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8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80화(80/212)
080
2주 만에 올라온 자도 있다지만 그것은 진성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진성 자신에게만 부여된 임무가 있기에, 지금까지 약 두 달여가 걸렸을 뿐이라 생각한다면.
‘음, 그렇겠지. 흐흐, 그럴 거야.’
조금 전까지 느꼈던 긴장을 한층 풀어내며, 진성은 한결 여유를 되찾은 채 비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쥐고 있는 작은 조종장치를 통해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나온 소형 요격기의 컨트롤에 신경 쓰고 있는 그녀.
끙끙거리는 비비의 모습에 답답함보다도 푸근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참…… 그렇게 생각하니 다크나이트로 빙의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스킬 또한 마찬가지다.
직접 조종해야 한다며 불평불만을 터뜨린 비비였으나 진성 자신이라고 그저 스킬 명칭을 읊는 것만으로 발동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기본적인 동작…… 그 구조를 알고 있었어야 해. 검술? 검도? 그런 건 해본 적도 없는 나지만-.’
직업 다크나이트의 스킬과 콤보 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전투를 치러올 수 있었던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서야 진성은 새삼 궁금해졌다.
“아, 비비 씨. 그럼 2주 만에 천계에 왔다는 그 사람 직업은 뭐였어요?”
진성 자신 못지않게 고인물에 가까운 자일 것이다.
스킬의 구성 등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던 유저일 것이다.
그자의 직업은 무엇인가.
“버서커요! 죽엇, 이 망할 슈뢰드!”
여전히 카르텔의 기동대장과 옥신각신하며 비비는 답했다.
여유롭던 진성의 눈이 차츰 커지기 시작했다.
“……음? 버서커? 버서커를 골랐다고요?!”
그와 동시에 그의 목소리도 점진적으로 커졌다.
버서커, 그 직업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진성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들었을 때, 진성은 다시 한번 경악해야 했다.
* * *
“돌아오셨군요!”
황도 수비대장 젤딘은 돌아온 비비를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고든은…… 그렇습니까, 그가 배신을…….”
황도군을 돕기 위한 용병단은 비록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했다지만 기동대장 슈뢰드를 처치한 것은 물론, 그들에게 위협을 받던 또 다른 NPC를 구해온 것만으로도 비비의 활약은 칭찬받아 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덕분에 메이윈이라도 살아 돌아와 다행입니다. 그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헤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젤딘을 보며 비비 또한 목례로 답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진성은 뒤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국군이 생각보다 잘 싸워주는군요. 구식 무기를 들고 있어서 걱정했는데 정예 병사였던 모양입니다. 아랫세계의 제국이라는 곳은 굉장한 나라인가 보군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굉장하기는 하죠. 하지만 그들이라 해도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참, 모험가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겐트 남문에 정체 모를 기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반 님과 여러 병사들이 그 근방에 있을 텐데,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지금 곧바로 남문으로 가셔서 상황을 파악해주시겠습니까?”
젤딘의 칭찬처럼 이번 퀘스트는 제국군과 어느 정도 협업을 해야 하기 때문.
즉, 반 발슈테트를 마주치던 흐름을 떠올린 진성으로서는 비비의 곁을 지키며 전면에 나서기 미묘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진상 님, 이번에는 안 도와주실 거예요?”
“아, 비비 씨가 위험해지면 도울 겁니다. 우선은 뒤를 지키는 데 주력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지, 진상 님을 딱히 걱정한다기보다- 으음, 알았어요.”
비비 자신이 위험해질까 무섭다는 뜻이었으나 지금의 진성은 그러한 의도까지 받아줄 수 없었다.
비비가 했던 말들이 진성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있었으니까.
‘버서커라……. 그쪽도 모험가라면- 비비처럼 직업을 골랐을 거 아냐. 네메르한테 어떤 직업을 할 거라 말했을 거 아냐.’
비비는 자신의 분석뿐만이 아니라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직접적인 위협에서 멀어지기 위해 여자 메카닉 직업을 택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모험가로 빙의되기 전 네메르에게 어느 정도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을지는 알 수 없으나 2주 만에 천계에 오른 버서커 또한 유사한 상황을 겪었다고 봐야 한다.
