상을 마치며 방법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NPC라면 유저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 일부가 되었든, 마을에서의 상호작용이 되었든, 유저가 모니터 너머로 해당 NPC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일반적인 경우였다고 한다면 그 NPC는 유저에게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
그러니 괜찮다.
“아, 안녕하세요, 아간조 님. 그리고…… 반 님.”
진성 자신이 건네는 인사, 대검의 아간조 그리고 소검의 반 발슈테트에 대한 대화는 주변 유저들에게도 보이지 않으리라.
현시점에서 진성 자신이 만나 설득해야 하는 타겟.
‘반 발슈테트. 저 인간을 자빠뜨려야 해.’
천계에 도달하는 첫 번째 마가타에 탑승하기 위해서라도, 천계의 사절역役인 마를렌과 협의를 끝낸 데 로스 제국 아이언 울프 기사단장에게 점수를 따내는 게 진성의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