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2
화분맹의 4대 문파 중 전신전, 낙하문, 그리고 사마종만 산봉우리 위에 머물렀다. 시음종은 4성 수련국에서 화염 마수들을 다 처리하자 곧장 화분국 국경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이런 행동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화분국의 화염 마수들은 이미 처리되었지만 불 속성의 영기가 폭주하듯 날뛰고 있어 호흡조차 힘든 상태였다. 이에 화분국은 아직도 수련자들에게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위험한 곳으로 인지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시음종은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철수했다.
나머지 세 종파 입장에서 시음종은 무척 비밀스러운 존재였다. 시음종에 원영기 수련자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음종의 원영기 수련자 체내는 두려운 힘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때문에 시음종의 행동에 대해 나머지 세 종파는 어떤 저지도 하지 않았다.
화분국 서쪽 국경, 끝없이 연이어 자리한 화산들 아래에는 거대한 동굴 하나가 있었다. 이 동굴은 하나하나 석실로 연결된, 거대한 지하 세계였다.
조나라의 시음종과 구조는 비슷했지만 크기는 이쪽이 훨씬 컸다.
시음종의 종주인 조전랑은 한 석실에 꿇어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무수히 많은 마름모 형태의 발광체들이 서로 교차되어 불규칙적인 수정 형태를 이룬 상태였다. 조전랑의 태도는 매우 공손했으며, 심지어 두려워하는 기색마저 보였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종(上宗), 그 일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살필 테니 말미를 좀 더 주십시오. 4876이 실종된 원인을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그러자 마름모 형태의 수정 속에서 흉악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더니 포효하듯 소리쳤다.
“내가 네게 말미를 주면 내게는 누가 말미를 주겠느냐? 4876은 4성 수련국인 천강국의 천강종 제자이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지부도 천강종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지금 상대 쪽에서는 그자를 요구하고 있고 약속된 기한에 따르면 4876은 일찍이 새로운 몸과의 융합을 끝냈어야 해. 날더러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냐?”
조전랑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답했다.
“상종, 실마리는 찾아냈습니다. 4876이 실종된 곳을 찾았어요. 그리고 여러 현상들을 분석한 끝에 마량이라는 전신전의 제자 하나가 이 일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과 사람을 보내 그자가 선무국에 나타났다는 정보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열흘만 더 기다려주시면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겠습니다.”
수정 속에 나타난 사람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는 조전랑을 힐끗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지금 내 육신을 보아 열흘의 시간을 주지. 허나 열흘 뒤에도 성과가 없다면 넌 내가 이 일에 대해 5성 지부에 보고한다고 해도 원망해서는 안 될 것이다. 5성 지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너는 새로운 육신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하겠지.”
말을 마친 수정 속의 얼굴이 천천히 사라졌다.
조전랑은 녹초가 되어 주저앉으며 쓰게 웃었다.
“4786은 천강성 사람이니 그곳에서 육신을 바꿨다면 훨씬 좋았을 거 아냐. 왜 굳이 여기에 일을 넘겨서는… 흥!”
사실 그 나라의 수련자들은 육신을 바꾸는 작업을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진행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네 기회를 뺏는단다, 조전랑.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군.”
음산한 목소리가 조전랑의 몸속에서 흘러나왔다.
영력의 실
“양유재, 너라면 어떻게 할래?”
조전랑은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몰라. 하지만 내가 조나라 시음종 종주일 때 이런 일을 겪어보긴 했지. 당시 내 사제도 꽤 비슷한 상황에 빠졌어. 약간 달랐지만 말이야. 아무튼 4876의 영혼의 등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건 그 자가 죽지 않았다는 뜻이잖아.
그 자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네가 위험해지겠지. 그런데 궁금하군. 아까 상종이 지금 자신의 육신을 보아 네게 열흘의 시간을 주겠다고 했잖아? 그의 육신이 너와 무슨 관계가 있지?”
“내 동생이야. 우리 둘은 4백 년 전 함께 시음종에 들어왔지. 동생은 자질이 매우 훌륭해 상종이 차지할 육신으로 선택되었어.”
조전랑은 덤덤한 말투로 천천히 말했다.
“흥! 만약 내가 전에 선택한 그 시체를 5성 수련국 지부에 들켜서 빼앗기지만 않았다면 지금 난 벌써 수준을 회복해서 육신을 빼앗는 데도 성공했을 텐데.”
양유재가 차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난 조전랑은 옥패 하나를 꺼내 이마에 올려놓았다가 내던졌다.
