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75)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75화(7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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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진성은 이것이 오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벤팅크는 게임 플레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유저에 의해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맥락을 기준으로 보자면 유저와 ‘모래바람의 베릭트’ 두 사람에 의해 제압된다.
그런 그가 다시 등장하는 건 베릭트와 함께, ‘전향한 카르텔인’으로서 나타날 때뿐이다.
즉, 이 시점에서 겐트의 감옥으로 이송되는 와중 그가 수비대원들을 뿌리치며 달아날 리는 없어야만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오염’의 일부분이라 확신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진성이 놀란 것은 고작 벤팅크가 날뛰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비교적 던파를 최근에 시작한 사람이라도…… 잘 알 거야. 아니, 엄밀히 따지면 스토리를 스킵하는 유저들마저도 알 거야.’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지금까지 공개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중 유저들을 괴롭힌 것으로 치자면 손에 꼽을 정도의 적이 있다.
레벨 50대에 시작하는 천계 스토리에서 처음 등장하여, 향후 <시간의 문> 시나리오 흐름은 물론 그보다 더 미래의 일, 뿐만 아니라 더욱 미래의 사건에서조차 개입하여 앞길을 막는 적.
‘그래, 스토리로 보면 현재도……. 카르텔과 황국 정규군이 싸우는 현재서부터, 향후 ‘죽은 자의 성’에서 난리를 칠 미래…… 그리고 미래이지만 동시에 과거, 그러한 시간선까지 가서도 유저들을 괴롭히는 놈!’
모험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천재이자 괴짜, 자신의 과학적 탐구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지젤!’
한때 천계를 대표하는 7명의 학자 중 하나인 ‘세븐 샤즈’의 일원이었으나 그로부터 자칭 탈퇴라 부르는 강제 축출 이후 그는 이미 뒤틀려있던 욕망을 참지 않고 드러내게 된다.
카르텔과 손을 잡은 현재에 멈추지 않고, 마계에까지 나아가 ‘어비스’ 관련 연구를 하고, 이후엔 ‘차원’ 연구를 위해 다시금 죽은 자의 성까지 잠입하여,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과학으로 편입시키려 한다.
당연히 그 연구 과정에 윤리니 뭐니 하는 것 따위는 존재치 않으며, 그런 악랄한 방향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이론만 가지고는 갖출 수 없는 지식을 결국 확보해버렸으니……. 이 시점에서 이미 카르텔과 손을 잡은 것처럼, 무수히 많은 악의 세력들은 앞으로도 지젤의 악마적인 두뇌를 탐내며 다가오게 되는 것!
‘근데 지젤이라니?! 아니, 엄밀히 따지면 지젤은 아니지. 저건 벤팅크야. 방화범 벤팅크! 최근에 던파를 시작한 유저라면 인게임에서 몇 번 보지도 못했을 텐데, 아마 그런 존재조차 모를 만한 몬스터이자 NPC인데!’
진성은 당황스러웠으나 곧 해답을 찾았다.
어째서 벤팅크를 보며 지젤을 떠올렸는지.
‘크하하핫! 멍청한 놈들, 이라고 말했던 대사….. 이 톤, 이 목소리마저도! ‘마이스터의 실험실’ 던전에서의 보스 지젤이 하는 멘트잖아! 근데 그걸 벤팅크가-.’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시점에서, 이제 진성은 당황하고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칠 정도의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진성은 벤팅크를 보았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태연자약한 모습.
어떤 의미로는 주제 파악 못 하고 건방지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드는 저 태도.
무엇보다 그가 조금 전에 한 대사.
거기에 더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그의 외모까지.
‘아냐, 아니지. 그럴 리가 없어. 벤팅크가 지젤과 가족관계라던가, 뭐, 먼 사촌 이딴 것도 아냐. 그런 건 없다. 없……는데!’
진성 자신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모든 배경 설정, 모든 캐릭터 설정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요 캐릭터와 관련된 정보라면 당연히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지젤’과 관련된 정보라면 사실상 거의 다 알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지젤?”
