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88)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88화(88/212)
088
젤딘은 머뭇거리며 겨우 입을 떼었다.
“물론…… 황도가 안정화된다면- 황녀님께서 무사히 돌아오신다면 모험가님, 그리고 모험가님을 도운 분들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하시겠으나…….”
현재 시점에서 어떤 보상을 줄 수 있는가.
천계의 지벤 황국 입장을 모를 젤딘이 아니다.
하물며 황녀가 납치당한 지금, 황도 겐트를 지키는 수비대장인 자신이 무언가를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고민을 다 꿰고 있다는 듯 진성은 말했다.
“아뇨, 물질적인 건 아닙니다. 겐트 수비대장인 젤딘 님 혼자서도 하실 수 있는 일이죠.”
“그, 그게 뭡니까? 만약 가능한 일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근데 지금 당장은 아니고……. 나중에 와서 말씀드릴 테니 그때 부탁드립니다.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너무 겁먹지 마시고요.”
“-아, 예. 그럼……. 언제든 말씀 주십시오.”
젤딘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진성의 거래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영 찝찝하다는 얼굴이었다.
어느새 진성의 곁에 다가온 비비가 스리슬쩍 진성의 옆구리를 찌를 정도였다.
“뭔데요? 뭘 달라고 하려고요?”
“있어요. 아참, 그보다 비비 씨……? 저를 ‘함부로’ 끌어들였네요?”
진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잉?! 함부로라뇨! 그, 그거야 진상 님이 어차피 저랑 같이-.”
“저 바쁜 몸입니다? 딱히 비비 씨랑 계속 다닐 이유까지는 없기는 한데…….”
비비가 새삼 제 발 저리다는 듯 과잉반응을 보였으나 진성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기까지 가니 이제는 비비가 안절부절못한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러지- 그러지 말고요, 치사하게! 그리고, 저기, 뭐냐, 진상 님도! 어차피 나중에 뭐 얻으면, 응?! 내가 또 개조할 수 있을지 어떻게 알고? 안 그래요? 아참, 젤딘 님, 젤딘 님! 이번 일을 무사히 마치면 멜빈 님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 마련해주시는 거죠?”
“네? 아, 그거야…… 멜빈 님께서도 분명 모험가 님께 감사 표시를 하시겠지만서도, 그런 건 제가 함부로-.”
“그거면 돼요. 멜빈 님도 나한테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으니까. 됐다, 자! 봤죠, 진상 님? 무려 세븐 샤즈와 일대일로 대화하면서 제가 또 뭘 얻을지! 뭘 할 수 있을지! 궁금하죠? 진상 님한테 무조~건 도움이 되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팍팍 들죠?”
진성이라는 존재가 비비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든 진성을 붙잡아두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지켜보던 반과 하츠마저도 멍하니 눈동자만 깜빡여야 했다.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 ‘모험가’, 현재 천계의 위험을 홀몸으로 파훼해나가는 실력자가 바로 비비 아닌가.
“으음, 도움이……될까 싶기도 하고……. 어차피 나는 검 쪽이니까. 알죠?”
그런 비비가 애원하듯 말하는 중이라는 것도 황당하건만, 바로 그 실력자가 애걸복걸하며 달려들어도 콧방귀나 뀌고 있는 진성이었으니…….
비비는 진성의 팔까지 붙잡아가며 매달렸다.
“기, 기계 검 많잖아요, 왜! 저도 넨마 본캐였지만 귀검들 무기에 대해 아예 모르는 건 아닌데! 그러지 말고 같이 다녀요, 진상 님! 약속, 앞으로 진상 님의 무기든 방어구든 뭐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개조해드릴 테니까. 그럼 괜찮죠?”
그리고 그 발언이야말로 은근슬쩍 진성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앞으로 어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이 있을지 모를 진성이 아니다.
‘퀘스트 두어 개 클리어한 다음 얻을 수 있는 템을 생각하면…….”
그렇게나 오랜 세월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플레이하며 획득한, 특히나 기억에 남는 몇몇 개의 아이템이라면 전부 다 꿰고 있다.
“흐흐, 약속한 겁니다?”
비비가 조금 전 말했듯 그녀의 실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이고 올 터.
무엇보다 당장 진성 자신의 퀘스트 타임라인과 매우 유사한 빙의된 모험가, 비비 외에 다른 유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또한 진성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였다.
당장 인근에서 오염이 발생하진 않는다는 의미니까.
“한 입으로 두말할 정도로 약아빠진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건 그래 보이긴 해요. 성격 때문이라기 보다는 어떤……능력에서의 문제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잉?”
