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90)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90화(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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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은 새삼 알 것 같았다.
‘그래, 현실에서 이런저런 능력이 있다 해도 결국 여기서 살릴 수 없는 이유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아라드 같은 중세풍 판타지 배경의 세계관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곳은 천계다.
어떤 의미로는 옛스런 문화가 남아있다지만, 과학만큼은 아니다.
진성 자신과 비비가 살았던 ‘지구의 과학 문명’보다 더욱 발전한 부분도 있다고 볼 수 있는 SF 세계관. 차원 항해선 같은 것을 뚝딱 만들어 내는 곳이다.
‘-당장 멜빈이 타고 다니는 그 금강랑도 완전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잖아. 그뿐만이 아니지, 내가 알고 있는…… 나중에 천계에서 벌어질 일들은 ‘지금 당장도’ 이곳에서는 가능하다는 뜻이야.’
자원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은 이미 조성되어 있다고 봐야 할 터.
그렇다면 비비는?
진성 자신이 사용하는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를 개조하는 것 따위는 5분도 되지 않아 끝내는 비비는?!
“카르르릉!”
“캬아아아아-ㅅ!”
“물어! 전부 찢어 죽여라!”
군견을 관리하는 카르텔 조직원의 외침과 동시에, 머리가 두 개 달린 AM-0 바이터들은 진성과 비비를 향해 쇄도했다.
“진상 님! 제가 오른쪽 맡을게요!”
“아- <래피드 무브>, <다크 크래셔>.”
능숙하게 맞달리며 반격하는 비비의 행동을 보고 나서야 진성도 정신을 차렸다.
당장 비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그녀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또 하나.
‘과연 그건…… 해도 되는 것인가.’
무엇보다 그녀가 계속해서 내비쳤던 개조와 관련된 작업들이 혹여 ‘규격 외’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가능성은 물론이요, 그러한 개발 행위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아니란 말이지, 하압-!”
진성은 재빨리 이동기를 사용하며 쇄도하던 AM-0 바이터를 우회, 뒤를 잡은 그대로 그 하반신을 향해 화염분출기를 내리그었다.
“깨에엥-! 깨갱!”
레벨 60이 되었으므로 이러한 일반 몬스터 따위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을 필요는 없는 것.
곧장 옆에서 또 다른 AM-0 바이터 두 마리가 진성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으나 진성은 그대로 한 팔을 내뻗을 뿐이었다.
“<팬텀 소드>.”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다크나이트 시절에도 콤보가 아니라 단일 스킬로 활용했던 레벨 50제의 스킬, <팬텀 소드>가 시전되었다.
빠각, 빠가가각……!
캡틴 루터조차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스킬은 ‘시전하는 동안 시전자를 무적 상태’로 만든다.
“커헝, 커헝.”
“케헤헹!”
진성의 몸을 파고들려던 유전자 조작 군견들의 이빨이 와사삭 부서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단순히 그들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도망조차 못 가게끔 만드는 <팬텀 소드>들의 연이은 공격과 뒤이은 낙하, 폭발까지.
────────────…….
진성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가볍게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비비는 아직까지 마무리를 못 한 상태, 전투에 익숙해졌다 해도 진성보다는 역시 처리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틈을 타 스리슬쩍 들려오는 것은 흑구의 목소리였다.
[클클…… 기습을 당하길래 개에게는 약한 줄 알았는데.]진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아무리 멍하니 있다 습격을 당한다 해도 일반 몬스터 따위에게 위기를 맞이할 일은 없다.
네임드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 또한 마찬가지.
“딱히 그럴 리가 있나. 정상적인 놈들을 상대하는 거면 상관없……잠깐만.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구나?”
만약 위기를 겪는다면 ‘오염된 몬스터’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별반 다를 게 없음을 말해주려는 순간.
진성은 깨달았다.
“내가 너한테 약했었다고 말하려는 거지? 그러면…… 푸핫, 흑구 씨? 본인이 스스로 ‘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까?”
흑구가 자기도 모르게 툭 내뱉은 발언, 진성 자신을 은근슬쩍 놀려주려던 발언에 내포된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흑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황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그런 의도로 말을 한 게 아니라-.]“그렇구나……. 하긴, 사실 균열 속에 있는 본체도 누가 봐도 개의 형상이긴 하잖아?”
[-웃기는군! 나는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의 또 다른 자아! 형태에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든 변형할 수 있는 존재인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진성!]강력하게 반발하려 하지만 설령 디레지에 본체라 해도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설정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역시 진성이었으니까.
