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86)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86화(86/212)
086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진성의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이미 쥐고 있던 <벤팅크의 화염분출기>에서 불을 뿜어져 나오게 하는 것은 순식간에 할 수 있는 일, 진성은 그대로 불꽃을 휘둘렀다.
단순히 태우는 화염이 아니라 그 고온과 직사의 분출력으로 인하여 ‘직접 잘라내어 버릴 정도의 화력’을 지닌, 사실상 고출력 용접기라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위력!
“크아아아아-!”
주먹을 내지르려던 루터는 다른 팔까지 들어 올려 X자로 팔을 교차시켰다.
그래봤자 교차시킨 팔은 물론, 멈출 생각 없는 그 몸통까지도 전부 반으로 갈라버리는 것이 비비에 의해 개조된 <벤팅크의 화염분출기>의 위력임을 진성은 알고 있었으나…….
‘통하지 않겠지. 히스마와 같은 계통이라면.’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냉룡 스카사가 얼음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사룡 스피라찌가 죽음을 거부하는 특징이 있는 것처럼, 광룡 히스마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히스마 님을 보필했던 나에게 이런 것이 통할 거라 생각했느냐!”
진성의 우려처럼 루터는 분출되는 화염을 X자로 교차한 팔로 일차 방어 후 양팔을 다시금 좌우로 펼치며 불을 찢어냈다.
광룡 히스마의 특징, 그것은 웬만한 공격 따위는 통하지도 않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신체 능력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물리력이다.
설령 속성 공격일지라도 전부 무력화시키는 그 능력은, 히스마를 호위하게끔 만들어진 용인들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흡-!”
루터는 불을 찢어냈던 양팔을 그대로 가운데로 내질렀다.
두 주먹으로 동시에 타격하겠다는, 다소 기괴한 전투 같았으나 속도와 질량에 의해 만들어지는 충격량만을 보자면 진성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일 터.
터어어엉──────────!
그 주먹이 진성의 몸에 닿는 순간, 마치 제야의 종을 타종하는 듯한 타격음이 울린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음?”
진성이 <홉 스매쉬>를 통한 ‘짤무적’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타파했기 때문.
“<래피드 무브>, <다크 크래셔>!”
루터가 잠시 당황한 틈을 타 진성은 재빨리 방향을 틀며 이동형 스킬들을 활용해 거리를 벌렸다.
그 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루터는 진성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한 듯했다.
“빠르군. 용체龍體의 스카사 씨가 고전했을 법해. 하지만 용인龍人인 나를 상대로는 통하지 않을 거다.”
“저기, 잠시만! 뭔가-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루터 님!”
더욱 진지해진 루터를 보며 진성은 외쳤다.
화가 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싸움까지 치를 이유는 없다, 라는 주장은 마칠 수 없었다.
“히스마 님의 외침을 봉인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인간에게……내가 오해 외에 어떤 걸 할 수 있지?”
그보다 루터가 조금 더 빠르게 말했으니까.
루터는 진성에게 물었다.
“어,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진성을 향해 루터는 재차 말을 걸었다.
“히스마 님의 굴욕이 담긴 이 물건을 사용했겠지?”
“사용이야 했지요…… 했는데-.”
“스카사 씨를 미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할 테고.”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의도를 알릴 시간조차 없다.
무엇보다 들을 마음이 없다.
“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꽤 긴 이야기가 되겠으나-.”
“이 정도면 오해든, 오해가 아니든 충분하지 않나? 인간.“
바칼의 명령에 의해 히스마를 보필하게끔 만들어진 루터다.
바칼에 대한 충성과 히스마에 대한 존경.
그것은 곧 왕에 대한 충심과 장군에 대한 경외심을 지닌 병사라는 뜻.
그 두 가지 마음을 가슴 깊이 간직한 루터에게 있어선 히스마의 포효가 봉인된 아이템을, 한낱 인간이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충분히 기분 나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클클클…… 맞는 말이야. 너는 분명히 바칼의 하수인인 놈의 포효로 또 다른 하수인을 깨웠고 그 녀석을 미치게 만들지 않았나, 진성.]“시끄러, 흑구. 넌 좀 조용히 해.”
거기까지 가서야 진성의 오른손에도 더욱 힘이 들어갔다.
“뭐라고?”
“아니, 루터 님한테 한 말은 아닙니다. 아니기는 한데…… 어쨌든 머리에 열이 잔뜩 오른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을 게 확실하겠네요. 그쵸?”
“하핫, 그렇겠지. 그리고 네 골통을 열고 난 다음에는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을 테고.”
“그거야-.”
