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84)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84화(84/212)
084
개改.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AT-5T 워커는 개조되지 않았어.’
비비가 테로톤 합금으로 연료통을 한 대 가볍게 친 게 전부다.
그것을 강화나 개조라 부를 수는 없을 터, 그럼에도 카드에는 표기가 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조될 뻔했던 것에 대한 오염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러나 오염의 원인을 제공할 뻔했던 것도 비비다.
그렇다면 비비에 대한 카드가 나오는 게 차라리 지금까지의 흐름과 맞아떨어질 텐데.
그게 아니라 AT-5T가 카드로 나온 이유라면?
‘……비비를 꼬드긴 것…… 비비로 하여금 개조할 생각을 들게끔 만든 것, 그 자체가 원인이었다는 뜻이 된다.’
진성은 지그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비비에게 그런 생각을 불어넣은 존재는 무엇이고 또 누구인가.
비비를 일반적인 ‘진정한 모험가 후보’라고 봤을 때, 그러한 사람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자.
단순히 접근 방식에서의 특징 때문만이 아니다.
‘나보다 늦게 빙의된 것도 그렇지. 뭔가 있는 거야. 분명히.’
진성 자신보다 늦게 빙의된 것에 더하여, 그의 설명으로 말미암아 비비가 AT-5T 워커를 개조할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는 점까지.
그렇다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규격 외 장비나 스킬이 문제가 아니다.
‘버서커……. 그 인간 자체가 규격 외일 수도 있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규격 외 존재.
그리고 현재 그자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쥐고 있는 이, 비비.
“후우. 일단 이런 건 빨리 끝내고 이야기 좀 더 들어봐야겠네.”
진성에게 있어 그나마 시원한 점이라면 일반적인 유저의 뒤를 쫓을 때와 달리, 비비와 함께 할 때에는 자신이 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꼬르르르륵!”
“그래, 가자, 타꼬. <문어발 갈퀴 공격>!”
─────────────!
비비가 탑승한 AT-5T의 옆을 노리려는 카르텔 조직원들을 향해 스킬을 사용하며, 진성도 곧장 전투를 개시했다.
기계팔 워잭을 처치하고 겐트 북문에서의 평화를 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진성은 비비와 함께 젤딘의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평소였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따라갔을 테지만 이번은 달랐다.
무사히 AT-5T 워커를 회수한 비비는 물론, 진성 또한 큰 활약을 펼쳤음을 중사 메이윈이 황도의 수비대장 젤딘에게 보고를 올렸기 때문.
‘으음…… 웬만하면 뒤에만 있고 싶기는 한데-.’
이런 일이라면 한사코 거절했던 진성이 못 이기는 척 젤딘의 권유를 따르는 이유라면 하나였다.
황도가 공격당한 최대 위기를 벗어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지금부터 만나게 될 인물과 진성 자신도 안면을 틀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과 함께라……’
다만, 그 자리에 반 발슈테트와 함께 참석해야 한다는 게 미묘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젤딘의 안내에 따라 비비, 반 그리고 진성은 마침내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아, 두 분이 제국에서 오신 반 발슈테트 경과, 활약이 대단하다고 하는 모험가님이십니까? 저는 네빌로 유르겐이라고 합니다. 황녀님이 부재하시는 중에 부족하나마 섭정을 맡고 있습니다.”
네빌로 유르겐.
천계의 귀족, 유르겐 가家의 가주이자 현재 천계 지벤 황국의 섭정.
‘확실히 이 눈빛은…… 섭정이라는 소리를 안 들었어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겠군.’
그리고 반역을 일으키는 자.
황제라는 한 사람이 아니라 법치法治라는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황국皇國이라는 곳에서 너무나 급진적으로 받아졌기 때문일까.
황제와 귀족 그리고 평민과 하층민으로 나뉜 천계를,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타파하여 바로잡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실제 에픽 퀘에도 네빌로를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파트들이 있음에도……불가능했으니까.’
