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16
노인의 곁에는 무극종의 종주가 어두운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아홉 개의 번개 공이 달려든 순간, 한제가 맹렬히 고개를 쳐들었다.
산봉우리에서 빠른 속도로 고신의 힘을 흡수한 그의 미간에는 어느새 세 번째 반점이 응집되고 있었다.
“번개!”
순간 한제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고 돌진하던 번개 공들이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곧장 검은 도포의 노인에게로 되돌아갔다.
검은 도포의 노인은 화들짝 놀라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소리와 함께 번개 공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기세에 사방이 진동했다.
“여 도우, 무극종은 도우를 박하지 않게 대했네. 당시 선음문 수련자들을 죽인 것에 대해서도 따져 묻기는커녕 도우가 원한 극음을 내주었지. 또한 귀원종을 7급 성역 종파로 만들어주고는 지난 10년간 한결같이 돌보았네. 한데 감사를 표하기는커녕 이게 뭐하는 짓인가! 설마 도우 혼자서 우리 무극종 전체에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극종 종주는 호통치듯 외쳤다.
한제는 말없이 무극종 종주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한숨을 내쉬었다.
“무극종에 큰 빚을 진 것은 알고 있네. 허나 내게는 지금 이게 꼭 필요해. 그간의 빚도 이 산봉우리를 빌린 것에 대한 대가도 반드시 갚겠네.”
산봉우리는 고신의 기운을 다시 뿜어내 끊임없이 한제의 체내로 주입했다. 이에 한제의 옷자락은 강하게 나풀거렸고 증폭된 고신의 기운에 그의 미간에는 네 번째 반점이 드러났다.
그 무렵, 한제에게 역공을 받은 검은 도포의 노인은 자신이 쏘아 보낸 신통력에 저항하느라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 상태로도 노인은 한제를 향해 돌진하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보라색 천둥번개를 소환했다.
한편, 무극종 종주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사실 그는 말과 달리 10년 전 한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귀원종을 더는 돌보지 않고 신종에 넘기려 했다. 신종과 적대적인 관계가 될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7척짜리 장검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마치 용과 같은 형태로 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실제로 용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검은 도포의 노인과 무극종 종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돌진해왔다.
그들이 눈앞까지 왔을 때, 한제는 오른손 검지를 뻗었다. 순간 그의 검지에서 흑백의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두 마리 사슴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10만 1백만 5백만 1천만 갈래의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수도자에게 부상을 입힐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검기들은 곧장 한 줄기의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가 수련성 전체에 울려 퍼졌고 검은 도포의 노인은 그대로 피를 토해내며 나가떨어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경악한 기색이었다.
무극종 종주의 표정 역시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검을 휘둘러 전방에 무궁무진한 검으로 이루어진 장막을 드리웠다.
장막은 펑, 펑 소리를 내며 검기에 저항했지만 한제가 소환한 검기의 공격에 끝없이 뒤로 물러나기만 할 뿐 감히 접근하지는 못했다.
‘여자호 저자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어.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난 무극종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산봉우리만 빌려준다면 후에 꼭 돌려줄 것이다!”
한제는 천만 개의 검기로 사방을 두른 채 진심을 담아 말했다.
“무극종이 무엇을 믿고 도우에게 그것을 빌려줘야 한단 말인가!”
무극종 종주는 검기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신종의 수도자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죽이려 했지. 허나 실패하고 중상을 입어 지금은 폐관수련 중이다! 피로써 맹세할 수도 있어!”
한제는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이 피로 이루어진 붉은색의 문양에는 한제의 혼백도 한 자락 포함되어 있었다.
붉은 문양은 검기로 구성된 폭풍 속에서 번득이며 무극종 종주의 앞까지 둥둥 떠갔다.
한제의 말에 무극종 종주와 그 곁에 있는 검은 도포의 노인은 심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신종의 수도자가 저자를 죽이는 데 실패했단 말인가!’
무극종 종주는 찬 숨을 들이켰다.
“입으로는 무슨 말이든 못하겠나. 세상에 믿을 사람이란 없는 법. 피로 맹세했다 해도 아무런 소용도 없네!”
