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8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89화(89/212)
089
비비의 푸른 눈동자는 토끼 눈처럼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쩐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러나 진성으로서는 황당할 뿐이었다.
GT-9600에서 뜯어낸 기관총 부위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말도 안 되게 거대한, 거대 기동 병기에 붙어있던 무기를 비비가 뜯어내어 자신에게 보여주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어떻게 알기는…… 있었으니까요, 예전에.”
진성 자신이 사용했던 <로터스의 가시 촉수>도 마찬가지다.
현재 사용 중인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도 마찬가지다.
과거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획득처도 불분명해진 신세다.
게다가 성장 가속 모드의 일환으로, 유저들이 순식간에 ‘만렙’에 도달하는 탓에 만렙 구간에서 사용할 만한 에픽 아이템을 모으는 플레이가 중점이 되었으니, 만렙 이전에 사용하는 아이템들은 그 중요도가 대폭 하락할 수밖에 없는 게 최근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상황이 아닌가.
“비비 씨도 알고 그런 거 아녜요? 자동권총 무기, 이라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사실상 단종된 템이잖아요.”
그렇게 유저들의 선호도 상으로도, 시스템적 구분으로도 사실상의 단종 판정을 받아 없어진 무구류였으나 적어도 진성이 그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비비가 계획을 말하기도 전에 진성이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만, 진성이 놀란 이유는 비비가 앞으로 하려는 일, 즉, 개조에 대한 점이었으나…….
“잉? 그래요? 있었어요?!”
“응? 모, 몰랐어요?”
“그렇구나…… 다 만들어서 놀래켜 주려고 했더니만.”
그 이전에, 그러한 아이템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말하는 비비에게는 결국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숨을 내쉬는 건 잠깐이었다.
진성은 바로 비비에게 물었다.
“근데 이걸 어떻게 하려고요? 이 크기, 드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아니, 애초에 이런 게 인벤토리에 들어갔다는 것도 나는 지금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물건을…….”
진성 자신도 단종된 아이템을 사용한 적이 있다.
단, 그것들은 모두 ‘이미 사용하기 좋게끔 가공된 상태’였거나, ‘원래부터 다른 이가 사용하던 것’이기에 쓸 수 있었을 뿐이다.
‘그 외에는 <아티 마르피사> 세트를 신다가 만들어 준 정도. 나는…… 처음부터 내가 쓸 수 있게 무기화되어있거나, 재료를 방어구로 만들어 줄 특출난 NPC들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 가능했어. 근데 이건-.’
그러나 비비의 경우는 뭐라고 해야 할지.
말 그대로 기동 병기에 부착되어 있던 것을 거친 손길로 뜯어내어 [인벤토리]에 욱여넣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잉? 만들어야죠. 당연히.”
“만든다? 어…… 멜빈이 생산 관련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건 재료템 업그레이드 정도 아니었나?”
“멜빈? 아뇨, 제가요. 직접.”
하물며 자신조차 관련된 NPC를 즉각 떠올릴 수 없어 하는 와중에 들린 비비의 답변에, 진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든다? 직접? 본인이?
진성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아예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건 진성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바였다.
‘그런가…… 그런 일도 할 수 있는 거구나.’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존재하거나 일어났던 일, 그리고 그걸 활용하는 방식이라면 진성 자신도 ‘거의 다’ 알고 있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능력을 사용한다?
빙의된 자로서의 지식과 능력을 살린 일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특별히 해본 적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만 일리 있어. 현실에서의 능력을 이곳에서 고스란히 살릴 수만 있다면 가능하겠지. 못 할 게 뭐 있어. 못 한다는 게 결국 재료가 없어서, 환경이 뒷받침이 안 되어서, 물리적으로 할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면 비비는-.’
진성은 재빨리 물으려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활용하여 그것을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진성 자신의 지식과 이곳에 있는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만약 진성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청사진들을 그대로 옮겨낼 수만 있다면 어디까지,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지!
쉬잇, 쉬이이이잇-!
그러나 먼저 시선을 빼앗아 간 것은 또 다른 존재들이었다.
하얀 정장과 푸른 정장 그리고 공통된 보랏빛 햇.
“실크햇과 펠트슈의 마술쇼를 보러 오셨습니까?”
“신나고 즐거운 마술쇼!”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퀘스트 ‘야간 습격전’의 보스이자, 카르텔 조직원에 협조하는 서커스단의 단장 형제가 익숙한 대사를 내뱉으며 나타났다.
진성은 한숨을 내쉬며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를 움켜쥐었다.
“비비 씨, 얘네 잡고 나면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세요. 무슨 방법을 쓸 건지.”
