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92)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92화(9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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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는 그제야 손을 멈추고 진성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AM-9 크런키, 머리가 두 개 달린 초대형견.
그리고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진 변형 생명체의 사체들이 그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으음…… 글쎄요. 당연한 말이지만 해본 적도 없고. 애초에 그런 거, 유전자 공학이니, 생화학이니 이런 쪽은 제 전공도 아니라-.”
“아, 굳이 저렇게 살아있는 느낌으로 말한 건 아녜요. 차라리 비비 씨가 좋아하는 로봇처럼 말한 건데. 굳이 비교하자면 GT-9600이나, 아니, 멜빈이 타고 다니던 금강랑 알죠? 해태 모양 인공지능 로봇.”
아무리 비비라도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진성 또한 알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지젤이 했던 실험을 비비가 재현하는 게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그 시스템의 일부만 차용하여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요청이었다.
“아! 그런 느낌으로!? 그것도……어쨌든 해본 적은 없는데 가능하지 않을까요? 멜빈이 이미 이뤄내기도 했고. 근데 AI에 대한 자료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세븐 샤즈의 일원인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데이터, 목숨과도 같은 비밀을 턱턱 내줄 리도 없고요. 외형이야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어도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게 쉽지 않을걸요.”
진성의 구체적인 요구를 비비는 곧장 이해했다.
주변에 해당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NPC가 있음을 알기에,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는 부분엔 도움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판단까지.
다만, 세븐 샤즈는 어찌 되었든 현재 천계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두뇌 집단이 아닌가.
이제야 ‘모험가’로서 활약하고 있다지만 그러한 비밀을 아직 외부인인 모험가, 즉, 비비에게 턱턱 내놓을 리는 없다.
진성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바로 그 소프트웨어가 이미 있다면?”
멜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까지만 받고, 그가 도와주지 않을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면.
진성 또한 멜빈에게서 모든 걸 받아낼 수 없음은 알지만, 그렇게 받아낼 수 없는 부분을 진성 자신이 채워넣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비비의 푸른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잉? 그게 무슨 소리? 소프트웨어가 있어요? 진상 님한테?”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하여튼 뭔가 자아, 같은 게 있으면요. 그걸 기계의 몸에 넣는 건 일종의, 뭐랄까, 지젤이 한 실험처럼…… 유전자 변이 생명체의 두뇌를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라나?”
결국 진성이 제안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었다.
1. 비비의 재료 및 기술과 멜빈의 공개 가능한 데이터를 더해 기계 공학 신체를 만든다.
2. 지젤이 사용했던 유전 공학의 일부를 활용, 그 두뇌와 신경망을 통해 육신 전체를 통제하는 ‘자아’를 삽입한다.
결국 소프트웨어는 진성 자신이 말한 ‘기존에 있던 자아’이며, 하드웨어는 비비가 만들어 낸 ‘기계 공학적 신체’ 일 때, 비비가 그 하드웨어에 진성이 지닌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또는 이식을 해낼 수 있는 것인지.
“이런…… 느낌인 거죠.”
“……그, 그니까요. 이 ‘기존에 있던 자아’라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게 가능해요?”
“있다고 가정해보는 거죠. 그냥.”
비비는 재차 물었으나 진성이 전부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이자 두뇌, 자아.
[크크크……. 무슨 꿍꿍이속이지, 진성.]그것은 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자아.
즉, 진성 자신과 현재 함께 하고 있는 ‘흑구’를 뜻하는 것이었으니까.
[나의 역할을 잊었는가. 나는 너를 ‘감시’하러 온 또 다른 자아…… 차원의 균열 속에 있는 ‘나’에게 추적의 단서를 흘리는 존재…….]흑구는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울리는 그의 발언은 위협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분명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와 진성이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은 옳으나, 결코 훈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차원의 균열 속에 있는 디레지에도 진성을 비롯한 인간들에게 타오르는 복수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가.
[클클, 그런 내가 육신을 가지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흑구는 으르렁거렸다.
당장 비비의 앞에서 진성은 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진성이 바보가 아니다.
흑구를 진심으로 ‘반려동물’이라 여기는 머저리가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의 동행은 ‘힐더의 계획을 망가뜨릴 때까지’라는 조건부가 있는 한 유지될 테니까. 그렇다면 결국 방법을 찾아야만 해.’
오히려 진성은 그의 한계를 가늠했기에 이러한 방향을 찾는 것이라고 봐야할 터!
