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91)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91화(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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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실험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본인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 어떤 제약도 거부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지젤.
비비 또한 그 이름을 잊을 수는 없다는 듯 반응했다.
“지젤! 맞다, 맞다, 여기서부터 지젤이구나! 그럼 지젤 만나서-.”
“UM-7 블래스토의 주요 패턴 중 위협적인 건 롤링 어택 정도니까 휘말리지 마시고. 일정 이상 피해를 입으면 비비 씨가 봤던 소형 발전기로 들어가서 HP 회복을 시도할 거예요. 괜히 시간 끌지 말고 한 방에 몰아붙이세요.”
그러나 어쩐지 반갑게까지 맞이하려는 비비에 비한다면 진성은 차갑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잉?”
“아까처럼 딜이 충분하겠거니, 하면서 적당히 싸우다간 늘어질 겁니다. 집중해요.”
“네, 넵…….”
진지하게 말하는 진성을 향해 비비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장난조차 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일까.
비비는 곧장 자동권총을 꺼내어 들고 달려나갔다.
“그 외에는 크게 도약 후 레슬러처럼 어깨로 내려찍는 패턴 같은 겁니다. 보고 피할 수 있으니까 충격파에 휘말려 중심 잃지 않도록 조심.”
“알겠어요!”
전투에 자신감이 붙은 자신의 실력 향상 외에도 이런 식의 패턴 파훼 공략 조언을 듣는다면 그녀로선 무서울 게 없어지는 법!
총성이 울리며 곧장 전투를 시작한 비비를 보며 진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여기 최종전이 지젤을 상대하는 거였지.’
던전 지역:안트베르 협곡의 최종 전투가 치러지는 할트산의 ‘추격 섬멸전’이 이번 흐름의 마지막임을 진성은 알고 있었다.
황도 겐트를 포위한 야전 사령관 바빌론은 처치했고, 겐트까지 진격해 온 카르텔 조직의 보급기지는 지금 파괴 후 그 물자들을 노획하고 있으며, 이번 전투의 패배를 기점으로 퇴각하는 카르텔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추격전이 이어지는 수순.
바로 그 전투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 지젤 로건을 상대하게 됨을 진성은 알고 있기에 약간의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별다른 오염은 없어. 비비가 AT-5T 워커를 개조하려던 걸 막았을 때 카드가 나왔으니 이번 지역에서의 오염은 끝……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오염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방심해선 안 된다.
일반적인 몬스터 따위와 다르다.
웬만한 NPC가 아니다.
‘던파 게임 스토리에서도 역사를 왜곡하고 흐름을 바꾸려던 캐릭터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냥 끝날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옳겠지.’
상대는 지젤이다.
문제는 지젤과 엮인 문제가 과연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게 될지.
아직까지 진성 자신이 파악한 단서가 없기에, 그는 더욱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일단 지젤과 관련해서 남은 거라면 UM-0 얼티메이텀. 지금 저 블래스토보다도 훨씬 크고 포악한 유전자 변형 생명체가 하나 있고…….’
UM-9 일렉턴 같은 몬스터에 비하면 거의 세 배에 달하는 크기의 보스가 남아있다.
곧장 이다음 던전에 상대하게 될 테지만, 그것을 직접 상대하는 것 따위에 진성이 긴장한 게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 저런 소형 발전기보다도 더 큰 대형 발전기가 있지.’
오염은 반드시 생명체로부터 발생하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혹여나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설령 이번 보급로 차단이나 유전자 변형 생명체와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그다음은 또 어떠한가.
‘거기까지도 무언가가 없다면 다음은 지젤 본인을 상대하는 부분이야.’
크게 나누면, 오염이나 왜곡이 출현할 기회는 세 번.
당연히 진성의 입장에서는 UM-0 얼티메이텀과 같은 일반적인 몬스터가 조금 바뀌는 수준을 바라고 있으나…….
‘역시 지젤 본인과 관련된 부분이- 쩝, 결국 제일 확률이 높겠지.’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오염의 원인자>가 숨겨두었던 오염 발생의 범위와 형태, 성질을 고려해보자면 결코 그런 식으로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지젤 로건, 그 자체에서 어떤 오염이 발생할 것을 염두하며 주의해야 한다.
“깼다! 잡았다! 진상 님! 끝났어요!”
겨우 생각을 정리할 즈음, 비비의 호들갑이 보급기지에 울려 퍼졌다.
