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87)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87화(87/212)
087
진성은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다.
루터의 눈동자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스르르,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는 결국 진성이 어째서 긴장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과연…… 그렇군. 공국의 마법사 길드가 매 사건마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건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냉룡 스카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벌써 다 파악한 ‘레지스탕스’와 캡틴 루터에게 있어, 벨 마이어 공국의 마법사 길드에 대한 소문이 들어가지 않았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쪽’의 힘이었나. 한 방 먹은 기분인걸.”
루터는 말했다.
진성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굳이 제 힘이라기보다는…… 아시다시피 샤란 님이 워낙 출중하시니까요.”
그것을 겸손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자신감이라 해야 할까.
진성의 아리송한 답변을 들으며 루터는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재미있군! 자네, 이제 보니 아주 마음에 드는데! 역시 마법사 길드장이 보는 눈은 있어!”
조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듯 광포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터벅터벅 진성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루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이제 호기심 그리고 호의, 호감과 같은 기운들.
진성은 그런 루터를 향해 슬쩍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참, 지금은 사정이 있어 모험가와 함께 움직이고 있지만…… 모험가에게는 제 이야기를 비밀로 해주십쇼. 저 또한 루터 님의 이야기에 대해서 하지 않을 테니까.”
“흐, 그런 점도 아주 좋군. 좋아.”
진성의 부연설명조차도 필요 없었다.
외골수, 화통한 성격이라는 뜻은 결국 그의 마음에만 든다면 완벽하게 합을 맞춰주는 조력자가 되어 준다는 뜻과도 같았으니까.
“아, 그리고 때가 되면 세인트 혼에 좀 태워주셨으면 하는데.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이미 진성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발언은 결국 진성 자신의 힘을, 그 능력을 인정하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진성이 다소 뻔뻔하게 제안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생각이 기반된 것이었으며.
“으하하핫, 약속하지. 내가 레지스탕스에 있는 한. 그리고 세인트 혼의 선장으로 있는 한. 자네는 언제나 환영이네.”
그런 제안에도 거부감 없이 진성에게 다가와 루터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 또한 정해진 수순과도 같은 일이었다.
진성은 그 손을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루터에게 인정받았다는 것.
또한 선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비행선 ‘세인트 혼’의 탑승 권한을 획득했다는 것.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이것으로……’
바꿔 말하면, 선계仙界까지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진성은 미소지었다.
때마침 비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휴, 힘들어.”
“왔군, 어때? 내 말이 틀림없지?”
루터는 진성과 맞잡은 손을 놓으며 천연덕스럽게 반응했다.
비비는 루터의 모습을 잠시 흘끔거렸으나 그뿐이었다.
진성과 전투를 치르느라 생겨난 상처뿐만 아니라 옷가지가 그을리거나 타버리고 찢어진 부분까지 눈에 들어오건만…….
“틀림없는 정도가 아니라 카르텔한테 걸려 가지고! 두 사람이 소리 낸 거죠?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예요?”
싸웠다는 의심을 하기보다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음을 냈냐’고 묻는 비비의 모습이라니.
진성은 그런 비비를 보며 살짝 감탄할 정도였다.
두 사람이 소리를 냈다는 추측까지는 도달해놓고 그 이유에 대해 파악하지 못할 수가 있을까.
‘의심……을 안 하는 건가? 싸웠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안 하는 거야?’
적어도 진성 자신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진성 자신은 사실상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지만 그렇다 한들 의복에는 어느 정도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옷 곳곳에 튄 흙과 먼지, 루터에게서부터 묻어나온 작은 핏자국 등등이 있건만.
그리고 진성은 곧 알 수 있었다.
비비가 어째서 진성과 루터, 둘의 전투에 대해 상상하지 않는지.
“어쨌든 진상 님이 여기 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을 리도 없고……. 근데 그렇다고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소리를 낸 것도 아닐 테니-.”
그것을 믿음 또는 신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에 대한…… 아니, 어쩌면 나뿐만이 아닌…….’
진성 자신을 믿기에, 그가 이곳에서 소리를 내는 무언가를 했을 리가 없다, 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인가!
비비는 불평을 터뜨리면서도 빠르게 황도로 향했다.
“-으으, 하여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일단 돌아가서 보고부터 해야겠어요.”
“어이쿠. 바쁜 건 알겠는데 잠시 내 말 좀 들어보라고.”
