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01
한제는 서늘한 목소리로 외치며 결인을 그려 대량의 금제를 소환해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금제가 우리를 형성해 곧장 옥패를 향해 달려들었다.
온 세상은 한제가 소환한 금제로 뒤덮여 일순 봉쇄됐다.
유금표는 절망한 표정이었다.
그때 옥패가 한 줄기의 검은 안개를 분출해냈고 안개는 길이가 수천 척에 이르는 거대한 지네가 됐다.
온몸이 칠흑처럼 검은 지네의 등에는 한 줄기 금색 선이 그려져 있어 더욱 두려웠다.
지네는 유금표를 뒤쫓는 한제에게 독 안개를 뿜어냈다. 극독을 품은 안개는 한제가 응집한 금제를 그대로 무너뜨렸다.
한제는 흥미롭다는 듯 옥패를 바라보더니 이내 거칠게 달려들며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온 세상의 천둥번개여, 내 명령에 따르라!”
막라 대륙의 하늘에서는 거친 소리와 함께 가닥가닥 천둥번개가 하늘을 뒤덮으며 거대한 지네에게 내리쳤다.
“키야아아!”
지네는 흉악하게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때 옥패에서 또다시 검은 안개가 분출되더니 무려 여섯 마리의 지네들이 나타났다.
총 일곱 마리가 된 지네들은 독 안개를 내뿜으며 천둥번개와 충돌했다.
콰쾅!
북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세 마리는 그대로 붕괴해 허무로 돌아갔고 나머지 네 마리는 다급하게 몸을 웅크렸다.
한제는 자신이 불러낸 천둥번개 사이로 뛰어들더니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의 손짓에 또다시 두 마리의 지네가 무너져 내렸다.
남은 두 마리 지네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곧장 물러나 옥패 안으로 돌아가려 했다.
내버려둘 한제가 아니었다. 그는 저물공간에서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 집어던졌다.
펑! 펑!
짧은 두 번의 타격음에 이어 두 마리의 지네는 바르르 떨면서 와해됐다.
일곱 마리의 지네가 모두 사라지자 금제는 다시 응집해 옥패를 단단히 봉쇄했다. 이제 옥패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한데 쇄열기 중기 수련자를 죽이고도 남을 만한 공격 속에서도 옥패는 여전히 멀쩡했다. 보면 볼수록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아무래도 아까의 그 장면은 유금표보다는 옥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양이군.’
금제로 옥패를 봉인한 한제는 즉시 손을 뻗어 옥패를 움켜쥐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온 우주를 무너뜨릴 법한 강력하고 거친 화염이 옥패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뒤이어 검은 안개가 다시 뿜어져 나오더니 이번에는 거의 1만 척에 달하는 지네가 한제 바로 앞에 나타났다.
지네는 입을 쩍 벌려 독 안개를 내뿜으면서 한제를 집어삼키려 했다.
“옥패야, 어서 그 녀석을 삼켜라! 쇄열기 수련자니까 원정도 잔뜩 가지고 있을 게다. 그놈을 삼켜서 나오는 것은 전부 가지거라!”
유금표가 쌤통이라는 듯 깔깔댔다.
한데 이상하게도 한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는 달려드는 지네를 침착하게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눈을 번득이며 포효했다.
“크아아아!”
고신의 포효! 그것도 온 세상을 뒤흔들고 하늘을 무너뜨리고 구멍까지 뚫을 듯한 6성급 왕족 고신의 포효였다.
우르릉! 콰쾅! 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고 수많은 산봉우리가 무너졌으며, 몇몇 강줄기는 뒤로 밀려났다.
고신의 포효는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쇄열기 후기 수련자가 감각이 마비된 채 칠규에서 피를 흘리게 만들 위력이었고 쇄열기 절정 수련자조차 잠깐이나마 뇌가 진탕될 만했다. 그러니 거대한 지네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격렬하게 떠는 것도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것도 당연했다.
지네가 사라진 뒤 옥패의 빛은 한층 약해져 그저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이 주위를 감싸는 정도에 불과했다.
한제는 손을 뻗어 옥패를 움켜쥐었다. 한데 그 순간…
쾅!
머릿속에서 폭발음 같은 것이 울렸다. 옥패로부터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힘이 뚫고 들어와 체내를 휘젓고 돌아다녔다. 그러자 원식 속의 천역주가 옥패와 공명하듯 빛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한제의 손에 쥐어져 있던 옥패가 체내로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뒤이어 곧장 원신 속의 천역주를 흡수해 버렸다.
한제가 흠칫 놀라는 사이에 천역주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허나 한제는 여전히 천역주의 존재를 똑똑히 느꼈고 심지어 자기 자신이 천역주가 된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한제의 기억이 아닌 무언가가 차례로 떠올랐다.