“근데 개의 모습으로 있는 건 본인이시잖아요, 흑구 씨?”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의 몸은 사실 부정형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정해진 게 없이, 형태를 바꿀 수 있다.
[감히…… 그런…….]“푸훕.”
그러나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 사도 그 스스로가 선택하여 갖추고 있는 모습이 어떻던가.
설정에 빠삭한 진성이 그 부분을 건드리는 순간, 흑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받는다……]흑구는 중얼거렸다.
진성은 어쩐지 뿌듯한 심정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게 놀릴 사람을 놀려야지. 크흐흐.”
그러곤 당황했다.
[라는 감정이 이런 식으로도 느껴지는군. 크크크. 힐더 그년에게 느낀 피를 토하는 분노와는 또 다른 열받음이야.]“응? 갑자기 무슨? 미치셨어요?”
좌절하거나 토라질 줄 알았던 흑구에게서 들려온 건 웃음소리였으니까.
상황이 어떤지 알기는 아는 것일까.
그러나 진성은 더 이상 흑구와 대화할 수 없었다.
“잉? 진상 님? 뭐라고요?”
“어, 네? 아뇨, 아뇨, 정리 끝났어요?”
“그럼요! 빨리 가요! 저쪽에 보인다, 저기, 저기, 꺅, 이번엔 인간형이에요!”
쌍두군견 AM-0 아스티를 전부 처리한 비비가 다가와 호들갑을 떨었으니까.
멀찍이 보이는 막사 근처에선 이제 인간형의 유전 공학 생명체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UM-9 일렉턴. 맞네요.”
“이름도 알아요? 역시…….”
“이, 이름은 뭐, 그냥…… 예전에 많이 돌았으니까요. 네임드 중에 입키스 기억 안 나요? 걔 패턴이 좀 짜증 났던 거 생각하면 얘네들 이름도 연쇄반응처럼 후루룩 기억난다니까.”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역사는 길다.
레벨 제한이 풀려가며 유저들마다 고생했던 레벨 구간과 던전이 어느 정도씩 상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러나 옛 시절부터 이미 여러 캐릭터를 키워온 진성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매번 힘든 던전 구간을 다 겪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
“입키스? 그런 몹이 있었나.”
“……갑시다.”
비비가 진성과 비슷한 성향의 유저가 아니라는 것을 단 한마디만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진성은 그냥 입을 다물고 앞으로 걸어 나가야 했다.
* * *
천막과 천막을 이어 만든 카르텔 보급기지는 일종의 요새라고 봐도 될 정도로 큼지막했다.
당연히 DNA를 개조하여 만든 변이 생명체만 있을 리는 없었다.
보급기지를 지키던 카르텔 개조강화병사는 비비를 발견하자마자 외쳤다.
“뭐 하는 녀석이냐!”
“잉?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나 역시 비비가 한 수 위라고 해야 할까.
“……뭐?”
“네 몸을 분해해 볼까?”
카르텔 개조강화병사와 카르텔 엔지니어들조차 당황하게 만든 기묘한 대화를 들으며 진성은 이마를 짚었다.
“……비비 씨, 그냥 갑시다. 제발 좀.”
“힛, 장난이었어요! <메카 드롭>!”
비비는 곧장 조종 장치를 가동시키며 전투를 개시했다.
요새와도 같이 널찍하게 이어진 보급기지 상공에는 어느새 소환된 폭격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 ────, ────!
천막을 찢으며 지상으로 낙하하는 실버 버스터, 무차별 에너지 폭격에 카르텔 개조 강화병사와 카르텔 엔지니어 그리고 UM-9 일렉턴 따위가 살아남을 일은 없었다.
설령 살아남은 적 또는 ‘다음 방’에서 등장할 AM-0 아스티나 또 다른 카르텔 엔지니어들이 있다 해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 트랜스폼 G-3, 랩터Raptor!”
타아아앙, 타아아앙……!
자동권총을 사용한 ‘평타’ 딜과 함께 여자 메카닉 직업의 주력기라 할 수 있는 G시리즈의 운용에는 충분히 익숙해진 비비였으니까.
“어때요, 진상 님?!”
비비는 남은 적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안경을 치켜올렸다.
한껏 으쓱하며 칭찬을 바라는 그녀를 바라보며 진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떻나 마나…… 이제 겨우 기본 콤보는 갖췄다, 같은 느낌이죠.”
“잉?”
“방금 롤썬 타이밍도 한 번 나왔는데 그거 안 썼죠? 충전은 항상 몸으로 기억하시라니까.”