벌써 두 번이나 뒤로 밀려난 검은 도포의 노인은 눈을 번득이더니 오른손을 들어 한제가 만들어낸 맹세의 문양을 꽉 움켜쥐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양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한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본래 고신의 법보는 무극종의 것이 아닌데도 이전의 관계를 고려해 진심을 다해 허락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피로써 맹세까지 했는데도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수련계에서는 언제나 강자가 존중받는 법이거늘⋯⋯.”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그때, 저 멀리서 돌연 네 갈래의 강력한 기운이 달려들었다. 무극종의 태상장로들이었다. 이들은 말도 섞지 않고 곧장 신통력을 발휘하며 산봉우리 위의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검은 도포의 노인이 비릿하게 웃더니 신통력을 발휘하며 돌진했다. 종주 역시 살기 어린 눈빛으로 달려들었다.
어마어마한 수준의 여섯 수련자는 반드시 한제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돌진해왔다. 여섯 갈래의 기운은 첫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의 기운과 맞먹었다.
“신종 대장로인 수도자의 손에서 살아남았다니,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허나 네가 신종의 미움을 산 것은 사실일 터! 너를 붙잡아 신종에 넘기면 포상이 있겠지!”
검은 도포의 노인이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한제는 천만 개의 검기를 사방으로 휘둘렀다. 순간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릴 듯 대지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한제가 선 산봉우리도 붕괴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고신의 힘이 물밀 듯이 그의 체내로 몰려들었다.
그때, 상상을 초월하는 위압감이 산봉우리 아래에서부터 퍼져 나왔다. 어떤 강력한 존재가 잠에서 깨 산봉우리 위로 솟구쳐 올라오려는 것만 같았다.
한제의 표정이 순간 급변하더니 곧장 저물공간을 소환해 옥패를 하나 꺼냈다. 이는 이천매의 명혼이 들어 있는 옥패였다.
한데 전처럼 따뜻하지도 않았고 그 위로는 제법 큰 한 줄기 균열이 일어났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일어났던 모든 균열보다 더 큰 것이었다.
명혼 옥패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은 이천매가 생사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녀의 숨이 끊어진다면 옥패는 둘로 갈라질 터였다.
옥패에 균열이 일어나자 백의의 노파의 얼굴 위로 슬픔이 묻어났다.
멍하니 옥패를 바라보던 한제는 심상(心狀)의 통증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찰나의 순간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균열은 이내 멈추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한제가 빠드득 이를 가는 순간, 공간을 쪼갤 듯한 기운이 폭발했다.
콰르릉!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한제의 미간에는 다섯 번째 반점이 응집되었고 곧이어 여섯 번째 반점도 모습을 드러냈다.
진정한 6성급 왕족 고신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한제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저 조급할 뿐이었다.
이천매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은 없다. 누구든 앞길을 가로막게 둘 수는 없었다.
무극종의 장로 여섯에게 1천만 개의 검기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장로들은 신통력으로 온몸을 감싼 채 놀랄 만한 위력이 깃든 공격을 퍼부었다.
그때, 한제가 크게 발을 굴렀다.
“네놈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고신의 힘이 섞인 그의 발이 땅을 치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력에 산봉우리에는 줄기줄기 균열이 일어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모래 먼지가 가득 일었고 자갈들과 한데 섞여 폭풍을 이루었다.
사실 한제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고신의 기운만 흡수하고 법기를 챙겨 떠나려 했을 뿐 무극종을 무너뜨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들이 방자하게 구는 데다가 시간이 부족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너져 내린 산봉우리에서 흘러넘칠 듯 강렬한 고신의 기운이 튀어나와 곧장 한제에게 흡수됐다. 동시에 그의 미간에 나타난 고신의 반점 여섯 개가 급속도로 회전했고 일곱 번째 반점이 어렴풋이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 순간, 한제는 훌쩍 튀어 올라 무너져 내린 산봉우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러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붕괴한 산봉우리 안쪽에서 솟구쳐 올랐다.
한 줄기의 붉은 빛 안에 손바닥만 한 검이 한 자루 있었다. 피로 이루어진 검의 표면에서 번득이는 붉은 액체가 흘렀고 웅웅 우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검명(劍鳴)에는 수만 년간 억눌려 왔다가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흥분이 묻어 있었다.
