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76)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76화(76/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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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2년이다. 2년 만에 겨우…… 겨우 천계까지 왔어.’
그녀의 손에 쥔 무기, 자동권총의 곳곳에 난 흠집은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 고생을 해왔는지에 대한 방증이라 해야 할까.
겉보기에도 대단할 게 없는 무기였다.
레벨 제한으로 따지자면 20 또는 30 수준이나 될까 말까 할 것이다.
무엇보다 화약을 사용하는 무기가 이토록 험하게 다루어진 상태라면 방아쇠 한 번 당기는 것만으로도 폭발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르건만, 그녀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무기를 꼬옥 쥐었다.
‘그래도 괜찮아. 아라드에서는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일단 주어지는 게 있으면 나도 분명히-.’
타아아아아앙-!
‘-히이이익?!’
총성 한 방에 그녀는 곧장 주저앉으며 몸을 웅크렸다.
자신이 쥐고 있는 것 또한 총기건만 그것을 사용한다거나 외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겁을 먹은 상태였다.
어떤 의미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끄아아앗-!”
“도, 도망쳐! 카르텔이 온다!”
“벤팅크가 다시 난동을 부린다! 수, 수비대 불러!”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각종 소음은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총성만이 아니라 포성까지 어우러진 데다, 무언가가 지글지글 끓고 부글부글 타오르는 소리는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지.
평소의 상황이라면, 그녀가 알던 세상에서라면 쉬이 들을 수조차 없는 소리에 비명까지 더해진 아수라장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제 한 몸을 끌어안고 숨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삐-뽓.”
“쉬, 쉿!”
그녀는 자신의 어깨 위에 둥둥 떠 있는 작은 드론과 같은 로봇을 재빨리 낚아챘다.
로봇의 상부에서 빠르게 돌던 로터에 의해 자신이 다칠 수도 있으나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는 행동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절박했으니까.
‘벤팅크는 분명 잡았는데…… 여기서 왜 갑자기 벤팅크가 난리를 치냐고! 제발, 제발, 제발! 2년이 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낸 걸로 만들지 말아줘! 이제 겨우 세븐 샤즈Seven Shards와 연결이 되려는 찰나에 죽을 수는 없어!’
천계의 세상에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천계를 지배하던 폭룡왕 바칼이 천계의 모든 마법을 없애버렸고, 해당 지식이나 정보가 전수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통제했기 때문.
그러한 지배 속에서 결국 천계인들은 마법 대신 또 다른 방향의 문명 발전을 이룩해야만 했으니, 그것이 바로 과학이다.
마법이 없이 오직 과학만이 발전한 이곳, 천계의 황국 ‘지벤’에서도 특히 가장 훌륭한 연구 집단을 ‘세븐 샤즈Seven Shards’라 일컬었다.
말 그대로 7명으로 이루어진, 제각각의 분야에서 이/공학적으로 압도적인 성취를 보인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모임.
그녀가 원하는 것은 세븐 샤즈와의 접점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세븐 샤즈와 조우한 이후부터 획득할 수 있는 것들.
‘이제 AT-5T라도 얻으면 나도 분명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거라고. 응, 내가 고치거나 추가할 수 있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쓰기 불편한 스킬보다 훨씬 나을 거야. 세븐 샤즈를 만나서 아예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얻어도 좋을 것이고.’
그 작은 희망을 생각하며 그녀는 안경을 치켜올렸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그녀의 머릿속에 마치 주마등처럼 지난 2년간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던 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난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냐고.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건 아직도 익숙하지 않지만…….’
천계에 당도하느라 들였던 노력도 결코 편하진 않았으나 천계에서 그녀가 해야 할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충분히 익숙해졌을 법도 한 시간이 지났고, 실제로 그녀 또한 상당히 긴 시간을 보내왔음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일 중 하나였기 때문.
‘괜찮아. 그래도 이제 눈앞에서 그런……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아도 될 시기가 될 테니- 음?’
지난날의 고생을 떠올리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던 그녀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무, 무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팔, 아니, 내 불방망이!”