‘현재 60인 내가 레벨 1 업만 하면 장비로서의 기능은 할 거다.’
현재 흑구는 <검은 질병의 흑랑> 방어구 세트에 들어있는 자아일 뿐이다.
원래 71레벨 착용 가능 장비이나 <패왕의 계약>으로 장착 필요 레벨이 10개나 감소한 진성의 입장에선 이제 한 개의 레벨만 더 올리면 ‘흑구’를 입을 수 있는 셈.
‘유니크로 분류되는 데다 성능 자체도 나쁘진 않으니까. 한동안은 낄 수 있겠지. 하지만 레벨 80을 넘기고, 그 이상이 된다면…….’
성능은 나쁘지 않지만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할 아이템 세팅을 고려하게 되면 <검은 질병의 흑랑> 방어구 세트는 결국 필요 없는 장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가서 필요한 방어구를 입고, 그리고?
‘흑구를 지금처럼 인벤토리에만 넣고 다닌다……는 선택지도 있어. 그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진성의 성격상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의 효용과 가치를 뽑아내는 것.
단순히 아이템/장비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다.
흑구의 자아, 흑구의 지식, 흑구의 정보.
‘-당장 중요한 건 어차피 가능성이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정도의 말만 있어도…… 흐흐, 그걸 빌미로 흑구 녀석한테 이러저러한 것들을 쭉 뽑아낼 수 있겠지. 언젠가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해지면 그때 가서 결정해도 되는 거고.’
진성이 많이 안다곤 해도 마계에서 직접 거주했던 디레지에의 기억에 비한다면 아무래도 부족한 면이 많지 않겠는가!
그러한 관점에서 향후 ‘흑구를 쥐고 흔들만한 카드’를 얻고자, 우선 진성은 비비에게 그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셈이었다.
진성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비비도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천계의 기술력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이미 비슷한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이상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기계 공학적으로는 멜빈의 금강랑을 기준으로.
생명공학적으로는 지젤이 탄생시킨 변이 생명체들을 기준으로.
어차피 이곳은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세상이다.
두 사람이 플레인:아라드에 오기 전의 현실이라면 모를까, 이미 이곳, 아라드에서는 유사한 일이 벌어진 상태다.
그렇게 따지면 분명 어려움은 있을지언정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은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진짜요? 된다고?”
무엇보다 ‘분석’에 특화된 비비가 ‘분석’한 일이다.
막연한 추측보다는 훨씬 더 가능성이 높게 다가오는 답변에, 진성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비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이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큰 전력이 필요할 거예요. 여기 소형 발전기 몇 개로는 지금 이 무기 개조만으로도 벅차서요.”
아직 문제는 산적해 있으며 하나하나 풀어나가기에도 힘들 거라는 걱정.
비비의 걱정을 진성은 산뜻하게, 심지어 당장 해결해주었다.
“발전기라면 있죠. 있습니다.”
“-잉? 있어요?”
“네. 바로 이다음 던전에. 거기 보스 ‘UM-0 얼티메이텀’이 커다란 발전기 하나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안 그래도 이제부터 가야 할 던전에 원하는 것이 있다.
설령 그곳의 전력으로 부족해도 상관없다.
“뭐, 그걸로 안 되면……. 결국 사도를 때려잡으면 될 거예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사도?”
“네. 흐흐, 그럼-.”
제7사도, 불을 먹는 안톤.
현재 천계의 발전소, 파워스테이션을 점거하고 있는 존재.
“-가봅시다!”
그를 처치한 다음이라면 곧 마주하게 될 UM-0 얼티메이텀의 이동형 대형 발전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발전소와 전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오염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던 진성에게 있어, 어떤 의미로는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느끼는 첫 순간이었다.
* * *
-이건 그냥 괴물이 아니야. 이 부품의 용도……그리고 남아있는 DNA를 보면 확실해. 네가 본 건 인간과 동물을 사용해서 만든 생물이야.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멜빈의 목소리에 젤딘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작 ‘블래스토’의 파편을 들고 온 비비와 진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있었다.
지금은 매드 사이언티스트 ‘지젤’에 대해 ‘유저’가 사실상 처음 그 정체와 성향에 대해 알게 되는 파트.
-이런 짓을 할 녀석은 하나밖에 없지. 지젤……. 머리도 나쁜 게 애쓴다고는 생각했는데, 손을 대서는 안 될 영역까지 가버렸군.
