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28
체내로 녹아든 주작은 곧장 한제의 온몸을 자양하고 원신을 회복시켰다. 이에 한제는 청룡과 백호, 현무에 대적할 충분한 힘을 갖게 됐다.
허나 천벌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공격은 오히려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때, 흐릿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여전히 무정하고 여전히 냉랭하며, 여전히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목소리.
“삼재(三才)⋯⋯ 무량⋯⋯.”
삼재라 함은 해와 달, 별에 대응하는 하늘과 땅,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목소리가 울려 퍼짐에 따라 허무의 공간이 혼란스레 뒤섞이기 시작했다.
하늘은 태양이 되어 기원의 규칙을 발산했다. 만물의 기운은 이 허무의 공간을 가득 채우려는 듯 확산됐다.
땅은 달이 되어 기원의 규칙과 반대되는 종말의 규칙을 발산했다. 이 규칙 역시 허무의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사람은 별이 되어 혼돈에 녹아드는 한편 한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규칙의 힘을 발산했다. 이 규칙은 기원에도 종말에도 속하지 않았다.
세 개의 전혀 다른 힘은 햇빛, 달빛, 별빛이 되어 한제에게 돌진해왔다. 그 안에 담긴 힘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양의(兩儀)⋯⋯ 무량⋯⋯.”
흐릿한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고 곧장 허무의 공간에 두 개의 상징이 나타났다.
양의는 음양의 힘이자 생사의 힘이며 인과의 힘이었다. 세상 그 어떤 존재도 그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양의는 사상으로 승급되고 사상은 구궁이 되어 삼재와 서로 호응하면서 놀랄 만한 힘을 형성한다.
이때 양의는 허공에 거대한 태극 문양으로 나타나 있었다.
태극 문양은 한제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르릉!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태극 문양이 수축하면서 돌진해왔다.
동시에 삼재의 빛도 달려들었다. 한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었다. 하늘의 빛은 미간을 땅의 빛은 가슴을 마지막 사람의 빛은 네 갈래로 나뉘어 한제의 사지를 관통했다.
그 순간, 양의로 이루어진 음양의 태극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축하면서 온몸을 뒤덮었다.
콰쾅!
6성급 고신의 육신으로도 감당할 수는 없는 파멸적인 힘에 한제의 살이 뭉그러졌고 피가 터져 나왔다. 한제는 그 와중에도 이천매만큼은 철저히 지켜냈다.
한제의 육신이 무너져 내린 순간,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겁(一劫)⋯⋯ 무량 천벌의 시작⋯⋯.”
허무의 공간이 무너져 내릴 듯 곳곳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구궁, 팔괘, 칠성, 육합, 오행, 사상, 삼재, 양의가 모두 나타나 서로 뒤얽히더니 그 안에서 한 줄기 엄청난 힘이 생겨났다.
“극…”
그때, 놀라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한제의 체내에서 구궁부터 양의까지의 천벌이 모두 나타나더니, 그 뒤를 이어 극까지 생겨난 것이다.
진정한 무량 천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구궁을 이루고 있는 아홉 개의 운석이 하나의 도안을 드러내듯 배치되었다. 그 안에서는 팔괘가 번득이며 회전했고 또 그 안에는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칠성이 있었다. 다시 칠성 안에는 육합의 여섯 거북이 등껍질이 퍼져 있었고 그 너머로 오행이 흘렀다. 층층의 오행 안에서는 사령이 맴돌면서 기이한 소리와 함께 줄기줄기 파문이 퍼져 나갔다. 그 안으로는 하늘, 땅, 사람의 삼재가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빛을 발해 칠흑 같은 허공을 밝혔고 정중앙에는 양의가 버티고 있었다.
양의의 양과 음은 태극 도안을 이룬 채 회전하면서 외부의 천벌도 콰르릉 소리와 함께 점점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한데 각 층마다 자리한 천벌의 회전 속도는 서로 달라 여덟 개의 회오리를 이루었고 서서히 하나로 융합됐다.
콰르릉!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양의의 태극 도안에서 한 줄기 강렬한 빛이 튀어나왔다. 아무런 색채가 없었으나 기이하게도 극의 느낌을 풍기는 빛, 극의 경계였다.
그때, 한제의 체내에서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각각의 천벌이 똑같은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고 정중앙의 태극 도안 역시 극의 경계를 만들어냈다.
그 순간, 한제의 육신은 무너져 내리기를 멈추었고 원신도 더 이상 흩어지지 않았다.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붉은 번개가 눈동자에서 번득였다. 1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제의 눈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극의 경계를 뜻하는 붉은 번개였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마구 나풀거리는 한제의 머리카락은 뿌리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붉은 빛에 따라 새빨갛게 물들었다. 피를 방불케하는 붉은색.
두 눈에서 번득이는 붉은 번개 역시 갈수록 격렬해지지더니 체내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가 발산됐고 이내 극의 경계가 강림했다. 죽음을 불사한 결의로 무량 천벌에 맞서면서 다시 한번 극의 경계가 탄생한 것이다.
순간, 천벌로 이루어진 도안에서 극의 경계가 일어나 붉은 번개가 되더니 한제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오너라! 하하하!”
한제는 길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신의 오른손을 향해 두 눈에서 붉은 번개를 쏘아 보냈다. 이어서 그 손으로 천벌이 쏘아 보낸 극의 경계를 단숨에 움켜쥐었다. 그 순간, 파멸적인 힘이 체내로 밀려들었다.
쾅!
뒤로 밀려난 한제는 봉계의 진과 충돌했다.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삼아 극의 경계의 힘을 이용해 봉계의 진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릉!
