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Arad: Forerunner RAW novel - Chapter (99)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 아라드의 빛 먼저 걷는 자-99화(9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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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메카닉 지젤이 일부 폭발하며 뿜어낸 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열기의 바로 곁에서, 아직도 <벤팅크의 화염분출기>를 든 채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 있는 진성 때문이라 말하는 게 더 정확하리라.
‘딜 계산까지 완벽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타임러너들을 한데 모은다면 자신이 ‘무적이 포함된 홀딩’으로 그들 전부를 묶어둘 수 있을 것이고, 그 사이 비비 자신과 니베르의 스킬을 활용해 일거에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이후의 계획 또한 상세했다.
[남은 피통 상태에서 제 스킬에 맞으면 아마 두 줄? 두 줄도 안 남는 지점까지 딱 떨어진다고 봐야겠죠.] [잉? 그렇게까지 많이 깎여요? 아까 게이볼그 펀치에 맞고도 버텼는데-.] [네. 될 겁니다. <다크 웨이브 폴>은 60렙 스킬인 데다 주력기로도 많이 쓰는 거고, 콤보 마지막 스킬로 둬서 200% 증뎀을 적용하면……. 아마 게이볼그 펀치랑 비슷한 수준까지 갈 테니까요. 흐흐, 비비 씨가 한번 계산해보던가. 하여튼 막타 잘 쳐요!]자신이 준비한 콤보로 메카닉 지젤을 처치 직전까지 몰고 갈 수 있으니, 비비 자신에게 그 이후의 상황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공격력도 아마……. 내가 알고 있는 패치 버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크 웨이브 폴>의 대미지에 증가 대미지 배수를 적용하면 게이볼그 펀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일 거야.’
비비 자신도 진성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분석할 수 있었다.
기억 저편에 있던 수치를 꺼내느라 시간이 걸렸다, 라는 변명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이 모든 계산을 진성은 진작부터 끝냈기에 자신감에 찼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론에 따른 분석으로도 놀랍기 그지없건만.
그 모든 것을, 타임 리셋 첫 패턴의 파훼 실패 이후 지금까지 물 흐르듯 진행시켰기에, 지금 비비는 얼어붙은 채 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 패턴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한 발 뒤에 물러서서 지켜보는 느낌이었어. 진성…… 저 사람은 도대체…….’
비비에게 든 가장 큰 의문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굳이 위기를 겪을 것도 없이 이미 공략법을 완벽히 알고 또 파훼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초반부의 전투에서 그는 다소 방관자의 입장에 가까웠는지.
그뿐만이 아니다.
비비 자신이 보기에는 조금 당황스러운 면도 분명 있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라는 진성의 말을 듣기 전 비비가 머뭇거리고, 넋을 놓고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게다가 스킬을 사용할 때- 그 마지막 순간에 보였던 모습은…….’
메카닉 지젤이 달려드는 진성을 보며 공격하려 했을 때.
거대 전기톱을 치켜들고 휘두르기 직전, 그보다 빨리 메카닉 지젤의 품까지 뛰어들어 검을 내리치는 진성의 얼굴이 어떠했던가.
더 구체적으로, 그의 눈동자가 어떠했던가.
‘바뀌었어. 지금의 저 눈이 아니라…… 내가 아는 다크나이트, 게임 다크나이트의 눈처럼.’
역안黒白目.
흰자위는 검게 물들어있었다.
검은자위가 있어야 할 곳에는 샛노란 동공이 번뜩이고 있었다.
지금 비비 자신에게도 보이는 그의 눈동자, 어쩐지 착해 보이기까지 한 순한 눈동자가 아니었다.
그 지점까지 가서야 비비도 의문이 들었다.
‘왜……? 왜 진성 님은 다른 거지? 나야 이 안경을 주워서 썼다고 치지만- 아바타? 아바타로 눈동자 색을 바꿀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하기에는…….’
평소에 보이는 저 눈동자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킬을 사용하는 지점에서 일순 변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시간 동안 아바타 장착을 해제한 후 다시 착용했다?
‘그럴 리가. 그렇게 비효율적인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야.’
그것이 아니라면 분명한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냥 그랬을 리가 없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꿔 말하면, 비비 자신의 일반적인 사고와 지식, 경험칙에 의해 알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진성에게는 있다는 의미.
비비의 이공학적 사고방식은 지금, 진성에게 완전히 꽂혀있었다.
파츳, 파치치치칙──────…….
“으앗?!”
“이, 이건…….”
“위험해, 물러서!”
따라서 비비는 곧장 외칠 수 있었다.
“진성 님! 2차 폭발의 가능성이-.”
“알고 있어요!”
박살 난 메카닉 지젤로부터 나오는 소리, 전류가 비정상적으로 흐르며 재차 폭발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과 같았으나 진성은 비비의 외침을 듣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매섭고 날카로운 눈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을 뿐이었다.
