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03
5급 성역의 귀원종. 한제의 앞에 떠 있는 두 개의 단검은 각각 흑백의 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두 자루 검에서 발산된 빛은 서로 교차하면서 수천 개의 허상을 어렴풋이 드러냈다.
사방에 형성된 검의 허상으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한제가 끊임없이 봉인을 해제하면서 단검들은 서서히 온전한 위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위에는 나타나는 검의 허상이 점점 더 많아졌다.
1만 개, 5만 개, 10만 개, 30만 개, 50만 개⋯⋯ 1백만 개.
검의 허상들은 한데 모여 회오리를 형성해 온 세상을 뒤흔들 듯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 엄청난 검광은 검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한 마리 용처럼 창공을 뚫고 나갈 듯한 기세를 뿜어댔다. 그 기운 아래 온 세상에는 칼날처럼 서늘한 살의가 짙게 들어찼다.
한제의 모습이 흐릿해 보일 정도로 그의 주위에는 수없이 많은 검의 기운이 맴돌았다.
“아홉 갈래 봉인 중 네 개를 열었을 뿐인데도 백만 개가 넘는 검의 허상이 나타나다니!”
가부좌를 튼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번득이는 눈빛이 사방의 검기에 녹아들어 날카로운 검광이 된 듯했고 검기들은 그 기운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우뚝 멈추더니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내가 단검들을 과소평가했군. 나를 죽이려는 자에게 이 이한제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봉인을 더 열어야겠어!”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결인을 그린 손을 뻗어 단검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흑백의 빛을 발산하던 두 자루 단검에서 날카로운 검명(劍鳴)이 울려 퍼졌다. 원고 시대의 거대한 두 마리 용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러더니 단검들은 한제를 겨누고 달려들었다.
“반항하겠다는 건가?”
한제는 냉소하며 미간에서 규칙의 반점을 번득였다. 반점은 회전하면서 새로운 규칙의 장벽을 세웠고 사방에서 수많은 천둥번개가 내려치더니 응집되면서 두 단검 주위를 파란 화염으로 뒤덮었다. 화염에는 넘칠 듯한 전의가 담겨 있었다.
“다섯 번째 봉인, 열려라!”
한제는 오른손을 휘두르며 낮게 외쳤다.
펑! 펑!
두 자루 단검에서 짧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단검들의 표면에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이제 단검이라기보다는 비수에 가까울 정도로 작아진 상태였다.
두 자루 비수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주위를 채운 검기가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5백만 개까지 늘어났다.
대량의 검기는 쉭, 쉭 소리를 내며 하늘을 뒤덮었다. 막라 대륙의 하늘은 파멸할 것처럼 강력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게다가 이 5백만 개의 검기에는 천둥번개와 화염의 힘, 심지어 전의까지 어려 있어 따로 조종하지 않아도 스스로 싸울 듯했다.
“다섯 번째 봉인으로는 검 5백만 개의 허상을 소환할 수 있군. 좋아, 두 자루 비수를 고신의 피로 제련해 남은 봉인까지 해제하겠다!”
한제는 결심한 듯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고신의 피에는 생기와 모든 사악한 술법을 해제할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한제는 혀끝을 물어 두 자루 비수에 피를 뿜어냈다.
그 순간, 피 안개에서 고신의 허상이 나타나더니 둘로 나뉘어 각각 한 자루의 비수 안으로 녹아들었다.
펑! 펑!
비수들은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고 곧바로 한 번 더 무너졌다. 총 일곱 개의 봉인이 해제된 것이다.
콰르릉!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막라 대륙을 뒤덮은 검기가 증폭됐다. 순식간에 6백만 개를 넘어 7백만 개, 8백만 개… 계속해서 증폭되던 검기는 999만 9999개의 검기가 되어 한제의 주위를 감쌌다. 세상을 무너뜨리기까지 딱 하나가 모자란 상태였다.
“여덟 번째 봉인을 열면 1천만 개가 넘는 검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허나 남은 두 개의 봉인은 내 수준으로는 쉽게 열 수가 없다.”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여덟 번째 봉인을 열지 못하더라도 강력한 고신의 육신을 마지막 검기로 삼으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한제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1천만 개에서 딱 하나 모자란 검기들이 응집돼 체내로 녹아들었다.