그런 그녀를 루터는 붙잡으며 말했다.
루터조차도 당황스럽게 만드는 비비의 ‘마이 페이스’가 잠시 이어졌으나, 어쨌든 그가 이곳까지 온 목표는 이뤄야 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자네는 제국의 편인가?”
“제국? 어느 제국이요?”
“물론 아라드에 있는 데 로스 제국을 말하는 거야. 자네 친구 반 발슈테트의 고국 말일세.”
“어…… 반 발슈테트랑은 딱히 친구도, 뭣도 아닌데요. 같이 논 적도 없고.”
“그, 그렇단 말이지? 좋아. 자네 말을 믿지.”
어찌나 천진난만한 발언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비비를 바라보던 루터가 잠시 당황할 정도였다.
“실은 우리는 반反제국 활동을 하고 있거든. 우리는 레지스탕스일세. 제국과 싸우고 있지. 제국군이 천계로 올라간다는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온 것일세.”
“헤에…… 그렇구나. 맞네. 그랬던 것 같네. 아, 아, 그래서요? 그 얘기는 왜 하시는 건데요?”
비비는 고개를 끄덕이다 자신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루터에게 다시 물었다.
루터는 목소리를 가다듬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걸 왜 자네한테 얘기하냐고? 궁금했거든. 자네 행적이 아리송해서 말이야. 공국을 돕는 듯하면서도 제국과도 연결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네.”
“으흠, 이해가 가는군요. 하지만 전 제국과 딱히 우호적이거나 그렇진 않아요. 사실 어떻게 되든 별로 상관도 없고. 천계 쪽이라면 모를까.”
기계 공학과 관계가 없는 국가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다는 의미일까.
진성은 비비의 속뜻을 이해하는 동시에, 이러한 대화를 통해 확신할 수 있는 바가 있었다.
‘유저의 퀘스트 스크립트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어쨌든 궁극적으로 방향과 결과가 같게끔만 흘러가면 된다는 뜻 같은데. 그렇다면 이건…….’
진성 자신의 기억과 100% 일치하진 않지만 오염은 아니라는 뜻이 된다.
비비가 모험가지만 게임의 유저는 아니기에 이런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비비 외의 빙의된 모험가 후보들한테도 모두 이러한 흐름이 될 터.
진성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사이 루터는 어느새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약 자네가 제국과 적이라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네.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험가들의 힘도 필요하거든.”
비비를 한편으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했기 때문.
거기에 더해, 그가 ‘모험가들’이라 칭하는 이유 또한 있었으니까.
“특히 자네같이 뛰어난 모험가라면 더욱이.”
루터의 눈동자는 스르륵, 진성을 향한 상태였다.
그가 지금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는 중인지.
정작 비비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그녀에게 그러한 눈치는 오히려 필요 없으리라.
“걱정 마세요. 나쁜 놈들은 같이 처치하는 게 좋은 거니까.”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게 당연하다면.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을 쓰러뜨리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단순한 윤리 어쩌면 조금 어린 아이 같은 도덕이라 부를 수 있을 법한 그녀의 발상에 진성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늘은 자네를 믿겠네. 모험가가 좋아할 만한 정보를 알게 되면 찾아가도록 하지.”
루터 또한 그 의미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는 그제야 또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재잘거리기 시작했고.
“사실 말이죠, 저도 제국, 구체적으로는 반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거든요. 생각해보면 말이지, 세상에 하필이면 거기서 난리를 치는 통에 그 장소에서-.”
“그럼 이만 우리도 갈 길을 가겠네. 천계에서의 자네의 활약, 기대하지.”
그 말을 전부 들어줄 루터가 아니었다.
비비의 말을 가차 없이 끊어내며 루터는 진성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진성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그는 레베카와 함께 떠났다.
“-어, 아직 할 말 있는데. 반이 하여튼 나쁜 놈인 건 ‘죽은 자의 성’에서-…… 갔네. 듣지도 않고.”
“푸핫, 비비 씨, 그런 말을 한다고 듣겠어요? 하여튼……. 아, 그리고 던파 스토리는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그건 또 알고 있네요? 반이 거기서 뭘 했는지.”
진성은 비비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비비는 팔짱까지 끼며 생각할수록 괘씸하다는 듯 답했다.