“시음종의 결단기 이상 수련자들은 나를 따라 화분맹으로 향한다!”
그의 냉정한 목소리에 시음종 석실에서 폐관 수련을 하고 있던 제자들이 모두 분분히 눈을 떴다. 어스름한 빛이 그들의 눈에서 번득였다.
★ ★ ★
신도술이 현묘하긴 하지만 자신이 수련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한제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래도 신도술의 내용이 이전처럼 새까맣게 잊히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기뻤다.
다만 시험 삼아 옥패에 기록해보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모종의 저항력이 신도술에 대해 기록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한제는 탁본하려는 생각을 접고 사방의 수경문을 바라보았다. 각각의 수경문 뒤로는 새까만 어둠뿐이라 그 안의 상황은 살필 수 없었다.
한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신식을 펼쳐보았다. 하지만 신식은 수경문에 닿자마자 마치 장애물에 가로막힌 듯 튕겨 나왔다.
동굴의 출구인 거대한 수경문 밖에서는 붉은 얼굴의 노인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으나, 한제는 조심스레 몸을 날려 수경문 중 하나에 손을 뻗어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서늘한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그가 팔의 반 정도를 집어넣었을 때 돌벽 하나가 만져졌다.
손을 거두고 수경문을 응시한 채 한동안 침묵한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려 전신전의 연기술이 기록된 옥패를 꺼내 신식으로 그 안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일체의 법보는 모두 전신전 연기술의 세 단계인 고르기, 섞기, 합하기 과정을 통해 단련된다. 그런데 한참 동안 그 옥패를 살피던 한제는 역류술(逆流術)의 설명을 찾아냈다.
역류술은 본래 연기술을 행하는 자들끼리 상호 교류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상대의 법보를 연역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합하기 단계에서부터 시작해 최종적으로 법보를 원래 상태로 환원시키는 수단이었다.
오랫동안 역류술(逆流術)을 연습하다보면 법보를 단련시키는 경험을 여러 번 할 수도 있었고 역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장점도 배울 수 있었다. 다만 이 역류술은 오직 고르기, 섞기, 합하기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법보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한제는 그 내용을 자세히 살피다가 옥패를 집어넣고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열 손가락을 합쳤다. 두 손에 응집된 체내의 영력은 천천히 펼쳐지는 두 손 사이에서 실 형태로 나타났다.
한제가 중얼거렸다.
“가라.”
영력의 실은 중간에서 끊어져 하나하나 빠르게 수경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 실들의 한쪽 끝은 한제의 두 손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한제의 두 손에서 무수히 많은 실들이 뻗어 나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 영력의 실들은 수경문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흘러넘치는 한제의 영력에 따라 영력의 실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또 점점 더 길어지더니 곧 수경문을 꽁꽁 감싸버렸다.
연기술의 합하기 단계는 사실 법보를 깎아내 그 안의 영력과 진을 법보의 배(胚)와 완벽하게 융합시켜 신비로운 평형상태를 이루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역류술은 그와 반대로 먼저 이 평형을 파괴해야 했다. 그에 성공하면 합하기 단계가 곧장 취소됐다.
영력은 끊임없이 수경문 쪽으로 흘러들어갔고 한제는 평온한 시선으로 수경문을 응시했다.
돌연, 한제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더니 두 손에서 흘러넘치듯 나온 가느다란 영력의 실들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한 줄기 눈부신 빛이 수경문 안에서 나타났다.
쩌적.
이 빛은 미약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찢어졌고 완벽하게 파괴된 순간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수경문 가장자리까지 확산됐다가 사라져버렸다.
온 수경문이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한제는 합하기 단계의 평형이 완벽하게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섞기 단계를 거슬러 융합되어 있는 법보의 배(胚)와 영력의 구슬을 분리해내는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한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영력의 실을 통제하여 천천히 회수했다.
가느다란 실들이 회수되자 수경문에서 일어난 잔잔한 물결이 일어났고 문 가장자리가 밝게 빛났다. 이 빛은 천천히 축소되더니 결국 중심부로 모여들어 수정과 같은 빛 구슬을 형성했다.
이 빛 구슬은 한제의 손에서 나온 무수히 많은 얇은 실들에 연결되어 있었다.
“회수!”
한제가 낮게 외치자 빛의 구슬에 연결된 선이 곧장 당겨졌고 빛 구슬이 돌벽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 순간, 한제의 두 손이 바르르 떨리더니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얇은 실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한제는 허공에 떠 있는 빛 구슬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역류술의 두 번째 단계인 섞기 단계까지 되돌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이제 전신전 연기술에 활용된 영력 구슬은 법보의 배(胚)와 완벽하게 분리됐다.