당연히 멜빈의 이러한 중얼거림을 진성, 비비 모두 이미 알고 있으니 심드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무전기로 소통하는 멜빈은 알 리가 없으므로 진지하고 또 우울하게 말하는 중이었다.
-그 괴물 실험체는 이게 다가 아니야. 분명 더 끔찍한 게 있을 거야. 이놈들은 전기가 없으면 안 돼. 분명 남은 괴물은 발전 시설 근처에 있을 거야. 만약 네가 본다면……될 수 있으면 쓰러뜨려 줘. 이런 식으로 태어나서는 안 될 녀석이었어.
“네, 멜빈 님을 위해서라도…… 모두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처리할게요.”
-고마워. 나 때문에 세븐 샤즈를 탈퇴했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녀석에 의한 일이니……나도 마음이 편치 않네.
“대신.”
-대신?
그리고 그런 반응이야말로 진성이 비비에게 일찌감치 언질을 해둔 부분이었다.
멜빈이 이런 식으로 말을 할 테고, 감상에 젖은 세븐 샤즈의 천재를 마주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니.
“모두 끝내고 왔을 때……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바로 이때를 놓치지 말고 멜빈에게 제안을 하라는 것.
무전기가 잠시 조용해졌다. 진성은 비비를 툭, 건드렸다.
“어려운 일은 아녜요. 자원을 마구잡이로 소모하는 것도 아니고. 재료는 다 제가 가져갈테니……멜빈 님의 아주 간단한 도움이 있으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비비는 말했다.
그제야 무전기에서 잡음이 울렸다.
-좋아. 그렇다면야. 나도 돕겠어.
멜빈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진성과 비비는 눈을 마주쳤다.
무슨 대화가 오간 것인지 파악 중이던 젤딘을 향해 진성과 비비는 씨익, 웃으며 무전기를 건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젤딘 님.”
“아, 네, 모험가 님. 그리고……진성 님.”
젤딘은 비비와 진성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모험가와 진성’처럼 한데 묶어 인지하게 될 정도로 영향력을 끼치게 된 시점에서.
진성과 비비는 비교적 가벼운 발걸음으로 던전을 향할 수 있었다.
* * *
비비는 흥미 가득한 눈동자로 물었다.
“여기만 깨고 나면 이제 지젤 잡으러 간다는 거죠?”
“네, UM-0 얼티메이텀도 뭐 특별할 건 없고…… 우리가 잡았던 블래스토랑 거의 같은 패턴인데 롤링 어택할 때 폭탄을 던진다, 정도? 지금 비비 씨 실력이면 고전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지젤이 만든 DNA 변형 생명체를 상대하는 것보다 역시 지젤 그 자체를 상대하는 게 더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지젤이라…… 항상 궁금하긴 했단 말이죠. 생각해보면 던파에서 제일 신기한 사람인 것 같지 않아요?”
진성의 조언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녀는 이미 지젤에 모든 신경이 꽂혀 있었다.
그녀의 말에 진성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도 볼 수 있겠죠. 우리가 주인공이자 모험가인데 말이지. 우리랑 그렇게 오래 싸운 적이 지금까지도 없었으니까.”
그것을 추억이라 부를 수 있을지.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지젤 로건과 엮였던 일들을 떠올리며 말한 것이었으나 비비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잉? 아, 저는 오래 싸운 것 때문에 한 말은 아니었는데.”
“음? 그러면요?”
“똑똑하다고요. 세븐 샤즈보다 더 똑똑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애당초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조차 잘 모르는 그녀가 지젤의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질 리도 없었다.
“똑똑……하기야 하겠죠. 세븐 샤즈의 일원이기도 했고. 멜빈에게 질투심을 느껴 튀어 나갔다지만.”
지적 탐구심. 그녀가 관심을 갖는 건 그러한 분야였다.
따라서 그녀는 말했다.
“진짜…… 근데 세븐 샤즈는 서로서로 돕기도 하고- 나중에 7인의 마이스터와 관련되어서 막 이래저래 뭐라도 하지만……. 지젤은 혼자서 차원 여는 기술도 익히고 했던 거 보면. 잘 구슬려서 어떻게 같은 편이 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 음? 진상 님?”
그리고 그녀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진성의 기억을 파헤치고 말았다.
“차원 기술……. [포탈]?”
진성은 중얼거렸다.
보통 NPC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듣자마자 기억이 날 법도 하건만.
지금 진성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네…… 지젤은 포탈을 여는 기술을 어디서- 언제? 누구한테 배운 거지?’
그저 의문만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