“뭐?”
“오염되었다는 자각은 없겠지. 넌 뭐야. 벤팅크, 너 지젤과는 무슨 관계지?”
“무슨 멍청한 소리인지 모르겠군. 지젤 박사님에 대한 것을 왜 나한테 묻지?! 아니, 설령 내가 안다고 해도 대답할 것 같나!?”
“아는 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진성은 <흑광검 카이너스>를 꼬나쥐었다.
벤팅크는 자신의 팔과 마찬가지인 화염방사기를 이리저리 흔들며 소리쳤다.
“황도 수비대도 나한테 통하지 않았고, 저 모험가라는 녀석이나 젤딘, 모래 냄새나는 영감도 없는데 네깟 놈이 나를?! 크하하핫, 후회하게 해주-.”
벤팅크가 말을 끝내기도 전, 바람이 불었다.
그가 말한 모래바람은 아니었다.
벤팅크가 다시금 곳곳에 저지른 불꽃들이 바람길을 따라 붉은 천처럼 공간을 휘감았을 때.
“이거, 이거, 또 지젤처럼 말하네. 야, 너 뭐냐고.”
“……무, 무슨…….”
진성은 이미 벤팅크의 뒤에서 그의 목덜미에 검날을 겨눈 상태였다.
“대답 안 해? 너 뭐냐고. 가족관계부터 불어 봐. 벤팅크는 이름이냐? 성은 뭐지? 지젤이랑 무슨 사이? 어떻게 알게 됐고, 어디까지 알고 있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반말?
흑색을 흩날리며 웅웅거리는 날카로운 빛무리들이 벤팅크의 목을 살짝 그었다.
그가 뿌려댄 불꽃보다도 붉은 핏물이 방울지기 시작했다.
“모, 모르겠는데요, 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러니까 아는 대로 다…… 아니다, 어차피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겠지. 감옥에 가둬놓으면 될 테니까…… 따라와. 아참, 맞다. 그 팔.”
“네? 제 팔이 왜-에에에에에엑!?”
서걱.
진성은 벤팅크의 팔을 베었다. 정확히는 그 팔과 한 몸처럼 결합되어 있는 화염방사기를 베었다.
화염방사기의 연결이 끊어지며 솟구치는 불도 잠잠해졌을 때, 진성은 그것을 조심스레 주워들으며 말했다.
“아, <흑광검 카이너스> 괜히 샀네. 이럴 줄 알았으면. 와서 벤팅크 팔이나 뜯으면 렙제 더 높은 광검 유니크 생기는 건데.”
그것은 광검, <벤팅크의 화염분출기>였다.
[클클클…… 조금만 성능이 좋다고 손에 익은 것을 바로 무시하는 건가.]“너도 마찬가지야, 흑구. 아무리 특수하게 만들어진 장비여도 말이지, 아직 착용도 못 하긴 한다만- 나중에 에픽으로 싹 바꿔버릴 수도 있다고.’
[……차원의 균열 속에 있는 나에게 발각되었을 시, 너는 반드시-.]“쉿.”
진성이 무려 888만 골드나 주고 산 <흑광검 카이너스>보다 더 높은 공격력 수치를 지녔으나 현재는 사실상의 ‘단종 아이템’에 가깝다.
구할 수가 없는 탓에 쓰는 유저도 없었으니, 진성으로서도 잠시 잊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 무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팔, 아니, 내 불방망이!”
“이름이 불방망이가 뭐냐, 촌스럽게. 하여튼 따라와.”
“아, 아아아, 귀! 귀!”
진성은 그대로 벤팅크를 겐트의 감옥까지 끌고 갔다.
황도 수비대원들이 어찌 된 일인지 잠시 멍하니 있었으나, 진성은 그저 둘러댈 뿐이었다.
“젤딘 님의 지시로 벤팅크를 이감하는 도중 갑자기 난동을 부려서요. 다행히도 지나가던 모래바람의 베릭트 님이 도와주셔서……. 저는 그냥 지나가던 행인인데 여기까지 온 겁니다.”