진성은 주변에 널브러진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설령 지젤과 관련된 오염이 있더라도 일단은 비비가 있다.
이만큼이나 전투에 익숙해진 또 다른 빙의자가 있다.
그녀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설령 어떤 오염이 나타나도 지금보다는 조금쯤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기에.
진성은 은근하게 그녀를 칭찬하며 향후의 일까지 고려하려 했다.
“거봐요. 집중해서 하면 할 수 있으면서. 예상보다-.”
“대박, 어디 보자, 이거 발전기 용량은 어떻게 되나? 전선은 이쪽인가?”
다만, 이미 비비의 집중은 온전히 소형 발전기들에 꽂혀 있을 뿐이었다.
작은 한숨을 내쉬는 진성의 머릿속에 흑구의 웃음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중이었다.
* * *
진성이 딱히 도울 일도 없었다.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비비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그러모았고, 어느덧 소형 발전기들의 옆에는 무언가가 한가득 쌓여있었으니까.
‘저건 도라이버. 저것도 도라이버. 큰 도라이바. 니퍼원, 니퍼투, 니퍼쓰리…….’
진성으로서는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조차 어려운, 언뜻 보면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은 물건들에 더하여, 그 외에는 이름조차 모를 전문 도구들.
“좋았어. 진상 님! 이거 고정하게 그쪽 좀 잡아주세요!”
그리고 물 만난 고기처럼 그것을 다루기 시작하는 비비까지.
“네? 아, 네.”
멀뚱히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던 진성은 그녀의 호출에 스리슬쩍 움직였다.
그녀가 낑낑대며 세팅하려는 것은 GT-9600에서 떼어냈다던 기관총이었다.
“근데 뭘 하려고요? 이거 그 GT-9600에서 떼어냈다던 기관총? 그거죠?”
급탄용 탄띠를 모두 제거한 순수 총기를 가뿐하게 고정하며 진성은 물었다.
비비는 무슨 그런 걸 묻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곤 속사포처럼 답했다.
“잉? 당연히 잘라내야죠! 여기 그라인더도 있고! 그라인더를 돌릴 발전기도 있고! 저쪽은 보니까 전기 용접용으로 가능한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우선 여기 총알 들어가는 부분 벨트도 좀 뻑뻑해서 그거부터 하려면- 떱디 같은 건 없나, 여기?”
진성은 새삼 알 것만 같았다.
그녀가 어째서 천계에 당도하기만을 기다려왔는지.
그리고 천계부터 자신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으리라는 자부심을 어째서 내비칠 수 있었는지.
‘실전에서 사용하는 딜 콤보도 모를 때는 진짜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역시……그럴 리가 없겠지. 어쨌든 네메르에 의해 선택받은 유저 출신이다. 특기 하나 없이 이곳에 올 수는 없는 거야.’
기이이이잉……!
이론만 빠삭하고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지금부터 그녀 스스로 증명하려는 찰나.
그라인더를 작동시키며 그녀는 물었다.
“아참, 진상 님?”
“네?”
“이건 해도 되는 거죠?”
“뭐가요?”
“아니, 저번에 AT-5T 워커는 뭐 못 하게 막 했잖아요. 스노우볼. 이거는 해도 되는 거겠죠?”
진성은 그 질문을 들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러한 행위를 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가 말하면 들어줄 건가요?”
그토록 기다려왔던 상황을 맞이해놓고도, 마지막 순간에 진성 자신에게 확인을 받고자 하는 비비의 태도야 말로 진성을 진정으로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비는 진성이 되묻자 정작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들어준- 들어준다기보다는, 뭐랄까…… 어쨌든 진상 님 말이 일리가 있고…….”
자신이 이러한 발상으로, 이러한 질문을 했다는 점에 스스로 놀란 것일까.
그 답변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성은 어쩐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고민했으나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열 마디 말보다 더 훌륭한 본보기가 있었으니까.
“<벤팅크의 화염분출기>. 비비 씨가 개조해준 걸 저는 계속 쓰고 있는 상태죠. 그나저나 나한테 그렇게 물어봐 준다는 게 뭔가 감동해서 눈물이-.”
“아하. 이해했어요. 갑니다!”
“으, 응? 벌써 이해했-.”
기이이이잉────────!
“-눈물이…… 쏙 들어가네. 헛, 참, 나.”
