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8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81화(81/212)
081
반은 비비를 보며 물었다.
“모험가?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비비는 조심스레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
“할 말이 있다고?”
“네. 젤딘 님께서 말씀하시길…… 정체 모를, 커다란 기계가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반 님과 제국군을 도우라고 하셔서-.”
“흠, 커다란 기계라……아직 보진 못했어. 그게 뭘 어쨌길래?”
반은 비비의 말을 자르며 중얼거렸다.
진성은 더욱 철저히 은, 엄폐를 유지하며 둘의 대화를 들었다.
‘역시 비비는 모험가니까 저렇게 대우를 해주는군. 퀘스트의 스크립트와 같은 대화를 자연스레 받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부러운데…….’
그동안 <캐릭터 모험가>만 쫓아다녔던 것에 비하자면 더욱 실감이 났다.
비비는 실제로 반과 대화를 하고 있었고, 그 대화만으로도 자신이 기억하는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는 중임을 진성은 알 수 있었다.
빠른 발소리와 함께 투구를 뒤집어쓴 덴이 허둥지둥 소리치는 게 바로 그 방증이었다.
“다, 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쇠로 된 괴물이 있습니다! 새카만 쇠로 된 괴물이 진열을 무너뜨리고 병사들을 마구 죽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떡하긴, 바로 가야지. 타이밍이 완벽하군. 모험가, 같이 가자!”
본격적인 던전 ‘겐트 남문’에서의 플레이가 시작되는 구간.
반은 덴을 비롯한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전장을 향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 비비는 자동권총을 손에 쥔 채 슬그머니 뒤를 살폈다.
“진상 님! 안 와요?”
“먼저 가세요. 천천히 뒤따라갈 테니까.”
“먼저……는 갈 건데. 혹시 제 뒤에 막 누가 막 공격하려고 하면-.”
“비비 씨가 만들어준 걸로 다 지져 놓을게요.”
자신의 뒤를 살펴달라는 비비의 부탁 아닌 부탁에 진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를 보여주었다.
비비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달려 나갔다.
흑구의 목소리가 곧장 이어진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크크크……. 언제까지 이성에게 눈이 멀어 시간을 낭비할 건가. 균열 속의 ‘나’가 깨닫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시간 낭비라니. 아직 확인해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클클, 진성. 나를 무시하지 말지어다. 모든 것을 이해하진 못해도 맞물리는 단어와 대화를 통해 유추하는 것조차 못 할 것 같은가.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다 얻은 것 같은데. 새로운 무기도 얻었으니 이제 된 거 아닌가.]사도의 힘은 없다.
그러나 그 자아는 분명한 사도의 파편 또는 분신이다.
빙의, 모험가, 바깥, 네메르와 같은 고유 명사에 대해 굳이 질문하지 않더라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는 대화의 궤를 충분히 붙잡고 있다는 뜻.
진성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쩝…… 다 얻었다고 말할 순 없지. 하여튼 당장 쇠로 된 괴물! 이것도 모르잖아, 넌?”
흑구의 말도 일리는 있으나 진성 자신이 곧장 떠나지 않는 것은 아직 알아볼 게 있다는 점.
그에게 툭 던져진 말 외에도 ‘빙의된 <진정한 모험가>의 퀘스트는 오염되는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것이고, 그녀가 말한 ‘진성 자신보다 늦게 빙의한 모험가 버서커’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도 습득해두면 좋을 게 아닌가.
진성이 변명 아닌 변명을 위해 에둘러 말한 것이었으나 그 말은 정확하게 핀 포인트에 적중한 셈이었다.
[크크크…… 쇠로 된 괴물이라. 마계에도 없는 괴물…….]“꼬르르륵.”
어쩐지 흥분과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흑구와 타꼬의 반응이 이어졌으니까.
진성은 황당함에 고개를 저어야 했다.
“보통 그런 말을 들으면 무서워해야 하는 거 아냐? 심지어 타꼬, 너까지?”
“꼬륵?”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꼬와 흑구는 사도의 파편, 사도의 기운들이 형상화된 존재.
멀찍이서 들려오는 총성과 카르텔 조직원들의 비명,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기합 소리 등이 이어짐에도 진성 자신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한 건 이 둘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지. 바꿔서 생각해야지. 이 둘을 얻은 게 결국 다 누구 덕분인데.’
내가 잘해서 그런 건데, 라는 생각에 실실 웃음을 흘리며 진성은 빠르게 나아갔다.
* * *
타아앙, 타아아앙─────!