“아…….”
“그리고 젤딘 님이 몇 가지 좀 물어보라고 하셨는데, 공식 취조라기에는 뭐하고 질답 좀 몇 개 하고 가도 될까요?”
밖에서 카르텔의 맹공을 받고 있어 감옥의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겐트에서, 너무나 뻔뻔하게 말하는 진성의 말을 믿지 않을 자는 없었다.
* * *
진성은 불만을 가듬 담은 표정으로 겐트 남문을 향하는 중이었다.
‘일부러 팔 잘라내는 퍼포먼스까지 하면서 겁도 줘보려는 거였고, 분명 먹히긴 했을 텐데도…….’
방화범 벤팅크는 진성의 원하는 종류의 답변을 주지 않았다.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처지에, 어쩌면 죽을뻔하기까지 한 벤팅크가 거짓을 말한다고는 할 수 없을 터, 따라서 진성으로서는 어쩐지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오염은 오염이었어. 뭐, 오염을 바로잡았다 해도 카드가 툭, 튀어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 스카사 정도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여러 개의 오염이 이미 중첩되어 있었고……. <오염의 원인자>에 의해 오염된, 어떤 의미로는 가장 중요한? 가장 위협적인? 가장 필수적인? 개체의 오염을 바로 잡았을 때에야 카드가 나오는 게 보통이었으니.’
허무할 정도로 벤팅크는 지젤과 관련이 없었다.
지젤에 대해서 그가 아는 거라곤 오히려 진성이 배경 설정을 통해 아는 것보다도 적을 정도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벤팅크는 뭐랄까, 중간보스나 간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행동대장급 정도니까. 딱 그 정도만 아는 게 맞지. 그래도 다행이라면…… 아까 카르텔 단원한테 들었던 말과 벤팅크가 지시받은 카르텔의 작전이 거의 일치한다는 거고.’
지젤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소득이 없다.
“진짜 몰라? 이게 다지? 너, 나중에 지젤 붙잡아서 너랑 관계있다는 말이 나오면-.”
“지, 진짜라니까요! 저 같은 사람은 먼발치에서 몇 번 본 게 전부인데! 기계팔 워잭 님이나 다른 분들이면 몰라도 제가 지젤 박사님과 무슨 친분이 있겠고, 하물며 무슨 혈연관계 같은 게 있겠습니까! 그랬다면 저도 간부급이 됐지!”
“이 새끼가, 말하는 뽄새- 야, 성질내냐?”
“그, 그게 아니라…… 말씀드렸는데 지금도 자꾸 같은 질문을 하셔서……분위기도 무섭고…….”
“너 같은 놈한테는 그래도 돼. 마음 같아선 카르텔 일원인데다, 그동안 네가 불 지르고 어쩌고 하며 생긴 피해 생각하면! 분명 네가 지른 불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을 텐데! 확 그냥 찔러 버릴까.”
“그것은, 그러시면 안 되죠. 저, 저는 이제 죄인인데. 법원의 판결? 그런 거-.”
“팍 씨, 카르텔에 법원이 어디 있었다고. 하여튼……. 일단 내 질문에 협조해 준 것만으로 넘어가 줄 테니까 앞으로 착하게 살아. 알았냐?”
“옙. 중간에 난동 일으켰다는 말도 안 하고 얌전히 있겠습니다.”
“그건 네가 유리하려고 그런 거면서…… 일단 알았다. 앞으로 지켜볼 거야. 그리고 카르텔 작전도 그거 다 맞는 거 확실하지?”
“넵! 거짓이라면 제 목을 걸겠습니다!”
“앞으로 잘해라. 간다.”
“……전향하던가 해야지, 천계에 저렇게 무서운 사람이-.”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젤과 관련된 추측을 허탕 쳐 허무했던 진성에게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현재 던전 지역:안트베르 협곡에서 진행될 카르텔의 계획들.