안타까움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면서도 어차피 진성 자신이 그러한 상황을 고치거나 예방할 수 없다는 답답함까지.
결국 모험가가 모험가로 단련되기 위해, 연단된 칼날의 시련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진성이 그런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빌로 유르겐은 비비와 반 그리고 진성을 향해 말했다.
“아랫세계와 교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거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저희를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으시니, 감사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늘 천계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천계에서 먼저 도움을 청하시니, 가만히 계실 수가 없었던 거겠지요. 저는 명령을 받은 것뿐이니 감사라면 저희 폐하께 해주십시오.”
반은 제국의 귀족이자 기사다운 말투로 답했다.
네빌로 유르겐은 안경 너머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계신 모두가 천계의 영웅이십니다. 어찌 사람을 가려서 인사하겠습니까. 모자란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천계의 영웅이라는 발언.
당연히 진성도 포함되는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는 못 이긴 척 따라왔던 것이다.
‘오케이. 이걸로 마를렌이든, 젤딘이든…… 황도의 주요 NPC들은 프리패스다.’
향후 천계에서의 활동을 고려하면서 비비와 함께 다니지 않을 때에 대비하자면, 통행의 자유를 비롯하여 천계의 일에 공식적으로 참견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잠시간의 평화를 누리는 것도 거기까지였다.
“큰일 났습니다! 카르텔이 북문을 기습하려 한다고 합니다!”
황도군 기관사가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황도 수비대장 젤딘의 눈이 번뜩였다.
“뭐? 워잭을 잃고도 다시 북문을 공격하려 한다고? 흠…… 우리가 AT-5T 워커를 되찾은 걸 모르는-. 아무튼 절호의 기회로군요. 모험가님, 쪽문을 통해 나가셔서 북문에 있을 카르텔의 상황을 살펴봐 주십시오. 우리가 먼저 기습하죠!”
잘하면 황도 주변에 있는 카르텔 조직에게 치명타를 입힐 기회임을 그 또한 눈치챘기 때문.
네빌로 유르겐을 포함하여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반 발슈테트까지.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 그러한 기회를 놓칠 리는 없었다.
그것은 진성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진 흐름이 좋다. 무엇보다 빙의된 모험가들에게도 오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상…… 버서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비비랑 더 움직여도 괜찮을 테고.’
특별히 뒤쫓아야 할 다른 유저가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진성이 관찰해야 할 대상 또한 명확한 상태.
따라서 이들 모두의 시선은 비비,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문제라면 비비는 어째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
“모, 모험가님?”
“뭐 하는 거야, 모험가? 지금 수비대장의 이야기를 못 들은 거야?”
어쩔 줄 모르는 비비를 보며 젤딘은 물론 반마저도 당황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비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잉? 저, 저한테만 하는 말인가요? 여기 진상 님도 있는데?”
“아!?”
그리고 진성은 뒤늦게야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금테 안경을 치켜올리는 그녀가 당황한 이유는 젤딘이 ‘모험가’에게 말을 했기 때문이다.
“뭐? 진성- 이 인간은 갑자기 왜?”
그리고 비비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이곳에 있는 ‘모험가’는 또 누가 있는가!
진성은 재빨리 비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맞습니다, 그렇죠. 갑시다, 비비 씨.”
“으왓!? 진상 님?”
“카르텔 녀석들 아주 혼쭐을 내주자고요.”
진성은 모험가가 아니다.
부집게, 모험가가 모험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잡아주는 자다.
그 이야기를 아직 비비에게는 하지 않았으니 비비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황도의 수비대장, 젤딘 슈나이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죠? 확실히 메이윈에게도 저분이 모험가님을 도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비비가 AT-5T 워커를 회수하던 퀘스트에서 진성이 그녀를 도왔다는 사실은, 당시 함께 했던 중사 메이윈을 통해 보고된바.
진성이 천계에 분명한 도움을 주고 있다, 정도의 인식은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지.
진성에게 다행이라면 젤딘 곁에 있는 사람 역시 그 혼잣말에 답변해줄 수 없다는 점이었다.