비비는 쉼 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자동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카르텔 기동대장 슈뢰드를 처치하며 진성과 비비 모두 레벨이 상승한 것도 그 이유겠으나, 그녀가 조금이나마 더 전투에 익숙해진 것은 역시 진성 덕분이었다.
진성이 ‘버서커’라는 미지수의 인물을 쫓으려면 비비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흐름을 조금 더 빠르게 진행 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걸 위한 조언 몇 가지를 해주었기 때문.
‘아직 완전히 능숙해지진 않았지만 나쁘지 않아. 이해력은 역시 발군이야.’
비비가 누군가. ‘분석’만큼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또 다른 고인물’이다.
어떤 스킬이, 어떤 공격력 수치를 지니고, 어떤 쿨타임에 따라 딜사이클이 도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런 그녀의 약점은 ‘진정한 모험가’로 빙의된 자의 숙명이라면 숙명, 주력 스킬을 전부 ‘모험가가 직접 조종’해야 하는 여자 메카닉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렇게 강점과 약점을 모두 파악했다면?
“설치형 스킬은 그냥 다 무시하세요. 게일포스나 스패로우 같은 거는 안 써도 좋습니다.”
실전에서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건 문제도 아닌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비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
“네?! 그, 그걸 안 쓰면……. 특히 <스패로우 팩토리>는 여메카 주력기 중 하나 아닌가요? <공중 전폭 메카:게일 포스>도 이목을 끌기에는 좋아서-.”
“그게 다 딜 누수입니다. 게임이었다면 모를까, 여기서는 직접 조종하느라 시간을 다 뺏기고 있으니…… 사실상 실전 딜량이 줄어드는 셈이죠. 그리고 이목을 끌기에 좋다지만 결국 비비 씨가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거잖아요? 풀히트 다 때려 박는 속도도 느린데, 심지어 그거 조종하느라 정신 팔려서 적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아슬아슬한 상태니까. 앞으로 일반 스킬은 <메카 드롭> 정도만 씁시다. 아참, 스패로우가 주력기인 것도 사실 탈리스만 얻은 다음에나 그런 거예요.”
‘팩트 폭격’에 반박조차 못 하는 비비를 향해 진성은 말을 이어 나갔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였다면 결코 하지 않을 선택이다.
“<메카 드롭>……? 이론상 오히려 그게-.”
“나를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비비 씨 주특기처럼, 직접 한번 분석해보세요.”
그러나 진성이 누구인가.
그저 ‘이론’이 아니라 ‘실전’에 강한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적용하게끔 만드는 사람이다.
‘교육공대 때도 그랬지. 꼭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커맨드 사용 시 스킬 증가> 아이템으로 시스템상 딜만 뻥튀기하고 실제로는 허우적거리면서 제대로 딜도 못 넣는 사람…… 과감하게 뺄 건 빼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이미 이론적으로 완벽한 그녀에게 결국 필요했던 건 실전에서의 노하우.
비비는 불안해하는 와중에도 작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단순히 ‘이론’에만 집중하는 게 아닌 그녀의 성격 덕분일까.
“그렇죠…… 한번 확인은 해봐야겠죠.”
기술자와 같은 마인드로 그녀는 진성의 조언을 듣기로 했으며.
“네, 그러니까 지금의 비비 씨가 집중해야 할 건 그게 아니라-.”
현재 전투를 치르는 중인 것이다.
진성 자신의 조언을 비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에 대해선 특별히 걱정할 필요도 없는 셈이었다.
“코로나Corona, 트랜스폼Transform G-2, 롤링썬더Rolling Thunder, <전자파 방출>!”
“그렇지! 그리고 썼으면 바로-.”
“코로나, 트랜스폼 G-3, 랩터Raptor!”
“-좋아요, 굿! 롤썬 충전 타이밍은 항상 외워요, 머리 좋잖아요?!”
“머, 머리 좋은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메카 드롭>!”
그녀는 진성이 원한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중이었고.
‘……이 말도 안 되는 실전 딜량은 어떻게 된 거지? 샌드백을 쳐본 것도 아닐 텐데, 하물며 자기 직업도 아니면서 이렇게나 극한의 스킬 사이클을 뽑아내다니. 나조차도 이제야 이 딜 사이클에 대한 계산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뀌어버린 자신의 ‘실전 딜 사이클’에 대해 그 누구보다 놀라는 것 또한 그녀 자신이었다.
“음, 상관없나? 하여튼! 트랜스폼 시간 고려해서 충전 직전에 미리미리 변환시키는 거 잊지 마시고! 뒤는 일단 제가 지켜드릴 테니까!”
장난 섞인 발언 사이사이에 섞인 진심 어린 조언과 걱정까지.