★ ★ ★
칠흑 같은 어둠 속, 옥패 하나가 대지에 묻힌 채 수만 년을 지나보냈다. 그러면서도 옥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덟 마리의 지네가 땅을 뚫고 지나가다가 옥패 근처에 멈춰 섰다. 녀석들은 옥패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운에 지능이 생긴 듯했고 곧 그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여덟 마리의 지내는 점차 수련자와 같은 기운을 갖게 되었다가 어느 순간 바르르 떨면서 죽어갔다.
육신에서 벗어난 녀석들의 원신은 옥패로 흡수돼 천천히 영을 담는 용기가 됐다.
허나 옥패의 힘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고 옥패가 가진 있는 힘의 1천 분의 1도 발휘하지 못했다.
다시 수만 년이 지났을 무렵, 대지가 진동하면서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옥패가 드러났다.
얼굴에 파랗게 멍이 든 노인이 다급하게 어디론가 도망을 치고 있었다. 뒤에서는 사기꾼이라는 욕설이 따라붙었다.
노인은 부상이 심각했는지 도망치던 도중 피를 토했다. 한데 이 피가 지면 밖으로 드러난 옥패 위로 뿌려졌다. 그러자 옥패가 빛을 번득였고 노인은 뭔지도 모르는 채 일단 집어 들고 계속해서 도망쳤다.
한제는 두 눈을 떴다. 수만 년의 세월을 목도했지만 실제로 지난 시간은 숨 한 번 내뱉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유금표는 멍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제의 손에서 옥패가 기이하게 사라져버린 순간 심신에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옥패와의 연결이 끊어졌음을 직감했다. 허나 목숨만 살릴 수 있다면 옥패는 포기할 수 있었다.
유금표는 철퍼덕 소리가 날 정도로 냅다 꿇어앉더니 비굴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전 평생 누군가를 죽여본 적도 없고 그저 소소한 사기나 치던 놈입니다. 한 번만 놓아주신다면 앞으로는 마음을 고쳐먹고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다시는 이전처럼 사기를 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유금표는 바닥에 이마까지 찧어가며 애원했다.
‘대단한 옥패다. 보통의 지네들조차 쇄열기 수련자에 비할 만한 수준을 갖게 만들다니. 저자도 덕분에 사방팔방을 종횡하며 수많은 사기를 치고도 무사했던 게야!’
한제는 더 이상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 소매를 휘둘러 유금표를 저물공간에 거두었다.
‘비록 죽을죄를 지은 자는 아니나 귀원종에 사기를 치려 했던 만큼 벌을 받아야 할 터. 허이국, 항상 외롭다고 꽥꽥댔지. 어디 그자를 잘 가르쳐봐라!’
한제는 신념을 통해 저물공간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나오지 못하고 있는 허이국에게 말을 전했다.
한편, 그 무렵 허이국은 풀이 잔뜩 죽은 채 세상의 미녀들을 그리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특히 그는 나천성역에서 악취미를 즐겼을 당시를 떠올리며 언젠가 다시 그때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데 그때 저물공간으로 굴러 들어온 유금표를 보고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잔뜩 흥분한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이 멍청한 녀석을 잘 가르쳐 놓겠습니다! 하하하!”
허이국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유금표에게 접근했다. 유금표의 얼굴은 더욱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이 할애비가 얼마나 오랜 시간 심심하고 쓸쓸했는지 아느냐? 드디어 오늘 같은 날이 오는구나. 그간 쌓인 분노를 모두 네놈에게 풀어주마!”
허이국은 웃으며 유금표에게 달려들었다. 진정 사악한 웃음이었다.
집을 잃다
한제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가 본 유일한 살길에서 중요한 옥패를 구했건만 천역주와 함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의 일을 예상할 수도 없었고 여전히 불안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한제는 귀원종으로 돌아갔다.
한제를 기다리던 여연비 등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유금표가 귀원종으로 보냈던 옥패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옥패가 되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여덟 마리 지네가 모두 죽어 기운이 완전히 흩어졌기 때문이다.
“사숙조 님,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습니다.”
한제는 말없이 귀원종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곳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운해성역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고 운해성역 수련자로서의 신분도 얻지 않았던가.
“먼저 가라.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좀 남았다. 조만간 찾아가마.”
여연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한제가 귀원종에 오래 머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던 탓이다.
입술을 깨문 여연비는 한제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듯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귀원종 제자들과 함께 전송진을 통해 막라 대륙을 떠나갔다.
홀로 남은 한제는 텅 빈 귀원종 광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늘한 눈빛이었다.
“나는 모든 미래에서 나의 죽음을 봤다. 허나, 나 이한제는 평생 반항의 길을 걸어왔다. 길이 없다면 만들겠다! 상대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 만약 이번에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그자를 내 앞에 무릎 꿇리리라!”
한제의 두 눈이 더욱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는 저물공간에서 단검을 두 자루 꺼냈다. 칠채계에서 얻은 것으로 봉인은 여전히 풀지 못한 상태였다.
이제 그 봉인을 억지로나마 열어서 힘을 조금이라도 높일 생각이었다.
★ ★ ★
9급 성역 파천종. 세 명의 장로가 배치한 진에 갇혀 있던 이천매가 스승에게 조용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