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93)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93화(9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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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배경설정을 모두 끄집어내듯 기억을 되새겨보지만, 진성에게 답변은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지? 언제 그런 기술을 습득했지?’
사용한 시점이라면 알고 있다.
지젤이 처음 [포탈]의 힘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장면은 ‘죽은 자의 성’에서 나온다.
‘사도 루크의 지식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 칩’을 훔쳐가기 위해 등장하지. 그때 지젤은 처음으로 시공간을 찢으며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야.’
즉, 그 시점에 그는 이미 해당 기술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언제 획득했냐는 점.
지젤과 유저인 모험가가 처음으로 조우하는 것은 지금 시점쯤이다.
보급기지에서 UM-0 얼티메이텀을 제거하고 난다면 이제 카르텔에 대한 추격 섬멸전을 시작하게 될 테고, 대대적인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바로 지젤과 그가 만들어 낸 메카닉과의 대결이지 않던가.
‘그 이후 <시간의 문>에서도 젊은 시절의 지젤을 만나기는 해. 하지만 그뿐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과거 시점의 지젤이 차원과 관련된 포탈을 알고 있을 리는 없고…….’
그러고 나면?
지젤과는 당분간 만나지 않는다.
뜬금없이 휙 나타나는 것이 바로 ‘죽은 자의 성’ 시점이며, 그 정도의 시간 동안 지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것.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서야 진성도 어쩐지 오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포탈은 매우 특수한 케이스지. 메카닉이 쓸 수 있는 1차 각성기로 <게이볼그 펀치>가 있다지만 그 스킬처럼 물품이나 장비를 일시 소환하는 게 전부야.’
일개 개인에게 허락된 힘이 아니다.
차원의 틈에 갇혀있는 최종 병기 ‘게이볼그’의 오른팔 한 짝을 겨우 소환해 남자 메카닉 직업의 1차 각성기로 사용하는 게 전부다.
그러한 포탈의 힘을 사람이 자유자재로 사용한 경우는 진성 자신의 기억 속에 딱 하나, 딱 한 명.
‘원하는 때에 입구와 출구를 생성해서- 말 그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문처럼 포탈을 활용한 인물은…….’
[7인의 마이스터] 중 한 사람.마이스터 쿠리오뿐이다.
바칼에게 지배를 받던 500여 년, 그로부터 독립하려는 천계인들의 시도는 무수히 많았다.
비록 실패로 끝나게 되었으나 가장 강력한 시도 중 한 번이 바로 ‘7인의 마이스터’가 함께 했던 ‘이터널 플레임’의 기계 혁명.
‘지벤(독일어로 ‘7’)이라는 국가명도 그렇지만, 현대의 천계에서 세븐 샤즈라는 두뇌 집단을 치켜세워주는 것도 현대의 천계인들이 7인의 마이스터에 대한 존중의 표시를 보이는 거라 할 수 있을 정도니까.’
갓 독립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현대까지도 천계에선 7인의 마이스터를 세븐 샤즈의 전신 또는 롤모델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 7인의 마이스터 중에서도 오직 쿠리오만 가능했어. 다른 과학자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게이볼그와 관련된 기술은 그 후 미쉘이나 다른 몇몇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달라. 그게 아니야.’
입구와 출구를 원하는 지점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
입구로 사용자 본인이 직접 뛰어들어 출구로 무사히 빠져나와 단숨에 이동할 수 있을 것.
‘이런 방식으로 사용했던 이는 마이스터 쿠리오와-.’
지젤 로건, 두 사람밖에 없다는 뜻?!
특별히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부분에서 갑자기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지젤이 특별한 적이라는 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배경 설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진성에게 있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위와 같은 의구심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지젤이…… 쿠리오한테 뭔가를 배워서-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지젤의 젊은 시절은 끽해야 몇십 년 전이고. 쿠리오의 생존 시기는 적어도 몇백 년 전인데. 그렇다면-.’
두 사람의 접점이 있을 순 없다.
카르텔 조직의 태동기에 활동한 젊은 지젤과 바칼의 군세에 대항한 7인의 마이스터 중 한 사람인 마이스터 쿠리오가 마주칠 일 따위는 없다.
“옛날에는 지젤 하면 연예인부터 떠올랐는데 이제는 지젤 하면 그 할아버지부터 떠오를 정도니…….”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의문을 붙잡던 진성에게 들려온 건 비비의 목소리였다.
진성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비비의 의견에 공감하는 별 의미 없는 말을 하려는 것이었으나.