비비는 카르텔 조직원들을 상대하며 슬쩍 뒤를 돌아 진성을 바라볼 정도로 여유를 갖는 중이었다.
‘진상…… 진성. 저 사람이라면.’
그렇게 비비가 진성이 새로이 알려준 전투 방식에 익숙해갈 무렵.
기이이잉-. 쿠우우웅…….
마침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보스방’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도달했다.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쇳소리, 유압 실린더의 피스톤이 내는 바람 소리, 그리고 쇠로 이루어진 거체가 발을 디디며 내는 굉음까지.
카르텔 조직원 하나를 베어낸 반 발슈테트조차 흠칫하며 바라보게 만든 병기.
사족 보행형 로봇 GT-9600과 그것을 보호하는 카르텔 조직원들을 보며 반은 중얼거렸다.
“과연……괴물이라 해도 손색없군. 저게 사람이 만든 거라고? 천계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군.”
호승심과 호기심이 섞인 반의 말소리는 바람을 타고 진성에게도 들려왔기에, 그는 조금쯤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부터 기계에 관심을 둔 건가. 그래서 나중에 그런 선택을…… 으으, 차라리 살인기계들을 보여주지 말았으면 이야기가 달랐으려나.’
그러나 진성이 반에 대해 계속해서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조금 전까지의 살벌한 분위기를 무색하게 만드는 경쾌한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았어, 좋았어!”
비비는 깡총거리며 뛰었다.
거의 180cm에 달하는 여자 거너의 육체가 피비린내와 기름, 화약 냄새 물씬나는 전장에서 팔짝거리는 모습은 일견 비현실적이었으나, 그보다 더욱 당황스러운 장면은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었다.
“<트랜스폼Transform : G-0 배틀로이드Battleroid>!”
비비가 소리치기 무섭게 그녀의 오른손에는 여자 메카닉의 주력 스킬 중 하나인 G 시리즈가 코어 형태로 변하여 장착되었다.
“……어?”
진성은 곧장 이해했다.
그것이 여자 메카닉의 1차 각성으로 획득하는 스킬의 정식 명칭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반과 아이언 울프 기사단원 심지어 카르텔 조직원조차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엉?”
“음?”
GT-9600의 거체 중심에 노란 역삼각형의 빛이 새겨지는 순간.
비비는 다시 외쳤다.
“락 온Lock on, 카니지 모드Carnage Mode!“
그리고 비비의 등 뒤의 허공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명멸과 함께 무언가가 허공에 툭, 툭, 툭 나타나는 것을 의식했을 때, 그것은 이미 팔과 다리 등의 파츠를 완벽히 갖춘 전투 로봇!
“가즈아아아아아-!“
배틀로이드가 되어 있었다.
허공에 뜬 배틀로이드의 크기는 분명 GT-9600보다 작았으나 순식간에 형태를 갖춘 그것의 파괴력은 GT-9600 ‘따위’와 비교할 게 아니었다.
비록 2년이 넘는 시간을 소요하긴 했으나 그녀는 어쨌든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또 다른 고인물’이다.
직접 조종해야 한다 어쩐다 투덜거리긴 했어도…….
────, ────, ────!
그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일을 해내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
양팔의 개틀링과 어깨에서 연달아 발사되는 미사일, 등에서부터 쏘아져 나가 ‘락 온’된 타겟을 향해 휘어져 날아가는 푸른빛의 레이저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GT-9600은 파괴되었다.
그것을 지키던 카르텔 조직원은 말 그대로 찍소리도 못 한 채 사라졌다.
진성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반은 중얼거렸다.
“……모험가, 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당혹스럽기만 한 전장에서 팔딱거리며 움직이는 생명체는 하나였다.
“으히히힛, 됐다, 됐어!”
결국 진성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분석 능력 외에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자가 어째서 <진정한 모험가>로 선별되었는지.
단순히 흥미 때문이 아니다.
“이거라고! 됐어! 테로톤 합금이랑 장치들을 드디어 확인할 수 있겠어! 이제 내 스킬들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GT-9600의 잔해를 파헤치며 자신에게 필요한 재료를 마구잡이로 긁어 모으는 비비.
신이 나 웃고 있는 그녀에게는 확고한 목적, 그것도 진성 자신이 아직 완전히 이해 못 한 부분이 있음이 분명했으니까.
[저런 게……. 저런 게 있는 것인가, 이곳은.]흑구마저도 경악하게 만드는 그녀의 능력 그리고 광기 어린 집착.
“……웃지도 않네? 당황했나 봐?”
[크, 크크…… 그게- 크흠, 그게 아니라…….]당황한 흑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성은 그녀가 확실한 모험가임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