끊임없는 흡수 아래 그의 몸도 순간 은색으로 변했고 체내에서는 폭발음이 이어졌다.
보통의 수련자는 이토록 많은 검기를 감당할 수 없으나, 한제는 고신이었다.
“응집!”
한제의 외침에 체내로 녹아든 모든 검기가 오른손 검지로 응집됐다.
“정말 기이한 단검이로군.”
순식간에 사방이 밝아졌고 눈앞에 떠 있던 두 자루의 비수는 흑백의 기운이 되어 한제의 손가락에 녹아들었다. 동시에 두 마리 사슴의 허상이 나타나 맴돌다가 이내 두 개의 문양이 되어 한제의 검지에 새겨졌다.
그의 검지는 쇄열기 수준 수련자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게 됐다. 어지간한 차공열 법보도 그의 검지와 맞부딪힌다면 견뎌내지 못할 터였다. 그 안에는 천둥번개와 화염 그리고 전의의 규칙은 물론 고신의 강력함과 신통력까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손가락 하나면 천쇠를 겪은 수련자도 물리칠 수 있겠군!”
한제는 눈을 번득인 뒤 입을 벌려 검지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두 개의 사슴 문양이 모습을 감추었다.
한제는 그제야 착 가라앉은 눈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막라 대륙에는 일반인이 많다.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애꿎은 그들이 죽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긴 빛을 그리며 하늘을 가로질러 눈 깜짝할 사이에 막라 대륙을 벗어나더니 우주 공간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황량한 대륙을 하나 발견하고는 그리로 향했다.
그 대륙에 내려선 순간, 한제는 신식을 펼쳐 대륙 전체를 살폈다. 이곳을 전장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는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생사의 위기까지 7일 정도가 남았다.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오른손으로 이마를 내리쳤다. 그러자 정수리에서 수백 개의 유백색 기운이 흘러나와 각각이 빛의 공으로 수축했다.
“천지무상(天地無常), 응화백신(凝化百身), 고대 종족의 신통력!”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빛의 공들은 꾸물거리며 한제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들은 분신(分身)이자 분신(分神)으로 여섯 번째 반점을 회복한 뒤 발휘할 수 있게 된 고신의 신통력이었다.
한제가 가볍게 손을 떨치자 수백 개의 분신은 사방으로 흩어져 황량한 대륙 너머 안개가 자욱한 우주로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제는 눈을 감고 좌선을 시작했다.
이틀이 지났을 때, 한제의 분신들은 엄청난 속도로 5급 성역 곳곳까지 퍼져나가 각자 황량한 대륙 하나씩을 차지한 상태였다. 그리고 각 분신들이 자리 잡은 대륙들은 분신들이 이동함에 따라 한제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한제가 자리한 곳은 수백 개의 황량한 대륙으로 둘러싸여 멀리서 보면 태고의 성신의 종족이 사는 부락처럼 보였다.
대륙들이 하나의 거대하고 강력한 진을 이루었다.
수백 개의 분신들이 하나둘 본체로 돌아오자 한제는 두 눈을 뜨고 두 손을 휘둘러 파멸금을 사방에 드리웠다. 하나하나의 문양이 떠올라 회전했다.
한제는 끊임없이 두 손을 움직여 금제를 그려내서는 황량한 대륙을 뒤덮였다. 머지않아 셀 수 없이 많은 금제가 모든 황량한 대륙을 뒤덮어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한제는 대량의 원력을 소모했지만 이미 반쯤 쇄열기에 들어선 상태라 세상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원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원정도 충분했기에 원력이 소모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한제는 저물대 안에서 은시(銀屍)를 꺼내 생사금을 발휘하게 했다. 여인은 충분한 양의 원정의 도움을 받아 곧장 주위에 자리한 모든 황량한 대륙을 생사금으로 뒤덮었다.
한제는 칠채계를 떠나온 뒤부터 세월금을 연구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파멸금을 전수받은 데다가 금제에 대한 조예가 깊은 덕에 어느 정도는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닷새째 되던 날, 세월금까지 황량한 대륙을 뒤덮었다.
“세월금의 위력은 시간에서 나오지. 내게는 유월이라는 신통력이 있으니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도 순식간에 세월금의 위력을 높일 수 있어. 세 개의 금제를 융합하면 그 위력은 경천동지할 정도지.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라 해도 날 죽이기는 쉽지 않을 터. 어서 오너라!”