한제는 검에 닿은 순간, 검과 자신이 피로 이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이 검이 처음부터 그의 것이었던 것만 같았다.
그때, 무극종 장로들이 천만 개의 검기를 뚫고 달려들었다. 이에 한제는 모든 고신의 힘을 핏빛 검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이 눈부신 붉은 빛을 번득였다.
콰쾅! 쾅! 펑!
요란한 폭발음과 충돌음이 상상을 초월하는 기세로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것은 검은 도포의 노인은 순식간에 육신이 핏물로 변해버렸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몸부림을 쳐 뒤로 물러난 그의 원신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뒤이어 다음으로 가까이 있던 장로도 육신을 잃었다.
“크윽!”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머지 네 명의 장로도 피를 토해내며 물러났다. 허나 붉은 빛은 순식간에 그들을 관통했고 넷 모두 붉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순식간에 바짝 말라 피골이 상접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저… 저게 대체 무슨 검이란 말인가!”
검 한 자루에 첫 번째 천쇠를 겪은 여섯 수련자들 중 둘은 육신을 잃고 나머지 역시 전부 부상을 입었다. 그나마 한제가 누구도 죽이지 않으려 했기에 그 정도에서 그친 것이지, 마음만 먹었다면 첫 두 장로에게는 원신조차 남지 않았을 터였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백의의 노파를 데리고 멀어져갔다. 무극종 여섯 장로 중 누구도 감히 막아서지 못했다.
“곧 다시 돌아오겠다. 귀원종에 조금의 피해라도 끼친다면 너희 여섯은 물론 무극종 또한 운해성역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좋은 말도 피의 맹세도 통하지 않는다면 힘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수련계에서는 언제나 강자가 존중받는 법이다.
요종의 균열
한제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검은 붉은 빛을 번득이더니 붉은 핏방울로 변해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이게 몇 성급 고신이 제련한 법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위력이 상당하군. 6성급 고신인 지금의 나로서는 그 위력의 3할밖에 발휘할 수 없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첫 번째 천쇠를 겪은 수련자 여섯을 물리칠 수 있다니!’
한제는 생각에 잠긴 채 속도를 높여 굉음을 내며 우주를 가로질렀다.
‘수도자와 싸우기 전 나는 쇄열기에 반 발짝 정도 들어선 상태에 불과함에도 첫 번째 천쇠를 겪은 수련자와 싸울 수 있었다. 그때는 승부를 내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했지. 허나 지금은 도경 속에서 첫 번째 도술을 깨닫고 스스로를 강화한 덕분에 수준의 봉인을 풀지 않은 상태로도 첫 번째 천쇠를 겪은 수련자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어. 두 번째 천쇠를 겪은 수련자라면 벅차긴 해도 이 고신의 법기까지 있다면 해볼 만하다!’
한 번의 천쇠를 겪을 때마다 그 차이는 엄청났다. 천쇠는 실패하면 목숨을 잃는 대신 성공하면 상상을 초월할 힘을 얻게 되는 법이다. 말하자면 목숨을 힘으로 바꾸는 셈인 만큼 그 간극은 컸다.
‘내가 봉인을 연다면 수준은 증폭될 터. 천역주의 도경에서 오랫동안 깨달음을 얻은 덕분에 봉인을 열면 단번에 쇄열기 중기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두 번째 천쇠를 겪은 자라도 내 적수가 되지는 못할 터. 세 번째 천쇠를 겪은 자와도 겨뤄볼 만하다!’
마치 온 세상을 움켜쥔 듯한 자신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순간 수도자를 죽이고 당시 칠석술로 나를 속인, 나천 성역 상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가문의 선조를 죽일 테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란 전설적인 존재였다. 얼마 전까지는 한제도 그들을 전신(戰神)으로 여겼다.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거대한 산이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수준이 높아진 데다가 수도자와의 결투를 치렀고 도경 안에서 깨달음까지 얻은 그에게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는 이제 죽여야 할 대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럴 자신이 있었다.
생각이 정리됐을 무렵, 한제는 8급 성역을 지나쳐 난생 처음 9급 성역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