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20
“캬오오오!”
“크아아!”
흉수들의 포효가 사방에서 울렸다.
한제는 수천 척 떨어진 곳에서 각양각색의 흉수들이 자신과 용을 포위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어도 수만 마리는 될 듯했다.
녀석들은 빛에 매우 민감한 듯 격렬하게 포효를 내지르면서도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흡혈마수
금색 섬광은 이내 사라졌고 세상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이 세상의 왕수 중 하나인 구유 심연의 용은 왕수만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에 흉수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고 한제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허나 녀석들은 대부분 한제의 존재를 감지한 탓에 멀리 떠나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구유 심연의 용 때문에 다가오지는 못하면서도 주위를 포위한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제는 사방의 흉수들을 똑똑히 살폈다. 대부분은 8, 9급이었고 10급 이상 흉수는 많지 않았다.
빛은 금세 흩어져 사라졌지만 용의 정수리에 가부좌를 튼 한제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캬오오오!”
한제가 신식으로 명을 내리자 용이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자 흉수들이 물러나며 길을 내어주었고 용은 마치 한 줄기의 유성처럼 질주했다.
이곳에서는 낮밤의 구별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허나 그는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칠흑처럼 어두운 세상이 점차 변화를 일으켜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
용의 속도도 점차 느려졌다. 녀석의 영혼에서는 기이한 떨림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보랏빛 세상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만약 한제의 신식이 체내에 맴돌지 않았다면 녀석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방을 포위한 흉수는 오히려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기존의 흉수들이 떨어져나간 대신 더 많은 수의 보랏빛 세상 흉수들이 몰려든 탓이었다.
한제는 속도에 근거해 균열의 입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곳은 옥패 속 지도에서 균열의 자계(紫界)라 칭한 곳의 가장자리일 터였다. 옥패에 표시된 통로의 끄트머리와 매우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한제는 두 눈을 감은 채 주위 상황을 묵묵히 느꼈다. 이내 그는 아주 어렴풋하고 희미한 한 줄기 파동을 감지했다.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가 쏘아 보낸 신통력 같았다.
아직 통로의 끄트머리까지는 어느 정도 거리가 남은 상황. 게다가 한제는 자신이 제대로 왔는지도 알 수 없었고 이천매와 관련한 단서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균열의 세상 속에 들어온 이래 몇 갈래의 매우 강력한 기운을 느끼기도 했다. 그 기운들 역시 한제의 존재를 눈치 챈 듯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를 막거나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이천매의 단서라고 할 수 있는 파동을 느꼈다. 아주 희미한 파동이었지만 분명 수련자의 것이 틀림없었다.
“이천매, 당신인가?”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원력이 격렬히 진동했다.
원신의 진동 속에서 흐릿한 신통력의 파동이 기이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세상이 단숨에 뒤바뀌고 어둠이 사라지면서 하나하나의 수직선들로 대체되었다.
“유월⋯⋯ 역전⋯⋯.”
한제의 번득이는 두 눈이 어둠을 관통했다.
어둠을 대체했던 수직선들은 순간 꾸물거리면서 새롭게 배열되었고 그의 시야에 비친 세상의 시간은 기이한 힘에 의해 거슬러 올라갔다.
왜곡되던 허공에서 이내 한 여인의 인영이 나타났다.
안색은 매우 창백했고 백의에는 끔찍한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그녀는 손에 검을 든 채 주위를 맴도는 금빛의 붓 한 자루와 함께 허공을 질주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매우 허약해 보였다. 피골이 상접했으며, 눈빛도 흐렸다.
거대한 채찍과도 같은 허상이 여인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검을 휘둘러 맞섰다.
쾅!
짧은 충돌음이 울려 퍼졌고 그녀는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냈으며,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허나 그 와중에도 채찍의 허상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왜곡된 허상이 바들바들 떨면서 무너져 내렸고 흐릿한 신통력의 파동이 사라졌다.
이전과 여러모로 달라져 있었지만 한제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천매!”
변해버린 모습에 한제는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다.
이 고통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용의 체내까지 관통했고 용은 낮게 비명을 내지르더니 다시 날렸다.
심지어 속도도 더 빨라진 상태였다.
녀석은 보랏빛 세상을 빠르게 가로질렀지만 깊이 들어설수록 떨림은 격렬해졌다.
자칫 혼백마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쿠오오오!”
