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94)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94화(94/212)
094
이제는 사망한 제8사도, 긴 발의 로터스.
특기는 정신감응과 세뇌, 정신 파괴 등 정신과 기억 등을 조작하고 공격하는 것.
베히모스 위의 GBL교로 전이되었던 그를 상대할 적 어떤 일이 있었던가.
[에밀리…… 에밀리, 안돼!]로터스에 의해 환각을 보던 반이 외쳤던 말이 무엇이었나.
‘에밀리.’
아이언 울프 기사단 단장 반의 아내.
아이언 울프 기사단 부단장 하츠 폰 크루거의 사촌동생.
에밀리 폰 크루거에서 에밀리 발슈테트가 되었던 여성.
반이 그토록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던 여성.
‘그 이름을 지금 불렀다는 건……. 그렇군, 그런 건가.’
진성은 알고 있다.
무엇보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 사이사이 녹아든 배경설정에 대해서도 제법 빠삭하게 알고 있는 이로서, 조금 전 반이 에밀리의 이름을 어째서 중얼거렸는지.
정확한 시기는 나오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알려진 바가 있다.
모험가와 제국군, 결국 반 발슈테트가 천계에 도착하여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에밀리는 죽는다. 지금 에밀리의 이름을 불렀다는 건 이미 사망을 확인했다는 거겠지. 반도 알게 된 거고.’
벌써 아라드와 연결된 마가타가 몇 번이나 오고 가지 않았나.
반이 모험가’들’이라 부를 정도로 아라드의 사람들이 제법 천계에 올라온 현시점이니, 천계에 올라온 이후 아라드에서 발생한 소식들 또한 대부분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 중 하나에는 에밀리의 죽음이 포함되어 있었을 터.
‘내 기억이 맞다면 반이 후회하는 일 중 하나야. 자신의 아내가 죽어갈 때, 천계에 머무느라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을뿐더러…… 묻어줄 수도 없었다는 것.’
진성이 마지막까지 즐겼던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설정 속에서도 반 발슈테트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진성 자신도 반의 원래 성향이 어땠는지, 사실상 모든 것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그의 행동이나 선택 등이 가속화되는 시점이자 주요 계기가 바로 에밀리의 죽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바였다.
‘어쩌면 젤딘 앞에서 비비나 나한테 좀 까칠하게 대했던 것도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군. 여길 조금 더 빨리 해결했다면 제국으로 돌아가서 에밀리의 곁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 아니, 잠깐만.’
그런 반의 행동들을 이해하기 위해 생각하던 진성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가 에밀리를 잃어서 얼마나 슬플지는 감히 추측기 어려우나, 적어도 부인의 죽음이, 가족의 죽음이 상당한 충격을 가져왔으리란 거라는 건 기본 상식이지 않은가.
문제는 지금이다.
충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굳이 지금, 한창 전투 중인 상황에 죽은 아내의 이름을 중얼거린 이유는 무엇인가.
‘설마…….’
진성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불길한 계획이었다.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배경 설정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상상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 중 하나였다.
이러한 상상의 첫 번째 근간은 에밀리 폰 크루거의 과거다.
현시점엔 사망했다지만 에밀리 폰 크루거는 과거 제국에 불만을 품은 자들의 보복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사건이 터지기 직전 반이 급하게 달려와 구출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지만 그때의 충격으로 에밀리는 정신착란 증세 및 남성 혐오 증세를 갖게 된다.
‘반은 그럼에도 에밀리와 결혼을 추진했고, 금이야 옥이야 어르고 달래서 결국 성공한다. 그 정도로 에밀리에 대한 애정이 깊었어.’
그런 에밀리가 죽은 지금 시점에서.
두 번째 근간, 반이 앞으로 할 일을 알고 있는 진성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는 셈이었다.
‘반은 제국의 명에 따라 천계의 귀족들과 손을 잡고 반란을 촉발한다.’
그 과정에서 사용된 것이 인간형 병기, 즉, 로봇이다.
무엇보다 그 인간형 병기에 사용된 동력이 반이 은밀하게 모았던 힘, 사망한 사도들에게서 추출한 기운이자 힘이다.
‘[퀸 디스트로이어]라는 로봇의 에너지 코어라고 할 수 있지. 반이 모험가와 확실하게 척을 지는 계기이기도 한 사건.’
에밀리를 극진히 사랑한 반.
그러한 반이 앞으로 할 일 중 하나는 인간형 병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
그리고 천계에서 현재 반이 관심을 갖는 것은 전력을 생산하는 수단. 또한 DNA 변이 생명체.
이 세 가지를 토대로 결론을 도출한다면, 혹시 반이 원하는 것은…….