사실상 크로스 체크까지 마쳤기에 진성은 거침없이 겐트 동문을 향하는 중인 것이다.
‘일단 이번 오염에서 카드가 나올 가장 확률 높은 사람은 지젤이라는 가정하에 움직이는 게 좋겠어. 현시점의 천계에서 쓰는 발명품들을 잘 기억해내면서…….’
진성이 벤팅크와 한바탕하고 오는 사이, 유저 또한 이러저러한 대화들을 마친 시점이었다.
조금 전 보았던 여자 거너 유저가 겐트 동문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며 진성도 슬그머니 그녀의 뒤를 쫓았다.
‘어쨌든 벤팅크가 난리를 친 걸 보면 저 여거너 유저가 이번 오염 대상이 맞기는 맞다는 걸 테고. 아마 이번 던전에서는 뭐, 특별할 게 없겠지. 네임드가 나오는 것도 아니니.’
카르텔의 계획은 겐트 동문의 정확한 좌표를 산출, 전송하여 동문과 성벽을 포격하는 것.
그 틈으로 카르텔 단원들을 일제 진격시켜 단숨에 황도 겐트를 점령하겠다는 계획이었으며, 현재 겐트 주변 각지에서의 전투는 사실상 이 폭격을 위한 눈속임에 가깝다는 것이 바로 카르텔 단원과 벤팅크의 자백이 아니었던가.
‘TMH 통신병…… 오케이.’
여자 거너 유저는 능숙한 솜씨로 통신병들을 사살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시스템상 던전의 클리어 판정이 나온 것일까.
잠시 가만히 서 있던 그녀를 진성은 바라보았다.
‘이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야. 왜 나는 데릴라가 안 보이지? 아니, 데릴라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브리엘은 보였으면……. 경매장을 못 쓰는 나한테는 이래저래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무기의 수리 또는 ‘잡템’의 판매 등을 담당하는 NPC.
던전을 클리어한다면 그곳이 얼마나 험난한 던전이든 유저의 야영지에 뿅! 하고 생성되는 NPC가 진성 자신의 눈에도 보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저들 사이에서 던파의 최강자는 데릴라 아니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만약 만나서 대화할 수만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상당할 텐데.’
진성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여자 거너 유저는 곧장 겐트 동문에서 몸을 돌려 겐트 시내를 향하기 시작했다.
‘오케이, 그럼 이제 다 끝…… 응?’
너무나 특별할 게 없으므로 진성도 방심했다고 해야 할까.
유저를 따라 겐트 시내로 움직이려던 진성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벽 뒤에 숨어있는, 각도상 유저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는.
즉, 유저의 ‘모니터 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통신병 하나.
등에 짊어지고 있는 거대한 무전기를 정신없이 가동하며 송수화기를 드는 그의 모습을, 진성은 보았다.
‘이런, 미친, 오염-.’
재빨리 <흑광검 카이너스>를 쥔 채 스킬을 발동시키려 하지만 이미 통신기는 가동된 것일까.
통신병의 입 모양이 웅얼거리는 것을 본 진성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스킬을 사용하려는 순간!
타아아아아앙……!
총성이 울렸다.
통신병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
당황스러운 것은 진성이었다.
유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곳곳에서 황도 수비대와 카르텔은 전투 중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아무도 없어야 정상인데?
‘던전 내부’ 판정이므로 다른 이는 없어야 하는데?
저벅, 저벅, 저벅…….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추정되는 자는 모습을 드러내며 진성을 향해 걸어왔다.
진성은 그 모습에 일단 놀랐다.
“여자 거너? 엉?
그 모습은 유저들의 플레이어블 캐릭터이자 직업인 ‘여자 거너’와 똑 닮아있었기 때문.
그러나 놀란 이유가 외형 때문이라면, 그가 너무나 놀라 아무런 반응조차 보일 수 없었던 이유는 그다음의 말 때문이었다.
“……당신도 빙의자?”
여자 거너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