‘지젤을 찾는 건가? 근데 여기서 지젤이 죽지는 않을 텐데.’
진성은 지젤을 죽이려는 것일까?
비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까지 전부 다 알지 못한다 해도 비비가 모를 리 없다.
‘지젤이랑은 마계에서도 싸워야 하고…… 아직 할 일이 한참 남지 않았나?’
이 시점이라면 지젤은 결국 살아남아 후퇴해야 한다.
그럼에도 진성은 그를 찾고 있는 걸까?
아예 그 목숨을 다하게 만들거나 생포하기 위해서?
“흐헤, 흐에, 이 망할 놈들, 언젠가는-.”
“지, 지젤! 살아있었나!?”
“-젠장!”
2차 폭발의 가능성으로 인해 진성을 제외한 모두가 메카닉 지젤에게서 물러섰을 때.
지젤은 곧장 튀어나와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어딜 도망쳐! 잡아라, 지젤 박사를 쫓아라!”
뒤늦게 니베르 준장을 비롯하여 원군으로 당도한 젤딘 슈나이더 등이 소리 쳤으나 그를 쫓을 순 없었다.
비비에게는 역시나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진성 님이 따라가지 않아. 그러면 도대체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지? 뭘 찾는 건가?’
진성이었다면 지젤이 다섯 걸음도 떼기 전에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가장 가까이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음에도 지젤을 그저 보고만 있는 이유는?
벌컥, 벌컥, 벌컥…….
“잉?”
비비는 바로 곁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푸른 병에 있는 음료를 빠르게 들이키는 콘의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
그는 곧장 병을 비운 채 집어던지곤 말했다.
“준장님, 준비됐습니다.”
“잡아, 콘. 절대 놓쳐선 안 돼. 그리고-.”
니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외쳤다.
“-모두 좌우로 갈라져!”
그들이 무엇을 할지.
아직 하지 않았음에도 비비는 알 수 있었기에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동그랗게 커졌다.
‘지, 지젤을 죽이려고-.’
MP를 채웠다.
그리고 모두를 지젤의 양쪽으로 벗어나게 한 후 콘에게 공격을 허용했다면?
지젤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는 최강의 공격.
말 그대로 뼈마디 하나하나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으스러뜨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자, 잠깐-.”
“<게이볼그 펀치>!”
비비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 콘은 외쳤다.
그의 뒤에서부터 생성되는 푸른 포탈, 시공간이 일그러지며 대對 바칼 병기라 일컬어지는 게이볼그의 오른팔이 지젤을 향해 뻗어나간 순간.
───────────……!!!!
“……종……소리?”
들려오는 것은 마치 종소리와도 같았다.
묵직한 쇳덩이를 또 다른 묵직한 물체가 후려쳤을 때 울릴 법한 소리, 공기의 파동.
“무슨……?”
“아니, 뭐가- 음?!”
몸까지 떨리게 만드는 저음이 어째서 발생했는지.
곧 게이볼그의 팔이 포탈 안으로 사라졌을 때, 모두는 알 수 있었다.
게이볼그의 주먹과 지젤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는 것을.
그 강력한 펀치가 ‘누군가’와 부딪치며 이런 굉음을 내었다는 것을.
“잉? 진성 님?!”
“어째서…….”
“자, 잠시만- 뭘 한 거요!? 아니, 그보다 지젤은-.”
“도망갑니다! 놈이 도망칩니다!”
결국 <게이볼그 펀치> 자체는 무효화되었고, 지젤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지고 있다는 것까지도.
할트산에 모인 모두를 잠시 벙 찌게 만든 주인공.
“아-하핫, 하필이면! 제가 지젤을 잡으려고 공격하려는 찰나에 이런 큰 공격을 하셔가지고- 죄송하게 됐습니다.”
진성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황도군 전원은 당황하여 침음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젤이 도망쳤기 때문에, 따위도 아니었다.
이게 웃을 일인가?
게이볼그 펀치에 맞은 당사자가?
멀쩡히 웃을 수 있는 일인가?
니베르와 비비의 폭격에서부터 살아남은 것조차 믿기 힘들었으나 적어도 그런 정신없는 상황에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조차 힘든 경우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콘이 소환한 <게이볼그 펀치>는 아무 문제 없이 직격으로 뻗어나갔다.
다만, 진성이 그 앞을 <홉 스매쉬>의 스킬로 끼어들었을 뿐.
비비를 제외한다면 ‘짤무적’의 개념을 모르는 NPC들의 입장에서 이렇게 벙찌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그럼에도 비비 또한 호들갑을 떨지 않고 진성을 바라보는 이유는 그녀에게도 당황스러운 점은 있었기 때문.