한제의 두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천운자의 혼백과 융합했을 때 내다본 그날까지 이틀이 남았을 때, 한제를 둘러싼 1백 개가 넘는 황량한 대륙은 서로 기이한 방식으로 배열된 채 원력과 규칙을 품고 있었다.
특히 한제와 은시가 발휘한 세 개의 금제는 모든 대륙을 뒤덮은 채 융합되어 파멸적인 폭풍을 형성했다.
한제는 이 폭풍을 끊임없이 압축해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황량한 대륙을 하나의 거대한 법보로 만들었다.
비록 염뇌자가 뇌의 선계 조각으로 제련한 법보에 비해 재료의 질은 떨어졌으나, 여기에 활용된 신통력은 그에 못지않았다.
게다가 세 개의 금제까지 더해져 염뇌자의 법보를 능가할 법했다. 지금이라면 분명 염뇌자에게도 필승을 거두리라.
한제는 이 법보의 위력을 압축하고 응축해 숨겼다. 그는 어차피 자신을 죽이려 하는 그자를 피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에 힘을 숨기고 축적시켰다가 어느 순간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 계획이었다.
일평생 여러 사람들과 목숨을 건 채 싸워온 그는 이런 준비 하나하나가 목숨을 살려줄 구명줄이 될 거라 믿었다.
예측에 따르면 살아남을 길은 단 하나. 엄밀히 따지자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게다가 세 번째 단계의 엄청난 수련자가 상대인 이상 보통 수련자라면 절망했을 테지만 한제는 거역과 저항의 수련자다. 게다가 왕족 고신이기도 하다. 그의 도도함과 존엄이 반항의 의지와 합쳐지면서 상대가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라 해도 굴복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물론 죽을 수도 있다. 허나 결코 치욕적인 죽음은 맞지 않겠다. 또한, 나를 죽이고자 한다면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닷새 동안 쉬지 않고 준비를 해온 한제는 전의가 절정에 달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가부좌를 튼 채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사방으로 맹렬하게 휘둘렀다. 이에 붉은 광풍이 사방에서 일어 순식간에 모든 황량한 대륙을 뒤덮었다.
각 대륙에는 수많은 흉수가 살고 있었다. 백 개에 달하는 대륙의 흉수들을 모두 합치면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문양 부족의 선조는 내게 문양 술법을 가르쳐줬다. 타산도 문양 술법을 내게 몰래 알려주었지. 흉수의 가죽으로 제련된 문양은 흉수의 정수를 취하면서 세상을 뒤흔들 법한 위력을 갖게 된다. 다만 이 술법에는 너무도 많은 생령이 필요해 가능한 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군.”
한제의 두 눈이 붉게 빛났고 입에서는 복잡한 주문이 새어나왔다. 주문은 하나하나의 문양이 되어 붉은 폭풍으로 녹아들더니 순식간에 모든 황량한 대륙을 뒤덮었다.
그 순간, 각 대륙에 살아가던 흉수들이 붉은 폭풍 속에서 몸을 바르르 떨며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그들은 급속도로 쪼그라들고 녹아내리면서 온몸의 정혈과 정수가 미간에 응집되어 붉은 문양을 형성했다.
그 많은 흉수들이 내지르는 비명은 온 하늘과 땅을 뒤덮고 5급 성역 전체로 퍼져나가 5급 성역에 속한 모든 수련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심지어 수준이 낮은 이들은 환각을 보는가 하면 심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강림
흉수들이 하나하나 무너져 내림에 따라 문양들이 떠올랐다. 온 세상을 뒤덮은 문양들에서는 쇄열기 후기 수련자도 순식간에 소멸시킬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이 발산됐다.
“오른손 검지에 모은 검기가 나의 첫 번째 반격이라면 대륙들에 세 가지 금제를 녹여 형성한 파멸적인 힘은 내가 준비한 두 번째 반격이다. 그리고 저 많은 흉수들로 만든 문양이 세 번째 반격이다! 이 세 가지 필살기 앞에서는 천쇠를 겪은 자라 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제는 이 전투에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캬오오오!”
뼛속까지 서늘해질 포효와 함께 저물공간에서 한 줄기 전광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봉인이 풀린 사신차로 형성된 뇌수가 나타났다.
한제는 곧장 오른손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