적어도 겐트에서의 일, 던전 지역:안트베르 협곡을 모두 마칠 때까지는 비비와 함께 해도 괜찮겠다는 판단하에 진성은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젤딘 님! 그럼 진상 님이랑 한바탕 휘젓고 오겠습니다!”
비비는 진성의 곁에 딱 달라붙어 젤딘에게 말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없던 와중에도 젤딘은 비비의 말을 듣자마자 굳은 얼굴로 결의를 다졌다.
“저희도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그러곤 떠난 두 사람을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도대체 진성……님은 어떤 분이길래 모험가님이 저렇게까지…….”
“……망할 놈이죠.”
“예?”
반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젤딘은 그 의미를 알고자 했으나 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한 가지, 진성이라는 존재가 여기 모인 ‘실력자’들에게 여러 가지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만을 알아챘을 뿐이다.
* * *
그다음부터는 그리 복잡할 것도 없었다.
“딜 사이클 신경 쓰면서! 그렇지! 이제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공중 전폭 메카:게일포스> 정도는 섞어서-.”
“아뇨! 그보단 <스패로우 팩토리>가 퍼쿨이 더 좋으니까요, 그걸로 섞어서 써보겠습니다!”
“-흐……그러세요. 하여튼.”
비단 진성이 알려준 방식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주특기를 스스로 활용할 수 있게 된 전투 능력.
압도적으로 실력이 상승한 비비와 그런 비비의 곁에서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동시에도 확실하게 적들을 제압해가는 진성.
두 사람의 합이 맞아떨어져 가는 협력 플레이에 겐트를 포위한 카르텔 조직원 따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젤딘이 본격적인 겐트 수비대까지 이끌고 나와 적들을 상대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사실상 전투가 끝나가는 중이었다.
겐트 침공의 총책임자인 ‘야전 사령관 바빌론’이 비비의 총탄에 의해 관통당한 순간, 사실상 천계 황국 ‘지벤’의 황도, ‘겐트’는 지켜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쓰러진 바빌론의 앞에서 젤딘은 양팔을 치켜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동자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모두 들어라! 적의 사령관을 처치했다! 우리의 승리다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이겼다아, 우리가 이겼어!”
황도의 수비대원들은 전에 없을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포효, 억압되었던 일에 대한 기쁨인 동시에…….
“지벤 황국 만세!”
“모험가 만세! 모험가 덕분에 된 거라고!”
“그러니까 말일세, 모험가 만세!”
마치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천계에 올라온 인물, 모험가에 대한 동경이자 숭배의 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겠으나 역시 비비는 달랐다.
평평한 바위 위에까지 올라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기질이라니.
“이예이이-! 고마워요, 여러분! 고마워요! 하지만!”
비비는 더욱 커진 환호성을 즐기며 팔짝거리던 동작을 일순 멈췄다.
그것이 신호처럼 조용해진 순간, 그녀는 누군가를 가리켰다.
“바로 저 사람!”
“어, 엉? 나요?”
비비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람.
진성은 당황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겐트 수비대원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자신에게 고정된 것을 보며 그는 손사래를 쳤으나…….
“잠깐, 그러지 마. 하지 말아요. 굳이 나한테까지 안 해도-.”
“진상……진성 님이 없었으면 못 했을 테니까! 저쪽에도 환호성~ 부탁해요!”
가만히 있을 비비가 아니었다.
“우와아아아아-!”
“진상! 진상!”
“진성! 진성!”
“꼬르륵, 꼬륵.”
진상과 진성이 섞인 연호만으로도 부족해 흑구와 타꼬까지 중얼거리며 진성을 어지럽히던 밤이었다.
곁에 있던 데 로스 제국의 공식 파견 병력, 아이언 울프 기사단의 반 발슈테트가 한마디를 거들기 전까지는.
“급한 불은 꺼서 다행이지만 이제 어쩌실 겁니까? 사령관을 없앴지만 이게 다가 아닌 모양이던데.”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었으나 동시에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말이기도 했다.
진성이 쉬이 좋아하지 않았던 것 또한 이러한 흐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 전투는 끝이 아니야. 당장 서커스단부터 시작해서…… 이번 안트베르 협곡 던전에서 가장 중요한 적이 아직 남았으니까.’
상황은 다시금 긴박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 * *
작전 개요는 간단했다.
적이 숨어있는 협곡을 발견했고, 협곡의 지형 특성상 방어에 강점이 있으나 외부 상황을 곧장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 점을 고려하면, 야전 사령관을 없앤 지금 당장 적의 은신처인 협곡까지 파도와 같은 기세로 밀어붙이자는 계획이 세워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역시 방어에 강점이 있는 곳에 적이 틀어박혀 있는 만큼, 방어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집중이 흐트러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으며 결국 ‘소수 정예로 인한 기습/교란 후 황도군과 데 로스 제국군의 습격’이라는 작전이 채택되는 수순이었다.