‘……일부러 뛰어들었어. 지금의 진성 님은…… 마치 지젤이 게이볼그 펀치에 맞지 않도록 보호해주듯.’
지젤이 죽지 않는 흐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비비도 생각해보았다.
하나, 이렇게까지 보호해야 했을까?
저렇게 ‘대신 맞아주는 정도’로 지젤을 지킨다?
비비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진성을 살폈다.
그럼에도 그녀가 서 있는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몸 뒤로 왼팔을 숨긴 진성이 은근슬쩍 주머니로 그 손을 넣는 모습을.
무엇을 쥐고 있었는지, 무엇을 넣었는지.
그것은 오직 진성만이 알고 있으리라.
* * *
“제길……놓쳤습니다. 온갖 기계를 다 꺼내더군요. 같은 편 병사들을 버리면서까지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쳐서 끝내 잡을 수 없었습니다.”
황도 수비대장 젤딘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진성은 괜스레 민망하여 목청을 가다듬어야 했다.
“크흠,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필 그게 타이밍이 또 그렇게 될 줄은-.”
“네? 아뇨, 진성……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추격 섬멸전의 최고 공로자가 누구인지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니까요.”
아쉬움과 울분의 눈동자는 오직 지젤만을 향했던 것, 진성을 바라보며 말하는 젤딘에게서 책망의 기색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니베르도 마찬가지였다.
“맞습니다. 지금은 놓쳤지만 반드시 잡을 겁니다. 카르텔에 세븐 샤즈의 지식과 기술을 제공한 그놈 때문에 전쟁이 이렇게나 커졌으니까요.”
“그러니까 게이볼그 펀치를-.”
“콘.”
“-옙.”
단 한 사람, 공적을 세울 뻔했던 콘만이 아쉬움에 한마디를 덧붙이려 했으나 직속상관인 준장의 호명 한 번에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젤딘은 다시금 말했다.
“비록 지젤은 놓쳤지만…… 카르텔을 물리쳤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곤 고개를 숙여 보였다.
비비는 어색함과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녜요, 제가 한 일이 뭐 있다고-.”
그러나 그 동작은 즉각 멈춰야만 했다.
젤딘의 숙인 정수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
젤딘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대상은 비비가 아니라 진성 쪽이었으니까.
“-가 아니라 진짜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네요.”
풀 죽은 비비의 목소리에 젤딘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바로 비비에게 그런 의미가 아님을 알리려 했으나 우직한 군인 출신의 젤딘이 진성을 향해 고개를 숙인 게 어떤 의미인지, ‘모험가’ 비비가 곁에 있음에도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곳에 있는 자들이 모를 리는 없었다.
“그, 그게 아니라-. 물론 모험가님께서도 엄청난 도움을 주셨지요! 애당초 진성 님께서 함께해주신 게 모험가님 덕분이기도 하고-.”
“그니까요, 결국 진상 님 때문이라는 거잖아요. 근데 일리가 있어서 할 말은 없달까.”
“예?”
그것은 물론 비비도 마찬가지였다.
젤딘이 진성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유라면 비비도 잘 알고 있는데다…….
“진성 님.”
“네?”
“고맙습니다.”
오히려 감사를 표해야 할 건 비비 자신임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비는 진성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진성이 당황할 정도였다.
“무, 뭘 또 이렇게 새삼스럽게…… 비비 씨한테 이런 인사 들으니까 괜히 민망하고-.”
“그래도 해야죠. 진성 님이 없었으면 못 했을 테니까. 아니, 여기까지도 최소 몇 개월은 걸렸을 테니까. 고마워요.”
멋쩍어하는 진성을 보면서도 비비는 진지하게 말했다.
모험가의 활약이 어찌나 컸는가.
그 점에 대해 젤딘이나 니베르는 물론 콘, 비연 그 외의 황도군 기관사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 중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는 이유라면 간단했다.
모험가, 비비의 활약 이상으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인 게 바로 진성임을, 이 자리의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진성은 조용해진 상황에서 괜히 헛기침을 하며 메카닉 지젤의 잔해 쪽을 가리켰다.
“크흠, 아니, 어차피 나 도와주기로 했잖아요? 저기 메카닉 지젤한테서 떼다가 비비 씨가 해줄 일이 있는데, 그거나 해 줘요.”
일단 ‘오염’은 끝냈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당연히 전리품 노획!
메카닉 지젤을 상대하기 전부터 진성은 비비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두었기에 부랴부랴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네, 뭘 해드릴까요?”
“어…… 우선 무기 쪽에서-.”
“아참, 근데 진성 님.”
“네?”
비비는 갑작스레 진성을 불렀다.
그러곤 주변인은 들을 수 없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성 님은 모험가 아니죠. 맞죠?”
정확하게는 질문이 아니라 확신에 찬 확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