“이름이 불방망이가 뭐냐, 촌스럽게. 하여튼 따라와.”
“아, 아아아, 귀! 귀!”
‘잉? 지금 저거……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나? 유저가 안 해도 되는 거였어?’
누군가가 방화범 벤팅크의 귀를 꺾어잡고 끌고가는 모습.
순식간에 제압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미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를 분리시킬 정도로 깔끔한 칼솜씨라니?
곧장 확신할 수 있는 점이라면 우선 벤팅크를 제압한 자는 유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황도의 드넓은 맵 중에서 유저가 다니는 매우 한정된 길은 그녀 또한 알고 있었기에, ‘유저들이 다니는 길’이 아닌 곳으로 다니는 자는 결국 NPC 또는 이곳 아라드에 살고 있는 주민이라고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어 그의 뒤를 쫓았다.
‘사람…… 아니, NPC인가? 근데 저런 NPC가 있었어? 아휴, 스토리나 퀘스트 같은 건 관심이 없었으니…….’
지금 벤팅크를 잡아 끌고 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황도의 감옥까지 그를 이송하며 수비대원들의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정체는 누구인가.
그녀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매우 적다.
대략적인 흐름조차도 아리송하게 떠올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황도 수비대는 아니야. 내가 던파 스토리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히 알아.’
그럼에도 그녀는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이질적인 외형이 증거였으니까.
‘다크나이트…… NPC 중에 다크나이트는 없었어.’
평소라면 결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안전이 최우선. 천계에 오르기까지 3년여가 걸릴 정도로 조심스레 살아온 그녀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유저도 아니고, NPC도 아니라면 저 다크나이트는…….’
지적 호기심 그리고 본능적인 직감.
그가 또 다른 여자 거너의 뒤를 밟아나가고 있음을 그녀는 보았다.
‘던전이다. 겐트 동문 쪽 던전이라면 아직 안 와본 곳인데. 나도 해야 하나? 벤팅크까지는 깼는데 이건 언제 깨야 하는 던전이지?’
이제 접어드는 장소가 던전 구역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으나, 이러한 던전을 언제, 어떤 퀘스트와 함께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지식이 없는 수준이었으니 그저 쫓는 게 전부였다.
앞서나가는 여자 거너.
뒤를 쫓는 다크나이트.
그 뒤를 밟고 있는 그녀 자신.
‘잉……? 저건 이상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이제는 위화감이 아니었다.
던전 구역 안에서 그는 움직이고 있다.
그것도 여자 거너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따라가며 관찰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났던 케이스와는 또 달라. 그래도 지난 2년이 넘도록 몇 사람을 만나봤지만, 저런 사람은 없었어.’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여러 만남들을 끄집어내어 비교해보았다.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몇 개의 경우가 분명히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일은 아니었다.
‘내 경험과는 또 다르지만…… 분명해.’
그녀는 그의 행태를 지켜보았다.
여자 거너가 던전 밖을 빠져나가자 그 역시 슬그머니 등을 돌려 나가려는 모습 또한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TMH 통신병, 몬스터로 분류되는 카르텔 조직 하나가 숨어있던 풀숲에서 버스럭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고 그런 종류의 몬스터는 지금까지 여자 거너가 처치해왔었다는 것을.
‘몬스터가 남아있어? 던전 클리어 판정을 받은 게 아니었나? 왜 몬스터가 남아있-.’
도대체 무슨 일인지, 여전히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쫓던 다크나이트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검을 뽑고는 해당 몬스터를 향해 쇄도하려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숨어서 지켜만 보던 자의 다급함?
그것은 분명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소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이었음에도 그녀는 이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먼저 움직인 것은 손.
쥐고 있던 자동권총을 겨눈 그대로, 그녀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아아앙……!
통신병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
다크나이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어 그를 향해 걸었다.
저벅, 저벅, 저벅…….
“여자 거너? 엉?”
자신을 발견한 남성이 놀란 것을 확인한 시점에서, 그녀는 확신했다.
“……당신도 빙의자?”
그녀는 말했다.
* * *
진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여자 거너는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는가.