진성이 말을 마치기도 전 루터는 이미 쇄도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거의 기습에 가까운, 준비 동작조차 없는 빠른 접근.
후폭풍에 대나무 숲이 춤을 출 정도로 압도적인 공격을 시도하려는 루터를 보며 진성은 어쩐지 익숙함을 느꼈다.
‘광룡 히스마를 보필했기 때문인가? 패턴만이 아니라 성격까지 비슷한…….’
외골수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에 꽂혀버리면 눈이 돌아버리는 광룡 히스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를 보필하는 용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지.
진성은 내뻗는 루터의 주먹을 향해 쫙 편 손바닥을 내밀었다.
─────────────!
루터의 주먹이 진성에 손바닥에 빨려들어가듯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으나 진성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에너지의 충돌로 인해 순식간에 흙먼지만이 피어올랐을 뿐이다.
“또 무슨 얄팍한 술수를-.”
진성이 뭘 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자신의 공격을 버티는 기술을 다시 사용했다는 것쯤은 루터도 이해할 수 있는 바였다.
그는 재차 진성을 몰아치려 했다.
“-음?!”
그러나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루터는 보았다.
눈앞에 있던 진성은 온데간데없고, 허공에 떠있는 흑색의 검 한 자루.
“아마 루터 님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목소리는 검 너머에서부터 울렸다.
검날부터 손잡이까지 모두 진성의 팔처럼 새카만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이 돌연 사라졌을 때.
“우선 머리부터 식히고 이야기합시다.”
진성은 말했다.
파샤샤샤샥─────────……!!
“무슨- 크악!”
그 순간, 흑색의 검들이 곳곳에서 루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50레벨의 다크나이트가 습득할 수 있는 스킬.
무적기인 동시에 여러 개의 검을 주변 영역 안에 소환하여 대상을 베어낸 후 커다란 폭발로 마무리하는 무형의 검, <팬텀 소드>가 작렬했다.
진성에게 있어 그리 특별한 스킬은 아니다.
“<바운스 블로우>, <트리플 스탭>, <윕 어택>, <드로우 소드>-.”
단지 비비와 함께 다니며 레벨이 58에 다다랐기에, 스킬의 공격력부터 기존 스킬 콤보의 활용까지 더욱 원활하게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게 특별할 뿐.
루터를 죽여선 안 되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러나 그를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게 ‘힘’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일루전 슬래쉬>.”
진성은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로 루터의 육신을 그대로 베어냈다.
용의 포효와 같은 괴성이 적막한 겐트 북문 근처에서 울려퍼졌다.
* * *
“잉? 무슨 소리 안 들려요?”
“……글쎄요.”
레베카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으나 늦은 밤, 그것도 대나무 숲으로 가려진 상황에서 루터와 진성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으음, 이상하네. 진상 님도 같이 갈 줄 알았더니 안 가고.”
“진상? 그게 그 사람의 이름인가요?”
“아, 진성. 진성인데 제가 처음 만났을 때 캐릭터 닉이 진성진상이었거든요. 그리고 공대장치고는 약간 너무 깐깐해서 진상 같기도 하고.”
“네? 캐릭터 닉? 공대장? 이름은 진성인데 성격은 진상이라는-.”
“그렇다기보다는, 흠, 흠! 하여튼 주,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잊어주세요. 어쨌든 카르텔은 이쪽이라는 거죠?”
비비는 진성에 대해 설명하려다 결국 말을 삼켜야 했다.
레베카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금 안내를 이어 나갔다.
“네, 이곳이에요. 전쟁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으니 슬쩍 돌아보기만 하고 바로 돌아가죠.”
이미 숙련된 두 사람이, 그것도 야음을 틈타 조심스레 정찰만 하는 와중에 특별한 위험은 없어야 했다.
“음, 음, 과연…… 카르텔이 이렇게 있는 거군요. 그럼- 잉?!”
“아?”
그러나 낮고 길게 이어지는 포효와 같은 소리가 있다면.
───────────……!
이미 조금 전부터 울렸던 둔탁한 소리가 아니라 짐승의 울음처럼 퍼지는 굉음이 있다면.
“저, 적이다! 적이다! 황도 놈들이- 역시 이 이상한 소리는 황도 놈들이었어!”
카르텔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최초의 소음이 울릴 때부터 주변을 수색하던 카르텔 정찰병 하나가 비비와 레베카를 발견하곤 소리치기 시작했다.
레베카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정찰병이……. 어쩔 수 없이 해치워야겠군요.”
“으으, 이상한 소리가 나는 바람에! 정말 누구냐고!”
비비 또한 뒤를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레베카도, 비비도 어쩐지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처럼 말을 하고 있었으니.
