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8)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8화(8/212)
008
진성은 생각했다.
‘렉 현상이었다고? 라면 먹고 어쩌고 한 게 아니라 렉? 그게 말이 되나?’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던전앤파이터에도 물론 렉 현상은 있다.
게임 서버만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컴퓨터와 인터넷 회로의 문제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온라인 게임을 즐겼던 유저라면 반드시 겪어볼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법한 시점에 렉이 걸렸다가…… 문제가 딱 해결되자마자 렉이 풀린다고? 아, 렉이 걸렸기에 문제가 생긴 거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서버 접속 지연 현상이 생겼다면 지금쯤 남자 귀검사 캐릭터를 조종하고 있을 유저.
즉,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을 ‘진짜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만약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렉이었다면.
덜컥 멈춰버린 화면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이제서야 제대로 연결이 되어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굴 구위시를 본인이 죽이지 않았다는 걸 알 텐데?’
그런데 시나리오 퀘스트가 진행 중이라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냥 시간이 지나서 자동으로 클리어됐다고 생각할까?
‘뭐, 아직 초반부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 신규 유저든, 부캐를 키우는 유저든.’
아슬아슬하게 허용할 수 있는 범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저 진성 자신의 바람 때문은 아닐지.
어쨌든 이미 모든 일은 벌어진 다음이었으므로 진성은 그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굴 구위시를 처치했다곤 하나 아직 해당 시나리오 퀘스트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굴 구위시가 사망하며 흘린 검보랏빛의 덩어리에서 검은 힘이 새어나오기도 잠시, 어느새 세리아와 남자 귀검사 주변에는 또 다른 구울들이 생성되고 있지 않은가!
“이건…… 구울들이……!”
세리아의 놀란 목소리에도 진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남자 귀검사 유저의 렉이 풀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굵직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목소리를 낸 자들이 다가올 것을 진성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노슈 님, 샤우타 님!”
진성 자신도 한 번 보았던 화염의 비노슈와 그 이전에 숲의 타우들에게 지시를 내렸을 타우왕 샤우타까지.
구울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힘에 더하여, 구울을 불러낸 검붉은 덩어리를 곧장 태워버리는 비노슈를 보며 진성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아마도 이러면…… 끝이다.’
세리아와 비노슈 그리고 샤우타의 이어지는 대화 또한 무난한 흐름이었다.
“요정들의 희생을 악용하던 구울이 있었고, 모험가님이 처치하셨어요.”
세리아의 말에 진성은 약간의 섭섭함까지 느끼는 중이었다.
‘실제론 내가 한 겁니다. 그 인간 렉 걸려서 아무것도 못 했다고요.’
이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도 여유가 생겼음을 뜻하는 것.
이어지는 대화에서도 진성 자신이 다시 나설 일이 없게 되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어떻게 구울 따위가…….”
“방금 비노슈 님이 태운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역병 같은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확실한 건, 그건 이 숲에 있던 것이 아니다. 전이 현상이야.”
세리아의 물음에 비노슈는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매우 중요한 대화였으나, 어쩐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진성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지, 그렇지. 그거 디레지에의 파편인지, 떨어져 나온 조각인지. 아마 그런 걸 텐데. 역시 비노슈 누님이라니까.’
이미 스토리를 다 알고 있는 진성 자신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무엇보다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진성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대화를 마치고 비노슈와 샤우타가 먼저 떠난 후 세리아와 모험가, 즉, ‘유저’까지 발길을 돌리는 모습은 진성에게 약간의 감동마저 선사할 정도였다.
‘좋아. 좋았어!’
물론 진성이라고 그저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진성 또한 천천히 세리아와 남자 귀검사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는 방향이 곧 던전 지역 ‘그란플로리스’의 밖을 향하는 곳일 테니까.
중간중간 타우를 비롯한 루가루 또는 고블린 등에게 들킬 뻔도 하였으나, 다행히 진성은 별다른 문제 없이 이동할 수 있었고, 마침내 볼 수 있었다.
험한 숲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정돈된 도로.