우선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라면 진성 자신이 원래 뒤를 밟던 유저, 여자 거너가 아니라는 점.
‘아까 그 여자 거너는 레인저였어. 그리고 이 여자 거너는 옆에 떠 있는 ‘마르바스의 하인’을 보니까 메카닉이야. 여메카. 금테 안경을 끼고 있는 걸 보면- 진眞 각성이라도 한 건가?’
외형을 보자마자 진성은 몇 가지의 정보를 유추해냈다.
로터를 빙글빙글 돌리며 떠 있는 작은 드론형 로봇을 보자면, 여자 거너 직업군 중에서도 메카닉이다.
백금발 헤어스타일부터 금테 안경을 낀 푸른 눈동자까지 진성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여자 메카닉 진 각성 일러스트’와 매우 유사하다.
‘근데 진각이라기엔 G-오퍼레이터도 없고……’
얼굴만 보자면 분명 진성 자신의 기억과 같으나, 레벨 100 달성 후 진眞각성까지 마친 흔적이 없는 상황에서, 진성은 자신과 비슷한 180cm 전후의 그녀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 여자 거너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가.
그리고 나서야 그녀가 메카닉이든, 진 각성을 마쳤든 아니든 하등 중요치 않음을 깨달았다.
‘니, 닉네임이 없다…… 안 떠!? 어라라?’
유저였다면 반드시 보여야 할 정보가 진성 자신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
당황한 진성을 향해 여자 거너는 물었다.
“대, 대답해요. 빙의자……맞죠? 일반적인 유저나 NPC는 아니잖아요? 그쵸?”
재차 묻는 그녀의 말까지 듣고 나서야 진성은 깨달았다.
애당초 그녀의 질문에서 유추할 수 있었음에도, 어찌나 당황했던지 잠시 놓쳐버린 사실이기도 했다.
“……잠시만. 당신’도’ 라고 질문한 건…….”
당신은 누구냐, 당신은 빙의자냐, 라고 묻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당신도’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지 않는가!
‘아……설마.’
진성은 기억해냈다.
아직 빙의되기 전에 겪었던 일이 있었다.
‘레인저…… 그 레인저 유저, 아니, 유저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자면 일반적인 유저가 아니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와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진성 이전에 그 사람이 존재한 것만은 분명하며, 그러한 일이 줄곧 이어져 왔다는 점.
‘그렇구나. 네메르는 날 <부집게>라 말하면서 빙의시켰었는데……. 그래, 그때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방법이 옳지만은 않았다고 말했어.’
<오염의 원인자>라는 방해꾼이 있기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금은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방법’이라는 게 바로 진성을 빙의시키는 일이었다.
<오염의 원인자>에 의해 비뚤어진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서, 즉, <부집게의 사명>을 수행시키기 위해서.
그 목적은 분명했다.
‘<캐릭터 모험가>들이 제대로 된 흐름을 쫓아야만 하니까.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단련되어야만 하니까. 그리고…… 그래야 했던 이유라면…….’
‘게임’을 통해 일종의 시험을 치르는 셈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캐릭터 모험가>로 우선 전체적인 흐름을 기억하는 와중에도 출중한 실력을 지닌 자들을 선별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네메르는 줄곧 그러한 일을 해왔음이 분명했다.
“맞죠? 당신도 모험가죠?”
다시금 입을 연 그녀를 통해서 진성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캐릭터 모험가를 단련시키고 개중에서 특출난 자들을 선별하려는 이유는 무엇이었나.
진성 자신보다 ‘이전에’, 즉, [진정한 모험가]가 될 자격을 갖췄다고 판단되어 네메르에 의해 빙의된 자.
“지금까지 빙의된 모험가를 몇 사람이나 만났는데 다, 다 떠나버려서……. 당신은 언제 빙의됐죠? 지금 바깥은 몇 년도예요? 여기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원래 던파에서는 뭘로 유명하던 분이었어요?”
엄밀히 따지자면 ‘단 하나의 연단된 칼날’이 될 후보인 ‘모험가들’이 아라드에 있었고, 지금도 있음을, 그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진성은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불안에 젖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