“그……쵸. 저도 지젤 하면 지젤 번천이 먼저였는데. 뭔가 지젤의 이미지가 바뀌어버렸다니까요. 근데 비비 씨도 지젤 번천을 알아요? 21살 때 빙의…….”
치켜올리는 안경 너머의 푸른 눈동자.
무슨 소리를 하냐는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진성은 알 수 있었다.
“잉? 가수 얘기하고 있는데. 지젤 번천? 그게 뭐예요?”
비비가 그러한 일을 알 리가 없다는 것을.
순간 진성의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당황하여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그를 보며 비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진상 님, 완전 틀ㄸ-.”
“적이다. 비비 씨, 앞에. 이제 그만 얘기하고 집중하죠, 크흠.”
따라서 진성은 후다닥 그녀의 입을 막아야만 했다.
차마 용납할 수 없는 단어를 꺼내게 만들어선 안 되는 것이니까.
“……말하고 싶어서 움찔거리는 그 단어, 꺼내면 이제 비비 씨랑 같이 안 다닙니다. 적부터 처리하세요. 집중해서. 빠르게.”
그러나 듣지 않아도 들어버린 기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비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중년인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이해해요. 에휴, 저도 아라드에서 지금 이게 뭐 하는 건지…… 아, 늙기 싫다.”
이것을 위로랍시고 진심을 담아 말하는 비비.
어쩐지 힘이 빠진 채 반박을 해보지만 통할 리 없었다.
“중년이 아니라……. 저 비비 씨랑 몇 살 차이 안 납니다? 그냥 어렸을 때 테레비를 많이 봐서-.”
“테레비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죠. 아마 그게 뭔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을걸요?”
실제로 비비와 진성 자신의 나이 차는 제법 될 테니까.
물론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리라.
“끄으…….”
“그러니까 빨리 다 끝내고! 현실로 돌아가야겠어요.”
침음을 흘리는 진성의 곁에서 비비는 미소 지었다.
그러곤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모조리 환기시킬 정도의 압도적인 존재감.
진성은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 비비 씨? 그게 무기예요?”
“놀랬다! 놀랐죠? 개조한 거예요, 이렇게!”
“아니, 잠깐……. 그게 그런 식으로 개조가-.”
“봤죠? ‘기계’로 된 거면 할 수 있다니까는.”
진성이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현재는 단종되었지만, 원래 자동권총 아이템 에 붙어있던 총열은 4개다.
그것들이 회전하는 다총열 기관총 방식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지금 보이는 회전총열에 뚫린 구멍은 몇 개인가.
“8개? 그, 그게 돌아가요? 작동한다고?”
그렇다면 사실상 두 배의 화력으로 적용되는 것인가?
진성은 물었다.
비비는 말로써 답하지 않았다.
───────────……!!!
말 그대로 천지를 진동케 만드는 총성으로 그녀는 증명했다.
레벨 제한이 60밖에 되지 않는 무기다.
<패왕의 계약>이 있다면 50레벨에도 착용할 수 있는 무기다.
하물며 지금 비비의 공격은 스킬이 아니라 ‘평타’ 판정을 받고 있음에도 그 성능이 어떠한지, 진성은 알아챈 것이다.
‘지금까지 썼던 렙제 30인가 하는 그 일반 템보다는 월등히 좋은데다-.’
비비의 특제 개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어떤 의미로는 이전보다 두 배 이상 큰 화력 상승 폭을 얻은 비비의 앞에서, 카르텔 잔당이나 DNA 변형 생물체 따위가 견딜 리는 없었다.
진성은 그저 멍하니, 환골탈태에 가깝게 성장한 비비를 바라보았다.
* * *
그렇게 분산된 보급기지들을 격파해가던 진성과 비비는 제국의 군사들과 마주쳤다.
아이언 울프 기사단 그리고 그 단장과 부단장인 반과 하츠였다.
“괴물 실험체? 그런 게 있어?”
현재 받은 임무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러 가는지 비비는 말해주었고 반은 곧장 되물었다.
“그렇다니까요. 이쪽 방면에……. 멜빈 님이 반드시 처리하라고 했으니까.”
“나도 같이 찾아볼까?”
“아, 반 님은-.”
“어이, 부단장님. 나머지 일은 잘 부탁해.”
비비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반은 동행을 결정했다.
비비는 막무가내인 그 행동에 진성을 흘끗거리며 머뭇거렸으나 진성은 특별히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곁에 있던 하츠가 한숨을 푹 내쉬는 행동을 바라보고 있을 뿐.