“잉? 이히히, 거봐요. 저랑 같이 다녀도 괜찮죠?”
“으음……뭔가…….”
“괜찮죠, 괜찮죠? 이득이죠? 나쁠 거 없죠?”
맞는데 맞다고 말하기 싫은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성은 애써 무시하며 나섰다.
[클클클…… 이 여자가 마계에 있었다면 벌써 카시야스 같은 무식한 놈이 참지 못하고 베어버렸겠어.]“동감이야.”
진성은 중얼거리는 흑구의 목소리에 조용히 답하며 움직였다.
제4사도, 정복자 카시야스의 성격이라면 이런 식으로 까불거리는 자를 곁에 둘 리가 없을 테니까.
그와 동시에 보스 몬스터 격인 실크햇과 펠트슈가 카드를 던지며, 서커스단원들이 대거 등장했다.
적어도 진성에게 있어서는 특별할 것 없는 전투였다.
일반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 둘의 공격 패턴부터 대사까지, 진성의 기억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오염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숙하게 전투를 치르는 비비와 그보다 더 여유롭게 적들을 처리하는 진성, 전투가 끝난 시점에서 두 사람의 레벨은 각각 62, 60이었다.
“됐어.”
“뭐가 돼요?”
“흐흐…… 60렙 찍었습니다. 드디어.”
“잉? 60렙에 뭐 있어요?”
비비는 물었으나 진성은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마침내 진성도 레벨 60에 도달했다.
* * *
결국 모험가 비비와 비비를 돕는 진성의 활약 덕분에 파죽지세로 나아가는 황도군이었으나 서커스단을 제압할 즈음에는 일부 그 기세가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무전기로 들려오는 멜빈의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다들 기분이 좋구만. 근데 더 이상 무기를 만들 수 없다는 건 알아? 수리도 못 한다고.
“네? 이제야 승기를 타기 시작했는데 그게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입니까?”
-생각도 없이 연이어 대규모 싸움을 벌인 덕분에 이젠 쓸만한 나사 하나 없어. 완전히 텅 비었다구. 난방기구 하나 못 고치겠다니깐?
“이럴 수가…….”
비비와 진성의 활약이 전쟁의 향방을 갈랐다지만, 결국 그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군세 투입이 필요했고, 가뜩이나 쓰러져가던 황도에서는 더 이상 물자조차 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진성은 알고 있었다.
비비에게도 대략 언질을 주었던 일이었으므로 비비 또한 나서진 않았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나선 것은 반이었다.
“물자가 부족하면 빼앗아야겠죠.”
반은 슬쩍 나서며 비비와 진성을 바라보았다.
자신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을 어필하며 그는 확실하게 말했다.
“마침 모험가들이 적의 보급기지를 찾은 것 같다고 하더군요.”
모험가’들’.
비비는 슬쩍 진성을 보았으나 반이 진성을 지칭하는 건 아니었다.
연단된 칼날이 되어야 하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나 실제로 아라드에 빙의된 자들을 뜻하는 게 아니다.
‘데 로스 제국과 본격적으로 마가타 연결이 됐다는 건가. 하긴, 제국이 물자니, 병력이니 실어 나르면서 이래저래 아라드의 사람들을 천계로 이동시켰을 테고…… 그런 사람들을 모두 ‘모험가들’이라 칭하는 거였지.’
여기까지 생각이 들면, 반의 의도는 파악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비비든, 진성이든 두 사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아니, 그걸 언제 아셨습니까?”
“방금 듣고 오는 길입니다. 모험가 중에 발이 빠른 자들에게 적의 보급로를 알아보라고 했거든요.”
설령 어느 정도 활약을 했더라도 그렇게 활약할 만 한, 대체 가능한 인력은 많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으리라.
이 정도로까지 나오면 비비라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녀는 허리에 손까지 올리며 자신의 기분이 상했음을 한껏 내비치는 중이었다.
그러나 진성은 달랐다.
‘고마운 일이지. 흐흐,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식으로 활동해야 하는 나한테는 말이야. 저런 말 하나하나가 다 연막이 되어주는 셈이니까.’
진성 자신이 너무 눈에 띄었다간 혹여 제약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아라드로 마가타를 타고 내려간다는 도박을 강행했던, 황녀를 호위하는 ‘황녀의 정원’ 소속 겸 황녀의 보좌인 마를렌 키츠카가 말했다.
“실례합니다만, 군량도 바닥을 드러내어서…… 아랫세계에서 지원받은 식량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무기와 식량 둘 다 노려야겠군요.”