‘근데도 버서커를 택했다……. 광전사狂战士 컨셉을 뻔히 알면서.’
이미 비비에게도 물어본 바 있다.
“비비 씨도 맞으면 아프죠? 고통이 느껴지시죠?”
“그럼요. 아프죠. 처음에 굴 구위시한테 한 대 맞았다가 저는 이틀 동안 숨어서 울기만 했다니까요.”
진성 자신이 느낀 것을 그들이 느끼지 않을 리 없는 것.
‘통각. 아프다. 맞으면 아파. 비비가 천계까지 오느라 유독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통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어.’
여자 메카닉의 모든 스킬을 직접 조종해야 하느라 적응하지 못한 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빙의 직후 굴 구위시를 포함한 몬스터들에게 타격을 당한 트라우마에 가깝다고 봐야 할 터.
모든 빙의자는 HP가 감소하게 되면 아프다.
고통이 느껴진다.
그리고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의 버서커는?
‘나중에 소위 ‘아칸 세팅’이라 불리는 로우 라이프 세팅용 에픽 아이템을 다 갖췄으면 모를까……. 결국 그 사람도 지금은 끽해야 레어템, 유니크템 정도만 끼고 있을 텐데-.”
버서커를 골랐다?
버서커에겐 MP 대신 HP를 소모하는 스킬들이 있다.
심지어 스킬 공격력과 공격 속도 강화 등을 위해 자신의 물리, 마법 방어력 감소, HP 회복 제한 등을 감내해야 하는 버프 스킬이 있다.
적들을 ‘상태 이상:출혈’에 걸리게끔 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폭발시켜 흩뿌리는 것과 같은 스킬도 있다.
그 모든 스킬들은 HP 소모를 기반으로 한다.
‘-안 아픈가?’
결국 고통이 뒤따른다는 뜻이다.
엄청난 속도로 진정한 모험가가 되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그 자신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어가며 전투를 치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무치는 광기>처럼 일정 수준 이하로 HP가 감소되지 않는 스킬도 있다지만, 그건 렙제가 60은 될 거야. 적어도 천계에 오르는 시점까지는 배우지도 못했을 거다. 끽해야 <다이 하드>정도가 있었다지만 고작 그걸로…….’
분명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통을 원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성향의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사람은 안 아팠대요? 무슨 얘기 좀 했나요?”
“으음, 글쎄요. 천계 퀘도 워낙 빨리 깨버리고 다시 아라드로 내려갔어서……. 대화를 하긴 했지만 그런 말을 할 정도의 시간은 없었어요.”
“천계 퀘를 다 깨고 아라드로 갔다……. 천계의 에르제 황녀를 구했다는 뜻이죠?”
“네. 그거 다 하는데 일주일이 채 안 걸렸을 걸요?”
“엄청난 속도긴 하네요. 천계까지 2주, 천계의 모든 퀘스트가 1주…….”
“그쵸? 오늘을 기준으로 하자면 이제 빙의된 지 한 달쯤이나 된 사람일 텐데. 뭔가 방식 자체가-.”
“뭐라고요!?”
“-이, 잉!? 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진성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며 반응할 정도의 정보.
그가 버서커라는 것보다 더욱 진성을 경악하게 만든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처음 빙의해서 천계까지 오르는데 2주의 시간이 걸렸다.
그 직업이 버서커였다.
“지금 뭐라- 오늘을 기준으로 뭐가 어쨌다고요?”
“네? 내가 무슨 말을 했죠? 아, 오늘을 기준으로-.”
‘그딴 건’ 아무런 상관도 없게 만드는 정보.
“-그 버서커님은 이제 빙의된 지 한 달 정도 됐을 거라고요.”
그자는 아라드의 세계를 현실로 살아온 지 ‘한 달여’가 되었다는 뜻이다.
진성 자신이 ‘두 달 남짓’ 살아오는 중인, 바로 이곳을.