“흐음…….”
반 발슈테트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지어졌다.
* * *
비비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 진성은 먼저 말했다.
“비비 씨가 메인이 된 퀘스트라 그런 거예요. 알죠?”
“잉? 그럼 진상 님은-.”
“내 퀘스트는 아직 레벨이 안 되어서- 일단 뭔가 보조 느낌으로만 진행하다가, 나중에 또 따로 하고 그러는 방식으로…… 원래 모험가마다- 각 모험가의 타임라인에 의한 퀘스트로 진행되는 건 비비 씨도 알잖아요?”
다행이라면 비비를 납득시킬 만한 예시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
진성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버서커. 그 버서커도 있죠. 비비 씨나 저보다 훨씬 늦게 왔지만 벌써 황녀 구하고 아라드로 내려갔다면서요. 비비 씨나 저나 아직 ‘우리의 황녀’는 못 구한 상태고. 이해 되죠?”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이 각 모험가마다 개별적으로, 따로 분리되어 진행되는 것은 빙의된 자라 해도 다를 게 없다.
비단 모니터 너머로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즐기는 유저만이 아니라 빙의된 모험가들, 진정한 모험가 후보들이자 연단된 칼날이 되어야 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으음, 그건…….”
비비는 잠시 생각했다.
고민하는 그녀에게 진성은 확실히 못을 박았다.
“즉, 빙의된 모험가라 할지라도 서로의 퀘스트의 타임라인이 다를 수 있으니 괜스레 개입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뜻입니다. 확실하게 구분하세요. 아까 바하이트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한마디 말실수가 불러오는 스노우 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렷하고 묵직하게 울리는 진성의 목소리.
그것을 듣고 나서야 비비도 고개를 끄덕였다.
“넵!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실수해서 죄송합니다!”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는 듯, 자신의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에 찬 목소리.
이렇게나 시원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해버린다면 진성 또한 더는 책망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책망이 아니지. 어떤 의미로는 나한테 뼈아픈 실책이 될 뻔했어.’
모험가로 빙의된 자들과 함께 NPC를 만난다, 라는 가정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진성이 아닌가.
이런 방식으로 예견치 못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우선 상황은 잘 넘어갔고 오히려 진성 자신에게 공부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행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으리라.
‘비비 씨여서 다행이지. 눈치가 좀 더 빠른 누군가였다면-.’
만약 ‘순수’ 같은 성격이 빙의된 모험가였다면.
분명히 진성 자신의 정체에 대해 꼬투리를 잡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진성은 슬쩍 비비를 바라보았다.
금테 안경 너머의 푸른 눈동자는 이미 전방에만 관심을 둘 뿐.
더 이상 진성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는 게 확실했다.
‘-후우, 많이 배웠어. 오케이. 두 번의 실수는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비비야말로 현시점에서의 진성 자신이 함께 하기 가장 적합한 ‘진정한 모험가 후보’일 것이다.
그렇게 쪽문을 통해 겐트 북쪽 외곽을 나와 걷는 게 얼마나 되었을까.
대나무가 빼곡하게 자란 황도의 북쪽 어딘가에서 진성과 비비의 눈에 훅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시켜 놓고도 정작 들킬 줄 몰랐다는 듯 어색하게 반응하는 인물.
“앗…… 누구지?”
덥수룩한 금발 머리에 역시나 금발 수염.
가죽 재킷을 비롯한 캐주얼한 복장보다도 눈에 띄는 건 그의 머리 위로 시원하게 돋은 두 개의 뿔.
“아?!”
흠칫 놀라 주춤거리는 비비와 달리 진성은 ‘당연하게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당장의 활약은 별로 없겠으나 향후 천계를 비롯하여 선계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남성이기 때문.
‘정확하게는 용족龍族……. 용인의 후손, 캡틴 루터. 실제로 보니까 뿔의 위압감이 제법 강한데.’
현재까지 아라드에 살아남은 용족이자 용인龍人.
진성과 비비는 캡틴 루터와 안내인 레베카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