기이한 소리와 함께 진 안에서 기령(器靈)이 나타나 반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진 위에서 푸른색의 얇은 실이 수도 없이 나타나더니 기령을 옭아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천벌의 힘은 한제의 몸을 타고 봉계의 진에 계속해서 쏟아졌다. 그러자 격렬하게 떨리면서 강렬하게 번득이던 진은 불룩 부풀어 오르며 끝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너져라!”
한제는 두 눈으로 붉은 번개를 번득이면서 오른손으로 봉계의 진을 후려쳤다. 체내에서 만들어낸 극의 경계가 봉계의 진을 향해 튀어나가더니 두 갈래 극의 경계가 합쳐져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꽝!
그 순간, 봉계의 진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실들이 더욱 늘어나더니 하나하나 파문이 되어 진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한제의 뒤로 길게 늘어나던 그물망 같은 진에 미세한 틈이 하나 생겨났다.
쉬익!
틈이 나타난 순간, 봉계의 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탁삼이 선조의 것이라 했던 도끼가 나타났다.
그러나 진에서 피어오른 푸른 실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도끼에 대항했다.
“왜 빨리 떠나지 않지? 무얼 기다리는 것이냐?”
진 안에서 봉계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한제의 등 뒤에 나타난 틈이 조금 더 벌어졌다.
한제는 곧장 몸을 축소시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이천매를 안고는 봉계의 진을 관통했다.
눈앞에 낯선 세상인 태고의 성신이 펼쳐졌다. 저 멀리서는 수백 명의 수련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태고 성신의 사람들…
한제가 봉계의 진을 관통한 순간, 수많은 푸른색 실에 뒤얽힌 채 바르르 진동하던 고신족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한 줄기 빛이 하늘을 가르며 한제를 향해 돌진해왔다.
“고신의 법기가 감히 주인을 해하려 하느냐!”
한제가 매섭게 호통을 치자 도끼가 곧장 우뚝 멈춰 섰다. 그러나 이내 몸부림을 치듯 바들바들 떨더니 결국 한제의 가슴을 관통했다.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생겨난 한제는 피를 울컥 토해냈고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이미 천벌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도끼의 공격까지 받자 원신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도끼에 담긴 고신의 기운 때문인지 육신도 쉬이 회복되지 않았다.
한제는 시야가 흐릿해졌으나, 그 와중에도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봉계의 진에 생겨난 틈이 빠르게 아물더니 이내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진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실들만이 그 틈에 뿌리를 내리듯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거대한 도끼는 봉계의 진에 막힌 채 한제를 노려보듯 가만히 서 있다가 점차 흩어지더니 진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그 무렵,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진을 지키고 있던 태고 성신의 수련자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한제를 향한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계외와 계내 사이의 갈등에는 이유가 없었다. 서로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죽여라! 계내에서 온 자다!”
“저자를 죽이면 상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진의 영에 의해 부상을 입었어! 당장 죽여야 한다!”
태고 성신의 수련자들은 살기를 감추지 않은 채 빛줄기가 되어 달려들었다. 수준은 제각각이라 가장 약한 자는 정열기에 불과했다. 허나 쇄열기 절정에 이른 수련자도 있었다.
“죽으려고 환장을 하는구나!”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한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백 명의 수련자들을 서늘한 눈으로 노려보며 외쳤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이 진을 깨고 너희를 도륙할 것이다! 계외에 피로 이루어진 강이 흐르게 만들 것이야!”
칠채계에서 보았던 선인들의 분노에 찬 포효가 귓가에서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이에 한제의 눈빛은 점차 싸늘하게 변해갔다.
그런 눈으로 한제는 멀어지고 있는 봉계의 진을 바라보았다. 계내의 수련자들에게는 아득한 세월만큼이나 요원하게 느껴지는 장벽이었다.
그는 코앞까지 다가온 계외의 수련자들을 노려보며 결인을 그린 왼손으로 가슴팍을 연거푸 두드리고는 한제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선술⋯⋯ 절천법(絶天法)!”
광기에 사로잡힌 청수는 뇌의 선계에서 살육을 저지른 뒤 수련자들의 원신과 육신을 삼켜 부상을 회복한 적이 있다.
절천법은 그때 청수가 만들어낸 것으로 사실 선술이라기보다는 마공(魔功)에 가까웠다.
청수는 이를 한제에게만 전수했다. 그러니 계내와 계외를 통틀어 이 선술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제와 청수뿐이고 한제로서는 처음 발휘해보는 것이었다.
선술을 발휘한 순간, 한제는 마치 해골로 변한 것처럼 온몸의 기운이 메말라버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광기 어린 기운이 체내에서 폭발하듯 튀어나가면서 가슴의 상처에서 흐르던 피도 멎어버렸다.
그 순간, 한제는 한 걸음 나서며 눈 깜짝할 사이 검은 안개로 변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계외 수련자를 휘감았다.
“끄아아악!”
검은 안개 속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어린 비명이었다.
주위의 수련자들은 그 비명에 표정이 급변했다.
탁삼!
검은 안개는 순간이동을 하듯 세상에 녹아들었다. 방금 전까지 안개가 있던 곳에는 어느새 비쩍 말라붙은 수련자만이 있었다. 두 눈은 이미 빛을 잃었고 온몸의 정화도 바닥나 있었다. 그는 이내 무너져 내렸다.
그때부터 봉계의 진을 지키던 계외 수련자들에게 악몽이 시작됐다.
한제는 축지성촌과 절천법을 연이어 발휘했고 곧바로 정열기 후기 수련자 뒤에 검은 안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검은 안개가 체내로 파고들었고 수련자는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육신이 팽창하더니 곧장 폭발해버렸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