비록 전부 다는 아니라지만 돌로 포장까지 되어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이자, 볕이 잘 드는 곳.
푸쉬이이이익-!
‘아라드 간이 해체기!’
그리고 던전 입구 앞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는 해체기까지 확인한 시점에서, 진성은 깨달은 것이었다.
마침내 던전 지역을 빠져나왔음을.
“나왔어…… 나왔다! 됐어! 끝났어!’
기쁨에 겨운 자가 내뱉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고함과 동시에.
────────────……!
“읏? 눈부셔!”
갑작스레 진성에게 빛이 쏟아져 내렸다.
소리는 없었다지만 쾅, 하고 내리찍는 것과 같은 강한 기세로 빛에 휘감기며 진성은 생각했다.
‘……이거 설마 레벨 업 이펙트?’
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진성 자신의 앞에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ㅋㅋ 님 머함?”
팔짱을 낀 건장한 체격의 남자 프리스트 캐릭터가 말했다.
진성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왜 혼자 중얼거리고 있음? ㅋㅋㅋㅋ 뭐가 끝나요? 눈은 왜 부심? ㅋㅋ”
남자 프리스트 유저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순간, 진성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 * *
남자 귀검사 때는 그다지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와 거리가 멀었던데다 당장 얼굴을 살피거나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리아의 안전, 그것 하나에만 모든 촉각을 세우고 있었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몬스터도 없고, ‘시나리오 퀘스트 전용 1인 던전’ 내부도 아니다.
말 그대로 유저와 유저들이 지나다니며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공개된 장소.
“아? 그 쩜쩜은 머임?”
웃음을 꾹 참으며 진성 자신에게 말하는 남성 프리스트의 얼굴.
어쩐지 어색하게까지 느껴지는 이러한 상황을, 진성 자신도 겪어본 바 있다.
그럼에도 진성은 물었다.
“님 지금 접속 중인 거죠?”
“? ㅋㅋㅋ 무슨 뜻?”
남자 프리스트는 웃으며 되물었다.
그의 얼굴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을 진성은 보았다.
따라서 다시 물었다.
“던파 접속 중인 거죠?”
“? 진심으로 묻는 거?”
눈앞의 캐릭터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이제 그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어느 정도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의문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진성은 마지막으로 말해보았다.
“네. 지금 제가 뭐 하는지 보이시나요?”
만세를 하면서.
두 팔을 치켜드는 평범한 행위이자 특별히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동작도 아니다.
그러나 못 볼 리 없다.
‘보통의 현실’이라면 무엇을 했는지 반드시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이다.
남자 프리스트 캐릭터는 말했다.
“그냥 서 있는데 뭘 함?”
진성에게 확신을 주는 한마디를.
“……역시.”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자신이 겪었을 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네메르의 말이 사실이었나? 정말…… 정말 그런 거였나?’
지금 진성 자신이 던전앤파이터 게임 속에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저 남자 프리스트 캐릭터가 그저 던전앤파이터 게임을 즐기는 유저의 것이라면.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프레이-이시스 레이드 할 때…… 그 남자 레인저의 포지션이고…… 이 남프리스트는-.’
진성이 겪은 것은 바로 눈앞의 사람, 남자 프리스트의 입장이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진짜 현실’의 세계에서, 진성은 겪었다.
그렇다면 지금 진성의 입장은.
“ㅋㅋ 이상한 사람이네”
남자 프리스트 캐릭터는 그대로 그란플로리스 던전 지역으로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였다.
저 사람에게는 게임이지만 진성 자신이 조금 전까지 겪은 바에 비추어보자면.
진성은 터덜터덜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걸어야만 했다.
아직도 쿠로가루에게 할퀴어져 후끈거리는 감각이 남아있는 왼팔을 빤히 보며 온갖 상념에 휩싸였으니까.
‘그렇다면 그 남자 레인저는 어쩌면 정말로…… 5년 전-. 갑자기 던파에서 사라졌던…….’
그 유저였을까.
강화와 증폭을 할 때마다 메가폰으로 서버와 채널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별것 아닌 것으로도 유저들을 흥겹고 즐겁게 만들어주었던 고高강화 장비의 유저였을까?