* * *
진성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으나 행동을 허투루 하진 않았다.
아라드의 데 로스 제국군, 특히 반을 포함한 부대가 천계의 황도군과 연합하여 카르텔과 싸우는 전장에서, 진성 자신이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거나 또는 활약해서는 안되기 때문.
“크아아앗-!”
“제길, 이것들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비비는 거침없이 자동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제국군/황도군과 함께 카르텔 조직원들을 밀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약간 떨어진 위치를 고수하며 진성은 생각했다.
‘……한 달이라. 내가 두 달째야. 거의 꽉 찬 두 달이다.’
진성 자신이 플레인:아라드의 현실을 살아온 지, 즉, 빙의된 지 두 달이 되었다.
그리고 비비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2주 만에 천계에 온 버서커는 현재 시점 즈음에서 빙의 한 달 차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보다 늦게 왔다는 뜻이잖아. 나보다 늦게 빙의가 됐다고?’
진성 자신이 빙의될 때 네메르가 무어라 말했던가.
초월자조차도 함부로 개입하여 처리할 수 없는 문제, 결국 <오염의 원인자>에 의한 ‘오염’이 거슬리므로 그것을 바로잡겠다며 진성을 빙의시켰던 게 아닌가.
‘나보다 전에 빙의된 사람은 있을 수 있지. 그래,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거기까지는 말이 돼. 근데……내 뒤? 하물며 부집게도 아니라 모험가?’
진성보다 늦게 빙의되었다.
거기에 <부집게의 사명>을 부여받은 것도 아니다. 비비의 말에 의하면.
버서커로 빙의된 그자는 2주 만에 천계에 도달했고, 1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천계의 황녀 에르제를 구출했으며, 거침없이 다음 퀘스트를 위해 아라드로 다시금 내려갔다고 했다.
‘에르제 구하고 가는 곳이 아마 수쥬국國이었지. 이제 시란과 함께 <시간의 문>을 넘나들며 본격적인 과거를 탐방할 때일 거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의 배후가 아이리스임을 깨닫게 되는 거고…….’
천계에 처음 올라와 카르텔에게 납치당한 황녀를 구하기까지 돌아다녀야 하는 지역에 비한다면, <시간의 문>에서의 활동은 그리 복잡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시간의 문>을 넘어간 지역에서 일정 활동 후 복귀, 다시 <시간의 문>을 통해 들어간 또 다른 지역에서 활약 후 복귀의 수순을 거치게 되기 때문.
시간을 넘어 과거의 지역 곳곳을 탐험한다는 점에서, 개념적으로는 복잡할지언정 실질적으로는 금세 처리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아마 그 버서커는…… 시간의 문도 벌써 끝냈을 가능성도 있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빠르게 할 수는 없을…….’
진성은 곧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바꾸었다.
안일하게 여겨선 안 된다.
‘나였으면 끝냈어. 아마도 해냈을 거다. 그럼 그 버서커도 일단 <시간의 문>을 끝냈거나, 끝내기 직전이라고 인정은 해야 하겠지.’
진성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진성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늦게 빙의된 자가, 자신보다 앞질러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비비에게서 만약 오염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빙의된 자, 즉, 진정한 모험가의 후보인 이들에게서도 오염이 있을 수 있다면.
진성 자신보다 늦게 빙의된 그 버서커라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아예 먼저 빙의되어 버린 자들의 오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벌어졌거나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미 진성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네메르도 그건 알고 있겠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겠지. 하지만…….’
진성 자신보다 늦게 빙의한 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이었으나 진성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안타까운 점이었다.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비비와 함께 움직여보며 오염의 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나도 이제 속도를 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속도를 내려면 역시-.’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진성 자신을 앞서간 버서커를 따라잡는 것.
‘-비비……저 사람을 조금 더 능숙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어.’
카아아앙-!
그 각오를 현실로 일깨우듯, 거친 쇳소리가 울렸다.
소검으로도 쇠 따위는 가볍게 베어버리는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단장, 반 발슈테트가 활약하는 전장에 돌입했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