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73)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73화(73/212)
073
마를렌 키츠카는 마가타 안에서 연신 고개를 꾸벅거렸다.
“정말 어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천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공에 대해선-.”
“아, 아, 너무 그럴 필요 없어요. 도왔다고 해봐야 히리아 황녀님께서 열심히 힘을 써주신 덕에 히스마의 뿔을 구한 정도지. 실제로 스피라찌의 뿔이나 스카사의 뿔은 저쪽의 모험가가 구한 거니까.”
“그래도……. 바칼이 남긴 마법진의 보호막을 뚫는 것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국에서 협조해주신 인력과 물자에 대한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예, 저희 황녀님께 꼭 전해드리지요.”
반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종류의 대화가 오갔다는 사실 또한 진성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인게임에서는 그냥 애니메이션 장면으로 넘어갔었는데. 뭐, 천계까지 가는 길에 대화가 없을 리는 없지.’
이번에 마가타에 탑승하여 함께 가는 유저는 여자 거너였다.
거너 직업군은 기본적으로 천계인이라 천계에서 내려온 사절, 마를렌을 대할 때를 비롯하여 천계와 관련된 시나리오 퀘스트 스크립트가 여타 직업군과 차이가 있다는 걸 진성 또한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저’인 모험가는 여기서 멀뚱멀뚱 있는 게 전부겠지만.’
아직까지는 해당 유저에 대해 크게 신경 쓸 게 없다는 생각과 함께 진성은 마가타를 둘러보았다.
현재 천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NPC 마를렌 한 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
레니와 팀을 이루었던 덴이나 피오나를 포함해 마가타에 탑승하고 있는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표정 또한 겁을 먹거나 긴장하여 굳은 얼굴은 아니지 않은가.
‘긴장감이 맴돌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흥분과 호기심이 많은 건 어쩔 수 없겠지. 천계라는 곳 자체를 처음 가는 사람들이니……. 마를렌이 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테지만, 그 실상까지 다 알리진 않았을 테고.’
마를렌이 아라드에서 천계에 대해 언급한 이야기는 두 개뿐이다.
하나는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라는 것.
또 하나는 ‘불을 먹는 안톤’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
‘천계의 문화, 역사가 파괴될 뿐만 아니라 존속마저 위태로운 최악의 위기상황이라는 이야기도 아마 했을 텐데…… 그래도 다들 어느 정도 쉽게 해결할 거라 믿는 건가. 쩝, 제국의 군사력이라는 게 그만큼 강력하니까 그걸 믿는 거겠지만.’
아라드 대륙의 최강의 국가가 군사적 도움을 주니, 전쟁쯤 금방 끝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달려온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리게 될 터.
‘일단 천계와 전쟁을 벌인 군벌 조직 ‘카르텔’에 납치된 천계의 황녀를 구하는 게 첫 번째. 일단 여기까지 하면…… 카르텔 잔당들이야 남는다 해도 천계에서 당장 할 일은 거~의 끝나는 셈이지. 어차피 ‘진짜 큰 전쟁’은 한참이나 후에 귀족들과 함께 벌어질 테니까.’
당장 중요한 부분만이라도 제대로 마친다면 일단 전쟁과 관련된 문제는 한시름 덜 수 있다.
즉,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납치된 천계의 황녀를 구출하고 현재 천계의 황도를 위협하는 카르텔 무리를 내쫓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안톤.’
마를렌 키츠키가 말한 거대 괴수.
불을 먹는다는 것이 결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닐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를 흡수하는 거체.
에너지원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산이 걷고 섬이 움직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무엇보다 천계인들만의 힘으로 안톤을 처리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 또한 존재했으니…….
‘제7사도, 불을 먹는 안톤……아마 당장은 겪지 않을 거야. 이번 시나리오 퀘에서 당장 안톤과 상대할 일은 없으니…… 시란과 함께 과거를 드나든 다음에나 상대하겠지만-.’
현시점 천계와 관련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을 진성은 알고 있다.
당장 중요한 일은 역시 카르텔에게 납치된 황녀를 구하는 것이다.
그 일이 끝나고 나면 천계의 황궁은 재정비에 들어갈 것이며, 사도 안톤을 상대하는 건 그 이후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로 진행된다.