“하……이젠 잔소리하기도 질린다.”
“부하들이 다칠 수 있으니 내가 가보겠다는 건데 왜 한숨을 쉬는 거야?”
“정말로 그런 의도였으면 짜증 안 냈다.”
“……크흠. 모험가, 그 괴물은 전기 주변에 있어야 한댔지? 저쪽에서 뭔가 번쩍하는 걸 봤는데 얼른 가보자고.”
당연한 일이었다.
반이 이곳에서 모험가, 즉, 유저와 함께 하는 것까지는 정해진 수순임을 진성은 알고 있었으니까.
따라서 진성이 진작부터 주의하고 있던 점은 그의 태도였다.
‘번쩍거리는 것을 보았고 방향도 알고 있다…… 그럼 본인이 직접 가봤어도 됐을 텐데 말이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것.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위와 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반이 함부로 먼저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인게임에서는 유저 위주로 돌아가는 세계관이니 그럴 수 있다 쳐. 하지만 지금은…… 특히 비비의 상황은 달라. 단순히 저장된 스크립트 외의 상호작용이 가능해. 전체적인 흐름은 같아도 세부적인 갈래는 분명 나뉠 가능성이 있건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어쨌든 보급품을 낑낑거리며 노획하는 아이언 울프 기사단원들 곁에 있는 반이다. 즉, 이곳의 적들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뜻이다.
‘그럼 분명히…… 이곳에도 DNA 변이된 생명체들이 있었을 거야. 적어도 UM-9 일렉턴이나 AM-0 바이터는 상대해봤을 텐데.’
그런데 괴물에 대해 모르는 듯 말을 한다?
이미 카르텔의 보급품까지 정리하며 황도 쪽으로 보내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모르는 척 다가오는 건 결국 목적은 다른 데에 있다는 뜻이겠고, 그 목적이란…….’
진성이 기억한 게 맞는다면 한 가지뿐이다.
전기. 기계 장치에 의한 전력 발전.
마법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내어, 마법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룰 수 있는 무궁무진한 에너지.
반은 그것을 확인하고 또한 확보하기 위해 비비를, 모험가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반 님, 조심하세요!”
“걱정하지 마! 이 정도쯤이야!”
실제로 반은 비비의 충고는 가뿐하게 뛰어넘으며, ‘괴물 실험체’라 불릴 법한 적들을 자유자재로 상대하고 있지 않은가.
진성은 그런 반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처음 <창신세기>를 발견했을 때의 알 수 없는 행동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진성 자신이 기억하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반과 같은 듯, 다른 모습을 보여온 NPC.
‘어차피 서로 적대시하게 되는 건 기정사실이야. 문제는 오염의 발생이다.’
반으로부터 오염이 발생한다면 그것 또한 제법 큰일이 될 터.
이미 아라드 대륙에서 4인의 웨펀마스터로 이름을 날린 인물인 만큼 그 자체의 실력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모험가가 반을 상대로 승리를 자신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성장이 필요할 것이며, 이는 진성 자신 또한 마찬가지다.
‘항상 유의해야 한다. 반이 발전기에 관심을- 아니, 잠깐만. 근데 반이 발전기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나?’
반이 빌마르크 제국 실험장에서 암암리에 저질렀던 일.
그리고 앞으로 천계의 귀족들과 손을 잡으며 벌이게 될 일.
그 모든 흐름에서 반이 관심을 가졌던 건 힘이다.
압도적인 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힘.
즉, 사도의 힘.
그러나 전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지금 막 UM-9 일렉턴을 베어낸 반은 중얼거렸다.
미소를 지으면서.
“네?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빨리 가보자고, 모험가.”
비비는 듣지 못하여 물었으나 반은 두 번 말해주지 않았다.
재빨리 달려나가는 반의 뒷모습을 보며 진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난 들었어. ‘이런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면, 역시 가능한……’ 뭐 어쩌구저쩌구 말한 것 같은데. 그다음에 뭐라 말한 거지?’
반이 중얼거린 말은 DNA 변이 생명체들에 관한 감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이 나온 새어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그 뒤에 웅얼거리며 삼킨 한마디는 무엇인지.
[클클클……나는 들었다, 진성.]“뭐? 뭐라고 했는데?”
진성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으나 흑구는 달랐다.
그는 말했다.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와 꼭 같은 목소리로.
[에밀리.]어느 여성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진성의 발걸음이 턱,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