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29
터져나간 수련자의 피는 곧장 다시 응집돼 원신과 함께 검은 안개에 흡수됐다. 남은 것은 비참한 비명뿐이었다.
“결진(結陣)!”
계외 수련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그중 쇄열기 절정의 노인이 호통 치듯 외쳤다. 그러자 수련자들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더니 하나둘 뒤로 물러나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고 각자의 미간에 서로 다른 문양이 번득이며 나타났다.
한데 그 순간, 방금 호통을 친 쇄열기 절정 수련자인 노인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다급하게 후퇴했다.
방금 폭발한 수련자의 원신과 육신을 흡수한 검은 안개가 그에게 달려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버렸다.
노인은 곧장 온몸의 원력을 가동해 바깥쪽으로 발산했다. 순간 한 줄기의 기운이 그의 몸을 맴돌며 그를 중심에 둔 채 사방을 휩쓸었다.
“중상을 입은 상태인데도 가까이 접근할 수조차 없다니⋯⋯.”
그러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뒤로 검은 안개가 나타났다. 그 안에서 극의 경계의 위력이 담긴 두 개의 붉은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노인의 두 눈이 바짝 졸아든 순간, 붉은 번개가 튀어나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들었다.
“헛!”
노인은 헛숨을 삼키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허공을 두드리며 물러났다. 이어서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귀신의 얼굴이 달린 거대한 방패가 나타났다.
지금, 노인은 세상에 오직 자기 자신과 붉은 번개만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온 우주가 사라져 버린 듯, 그의 눈에는 붉은 번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을 계속해서 휘둘러 신통력을 발휘해 붉은 번개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번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해, 노인의 신통력을 단숨에 무너뜨리더니 방패를 향해 돌진했다.
“조상님이시여, 부디⋯⋯.”
안색이 검게 변한 노인이 두 손을 방패에 얹고는 온 힘을 끌어모으며 외쳤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붉은 번개가 작렬했다.
쾅!
짧은 굉음에 이어 쩌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패에 새겨진 귀신 얼굴은 달려드는 붉은 번개를 집어삼키려는 듯 거대한 입을 쩍 벌렸으나, 바로 다음 순간 방패 전체가 산산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계외 수련자들은 멍한 얼굴로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번개는 멈추지 않고 곧장 노인의 미간에 박혔다.
“크으…”
노인은 몸을 바르르 떨었고 이내 두 눈이 어두워지더니 미간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체내로 들어온 붉은 번개에 저항할 틈도 없이 원신마저 와해됐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은 안개가 노인의 육신을 감싸더니 사라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노인의 가죽과 뼈뿐이었지만 이 또한 재처럼 흩어져버렸다.
“이것이 계외의 수련자인가?”
검은 안개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 계외 수련자들은 더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전까지만 해도 계내 수련자들을 한 무리의 양 떼처럼 여겼다.
심지어 자신이 계내 수련자들에게는 천도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여기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계내 수련자는 미개한 야만인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지금, 그들의 생각은 깡그리 무너졌다. 이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떨며 물러났다. 감히 앞으로 나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검은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입술을 핥았다. 매우 강력한 절천법으로 몇 사람의 원신과 육신을 연거푸 흡수하면서 부상은 빠르게 회복됐다. 특히 다른 사람의 체내로 파고들 때 느껴지는 편안함은 승선과를 먹었을 때처럼 중독성이 있었다.
한제는 사방으로 도망치는 계외 수련자들을 보며 잔인하게 웃더니 앞으로 나섰고 순식간에 그중 한 명의 곁에 이르렀다.
“히익!”
아직 어린 청년의 모습인 수련자는 알 수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그 비명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한제가 그의 목을 틀어쥐고 튀어나갔기 때문이다. 점점 목이 조이면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고 덜덜 떨려왔다.
청년의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검은 안개가 체내에서 폭발하면서 육신이 바짝 말라버렸고 원신과 혼백, 원력과 생기까지 한제의 왼손에 빨려든 것이다. 이어서 육신이 터져나갔고 피까지 한제에게 흡수됐다.
한제는 곧장 다음 사냥감을 향해 이동했고 주위에서는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축지성촌까지 발휘한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한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지금 이곳의 모든 자는 적이었다.
계내와 계외의 전쟁에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진 밖으로 나오려던 선인들을 계외 수련자들이 도륙한 것도 죽어가는 선인들을 냉랭한 눈으로 지켜본 것도 바로 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가.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이 진을 깨고 너희를 도륙할 것이다! 계외에 피로 이루어진 강이 흐르게 만들 것이야!”
계외 수련자들의 피는 아직 강을 이룰 정도는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심신이 떨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제의 부상과 수준은 빠르게 회복됐고 원신과 혼백은 굳건해졌다. 가슴의 상처만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백 명의 수련자 중 살아남은 백여 명은 제법 멀리까지 도망친 상태였다.
한제는 그들을 노려보며 검은 안개를 사방으로 퍼뜨려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누구도 도망치지 못한다!”
회오리는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이에 도망치던 수련자들의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고 심지어 일부는 회오리를 향해 빨려들기까지 했다. 죽음이 코앞에 닥치자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한데 바로 그때, 표정이 급변한 한제가 재빨리 몸을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며 왼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멀리까지 퍼져나갔던 검은 안개가 하나하나의 팔이 되어 도망치던 수련자들의 목숨을 거두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어서 한제는 그들의 원신과 육신을 순식간에 흡수하고는 곧장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가 모습을 숨긴 것과 거의 동시에 저 멀리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이한제!”
이어서 수련성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인영이 돌진해왔다.