물론 그러한 역할은 현재 천계에서 영웅시되고 있는 이가 맡을 수밖에 없었으니…….
바스락, 바스락-!
비비는 능숙한 태도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며 움직이는 중이었다.
언뜻 적극적이기까지 한 그 모습에 진성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제 싸우는 게 무섭지 않나 봐요?”
“잉?”
정작 질문을 받은 비비는 그제야 자신의 태도를 깨달았다는 듯 멈칫거렸다.
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비비 씨 말이에요. 벤팅크 직후에만 해도 뭐, 적 하나만 나타났다 하면 허둥지둥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다시 적진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가 난리를 쳐달라는 젤딘의 부탁도 고스란히 들어주고.”
“어, 언제 그랬다고요, 제가.”
비비는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스스로가 변했음은 느끼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응, 뭔가 익숙해진 것 같기는 해요. 참 신기하죠, 사람이라는 게. 천계에 오르기까지 3년 가까이 익숙해지지 않던 일이었는데.”
전투는 가급적 회피했던 그녀다.
천계에 오면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 예상했으나 오른 직후의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라드의 흉악한 외형의 몬스터보다 오히려 총포류를 사용하는 카르텔 조직원들은 비비에게 실질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으니.
‘천계에서 새로운 재료만 얻으면, 새로운 아이템만 만들 수 있으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 했는데…….’
특별히 아이템을 바꾼 것도 아니다.
그녀가 쥐고 있는 자동권총은 여전히 30레벨 수준에 장착하는 ‘언커먼 등급’의 싸구려 무기가 아닌가.
레벨은 몇 개 올랐다지만, 그 외의 변화가 없는 와중에도 비비 자신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전투를 치르며 나설 수 있는 이유라면 결국 하나밖에 없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흐흐, 좋은 현상이죠.”
“좋은…… 그렇죠. 좋은 현상이에요. 누구 덕분이라는 말은 굳이 안 할 거지만.”
비비는 진성의 눈치를 흘끗 보며 말했다.
진성조차 들리지 않은 작은 목소리로.
“네?”
“아무것도! 얼른 가요! 서커스단 여기만 깨부수고 나면 그다음은 무슨 보급로? 그런 거 한다면서요?”
진성이 다시 물었을 때, 그녀는 어느새 진성에게 대략적으로 들었던 향후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 대한 화제를 꺼내는 중이었다.
겐트를 포위하고 있는 카르텔에게 타격을 입히고, 안트베르 협곡에 숨은 황도 침략군의 은신처를 찾아 그 보급기지를 습격 후 보급품 등을 획득.
나아가 할트산을 넘어 도망가려는 카르텔 조직원들을 ‘추격 섬멸’하며 궤멸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 던전 지역:안트베르 협곡에서의 흐름이자, 천계에 올라와 처음으로 겪는 던전 지역의 메인 시나리오 흐름인 것!
“그렇죠. 거기서 이제…… 돌연변이 같은 게 나오고-.”
“그 돌연변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발전기 같은 게 나오고! 그쵸?! 맞죠?”
진성은 이번 퀘스트를 진행하며 비비에게 그 흐름에 대해 개괄적으로 흘려주었고, 비비는 그 부분을 상상하며 이렇게나 좋아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어……발전기. 맞아요. 전력을 계속해서 공급해야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몬스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이죠. 나중에 안톤까지 이어지는-.”
“드디어 전기를 쓸 수 있구나. 마음대로!”
제7사도, 불을 먹는 안톤의 몬스터들의 구조를 미리 숙지할 수 있는 장소든 아니든, 그녀에겐 그저 발전기와 전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으니까.
“……그렇겠지. 또 그런 식이겠지.”
진성은 피식 웃으며 말했으나 이번만큼은 비비의 표정도 달랐다.
그녀는 주변에 카르텔 조직원이 있나 능숙하게 살핀 후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스윽 꺼내었다.
“그럼요. 이거 얻고 나서도 제대로 개조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어서 못 쓰고 있었는데. 이제 쓸 수 있다는 뜻이니까.”
검고, 크고, 두껍고, 기다란 쇳덩이는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이건……?”
원통안에 배치된 네 개의 총열.
그 총열에 어지러이 엮여 딸려 나오는 급탄용 탄띠들.
“네. GT-9600에서 뜯어낸 기관총 부위예요. 히힛.”
비비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성은 알 수 있었다.
“무기……로 만들려고요? 이걸?”
그녀가 이것으로 무엇을 할지, 어떻게 다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