젤딘 또한 반과 모험가’들’이 찾아낸 보급로에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할지 확고히 언급한 상태.
결국 이러한 위기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낸 모험가’들’이라면, 앞으로도 황도군이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될 게 아닌가!
‘반 녀석, 내가 기억하는 스토리 흐름과 비슷하면서도 얄미운 의도로 떠들어댔겠지만, 오히려 고마울 지경인데.’
따라서 어떤 의미로는 진성을 향한 제약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니, 반의 의도와 달리 진성은 씨익,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셈이었다.
“좋아, 그럼 우리가 먼저 가겠습니다. 모험가들이 찾은 길로 우리가 이동할 테니, 그쪽도 발을 맞춰주시길.”
반은 그러한 진성을 잠시 바라보다 휙, 몸을 돌려 나가며 말했다.
보급기지의 위치, 규모 등에 대해 파악하는 것도 잠시였다.
정신없이 이야기가 오간 막사에서 곧 비비와 진성도 그곳을 향해 출발했다.
* * *
비비는 피곤하지도 않은 듯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아갔다.
모험가의 빙의된 육체라면 피곤함을 그리 많이 느끼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지금은 그 이유만이 아니었다.
반이 알려준 보급기지 주변에 대한 정보를 물색하던 중 젤딘이 괴소문을 들었고 그것을 비비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보급기지 주변에서 카르텔 개조병사들을 보셨는지요? 온몸이 기계로 되어 있을뿐더러 정말 괴물처럼 생겼다고 하더군요.”
얼핏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정작 그 이야기를 들은 직후부터 비비는 한껏 기대감에 들뜬 상태가 되었던 게 아닌가.
“진짜요? 드디어- 아, 저는 못 보긴 했어요.”
“그, 그렇습니다. 병사들이 괜히 겁나서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모험가님도 조심하십시오.”
젤딘은 비비의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를 주었다.
듣는 비비가 그 주의사항을 마치 선물처럼 들은 게 문제였을 뿐.
“근데 보급기지 주변이라고요? 그럼 보급기지 안에도 그런 괴물들이 있겠죠?”
“그건……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있다면 아마 보급처 안에도 있다고 보는 게 옳겠지요.”
“좋았어.”
“네? 좋다? 갑자기 무엇이-.”
“아, 아뇨! 아무것도. 가요, 진상 님!”
비비는 그때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진성 자신과 함께 보급로와 보급기지를 향해 나아가는 상태였던 것.
진성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돌연변이 괴물 만나러 간다는데 그렇게 즐거워하는 사람은 비비 씨밖에 없을 거예요. 난 벌써부터 좀 끔찍한데.”
“잉? 왜요?!”
“징그럽게 생겼잖아요.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아라드에서 봤던 몬스터들 뺨치게- 아니, 그 이상으로 흉측했던 것 같은데. 뭔가 막 DNA 합성, 변형, 무슨, 그런 스토리였고. 몰라요?”
비비를 은근슬쩍 놀려주려는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
유전자 공학을 통해 DNA가 섞인 돌연변이 생명체들.
듣기만 해도 무언가 하나라도 ‘오염’되었을 경우 ‘원래의 흐름’과 다른 케이스의 돌연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진성의 입장에선 <오염>의 발견 확률이 높은 던전이다.
당연히 비비가 그런 진성의 마음을 알 리는 없었다.
“대충은 알죠! 근데 그게 멋있는 건데! 그게 완전 쩌는 거잖아요!”
“……네?”
“유전자 조작! DNA 합성! 대박이야, 현실에서는 쉽게 구경도 못 하는 거라고요! 던파에서 게임 화면으로는 봤지만 실제로 보면 어떻게 되어 있을지! 잘하면 그 연구 자료나 데이터 같은 것도 획득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야 생물학, 유전학, 생화학 쪽은 원래 전공도 아니라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기초과학에서부터 발달하는 게 결국 우리 공학쪽이니-.”
“크르르르르…….”
“크르륵…….”
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비비는 물론 진성의 눈에도 뻔히 보이는 군견軍犬 무리, 그러나 모든 군견의 머리가 두 개씩 달린 ‘쌍두견’임을 인지했기 때문.
문제는 그런 와중에 비비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는 것일까.
“저것 봐, 저것 봐! 봤어요, 진상 님?”
“아뇨, 이제 장난은 그만-.”
진성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말리려 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저런 게 어떻게 만들어졌겠냐구요! 그것도 이런 곳에서!”
어째서 비비가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돌연변이들을 기대했는지.
“전력이라고요, 전력電力! 발전發電! 그리고 실험 도구들!”
그녀가 찾고 있던 건 그러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외부 환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