‘에밀리를 새로운 육체로……되살린다? 그것도 연약한 여성의 몸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주입한 신체로.
다시는 불행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까지 부여하며.
인간형이라지만 로봇과 같은 전투 기계가 아닌,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육신을 그대로 재현해낼 가능성을 반은 따져보는 게 아닐까?
죽은 에밀리를 더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궁리하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제기랄, 그 가능성을 반이 확신할 법한 몬스터들도 곧 조우하게 되잖아!’
진성이 갑작스레 초조함을 느끼는 이유는 또 있었다.
이번 던전 지역:안트베르 협곡을 모두 클리어한 후 다음 던전 지역으로 넘어가면 마주칠 적들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DNA를 합친 변이 생명체 따위가 아니야. 분명한 자아와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육신은 로봇으로 된 자들이 있어. 그것까지 보고나면…… 반은 확신할 거야. 에밀리도 반드시 부활시킬 수 있을 거라고.’
현재 지젤은 DNA 변이 생명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조우하게 될 적들 중에는 안드로이드와 같은 몬스터가 있다.
‘그럼에도 더욱 완벽한 기술, 데이터를 얻기 위해 결국 미래에는 천계의 귀족들과 손을 잡고 퀸 디스트로이어 같은 걸 만들어 낸다. 그마저도 더욱 완벽한 데이터를 얻기 위한 테스트였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반이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서.
‘……아냐.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어. 무엇보다 던파에서 그런 식의 언급은커녕 낌새조차 보인 적이 없어. 섣불리 단정 지어봐야 확증 편향의 오류에만 갇힌다.’
진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정답도, 확실히 밝혀진 그의 진의도 아니다.
‘무엇보다 실제로 반이 그런 꿈을 꾸고 있다 할지라도 반을 둘러싼 인물들이 그것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어.’
진성 자신이 알고 있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배경 설정, 데 로스 제국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오히려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럼에도 주의해야 한다면 역시 그 이유는 하나다. 내 예상대로 벌어지지 않을지언정 그런 유사한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염의 원인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성은 작은 숨을 토해냈다.
천계에 올라와서 의구심을 품게 된 것만 세 가지.
빙의된 버서커.
지젤의 비밀.
그리고 반.
진성 자신의 추측과 의심이 셋 중 무엇에 들어맞고, 무엇과 어긋날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건, 게임으로 즐기던 던전앤파이터에서는 특별할 것 없이 여겼던 것들이 이곳에선 진성을 옥죄어 올 수 있다는 점이며.
그것이 모두 <오염의 원인자>와 관계가 있다는 결론밖에 낼 수 없을 테니까.
“뭐해요, 진상 님! 빨리 오세요!”
이제 완전히 들어맞은 퍼즐에 대해 생각하던 중 들려오는 건 비비의 목소리였다.
진성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이미 주변의 적들을 모두 정리한 두 사람을 보았다.
“아, 네, 갑니다. 갑시다.”
진성과 반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보는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다는 것은, 양측 모두 느끼고 있으리라.
* * *
“입키스! 저거구나! 맞죠, 진상 님? 완전 조커 같은데! 와이 쏘 씨리어스~?”
“근데 이름이나 공격 방식은 사실 마스크- 아니, 어쨌든 패턴은 알려드린 거랑 똑같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보스도 아니고 저딴 것한테는 당할 리가 없지!”
UM-0 얼티메이텀을 향해 가는 길에 등장한 네임드 몬스터 입키스를 가볍게 처치하며, 비비와 진성 그리고 반은 보급기지의 내부를 향해 나아갔다.
UM-9 일렉턴이나 AM-0 바이터가 몇이나 가세하여 입키스를 도왔으나, 비비는 당하지 않았다.
으로 무기를 교체한 현시점에서 과연 그녀를 압박할 만한 일반 몬스터 따위가 있을지.
‘아니, 일반몹 따위가 아니지. 아마 안트베르 협곡의 어떤 몬스터라도 상대가 안 될 거야. 해상열차 타고 안톤 관련 네임드나 잡으러 가야 약~간 긴장되려나.’
향후의 던전이라 해도 비비를 쉽게 막아낼 수 없음을 진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단순히 장비를 교체한 게 아니라 교체한 장비와 지금까지 진성 자신이 알려주었던 스킬 콤보를 활용하는 비비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두려움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사도 안톤을 처치하러 갈 즈음 마주치는 ‘전능의 마테카’ 정도는 나와야, 아니, 어쩌면 ‘오염된 무언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문제없겠군.’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큰 문제가 될 일은 없을 터.
“……정말 괴물이네.”
“그럼 정말 괴물이죠! 제가 큰 놈을 상대할 테니 반 님은 작은 놈들의 상대를 부탁드려요!”