잠시 후, 용은 슬프게 울부짖더니 벌벌 떨면서 멈춰 섰다. 한제가 신식을 통해 자극을 주어도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보랏빛 세상을 맴도는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을 느낀 탓이리라.
녀석은 심지어 뒤로 물러나려 들었다.
녀석에게 더 큰 자극을 주어 이동하려던 한제는 흠칫하더니 이천매의 명혼 옥패를 꺼냈다. 옥패는 순식간에 쩍 하고 더 크게 갈라졌다. 이천매의 명혼이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것처럼 허약해진 상태였다.
“이천매…”
한제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콱 움켜진 듯 숨이 막혔다. 그는 용을 내버려둔 채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으며 몸을 날렸다.
구유 심연의 용이 발하던 위엄에서 벗어난 순간, 사방에서 강력한 흉수들이 몰려들었다. 보랏빛 세상에 머물던 녀석들이었다.
가장 먼저 거북이처럼 생긴 수천 척의 흉수가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며 나타났다.
한제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짧은 충돌음. 그것으로 끝이었다. 거북이 흉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피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한제는 피 안개를 뚫고 돌진했다. 사방에서 흉수들이 끔찍한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었고 요란한 소리가 이어졌다.
한제는 앞을 가로막는 그 무엇도 용서치 않았다. 마치 죽음의 신처럼 두 손을 휘둘렀고 다가오던 흉수들은 하나하나 사라져갔다.
그렇게 죽어가는 흉수의 수는 점점 늘어갔지만 달려드는 흉수가 더 빨리 늘어났다. 이에 한제의 두 눈이 붉게 번득이더니 오른손의 결인에 따라 천만 개의 검기가 나타났다.
검기가 사방을 휩쓸자 흉수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놈들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한제를 둘러싼 흉수는 수천에 달했고 심지어 더 늘어나고 있었다.
한제의 눈빛에 살기가 들어차더니 이내 그의 몸을 중심으로 남색 화염이 피어올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꾸에엑!”
“캬아아!”
불길에 닿은 흉수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활활 타올라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화염은 순식간에 반경 수만 척까지 확산됐고 그 범위에는 살아남은 흉수가 없었다.
그 틈을 타 한제는 전속력으로 돌진했으나, 잠시 후 더 많은 흉수들에게 둘러싸였다.
“짐승들 주제에 감히…”
한제는 빠드득 이를 갈더니 전보다 더 서늘한 눈빛으로 오른손을 휘둘렀고 그러자 칠흑 같은 세상에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은빛 뱀과 같은 천둥번개는 수많은 번개 공으로 변해 주제도 모르고 달려드는 흉수들을 응징했다.
콰쾅! 쾅! 펑!
요란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제는 튀어나가며 체내에서 매서운 기운을 내뿜었다. 그 기운이 닿은 흉수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짙은 피비린내가 주위를 가득 메우는 동안 한제를 가로막는 데 성공한 흉수는 한 마리도 없었다.
다시 달려드는 수많은 흉수들을 본 한제는 오른손을 짧게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손바닥 하나가 나타나더니 곧장 대량의 원력을 흡수하면서 실체를 갖춰갔다.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손바닥은 빠르게 나아가며 앞을 막은 모든 존재를 파멸시켰다.
한제는 역령인의 도움 아래 흉수들을 처리하며 파죽지세로 통로의 끄트머리를 향해 나아갔다.
이제 더 이상 지도 옥패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서늘함에 원신조차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역령인 위에도 서리가 생기더니 이내 완전히 얼었고 잠시 후에는 완전히 멎어버렸다.
그 순간,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백색 기운이 군데군데 나타나더니 흉수로 변했다. 이 흉수들은 서로 생김새는 달랐으나, 하나같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녀석들보다 포악하고 강렬해 보였다.
“캬오오오!”
녀석들은 나타나자마자 포효를 내지르고는 달려들었다. 이내 한제는 또다시 흉수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이고야 말았다.
“자비 따위는 베풀지 않겠다.”
한제는 이를 갈며 내뱉더니 저물공간을 소환했다.
“나와라!”
짧은 외침에 이어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흡혈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1백 마리, 1천 마리⋯⋯ 1만 마리!
눈 깜짝할 사이 나타난 1만 마리의 흡혈마수는 곧장 한제를 둘러싼 흉수들에게 덤벼들었다.
한제는 그 틈에 극강의 기운을 내뿜으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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