진성이 보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했지만, 진성이 원하는 건 그 이상이 아닌가.
무의식 중에도, 다른 것들을 신경을 쓰면서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
말 그대로 몸에 배어버려야 하는 수준.
비비는 어쩐지 뚱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기, 기억은 했는데요. 지금 굳이 그렇게까지…….”
“습관처럼 해야 해요.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이 알아서 트랜스폼 착착 돌릴 정도로- 아, 여기선 키보드가 아니니까 좀 다르지만 어쨌든 바로바로 조절할 수 있도록, 이런 곳에서 연습을 해놔야 나중에 수월해지지. <메카 드롭> 말고 <스패로우 팩토리> 주력기로 변환할 준비 해야죠. 비비 씨의 ‘분석’대로라면 그게 베스튼데. 그쵸?”
적어도 비비의 입장에선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비비 또한 과거 진성이 얼마나 많은 캐릭터로, 얼마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전투를 치러왔는지, 그 영상들은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퉁명스러운 투정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어차피 다 죽었잖아요. 그래도 딜이 충분하면- 아!?”
“크라아아악-.”
그 말도 부정하듯 그녀의 뒤에서부터 달려드는 개체가 있었다.
AM-0 아스티를 기반으로 더욱 강화시킨 쌍두군견 네임드 몬스터, AM-9 크런키.
비비의 등허리를 뜯어낼 듯 쇄도하던 쌍두견은 곧장 우는 소리를 내야 했다.
“-캐헤엥!”
“다 죽었다고요?”
어느새 이동기를 사용한 진성이 비비를 우회, 도약하는 크런키를 그대로 베어버렸으니까.
털썩 쓰러져 나뒹구는 AM-9 크런키는 AM-0 아스티보다도 두 배 이상 커다란 몬스터다.
사망한 상태에서도 아직 꿈틀거리는 군견의 이빨을 보며, 비비의 안색이 조금쯤 변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과장된 태도로 자신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는 비비를 보며 진성은 풋, 웃음을 흘렸다.
‘고집이 센 것 같지만 그건 자기 확신이 강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자기 확신이 강한 것과 별개로 오류를 발견하면 곧장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도 아는군. 하긴, 공돌이 쪽이 좀 그런 스타일의 사람들인가.’
재능이 있다. 정확한 인풋을 주면 정확한 아웃풋이 나온다.
이후 몇 개의 방을 거치며 비비는 진성의 주의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수정하며 나아가고 있었으니.
교육 공대로 명성을 높였던 진성에게 있어, 비비와 같은 성격은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는 법이었다.
AM-9 크런키까지 전부 처치한 시점에서 이제 남은 것은 하나였다.
“우어우어~~! 워우우어어어워워엉!”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포효 소리의 주인공.
“우어어어워어후우어!”
던전 ‘보급로 차단전’의 보스, UM-7 블래스토.
“워! 우어러우어워우아어!”
UM-9 일렉턴 보다 훨씬 커다란 육신에, 섬뜩한 초록색으로 이루어진 변형 괴물.
다만, 쉴 틈 없이 고함을 치는 보스의 모습이 어쩐지 당황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예전에 말풍선으로 볼 때는 꽤 무서웠던 것 같은데.”
위압감을 느낀다기보다는 애처롭고 또 우스운 상황이라니.
진성의 중얼거림을 듣던 비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잉? 진상 님이 무서울 때도 있어요?”
“그때야 여기 도는 게 주 컨텐츠이던 시절-.”
“진상 님! 뒤에! 뒤에 보세요!”
진성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려 했으나 그런 걸 기다리며 들을 성격일 리가 없다.
무엇보다 보스 UM-7 블래스토의 뒤편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무언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 보입니다. 비비 씨가 찾던 게 저거죠?”
비비가 그토록 찾던 것.
이러한 돌연변이 생명체들을 이곳에서 직접 수술/개조/생산했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전력, 에너지가 그곳에 있었다.
“소형 발전기! 이제 용접이든, 뭐든 다 할 수 있는 거라고요!”
기대에 가득 차 팔짝팔짝 뛰는 비비를 향해 먼저 달려드는 것은 UM-7 블래스토를 보필하던 UM-9 일렉턴들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지젤 박사님의 파수꾼.”
“우리는 지젤 박사님의 파수꾼.”
같은 목소리, 같은 멘트를 반복하는 DNA 변형 생명체들을 보며 진성의 미간에 잠시 주름이 졌다.
“지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유저 입장으로서 오랜 시간 상대해왔던 적, 매드 사이언티스트 ‘지젤 로건’의 이름이 불리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