테로톤 합금을 잘라내는 또 다른 테로톤 합금의 도구들이 부딪치며 불똥을 튀게 만드는 모습에서, 진성은 피식, 웃어야만 했다.
맹렬한 기계음을 들으며 진성은 생각했다.
‘이해력 하나는 빠르다고 해야 할지…….’
진성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은 간단했다.
소형 발전기와 AT-5T 워커는 궤가 다르다는 것.
퀘스트용이란 확실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과, 던전에 큰 영향 없이 분포된 일종의 오브젝트가 같은 취급이 될 리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진성 자신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는 비비가 개조해준 무기다.
거기에 더하여 맵에 보이는 오브젝트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진성 자신도 빠질 순 없다.
‘슬슬 황금굴 한 번 더 다녀와야 하려나. 천계 황녀까지 구하면 아라드에 어차피 내려가게 될 테니 그때 좀 더 챙겨놔야겠군.’
펜네스 왕국에서 이어진 난쟁이들의 동굴, 그들이 모아두었던 황금을 사용한 입장에서 비비에게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진성의 선택은 개조하는 비비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됐다, 이제 사포로 좀 다듬어내면서- 진상 님! 그쪽 연마제 좀 줄래요?”
“연마제? 어떤 거죠?”
“거기 원통에 들은 거요. 아마 그걸 거예요. 성분이 비슷한 걸 보면-.”
“어, 둥그런 통이 여기 다섯 개가 넘게 있는데 어떤…….”
“그냥 비켜보세요. 저쪽에 앉아나 있어요.”
어차피 진성이 도울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도 했으니까.
결국 비비가 지정해준 의자에 앉은 채, 바삐 움직이는 그녀를 구경해야만 했다.
무언가를 잘라내고.
무언가로 다듬고.
무언가를 늘어뜨리거나 붙이거나.
‘도구도 그렇고 재료 같은 것도 분명 다 처음 보는 걸 텐데…… 딱히 혼란스러워하지 않는 것도 대단하네.’
막힘없이 움직이는 그녀를 멍하니 감상하던 진성의 머릿속에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클클클…… 쓸모없는 취급인가, 진성.]기회를 잡았다는 듯, 치고 들어오는 흑구였다.
기계 소음들이 커 흑구에게 말하는 게 비비에게는 들리지 않을 게 확실했으므로 진성도 마음 편히 그의 도발에 응해주었다.
“쓸모없는 게 아니라 특기가 다른 거지.”
[어쨌든 지금 할 일이 없다는 게 아닌가. 그것을 마계에서는 쓸모없는 취급이라고 말하지.]낄낄거리는 흑구의 목소리에 디레지에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잠시.
진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는. 마계에서 혼자 쭈그리고 있던 게 누군데.”
혼자 있었다는 면에서 감히 누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 다르……지. 그건 나의 힘을 두려워한 다른 녀석들이 모두 나를 피해 다닌 것으로-.]“그니까. 결국 혼자 있었다는 거잖아. 흐흐, 쓸모없는 취급? 맞습니까, 흑구 씨?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지만 다른 애들이 네가 두려워서 피한 게 아닐 건데?”
교묘하게 말을 바꾸며 흑구를 놀리는 건 이제 진성에게도 익숙하고 또한 즐거운 놀이였다.
[-쓸모없는, 크흠, 아니다. 말을 바로 하라, 진성! 수준이 맞지 않은 녀석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지! 내가-.]“아, 맞다. 그러고 보니…… 비비 씨!”
흑구는 언성까지 높였으나 무언가 생각난 진성은 그 말을 자르며 비비를 불렀다.
비비는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왜요?!”
일에 집중하는 그녀의 뒷모습에 진성은 고개를 잠시 젓고는 마저 물었다.
그것은 언젠가 떠올렸던 발상 중 하나이기도 했다.
스스로 움직이는 기동 병기, 거대한 테로톤 합금으로 이루어진 로봇에 흑구는 관심을 보였다.
“혹시 말이에요. 비비 씨가…… 만들 수도 있나요?”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진성 자신과 비비가 상대했던 건 무엇인가.
“뭘 만들어요?”
“유전자 변이 생명체나…… 로봇 같은 거. 구체적으로는-.”
비비의 물음에 진성은 답했다.
멀리 있는 AM-9 크런키의 사체, 즉, 쌍두군견의 사체를 가리키며.
“-저런 개 모양의 로봇 같은 거요.”
만약 비비가 그러한 것까지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성의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계획이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