그사이 유저, 즉, 모험가는 NPC 시란과 함께 이러저러한 일들을 처리하게 되는바, 아직까지 안톤을 마주하기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럼에도 진성이 굳은 얼굴을 하는 건 역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안톤과 관련된 오염도 있을 거야. [차원의 틈]이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스카사] 따위의 오염이 나타났던 걸 생각하면…… 심지어 내 예상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오염되었을 때를 대비해야겠지. 안톤 퀘스트 중 가장 위험한 곳. 가장 방심하기 쉬운 곳. 아마도 그런 장소에서 오염은 나타날 거다.’
<오염의 원인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증에 근거한 각오였다.
로터스가 그랬고 디레지에가 그랬듯 이번 사도의 움직임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터.
“긴장되나? 잔뜩 얼었는데?”
생각을 정리하는 진성의 앞에 그림자가 졌다.
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진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 긴장은 아니고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의자에 앉은 그대로, 일어나지도 않은 채 하는 답변에 반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고소공포증? 웃기지도 않는 소리. 어쨌든 마를렌 님에 의하면 이제 곧 천계에 도착이다. 그리고 천계에 도착하면 때를 봐서……만나자고.”
한 사람의 제국군 군인이라도 더 태워야 마땅할 마가타에 굳이 한 자리 낸 것은 결국 반 자신의 고집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천계와 아라드의 교류가 향후 더욱 활발해지면 ‘보는 눈’은 아라드 못지않게 천계에도 많아질 것이니, 반으로서는 그 전에 확답을 내고 싶은 눈치인 게 당연했다.
“네, 한번……시간을 잡아보죠.”
진성이라고 피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점에 진성이 거부할 필요 자체가 없는 일이었다.
‘……아직 모르는군. 지난번과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은 그대로야. 그렇다면 아직 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진성 자신에게 눈이 뒤집어졌으나 반은 곧 마법사 길드원 따위에겐 신경조차 쓰지 못하게 될 테니까.
진성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좋아. 네 녀석의 그 표정을 에밀리에게도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지.”
반이 껌뻑 죽는 그의 아내, 에밀리.
하츠 폰 크루거와는 사촌지간이며 과거 에밀리 폰 크루거라 불렸던 여성.
진성은 “그럴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려다 그저 삼켜야 했다.
반과 굳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를 도발하여 천계에 오게 되었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감안하면 어차피 적대하게 되겠으나…….
‘그렇다고 벌써부터 너무 눈 밖에 나는 것도 곤란하겠지.’
당분간은 천계에서 어떤 오염이 발생할지 알아내기 위해 활발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괜히 제국군에게 찍혀봐야 좋은 게 없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진성이 지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따위의 말을 하는 건 반의 기억에 너무나 강렬하게 남게 될 가능성이 있기에, 그는 말을 삼키며 고개만 끄덕이는 셈이었다.
‘……에밀리는 이제 죽는다. 반이 천계에 진출하는 시점, 거의 얼마 안 되어서.’
반 발슈테트의 유일한 그녀. 에밀리는 곧 사망하게 될 테니까.
심지어 그 사실을 주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삼키게 될 테니까.
의자에 앉은 진성과 그 앞에 선 반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는 곧 휩쓸려 사라지게 되었다.
“단장! 어이, 단장! 제길, 대단하군.”
“우와아아앗!? 진짜 도시다! 진짜 도시입니다, 단장님! 천계에 도착했어요!”
하츠와 덴의 떠들썩한 소란과 함께 마가타 내부는 삽시간에 환호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라드를 기준으로 하늘 위의 바다 너머 도착한 새로운 땅이자,
기계 문화의 정수를 꽃 피운 세상.
마침내 진성과 아라드인들이 탑승한 마가타가 천계天界에 도착했다.
* * *
천계에서 ‘지벤 황국皇國’이라는 이름을 굳이 쓸 필요 없는 이유는 하나의 국가만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멈춰라! 네놈들은 누구냐? 어떻게 겐트에 들어온 거지?”
