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0
하지만 극의 신식은 여전히 강대했다. 신식의 바다 안에서 문어의 모습을 하고 있던 팔급마군의 신식은 붉은색 번개를 삼킨 뒤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렇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사이 연쇄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연쇄반응의 영향은 노인의 온몸으로 퍼졌다. 팔급마군은 우뚝 멈추었다.
한제는 뒤로 물러난 순간 수정 빛을 토해냈다. 수정 비검은 빛을 번쩍이며 뱀의 허리를 댕강 베어버리고 그와 동시에 노인의 미간을 노렸다.
하지만 노인의 미간에서 피어오르는 하얀색 빛의 고리에 막혀 비검은 조금도 파고들지 못했다. 이에 한제는 오른손을 흔들어 비검을 회수했다. 비검을 회수한 한제는 바로 땅속으로 파고들어간 뒤 빠르게 앞으로 내달렸다.
잠시 후 노인은 겨우 정신을 차린 뒤 두 동강이 난 채 쓰러져 있는 뱀의 시체를 보면서 미간을 매만졌다. 그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는 잔혹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결인을 하고 낮게 외쳤다.
“가라!”
그러자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베틀 북 하나가 나타났다. 수정처럼 반짝이는 북 안에서 흐르는 빛이 사방으로 넘치는 듯했다. 노인의 명령에 북은 곧장 앞으로 튀어나가더니 엄청난 기세로 한제를 뒤쫓았다.
북이 닿는 곳곳마다 진흙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북의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와 북 사이의 거리는 1백 척으로 줄었고 한제는 머리가 저릿해졌다.
그는 더 따질 겨를도 없이 양삼에게서 받았던 옥패를 꺼내들었다. 이 옥패는 원영기 수준 수련자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한 번 막아줄 수 있다고 했다.
한제는 곧바로 그것을 북을 향해 내던졌다.
쾅-!
옥패는 곧장 크게 부풀 더니 북과 부딪힌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라져 재로 변해버렸고 북 역시 충격에 몇 십 척 정도 뒤로 물러났다.
옥패의 기세는 크게 누그려 들었고 그와 동시에 하나의 고리형 파문이 옥패와 북이 충돌한 곳을 중심으로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가며 반경 1천 척 안의 진흙이 분분히 솟아올랐다. 마치 그 안에서 용이 발버둥을 치고 있는 듯했다.
확산된 파문에 밀려난 한제는 선혈을 토해내며 더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도 없이 땅을 박차고 올라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질주했다. 발아래에서는 여전히 파문의 진동이 느껴졌다.
팔급마군이 중얼거렸다.
“아까의 시도는 좋았다. 나조차도 놀랐으니까. 신식을 통해 사주술을 펼친다는 말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구나!”
그는 몸을 번쩍이며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가슴에서 은은한 통증을 느낀 한제는 이동하는 와중에 모완에게서 받은 단약을 먹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방에 갑자기 나타난 영력의 파동 때문이었다.
한제는 원영기 수련자들과 여러 번 마주한 적이 있어 그들이 펼치는 순간 이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방향을 틀었다.
이때 그 영력의 파동이 일어난 곳에서 갑자기 팔급마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팔급마군은 말을 하는 동시에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여러 갈래의 번개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순식간에 창살처럼 한제를 둘러쌌다.
그늘진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춘 한제는 팔급마군을 노려보며 냉랭하게 물었다.
“대체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팔급마군은 마치 의중을 살피듯 한제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네 사주술을 좀 빌려 써야겠다.”
한제는 말없이 자신의 사방을 두른 번개 창살을 바라보았다.
파지직
번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팔급마군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설명할 때가 아니다. 허나 네게 부당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나를 따라오는 데 동의한다면 화지단(化地丹) 한 알을 주지!”
한제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으나 사실 마음은 크게 동요했다. 화지단은 모완에게서 들어본 적이 있는 단약으로 수단(修丹)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허나 결단기 초기에서 중기로 돌파할 때의 성공률은 크게 높여주지만 중기에서 후기로 돌파하는 데의 성공률은 약간 높여줄 뿐이었다. 대신 성공시키기 못한다 하더라고 체내의 영력을 증가시켜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협의 달성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어 말없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상대의 수준은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화분맹이 만들어둔 진을 단번에 부수고 호통 한 번에 원영기 수련자들의 접근조차 막는 것을 보면 원영기 후기의 절정에 이르렀거나 이미 원영기를 넘어 화신기에 접어든 상태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상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억제하거나 심지어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 상대가 먼저 제안을 해오니 한제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본 팔급마군은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죽으려고 용을 쓰는구나!”
그가 오른손을 꽉 쥐자 한제를 둘러싸고 있는 번개 창살이 곧장 수축했다. 한제는 꿈쩍도 하지 않고 냉랭한 눈으로 노인을 노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번개 창살은 점점 더 줄어들다가 거의 한제의 몸에 닿을 지경이 되어서야 멈추었다. 한제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바람에 휘날려 창살에 닿자마자 재가 되어 버렸다. 옷자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노인은 한제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심성은 나쁘지 않으나 호의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구나. 정말 이 몸이 네 놈을 못 죽일 성 싶으냐?”