“휴!”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돌려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 대체 며칠이나 머물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수경문은 신식의 파동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안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든 밖에 있는 사람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게다가 붉은 얼굴의 노인은 한제를 결단기 수준으로 알고 있으니 수경문을 파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동굴 안쪽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 역시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노인이 갑자기 들어오거나 몰래 들여다볼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려 열네 번째 골짜기에서 얻은 마수의 두개골로 만든 반응로를 꺼내 공중에 떠있는 빛 구슬을 조심스럽게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영결(靈決)을 반응로에 찍어냈다. 그러자 반응로는 진동하더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영결을 마친 한제는 법보의 배(胚)인 돌벽 쪽으로 향했다.
이 수경문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법보의 배(胚)인 돌벽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료인 영력의 구슬이었다. 두 가지 재료를 결합하여 만들어낸 수경문이었지만 지금은 한제에 의해 다시 둘로 나뉘었기 때문에 한제의 앞에 있는 것은 보통의 돌벽에 불과했다.
한제는 뻗은 손을 돌벽에 대고 신식을 펼쳐 투입시켰다. 그런데 석실 안을 한 번 살피던 한제의 얼굴이 곧장 기괴하게 변해갔다.
석실 안에는 시체가 한 구 있었다. 시체는 보이지 않는 힘에 지지되고 있는 듯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그런데 시커먼 기체가 시체의 뼈에서 흘러나와 손가락을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한제는 그것을 자세히 관찰한 뒤 신식을 거두고는 빠르게 돌고 있는 반응로 안을 들여다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반응로는 우뚝 멈추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영력의 빛 구슬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색이 약간 어두워져 있었다.
한제는 그것을 보다가 다시 반응로 안에 집어넣었다. 반응로는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한제의 눈은 석실을 향했다. 같은 방식으로 열 개가 넘는 수경문을 연 한제의 얼굴은 갈수록 굳어갔다.
“전신전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설마 여기는 공동묘지인 건가?”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각각의 석실 안에는 한 구의 시체만 놓여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한제는 사방을 둘러보며 잠시 침묵한 뒤 다시 하나하나 탐색하기 시작했다. 석실을 열 때마다 그 안을 샅샅이 뒤진 한제는 영력 구슬을 통제해 수경문을 다시 처음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한데 마지막 석실까지 열어본 한제는 방금 막 문을 연 석실 안에 신식을 집어넣자마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석실 안에 있는 시체는 다른 시체들과 분명 달랐던 것이다.
이 시체는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둥둥 떠 있었으며, 검은색 기체는 석실 내 사방에서 천천히 발산되어 얇은 실 형태로 허공에 떠 있는 시체에 연결되어 있었다.
즉 이 시체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생명의 파동이 느껴졌으며, 그 파동으로 볼 때 아주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정도의 생명력이었다.
한제는 앞뒤 잴 것 없이 곧장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시선은 시체 아래쪽에 놓인 포대에 이르렀다. 금색 실로 수놓아진 검은색의 포대였다. 저물대인 모양이었다.
한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경거망동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신식을 거둔 뒤 얼른 뒤로 물러났다.
석실 밖으로 나온 한제는 회전 속도가 약간 느려진 반응로를 쥐었다. 그 안에 들어있던 빛 구슬은 이미 수정처럼 반짝이는 액체로 녹아 있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그것을 뿌렸다.
반 정도의 액체로 두 손을 적신 한제는 영결을 집어넣은 뒤 맨 마지막으로 열었던 석실의 외벽으로 그것을 내던졌다. 그 석실도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약간 머뭇거렸다. 그 저물대의 겉모습은 그가 여태까지 봐왔던 저물대와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이곳은 전신전의 땅이었다. 그를 위해 특별히 신도술까지 보여주었는데 이곳에 있던 것을 훔치기까지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석실 안에 있는 것이 연기술에 필요한 재료 정도였다면 조금 가져가도 괜찮겠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석실 중 오직 그 석실에만 존재하는 저물대는 분명 이상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의 머릿속에 번뜩 무슨 생각이 스쳐갔다. 각각의 석실 안에 들어가 있는 시체들이 그 특수한 석실에 있는 시체의 수련을 위한 재료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의 마음이 떨렸다. 마지막 방에서 보았던 시체의 몸에 연결된 검은색 기체와 각각의 석실 안에 자리한 시체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기체는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