“저 커다란 기계가 저 녀석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은데, 기계는 안 부술 건가?”
“분석해야죠, 분석! 우선 발전량부터 확인해보고- 진상 님! 이거 안 부숴도 얘 잡을 수 있나요?”
미지의 존재를 보았을 때 드러나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
‘분석’을 향한 욕망.
그동안은 전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발현되지 않았던 그녀의 주요 성향이 드러난 지금이라면, 훨씬 더 수월하게 되리라.
“가능은 합니다. 근데 범위 안에 들어가면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 알고 있죠, 비비 씨? 우리가 지난번에 상대했던 UM-7 블래스토처럼!”
진성은 기억을 더듬은 패턴 공략을 알려주려다 스리슬쩍 말을 바꾸었다.
반이 이곳에 있는 한, 처음 보는 몬스터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건 괜스레 의심을 살 여지가 있기 때문.
비비 또한 더 이상은 말없이 뛰쳐나갔다.
“알았어요!”
“감히 여기까지 침입하다니!”
그리고 UM-0 얼티메이텀은 지면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비비에 비하면 세 배는 될 법한 거대 생명체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짐짓 섬뜩하게 들릴 법도 했으나…….
“와, 얘는 말도 잘하네, UM-9처럼! 블래스토는 소리치는 것밖에 못 했는데 말이에요! 어디 데이터 같은 거 없나?”
역시 비비는 달랐다.
진성은 그런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 ────, ────!
깔끔하게 1차 각성기를 사용하며 얼티메이텀을 처치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티메이텀을 호위하던 일렉턴 따위들은 수가 몇이나 되든 마찬가지, 반은 물론 진성이 휘두르는 <벤팅크의 화염분출기> 화력조차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비비에게 있어 몬스터도 다 처치했고, 이번 퀘스트도 문제없이 끝냈다, 따위는 중요한 점이 아니었다.
“어디 보자, 발전 용량이…….”
끝끝내 거대 발전기를 터뜨리지 않고 얼티메이텀을 없애버린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발전기의 용량과 UM-0 얼티메이텀에 대한 데이터뿐.
반 역시 뚜벅뚜벅 거대 발전기를 향해 걸었다.
“이게 전기를 만드는 기계라고? 마법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단 말이지?”
거대 발전기에 손을 댄 채 그것을 감상하는 반.
그것이 혼잣말이었을지도 모르건만 비비는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네? 아, 그럼요. 천계에서는 기본이죠. 이것보다 훨씬 큰 것도 있-.”
“비비 씨.”
“-는……건 사실이고, 어차피 다 알게 될 건데요, 뭐.”
진성이 잠시 말려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비비의 말 자체는 틀린 게 없었기 때문.
곧 사도 안톤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며 이런 ‘이동형 발전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전력발전소를 마주하게 될 터, 이런 걸 숨길 필요는 없는 셈이다.
진성은 그저 반의 손동작, 표정, 말이 아니라 몸에서 배어나오는 미묘한 뉘앙스를 체크하기 위해 집중했다.
반은 다시금 중얼거렸다.
“굉장하네…… 천계에 온 보람이 있어.”
예전 같으면 그저 감탄사라고만 생각했을 그 말이, 지금은 다르게 와닿는 진성이었다.
그렇게 얼티메이텀의 사체와 발전기, 실험 데이터 등을 찾아보는 일도 잠시.
“우선 여기 수비대장한테 보고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 우리 셋이서 무언가를 해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은데.”
“그, 그렇겠죠? 음, 일단 확인할 건 한 것 같으니…… 그럼 가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살피는 비비에 대한 견제였을까.
아니면 자신을 바라보는 진성의 시선을 완벽히 느꼈기 때문일까.
반은 복귀 후 보고를 종용했고 그 말을 거부할 이유가 없는 비비와 진성은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비비는 진성에게 말했다.
그녀가 자신의 호기심이란 이유 외에도 이토록이나 철저하게 분석하려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쉽게도 저걸로는 진상 님이 말한 걸 만들 정도의 전력이 안 될 것 같아요.”
“네? 무슨……?”
“그거요. 로봇 신체에 무슨 자아를 소프트웨어 삼아 넣는다는-.”
“아!?”
“-일단 멜빈 님이랑 대화도 좀 해보고. 금강랑을 기준으로 다시 한번 계산해볼게요.”
“그렇게까지…… 고마워요.”
“잉? 고맙기는요! 진상 님이랑 나 사인데, 당연한걸.”
그 시점에서 진성은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비비는 특별히 바뀐 게 아닐지도…….’
그녀가 처음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를 개조해주던 그때부터, 그녀는 언제나 그대로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마침내 던전 지역:안트베르 협곡의 최종장, 추격섬멸전이 준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