한제의 입꼬리에 걸린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지화단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노인은 한제를 노려보며 고민에 잠겼다. 만약 ‘그곳’에 데려갈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일찍이 상대의 체내에 금제를 걸어놓았을 테고 그럼 이렇게 일이 번거로워지지도 않았을 터였다. 허나 ‘그곳’에 들어가면 금제는 모두 효력을 잃고 만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상대가 사주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상대가 적개심을 품고 함께 죽자는 마음을 먹는다면 단 한 번의 실수에 모든 사람들이 연이어 말려들 가능성도 있었다.
1천 년 전 처음으로 ‘그곳’에 들어갔을 때, 바로 그 문제 때문에 ‘그곳’에서 죽음을 맞고 1천 년의 수양을 거친 끝에야 겨우 당시의 수준으로 되살아난 그였다. 비록 그때보다 수준은 약간 깊어졌지만 음험하고 잔인한 ‘그곳’을 떠올리기만 하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졌다.
때문에 그는 한제에 대해 금제를 걸어놓을 수도 깊이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그저 상대를 구슬릴 수밖에…
팔급마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둘러 번개 창살을 거둬버렸다.
한제는 사라진 번개 창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팔급마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요한 것을 말해 보아라.”
“우선 제가 가야 하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고 싶습니다.”
한제의 목소리는 침착했으나 강인한 기색이 드러났다.
팔급마군은 가볍게 웃었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원영기 초기라면 열에 아홉은 죽는다. 원영기 중기라면 운이 좋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 원영기 후기에서 화신기에 접어드는 경계에 이른 정도는 되어야만 끝까지 살필 수 있으나, 역시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노인은 한제의 표정을 살폈으나 저 놈이 무슨 생각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허나 위험한 만큼 수확 역시 굉장히 많은 곳이다. 법보, 단약, 공법 등등이 끝도 없이 많지. 전설 속의 영변단도 있다더구나. 한 알만 먹어도 곧장 영변기의 수련자가 될 수 있다는 그 단약 말이다. 게다가 ‘그곳’의 위험성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네 사주술은 ‘그곳’에서 아주 큰 쓸모가 있으니 적어도 그전까지 넌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사주술을 쓴 다음부터는 딱히 욕심이 없다면 밖에서 기다려도 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밖으로 전송될 테니까.”
한제는 그의 말을 듣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속으로 노인의 말 중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3할 정도였다.
“네 수준을 보니 이제 막 결단기에 진입했더구나. 괜찮다. 여기 입영단(立?丹) 한 알이 있다. 날 따라가는 데 동의한다면 이걸 주마. 그리고 ‘그곳’에서 얻은 보물 중 하나를 주겠다. 어떠냐?”
한제는 입영단에 대해서도 역시나 모완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입영단은 결단기 시기에 복용하면 승급 확률을 높여주는 단약으로 3성 수련국에서는 굉장히 드물었고 4성 수련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 단약을 만드는 방법은 5성 수련국에서만 알고 있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했다. 그는 노인이 말한 비밀스러운 장소에 대해 약간 구미가 당기긴 했다. 전설의 영변단 때문만이 아니라 원영기에 진입할 확률을 높여줄 공법과 단약 때문이었다. 그런 도움이 아니라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 원영기에 이를 수 있을지 한제 자신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만약 가지 않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노인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그러니 사실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좋습니다. 가죠.”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팔급마군은 한제를 한참 동안 주시하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날 피해 다니면서 두 번이나 네 기운을 숨겼던 것은 어떻게 한 것이냐?”
한제는 대답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노인은 시선을 거두고 더는 묻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가자. ‘그곳’은 앞으로 반년 뒤에 열린다. 만약 네가 도중에 도망친다면 곧장 널 죽여주마.”
말을 마친 그가 손을 휘두르며 허공에 부호 하나를 그린 뒤 그것을 때리자 부호는 곧장 한제의 체내로 들어가 버렸다.
“이건 신식의 흔적으로 네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는 않는다. ‘그곳’에 도착하면 바로 제거해주겠다.”
한제는 이런 조치에 대해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만약 자신이었다고 해도 이런 조치를 취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만약 상대가 엄청난 금제를 걸어놓을 생각이었다면 여태까지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꿈쩍도 하지 않고 화분맹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니 며칠 더 기다려주셔야겠습니다.”
노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일?”
“혹시 전신전의 신도술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노인은 차게 웃었다.
“원영기에 진입할 확률을 높여주는 신도술이라… 전신전 녀석이 그 법술을 손에 넣었을 당시 곳곳에 소문이 자자했지. 하지만 4성 수련국인 천강국(天?國)에 가지 않는 이상 원본 신도술을 손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지만 한제는 마음이 흔들렸다. 노인의 말은 한제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전신전이 여태까지 원본 신도술을 줄곧 이어오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직접 가서 살펴보기 전에는 무엇도 믿을 수 없었기에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긴 무지개를 그리며 화분맹 쪽으로 향했다. 팔급마군은 피식 웃더니 그 뒤를 따랐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화분맹의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제는 그 산봉우리 옆에 멈춰 섰다.
“전신전의 봉란 선배님을 뵙습니다.”
한제의 말은 벼락처럼 왕왕 울리며 퍼져나갔다. 곧이어 산봉우리 안에서 몇 개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가장 앞서 있는 것은 궁궐 복장을 한 봉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