“아무튼 우리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알겠죠? 빨리 마무리하고 캡틴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으니까.“
레베카는 말했다.
비비는 움직이지 않았다.
“……모험가?”
레베카는 멈춰 있는 비비를 보며 물었다.
평소 같으면 비비에게 부담감만 가중될 만한 발언이었다.
진성도 없이 홀로 떨어져나와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에 더하여, 곁에는 NPC인 레베카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벌써 튀어나오기 시작한 카르텔 조직원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기에, 레베카로서도 조급한 마음이 이는 게 당연한 시점이었다.
“……이상해.”
그럼에도 비비는 느릿하게 말하며 무기를 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천천히 시선을 내려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저 카르텔 녀석들을-.”
“아뇨. 뭔가…….”
다리는 떨리지 않는다.
적들이 자신을 포위하는 이 순간에도, 손바닥에는 땀조차 나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비비는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기에.
‘……단련……된 건가.’
그녀의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은 벅찬 고양감.
그리고 단순히 전투가 아니라 이러한 자세를, 자신의 각오와 마음을 연단시켜준 자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얼른 끝내보죠!”
타아아앙, 타아아아앙-!
비비는 능숙하게 전투를 치러나갔다.
곁에 진성이 없음에도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익숙한 몸놀림으로.
* * *
“끄으으…….”
루터의 몸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시간 자체는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그 짧은 사이 진성에게 당한 공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수준이었기 때문.
[클클…… 머리에서 열을 내려준다더니 더 열을 나게 만든 건 아닌가.]치명상은 입히지 않았다지만 진성에게 농락에 가까울 정도로 당해버린 루터의 입장에서는 ‘뚜껑’이 열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임을 흑구가 지적할 정도가 아닌가.
그러나 진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루터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지. 그러니까……. 크흠.”
캡틴 루터의 성격,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통해 보아왔던 그의 능력을 알기에.
진성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외치는 셈이었다.
“히스마 님을 죽인 건 제국놈들 아닙니까? 오즈마와 카잔 그리고 제국에서 명명한 ‘드래곤 슬레이어’들……. 나에게 화풀이를 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시끄러워. 후욱, 이제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루터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당장 진성을 향해 달려들지 않은 건 만신창이가 된 몸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함일 터.
진성 또한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두는 것이었으니.
“제국놈들이 여기, 천계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도 ‘히스마 님’을 죽이고 그 뿔을 아직까지 전리품 삼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까짓 <광룡의 외침>에 아직도 얽매어있는 걸 광룡狂龍이 원했을 거라 생각합니까?”
“감히 나에게 히스마 님의 진의를 물으며 시험하려느냐! 나 또한 아직 감춰둔 게 있지, 네 녀석을 당장-.”
“루터, 당신이 여기서 변신하면 모든 게 끝이야.”
그러나 최후의 발악까지 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성 자신을 위해서도 또한 루터를 위해서도.
“……그걸 어떻게……?“
광폭하기 그지없던 루터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서렸다.
“용인들 중 용으로 변신할 수 있는 개체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화를 못 참고 여기서 변해버렸다간 카르텔을 기습하려는 천계 황도군의 작전은 수행할 수 없게 되겠지. 뭐, 그 이전에…… 천계에서 용의 모습을 드러냈다간 천계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모를 당신이 아닐 텐데.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할 건가?”
천계는 바칼에 의해 500여 년이 넘는 지배를 받았다.
바칼과 그가 만든 용의 군단으로부터 간신히 자유를 되찾은 천계인들에게 있어, ‘바칼’ 또는 ‘용’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하나의 트라우마이자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인 것.
“천계와 용에 대한 일…… 그래, 공국에 천계인이 하나 있었지. 키리라고 했던가. 그쪽에서 들었나 보군.”
루터는 입 안에 고인 피를 퉤, 뱉어내며 중얼거렸다.
진성은 특별히 반응해주지 않았다.
그저 루터의 눈을 마주하며 말할 뿐.
“잘 생각해. 당신의 계획을 위해서라도……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천계와 손을 잡기 위해서라도 그 모습은 보여선 안 될 테니까.”
따라서 루터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진성은 제대로 지켜볼 수 있었다.
실제로 육신을 치료하던 것조차 잠시 멈출 정도로 루터는 당황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았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는-.”
“제국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부사령관. 루터 그리블리온.”
“-내 성姓까지!?”
이제 완전히 얼어버린 루터를 향해 진성은 저벅저벅 걸어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벨 마이어 공국 마법사 길드 소속, 이상현상 비상대책위원, 진성입니다.”
그러곤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어느새 인간의 동공으로 변한 루터는 그 눈동자를 껌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