진성은 새삼 네메르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플레인:아라드의 캐릭터 모험가가 아니다. 그대가 마주한 모험가는 진정한 칼날이 되기 위해 벼려지던 아라드인 중 하나. 또한 과거 플레인:아라드의 캐릭터 모험가를 가장 잘 다루었던 자로서 진정한 모험가가 되기 위해 아라드로 불려온 인간 중 하나.』
‘……빌어먹을!’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드는 감정은 연민이었다.
진성 자신이 루가루 족에게 한 번 긁힌 수준의 아픔이, 만약 게임이었다면 HP가 얼마나 감소하는 수준이었을까.
제대로 맞아본 적도 없는 진성이지만, 그 피해가 미미했으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그런데 쌘비구름의 뇌룡에 맞았어. 그런 장비로- 그런 허접한 장비로…….’
그 수준의 피해에 비한다면 프레이-이시스 레이드의 강력한 보스 몬스터 중 하나의 공격은 얼마나 큰 고통을 수반할지 상상조차 들지 않을 정도가 아닌가!
‘그게 채팅이 아니었던 거야. 그러니까 그게- 그 처절하고 괴로워하던 것은-.’
실제로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실제로 고통스러워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떠오른 게 바로 공포이자 두려움이었다.
‘5년이라고? 레벨 95까지 키워서 이시스 레이드를 뛰었어? 그게 무슨-. 아니, 잠깐. 나는?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진성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답답한 마음은 감출 길이 없다.
“젠자아아앙! 어떻게 되는 거냐고! 끝난 거 아냐?! 뭐야! 왜 아직도 엘븐가드인데!”
진성은 소리를 빽 지르며 제자리에서 발광하듯 움직였다.
유저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면 진성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겠으나, 다행이라면 초보존인 이곳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으며.
‘아! 아이템!’
또 하나는 새로이 무언가가 떠오른 진성이 발광을 멈췄다는 점이리라.
진성은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손에 턱 잡히는 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딱딱하고 각진 아이템, 카드였다.
굴 구위시를 처치했을 때, 그 사체의 곁에 놓여있던 아이템 중 진성이 챙겼던 바로 그것.
‘굴 구위시와 관련된 템은 아마 장비? 도적 무기 중에 하나 있던 것 같기는 한데 마법 부여용 카드는…… 없지 않나?’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카드’라 함은 몬스터가 가진 기운의 일부를 마력으로 옮겨 담은 것으로, 게임 내에선 유저들의 아이템에 ‘마법 부여’라는 행위를 통해 스킬 데미지, 스테이터스, 속성 강화나 저항 등의 추가적인 옵션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진성 자신의 기억으로는 분명 ‘굴 구위시 카드’라는 이름의 아이템은 없다.
‘아니, 설령 있어도 이상하지. 시나리오 퀘스트용 던전에서 뜬금없이 카드가 나올 리가- 음?’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드랍되어서는 안 된다.
그 모든 사실을 깨달았을 때 진성의 가슴은 다시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성은 카드를 꺼내어 살폈다.
[굴 구위시(오염)]‘……응?’
아이템에 부여할 수 없는 능력치 따위가 없는 것도 이상하지만, 진성이 그동안 몇백, 몇천 장 이상 살펴왔던 마법 부여용 카드와는 그 구성부터가 다른 문구라니?
‘이건 무슨-. 아, 아아!?’
진성은 카드를 오래도록 살필 수 없었다. 갑작스레 눈앞이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간 느낌이 듦과 동시에 역시나 자신의 몸이 허공에 내던져진 것 같다는 감각이 들었을 때.
진성은 다짜고짜 소리쳤다.
“아?! 으-. 저기, 저기요! 다 했습니다! 예, 다 했어요!”
당황했으면서도 동시에 당황하지 않은 것은 이것을 겪어보았기 때문이었으며 또한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칼날이 연단될 수 있도록 바로잡는 부집게. 그대는 그 역할을 훌륭히 완수했으리니.』
네메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성의 입꼬리는 이미 헤벌쭉 올라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