“탁삼!”
모습을 숨기기 직전, 한제는 그 거대한 인영을 보았다. 아직 거리가 꽤 떨어져 있지만 그 인영의 포효만으로도 사방의 원력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역시 계외에 있었군!’
한제가 세상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잠시 후, 봉계의 진 근처에서 콰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탁삼의 거대한 육신이 나타났고 동시에 짙은 피비린내가 퍼졌다.
그는 지난 몇 년간 계외에서 끊임없이 태고의 부락들을 제거하고 다니다가 지금은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든 태고 성신의 수련자들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두 명이라면 어떻게 상대를 해보려 했으나, 그를 쫓는 자는 무려 셋이었다.
특히 그중 하나는 수준이 공령 중기에 이르러 있었고 꽤나 까다로운 신통술을 사용했기에 탁삼은 골치가 아팠다.
더구나 그는 몇 년 전 봉계의 진을 뚫고 계외로 난입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고 몇 개의 반점을 폭발시키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는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제가 대적하기에는 벅찬 존재였다.
탁삼은 진정한 고신의 육신으로 수만 년을 살아왔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강할지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세 수련자의 추격을 받는 동안 탁삼은 부상이 악화됐다. 하지만 수련자들 역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피차 서로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오직 공령에 이른 수련자만이 강력한 공격을 이어갔다.
분노한 탁삼은 도주하는 중에도 눈에 보이는 모든 생령을 죽였으나, 세 명의 수련자는 그를 지나치게 압박하고 싶지는 않았다. 힘이 다할 때까지 진을 빼놓으려는 생각인 듯했다.
10년 동안 탁삼의 마음에 쌓인 분노의 화염은 온 세상을 불사르기에 충분했다. 한제를 찾아 들어온 이곳에서 상대를 찾아내기는커녕 부상을 입고 쫓기는 몸이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데 그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된 순간, 한제의 기운이 태고의 성신에 나타났다. 이에 생각할 것도 없이 돌진해온 것이다.
그의 뒤로 세 갈래의 빛이 따라붙었다. 두 사내와 한 여인이었는데 이들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 주위에 모든 신식과 시선을 가로막는 왜곡이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금도 쉬지 않고 탁삼의 뒤를 바짝 따랐다.
탁삼은 낮게 고함을 내지르며 주먹으로 허공을 때렸다.
순간 전방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한 줄기 균열이 드러났고 탁삼은 곧장 일반인 정도로 몸집을 줄여 균열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제를 붙잡아 삼키고 자신을 뒤쫓는 저 수련자들을 모두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한편, 한제는 세상에 녹아든 채 축지성촌을 발휘해 이동했다. 우선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이를 생각이었다.
태고 성신 북부의 우주 속에서 대량의 왜곡된 파문이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한제가 빠져나왔다.
한데 그 순간, 뒤에서 폭풍이 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온 세상을 파괴할 듯 강력한 폭풍이 공간을 깨부수면서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이한제! 드디어 네놈을 찾았구나!”
음산한 기운과 함께 우렁찬 포효가 울렸고 이내 탁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균열 밖으로 나온 그의 두 눈에서는 짙은 탐욕이 번득였다.
한제는 달려드는 탁삼에게 극의 경계를 쏘아 보냈다. 붉은 번개로 나타난 극의 경계가 탁삼을 향해 돌진했고 동시에 한제는 다시 한번 축지성촌을 발휘해 세상에 녹아들었다.
탁삼은 당황한 기색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수련성 하나를 거뜬히 박살 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주먹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 주먹과 충돌한 순간, 붉은 번개는 그대로 탁삼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동시에 한제가 세상에 녹아들어 사라지려는 찰나, 탁삼 주먹의 실린 힘 일부가 그의 몸에 떨어졌다.
“크으윽!”
한제는 바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피를 토해냈다. 그를 뒤덮은 검은 안개가 무너져 내리더니 사라져 버렸다.
한편, 탁삼은 우뚝 멈춰 서더니 기이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천벌의 극!”
이어서 탁삼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의 체내에 들어온 뒤에도 스러지지 않은 붉은 번개가 계속해서 파괴력을 발휘했다. 고신의 강력한 회복력이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탁삼은 부상을 입은 상태라 위험할 수도 있었다.
“흥! 그렇다고 네놈을 놓칠 수는 없지!”
탁삼은 이를 갈며 추격을 이어가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그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뒤에서 세 갈래의 빛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더니 곧장 달려든 것이다.
한편, 한제는 태고 성신의 우주 어딘가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다급하게 몸을 날렸고 창백한 얼굴로 또 한 번 피를 토해냈다. 가슴의 상처는 악화돼 피를 꾸역꾸역 쏟아냈다. 옷은 이미 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이 상처는 고신의 도끼에 당한 것이라 고신족인 그는 오히려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을 완벽하게 몰아내지 못한다면 완전히 아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이곳에 탁삼이 있을 것도 결국 마주치게 될 것도 알고 있었다. 허나 이천매를 살리는 것이 우선. 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제는 붉은 검을 소환한 채 순간이동을 했다.
‘나에게는 극의 경계뿐만 아니라 이 검도 있다. 이 또한 고신의 법기. 고신족에게 충분한 상해를 입힐 수 있지. 게다가 탁삼은 약해진 상태다.’
더구나 한제가 아는 탁삼이라면 어디서든 대대적인 살육을 저질렀을 것이고 당연히 이곳의 강자들에게 쫓기고 있을 터였다.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계속해서 순간이동을 했고 한 번 사라졌다가 나타날 때마다 엄청난 거리를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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