마가타에서 제국의 군인들이 우르르 내리기 무섭게 반응이 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천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국가의 수도, 이곳은 ‘황도 겐트’였기 때문이다.
오래되어 보이지만 잘 손질된 검은 갑주로 무장한 여장부가 외쳤다.
“뭐지, 천계의 군인들인가?”
반을 포함한 아이언 울프 기사단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질끈 묶은 머리카락만 봐도 그녀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겠으나 당장 마가타에서 내린 제국군들의 눈에 띈 것은 그녀의 오른손이었다.
그것을 의수라고 해야 할까.
팔 대신 핸드캐논이 부착되어 있는 모습은 하츠나 덴마저도 움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젤딘 님! 멈추십시오.”
“마를렌 님? 정말 마를렌 님입니까? 아랫세계로 가신다고 하신 후 한동안 소식이 없으셨어서 마침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마를렌이 재빨리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천계의 황국, 그 황도인 ‘겐트’를 지키는 수비대장.
젤딘은 마를렌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런 눈으로 말했다.
마를렌 또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운이 있어 무사히 아랫세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랫세계에서 우리를 도와주실 분들도 모셔왔지요.”
“아랫세계가 진짜 있었습니까? 게다가……이들은 아랫세계의 군인입니까? 세상에.”
젤딘은 반을 비롯한 아이언 울프 기사단을 번갈아 살폈다.
반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데 로스 제국의 기사, 반 발슈테트입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천계를 도우러 왔습니다. 실력 좋은 모험가도 있고요. 천계와 아라드의 교류가 끊긴 지 오래되었지만, 위기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 반의 곁에는 여자 거너 유저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천계에 도착해서 일어나는 이벤트이자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흐름이라는 것을 진성은 모를 리가 없었다.
젤딘은 멋쩍다는 듯 반과 여자 거너 유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런, 제가 큰 오해를 했군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우선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러곤 아이언 울프 기사단을 겐트 수비대의 병영 또는 본부라 부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가기 시작했다.
진성은 그즈음에서 슬그머니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반이 유저를 소개했고 아라드의 군세가 천계를 도우러 왔음을 공표했으며, 그것을 천계의 황도 수비대장이 받아들인 지금 시점이라면?
‘당장 나한테 신경을 쓸 수는 없겠지. 그리고 아랫세계 사람들이 왔다는 소문이나 그들이 수비대장 젤딘에게 안내받았다는 소문이 후다닥 퍼져버리면 천계의 수비대라 할지라도 나한테 함부로 하진 않을 테고.’
사실상 진성이 홀로 움직여도 좋다는 모든 신호가 생성된 게 아닌가.
진성은 고민도 없이 슬그머니 무리에서 빠져나와 몸을 돌렸다.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기에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천계와 관련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흐름은 이미 파악하고 있을뿐더러, 마치 진성을 부르는 듯한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포성이 아주 쿵쿵 울리는구나. 황도 겐트까지 이 난리가 날 정도라면 역시 카르텔과의 전쟁은 무난하게 진행 중이라는 거겠지.’
천둥과 같은 포성이 공기를 갈라내고 있다. 결국 그쪽으로 가보면 모든 걸 알 수 있다는 뜻.
무엇보다 카르텔과의 전쟁처럼 아주 큰 부분에서 오염에 의해 어긋난 게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된 것만으로도 진성의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지난번 반투족처럼 감감무소식이었다면……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감도 못 잡았을 텐데. 아니, 그렇게 보자면…….’
지난번과 유사한 사건이었다면 제아무리 진성이라도 움직이지 못했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오염의 원인자>라 할지라도 집단을 동시에 오염시켜 흔드는 일은 할 수 없다는 뜻일까.
진성은 고심하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염은 이제부터 알아가면 된다.
‘일단 소리가 제일 크게 울리는 건 동쪽……. 동문? 동문 밖 외곽인가.’
모험가는 젤딘에게 모든 설명을 들은 이후 움직일 테니 어차피 아직 여유가 있을 터.
던전 지역:안트베르 협곡.
천계에 도착해 가장 먼저 겪는 장소다.
진성이 향하는 곳은 해당 던전 지역 내부에서 유저가 첫 번째로 입장하는 던전, ‘겐트 외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