“그럼요! 루크는 엄청난 기계 공학자잖아요. 건축가이기도 하고. 근데 그런 사람을 반이……. 으으, 나쁜 놈이라니까.”
진성은 이제 할 말을 잃어야 했다.
역시나 오직 관심사라면 그것 하나뿐인가.
“근데 새삼 기대도 되네요. ‘죽은 자의 성’에서 또 뭘 얻을 수 있으려나, 히힛. 가요, 진상 님.”
비비는 깡총깡총 뛰며 다시 겐트를 향했다.
비비가 부여받은 임무는 겐트 북문 외곽에 숨어있는 카르텔 조직을 확인하는 것.
어쩌면 수도가 무너질 수도 있는 기습 공격의 여부를 확인하고, 그 실체를 파악하는 비밀 임무를 맡은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가볍고 쾌활한 발걸음이었다.
“……그럽시다.”
* * *
젤딘은 비비의 보고를 들으며 펄쩍 뛰었다.
“네? 그렇다면 북문으로 쳐들어온다는 연락은 오보誤報……아니, 함정이었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죠?”
“어쩐지 기습치고도 너무 조용하다 싶었습니다. 우리가 역기습을 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겐트로 들어올 생각이었나 봅니다. 그렇게는 안 되지요. 반 님, 총력전이 될 모양입니다. 제국군도 준비해주십시오!”
실제로 카르텔이 북문을 통해 기습하리란 것이 적의 함정임은 파악된 상황.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된 작전과 계획을 흘리고 그것을 역이용하려는, 먹고 먹히는 전략과 전술의 심리전이 마침내 최종장에 달했다.
“단장, 흠.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라. 내가 선봉으로 나설 테니.”
젤딘의 이야기를 들으며 데 로스 제국,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부단장, 하츠마저도 창을 움켜쥐며 나섰다.
그러나 반은 그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감도는 사이, 젤딘은 비비에게 말했다.
“모험가님, 위험한 임무를 하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카르텔은 우리가 놈들의 작전을 알았다는 걸 모릅니다. 그래서 그 틈을 노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겐트에서 그곳까지 병사들을 움직이면 반드시 움직임을 들키고 말 겁니다. 그러니 황도군과 제국군이 그곳에 갈 때까지 적진을 어지럽혀 주십시오.”
“……으음, 너무 위험한 것 같은데. 그리고 나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어차피 걔들이 알게 되면 좀-.”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는 걸 들키더라도 그만큼 진열이 흐트러질 테니 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험가 네가 얼마나 휘저어 놓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거절하려던 비비의 행태에 괜스레 진성이 조마조마할 정도였으나 젤딘은 더욱 단호했다.
거기에 더해, 부단장 하츠도 한마디를 얹고 있었으니.
비비는 잠시 고민하다 슬쩍 입을 열었다.
“이해는 가지만 너무 어려우니까…… 아, 근데 저 혼자 가는 게 아니죠? 진상 님이랑 같이 가도 되는 거죠? 어차피 소수의 인원만 필요한 정도면 한 명이나 두 명이나 다를 건 없으니-. 그쵸, 진상 님?!”
그녀의 언급에 모두의 시선이 진성을 향했다.
“진성…….”
하츠의 미간이 잠시 움찔거렸다.
젤딘과 반의 표정은 미묘했다.
적어도 비비가 진성의 말을 들은 것은 확실한 일이었다.
‘모험가’라는 지칭이 비비 자신만을 뜻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왜 진성을 모험가로 부르지 않느냐’ 따위의 의문을 던진 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순수하게 자신과 함께 할 동료로 진성을 지목한 것이었으므로, 기존과는 상황이 달랐다.
당연하게도 진성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죠. 상관이야 없겠지. 비비 씨와 함께 가는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만.”
“다만?”
따라서 그는 이미 옅은 미소를 머금은 상태인 것이리라.
당황한 젤딘을 보며 진성은 말했다.
“다녀온 이후 보상은 확실하게 받아야겠습니다. 황도 수비대장인 ‘젤딘 님’께서 직접 ‘위험한 임무’라고 하신 거니까요.”
현시점의 천계에 특별히 받을 건 없다.
‘하지만 여기와 관련된 퀘스트까지 생각해보자면…… 흐흐.’
그러나 천계가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알기에, 그는 지금부터 황도 수비대장을 비롯한 NPC들에 대한 ‘포섭 작업’에 들어가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